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온다(한강)
- 상황별 청소년 소설 추천/친구,학교,사회 문제로 갈등할 때
- 2016. 12. 24.
이렇게 여운이 길 줄 몰랐다. 광주항쟁에 온 몸을 던진 사람들의 이야기가 현실감 있게 다가왔다. 그 현실감 속에는 작가 한강의 가사(家事)와 연결되는 부분이 있어 더해졌다는 생각도 든다.
여러 가지 이유로 광주항쟁은 이해하기(받아들이기?) 어려운 역사적 사건이 된 것 같다.
관련자들 상당수가 생존해 있고, 과거와 현재, 미래 권력과도 연결이 되고 있어 끊임없이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오히려 논란의 역사 속에서 광주 항쟁의 정신도 계속 현재화 되고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이런 상황에서 이 책은 좀 더 정적으로 광주항쟁을 바라보게 했다.
슬펐다.
퇴근하는 버스 안에서까지 붙잡았던 감정은 마지막 부분, 소년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흔들리고 말았다. 평범한 드라마에도 금방 동화되는 40대의 나이를 이겨냈던 감정을 도저히 참아낼 수 없었다.
책을 읽으며 느낀 광주항쟁의 정신은 양심이었다.
(45) 달아났을 거다, 라고 이를 악물며 너는 생각한다. 그때 쓰러진 게 정대가 아니라 이 여자였다 해도 너는 달아났을 거다. 형들이었다 해도, 아버지였다 해도, 엄마였다 해도 달아났을 거다.
아무것도 용서하지 않을 거다. 나 자신도.
(52, 58) 묻고 싶었어. 왜 나를 죽였지. 왜 누나를 죽였지. 어떻게 죽였지?
그래서 대척점에 선 이들은 ‘욕심’밖에 없었을 것이다.
(117) 아니요, 쏘지 않았습니다.
누구도 죽이지 않았습니다.
계단을 올라온 군인들이 어둠속에서 다가오는 것을 보면서도, 우리 조의 누구도 방아쇠를 당기지 않았습니다. 방아쇠를 당기면 사람이 죽는다는 걸 알면서 그렇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우린 쏠 수 없는 총월 나눠 가진 아이들이었던 겁니다.
나중에 알았습니다. 그날 군인들이 지급받은 탄환이 모두 팔십 만발이었다는 것을. 그때 그 도시의 인구가 사십 만이었습니다. 그 도서의 모든 사람들의 몸에 두발씩 죽음을 박아넣을 수 있는 탄환이 지급되었던 겁니다. 문제가 생기면 그렇게 하라는 명령이 있었을 거라고 나는 믿고 있습니다. 학생 대표의 말대로 우리가 총기를 도청 로비에 쌓아놓고 깨끗이 철수했다면, 그들은 시민들에게 총구를 겨눴을지도 모릅니다. 그 새벽 캄캄한 도청 계단을 따라 글자 그대로 콸콸 소리를 내며 흐르던 피가 더오를 때마다 생각합니다. 그건 그들만의 죽음이 아니라, 누군가의 죽음을 대신한 거였고. 수천곱절의 죽음, 수천곱절의 피였다고.
(113) 그는 자신이 죽으리라고 예상하면서도 도청 밖에까지 나갔다가 되돌아왔던 걸까요? 아니면 나처럼, 죽을 수도 있지만 살 수도 있다는 생각, 어쩌면 도청을 지킬 수 있을 것이고, 그렇다면 평생 동안 부끄러움 없이 사랑갈 수 있을 거란 막연한 낙관에 몸을 실었던 걸까요.
군인들이 압도적으로 강하다는 걸 모르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상한 건, 그들의 힘만큼이나 강렬한 무엇인가가 나를 압도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양심.
그래요, 양심.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그겁니다.
당시 광주 시민은 양심의 최후까지 몰렸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민주주의가 상당 부분 후퇴된 지금, 우리 역시 더 많은 양심의 질문을 받고 있다.
용산 참사, 세월호 참사, 백남기 농부, 사드 배치, 원자력 발전....
당면한 현실을 외면하지 말라고.
‘소년이 온다’
그런 면에서 ‘소년이 온다’는 더욱 양심적인 선택을 강조하는 말로 다가온다.
‘청년이 온다’와는 사뭇 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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