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의 밤(정유정)

 

"28"을 재미있게 읽은 아내가, 한 번 붙잡으면 놓기 힘들 거라 조언을 했다. 하긴 내 인생의 스프링캠프”, “내 심장을 쏴라도 그렇게 몰입하며 읽었다. 다만 당시 그렇게 몰입하며 읽었던 내용들이 지금은 대략의 줄거리와 약간의 ''만 있다는 것이 아쉽다.

 

한편의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책 속표지에 제시된 마을지도가 그런 느낌이 들게 했고, 액자식 구성도 그런 느낌을 갖게 했다.

미리 제시된 결말을 통해 어떤 사건이 벌어질지 감이 왔다. 또 플롯도 다소 익숙하게 느껴졌다. 인물의 성격이나 갈등도 이야기를 들으며 대체로 파악되었다. 그럼에도 몰입하는 건, 플롯을 채우는 디테일한 스토리와, 개인을 뛰어넘는 안타까운 아픔들 때문이다 싶다.

 

누가 더 나쁜 놈이고, 누가 시작한 일일까.

표면적으로는 음주로 인한 면허취소에, 음주운전, 살인과 시체유기, 댐 무단방류로 마을 사람을 수장한 현수가 최악의 인물이다.

그러나 딸의 복수를 하겠다고 일가족을 죽이려 하고, 7년의 밤을 벼렸으며, 모든 것을 제 뜻대로 했던 '오영제'는 더 최악이다. 특히 가정폭력을 일삼으며, 겉으로는 사회적 위신을 세우는 오영제는 이야기를 들을수록 피해자라기 보다는 모든 사건의 원인 제공자처럼 보인다.

작가의 말처럼 사실이 진실을 감추는 경우가 매우 많다. 사실은 단면이며 진실은 입체적이다.

7년의 밤은 하나의 사실이 얼마나 왜곡된 진실인지, 그 진실을 밝혀내는데 필요한 시간이었다.

 

어떻게 보면 주요 등장인물들에게는 자신을 넘어선 운명적인 사연이 있다. 그것이 인물의 운명을 이끌어 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모든 게 복선처럼 보인다.

그렇게 주요 등장인물들에게는 운명적인 사연이 있다. 또 그것들이 인물의 운명을 '불행하게' 이끌어가고 있었다. 수수밭 속 우물에 던진 구두 옆의 현수, 배다른 동생들을 결국 떨쳐내지 못했던 은주 등.

그래서 작가와 독자들의 눈과 입이 되어준 승환의 다음 말이 오랫동안 남는다.

 

(446) "고생했어. 우리 서원이. 잘 견뎠어."
서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뿐이었다. 정상적으로 보여야 할 반응이 없었다. 울거나, 비명을 지르거나, 최소한 흐느끼기라도 해야 했다. 뒤늦은 쇼크가 온 것처럼 몸을 뻣뻣하게 굳히고 침묵했다. 승환은 갑갑했다. 어떤 식으로든 지금 터트려야 했다. 그러지 못한다면, 서원은 홀로 견딘 공포와 고통을 영원히 끌어안게 될지도 몰랐다. 세령호는 서원의 우물이 될 터였다. 제 아빠의 것보다 더 어둡고, 깊고, 힘센 우물.

 

말할 건 말해야겠다.

또 피할 수 있는 것은 피해야겠다.

감당할수 없는 것들은 인정하고 받아들여야겠다.

운명화된 개인의 아픔이 삶속의 내면화된 급소가 되지 않도록.

 

7년의 밤
국내도서
저자 : 정유정
출판 : 은행나무 2011.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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