비바, 천하최강(정지원)

 

깔깔대고 웃다가, 뒤로 갈수록 페이소스가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제목 때문인지, 아니면 표지 때문인지 가볍게 읽을 만한 성장소설로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오히려 작가는 그런 점을 처음부터 의도했는지, 갈수록 묵직해지는 삶의 무게에 나도 또한 어깨가 무거워지는 듯했다.

초반에는 네 소년의 우정을 그린 "포틴(4teen)"이 떠올랐다. "얼음이 빛나는 순간"처럼 여행식 구조를 통한 과거 회상식 구성과, "날아라 로켓파크"처럼 성공과 실패를 거듭하며 성장하는 긴 호흡을 닮아 있었다.

성장한 후에 청소년 시절을 바라보는 구조로 돼 있어서, 아이들에게 막상 권하는 게 주춤해진다. 그리고 80, 90년대 정서와 코드를 과연 아이들이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기도 한다. 

재미있고, 기발하고, 익살스러운 문체가 돋보이지만 무엇보다 가슴을 울리는 문장들이 많아서 좋았다.

 

<인상 깊은 구절>

(8) 입시라는 정글을 낮은 포복으로 지나 대학까지 마쳐 놓고도 무슨 팔자인지 다시 하루 종일 시험공부를 하고 있는 임용 고시 수험생과,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며 여기저기 입사 지원서를 써 보내고 있는 취업 준비생. 옛이야기 속 소경과 앉은뱅이 같은 커플이었다.
~ 88이라는 숫자는 오래전의 올림픽을 떠오르게 했다. 그저 붙들려 있기 때문에, 멈출 수 없기 때문에 계속 굴러갈 수밖에 없는 이 삶의 굴렁쇠는 얼마나 더 바닥을 기어야 종점에 도착해 잠이 들 것인가.

 

✎ 청소년 소설의 첫머리에 이렇게 묵직한 청년들의 삶의 고뇌가 담겨도 되는 것인가 잠시 멍해졌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도 10년 뒤면 이 길을 가고 있을 거란 생각에 더욱 암담해졌다.

 

(27) 이소룡과 성룡 중 오늘 승리한 것은 누구인가, 하는 의문이었다. 이소룡의 사상적 계승자가 날린 발차기에 의해 성룡의 육체적 계승자가 전동차에 갇혔으니 이소룡의 승리인가? 아니, 이소룡의 옷을 입은 자가 몰락하고 말았으니 이소룡의 패배 아닌가? 승부를 가른 것은 무술로 단련된 육체의 힘이 아닌 치밀한 계책이었으니 결국 이소룡과 성룡 둘 다 패배한 것인가?

 

✎ 이소룡과 성룡에 대한 추억! 80년대 초, 중, 고를 다닌 사람들이라면 둘의 우위를 놓고 고민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무술에 그다지 관심 없는 나까지도 궁금한데. 문제는 이 시대적 코드를 지금 우리 아이들이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 분명 재미있기는 한데, 과연?

 

(32) 현대사에 대해서는 뭔가를 감추려는 사람처럼 진도를 빨리 나갔다. 질문을 해도 선뜻 대답하지 않았고, 그쪽에서 시험 문제를 내는 일도 없었다.

교사이면서도 수업 중에 말을 아끼는 괴상한 습관이 있기는 했지만, 장학사 앞에서도 평소와 똑같이 수업하는 것은 귀관뿐이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장비들을 주렁주렁 달고 들어와서는 부끄러운 기색도 없이 연기를 하던 탤런트들이나, 학생들에게 미리 배역을 정해 주고 연습을 시키다가 왜 제대로 하지 않느냐고 신경질을 부리던 영화감독들과는 달랐다.

 

✎ ‘귀관’ 선생님에 대한 흥미가 생기는 부분이었다. 분명 다른 선생님들과 다른 특별한 아우라를 풍기고 있다. 그러면서 나라는 교사부터 반성이 되었다. 주렁주렁 달고 다니는 교사나 탤런트, 영화감독은 아니었는지? 아이들은 이미 학교부터 삶은 연극과 허위의 연속이라는 것을 배우고 자라는 것 같다.

 

(45) 방학은 끝난 뒤에 더 뜨겁다. 대체 누구를 위한 개학식인가. 답을 내기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전교생을 운동장에 세워 놓은 교장이 조회대 위에 올라가서 원고를 읽어 내려갔다. 하지만 그 퍼포먼스는 어른들의 말과 억양과 몸짓으로 이루어져 있어 우리에게는 잘 다가오지 않았다. 바스락, 다음 장으로 연설문을 넘기는 소리가 마이트를 타고 넘어올 때마다 하날음에 조회대로 뛰어 올라가 연설문을 빼앗아 불태우고 있었다.

