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정의 히말라야 환상방황

 

(305) 어린아이가 삶을 배워가는 존재라면 어른은 죽음을 배워가는 존재다.
스티븐 킹이 자신의-제목이 기억나지 않는-소설에서 한 말이다. 그에 따르면, 우리는 죽을 때까지 아이인 동시에 어른인 셈이다. 삶을 배우면서 죽음을 체득해 가는 존재. 나는 안나푸르나에서 비로소, 혹은 운 좋게 어른의 문턱을 넘었다. 관찰자 시점이 아닌 주인공 시점으로 죽음과 직접 대면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두려움을 견뎌냈다는 점에서도 그렇고. 기쁘고 감사한 일이다.

 

글을 읽고,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떠올렸다.
또 최근 내 생일날 우리 가족이 인정해 주고, 나에게 준 선물한 150km 섬진강 자전거 종주도 떠올랐다.

살아가는 힘을 만들어 내지 못할 때, 작가는 안나푸르나로 떠난다.
"내 심장을 쏴라"의 주인공 수명이 세상을 향해 뛰어든 그곳으로 새 출발을.
작가는 안나푸르나 라운딩 코스를 트래킹을 하며, 자신의 삶을 돌아본다. 그냥 평이하게 돌아보는 것이 아니라, 끝없는 계단과 심한 기후의 변화, 작렬하는 태양과 모래먼지, 현지식의 거부감과 심한 변비, 5000m가 넘는 고지대를 올라가며 죽음의 순간이나 가사의 순간을 경험하며 자신의 삶을 돌아본다. 맏딸로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동생들 뒷바라지를 하며 강하게 버텨왔던 삶과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안나푸르나를 라운딩 코스를 무사히 완주했다는 자신감. 그리고 여행 전과 후 변하지 않는 자신의 강점까지.

정유정 작가가 어떤 사람이고 어떻게 이야기를 형상화하고 있는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이야기였지만, 그동안 작가를 통해 보아왔던 글과는 사뭇 다른 이야기 전개에 어색하기도 했다.

아마 난 '안나푸르나'를 라운딩하는 경험을 갖기는 힘들 것 같다. 내 형편이 그렇다는 것인데, 사실 우리는 누구나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인 한계를 상정해 두고 이를 넘기 위한 시도를 부지런히 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공감하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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