 

✎ 방송 시설의 발달로 달라졌을까? 이런 광경이? 초등학교 5학년 때였던 것 같다. 거의 매일 중간놀이 시간에 나가서 훈화를 받았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뙤약볕 아래 부동자세를 취하고 교장선생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던. 모범생(?)이었던 나는 숨을 죽인 채 경청했지만 땅바닥이 오르락내리락하며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 모습을 보고 선생님이 몰래 뒤로 나오게 하시며, 교실로 조용히 들어가라고 하셨다. 그리고 우유를 한 잔 주셨는데, 얼마나 창피하던지. 그 이후로도 운동장 조회는 계속되었고, 그 끔찍한 기억은 아직도 간혹 꿈에 나온다.

 

(50) 옛날 흥선군한테는 ‘천하장안’이라는 심복들이 있었는데, 개인 경호는 물론이고 정보 수집 같은 것도 해 주는 심복들이었다고 하더라. 천하장안이라는 건 그 네 사람의 성을 따서 만든 말이라고 하는데, 너희들 이름이 천완균, 하승언, 최성운, 강영인이니까 천하장안이 아니라 천하최강이 되더구나.

 

✎ 작가의 의도적인 명명이리라. 솔직히 제목만 보고, 조금 유치한 수준의 청소년 소설이겠거니 했다. 소설의 내용은 제목처럼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에너지 넘치던 모습이 아닌, 뭔가 씁쓸한 페이소스가 느껴지는 전개였다. 어찌 보면 아이러니를 의도한 작가의 명명법이 아닐까 생각했다.

 

(54) 울타리 안에 있는 아흔아홉 마리의 양을 내버려 둔 채 한 마리의 양을 찾으러 가겠다는 사람이 정말 있다면, 그는 구제 불능의 얼간이다. 오늘 우리는 도저히 구제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해 결국 구제 불능이 되어 버리는, 재미있는 세상을 살고 있다.

 

✎ 한 마리의 양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은 신규 초임 시절이었을 뿐이다. 지금은 솔직히 아흔아홉 마리의 양이 중요하다. 하지만 한 마리의 잃어버린 양은 언제나 마음을 쓰이게 한다. 그리고 아흔아홉 마리에만 신경 쓰고 있는 나 자신이 교사로서 너무 타락한 것은 아닌지 간혹 우울하다.

 

(54) 아무리 봐도 일부러 시끄럽게 떠들고 있는 눈치였다. 세상을 내려다보는 듯한, 아니 내려다보기를 갈망하고 있을 시선들. 그러나 저 나이의 아이들이 내려다볼 만한 것이 있을 리 없다. 저런 유형의 아이들이 너무나 쉽게 굴복하고 타협한다는 것을 나는 이미 체험으로 알고 있다. 자신들이 남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실은 한 번도 자신보다 강한 사람을 만나 본 적이 없는 아이들일 것이다.

(55) 오직 패거리가 있다는 사실로만 위로받을 수 있는 젊음이 얼마나 위태로운 것인지를, 저 아이들이 혼자 힘으로 깨닫는 데는 얼마만큼의 시간이 필요할까. ~ 학창 시절 서클을 만들어서 어지간히 유난을 떨고 다녔던 한 명만은 어디에도 섞이지 못하고 혼자였다.

 

✎ 10년이 넘는 교사 경력에서 직접 체험은 아니더라도, 학창 시절 유명한 패거리들이 어떻게 되는지 관찰을 통해 알고 있다. 그래서 지금 그런 류의 아이들을 보면 염려가 되지만, 젊음에 도취된 아이들은 도통 들으려 하지 않는다.

 

(64) 복학생이 정말로 동성을 성적 대상으로 생각했던 것 같지는 않다. 그저 더 심하게 상처 내기 위해 그런 가면을 썼던 것 같다. 녀석으로 인해 나는 세력의 우위를 확인하기 위해 가해지는 성적 폭력에 대해 일찍이 알게 되었다. 녀석이 하는 짓이 다 사람을 힘들게 만드는 일이었지만,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그 꼴을 보고도 침묵하던 아이들 가운데 내가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다. 세월 지나고 나면 그저 술안주가 되는 다른 기억들과는 달리, 그날의 침묵은 마치 재를 뿌려 둔 상처 같아서 이후로도 가끔씩 핏물이 배어 나오곤 했다.

 

✎ 다수의 침묵과 방관이 가져오는 양심의 가책! 우리 아이들도 승언이처럼 느끼고 있을까? 승언이는 완규와 친하기 때문에 이런 가책을 느끼는 것일까? 나도 부당한 일에 방관이나 침묵하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121) 사건의 경위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범행 동기에 대해 추측해 보는 것은 조금 더 조심스럽다. 어쨌든 그 사건 이후로 성운이는 더 이상 나에게 대필을 부탁하지 않았으나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던 건지도 모르지, 그렇다면 완전 범죄라고 해도 괜찮지 않을까.

이처럼 잔인한 계획은 아트레에게 어울리지 않으나, 티에스테에게는 어울린다.

 

✎ 성운이가 짝사랑했던 대상을 승언이도 사랑했으니, 대필 사건의 전말은 결국 승언이가 범인이었다는 것이 마지막에 드러난다. 근데 이 부분이 제일 이해하기 어려웠다. 특히 마지막에 아트레와 티에스테 이야기[각주:1]는..

 

(128) 식물성 연애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피어 있던 꽃들이 서로를 발견하고 같은 바람에 흔들리며 향기를 주고받지만 잎과 줄기로 끈끈하게 엉켜드는 것은 겁내는 그런 연애다. 그래도 좋다. 괜찮다. 아마 나와 내 여자 친구는 지상의 시선들에게는 들키지 않을 깊은 뿌리로 오래전부터 이어져 있었을 것이다. 괜찮다. 이 생을 혼자 외로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만으로 나는 충분히 행복하다. 그러니 제삼자들의 눈에 어떻게 보이는지는 그리 중요치 않다. 설령 나와 세 친구의 소견이 부정적이라 해도 달라질 것은 없다. 내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그녀를 만나러 가는 날이면 소풍 가는 어린애처럼 설렌다는 점이니까.

 

✎ ‘사람에 향기를 주고 받는’, ‘혼자 외로워하지 않아도 된다’너무나 그윽하고 향기로운 연애인 것 같다. 지금도 이런 연애를 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는, 그들만의 조용하고 내밀한 사랑. 우리 아이들도 알고 있으려나?

 

(134) 천하최강이라는 것이 어떤 울타리였다면, 그 안에 머무르는 동안 나는 그런 부끄러운 일들과 무관한 삶을 누릴 수 있었다. 성운이 영인이 완균이와 함께한 시간들이 정말 즐거워서 오랫동안 웃으며 지낼 수 있었고, 나는 내가 눈물 흘리는 법을 잊었을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모든 눈물에는 보이지 않는 뿌리가 있게 마련이어서, 아무리 줄기와 잎을 잘라 낸다 해도 언젠가는 새잎이 돋아나게 마련이었다.

 

✎  ‘눈물에는 보이지 않는 뿌리가 있다’는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승언이에게 천하최강이 있었던 거처럼, 나에게도 나를 사랑하고 이해해주는 주위사람들 때문에 오랫동안 눈물 흘리는 것을 잊어버릴 수 있어 감사하다.

 

(176) 본격적인 체중 감량이 시작되기 전이었지만, 나는 그때 링이 도마나 다름없는 곳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시합자들은 대체로 감량이라는 과정을 거쳐 링 위에 오른다. 음식은 물론 물까지 끊으며 체중을 줄이는 험난한 여정이다. 뭔가를 버리면 그 눈부신 전장에 계속 남아 있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 소중한 것들을 하나둘 잘라내지만, 결국 그곳에 남는 것은 상처의 흔적과 비린 핏물뿐이다. 그날 내가 산산조각 낸 것이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의 유년이었다는 것을 너무 늦게 알았다. 그 뒤로 나는 링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비정하고 가혹한 ‘사회’에 의해 상처 입었지만, 그날의 아픔을 잊지는 않았다.

 

이른 바 통과의례를 승언이는 겪은 셈이다.

 

(208) 나는 해가 진 뒤에야 햇볕이 따스했음을 알았고, 서른이 넘은 다음에야 예전 그 시절이 싱그러웠음을 기억했고, 땅속으로 사라진 후에야 성운이가 너무나 소중한 녀석이었음을 깨달았다. 매번 밀려 쓴 답안지 같은 삶을 살았다.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야 할지 모른다.없이 해 나가야 하는 일들이 늘었다. 나는 마음껏 비참해졌다.

 

✎ 매번 밀려 쓴 답안지 같은 삶을 사는 것은 누구나 똑같지 않을까? 매번 후회하고 가슴을 치면서도 다시 반복하는 어리석음을 반복하고 있다. 

 

 

 

  1. 티에스테스는 형수 아이로페를 유혹하여 아트레우스가 보관하고 있던 황금양모를 훔치도록 했다. 황금양모를 갖고 있던 티에스테스는 미케네 사람들로부터 왕으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제우스가 개입하여 태양을 거꾸로 돌게 하여 동쪽에 지도록 했다. 이에 사람들은 티에스테스를 폐위하고 아트레우스를 왕으로 세웠다. 아트레우스는 동생 티에스테스를 추방했다. 아트레우스가 아내의 부정을 알게 되어, 복수를 위해 쫓겨간 티에스테스를 불러 들였다. 환영연에서 아트레우스는 미리 죽였던 티에스테스의 두 아들의 고기를 동생에게 먹였다. 티에스테스는 이 사실을 알게 되어 아트레우스와 그의 자손들에게 저주를 퍼부었다. 티에스테스는 델포이의 신탁에 따라 친 딸 펠로피아를 겁탈하여 아이기스토스를 낳았다. 이 아들은 후에 아버지가 저주한 아트레우스 집안에 복수를 했다. [출처] 비바, 천하최강|작성자 해피빠짱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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