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빵집과 52장의 카드(요슈타인 가아더)


나는 어디에서 왔을까라는 실존적인 고민을, 자아를 찾아 떠난 엄마를 찾아가는 그리스 여행에 담았다. 이야기는 인간의 본질에 대해 고민하는 아버지와 나의 외화 속에, ‘가 만난 도르프의 조그만 빵 가게 루트비히가 들은 제빵사 알베르트가 표류해서 만난 유리세공업자의 아들 프로데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내화로 구성돼 있다. 내화와 외화는 무지개빛 레모네이드, 어항 속의 금붕어, 카드와 조커로 깊은 연관을 맺고 있으며, 겹겹이 쌓여 잇는 내화 역시 실존적 고민을 52+1장의 카드를 통해 상징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이야기를 읽으며, 새삼 4, 13개씩 52장으로 된 카드가 인간의 삶의 주기로 해석된다는 점이 놀랍다. 프로데가 들려주는 카드놀이는 그 자체로 카드 점같기도 하고, 신분과 능력이 결정된 인간 사회를 상징하기도 한다. 게다가 이들은 결정된 어떤 것에도 특별한 인식이 없으므로 자연과 다를 바 없다. 반면에 조커는 무엇이든 변할 수 있는 것, 그래서 정체성의 혼란을 가지면서 세상의 본질에 의문을 품는 철학자이며 우리가 지향해야할 인간상이다.


우리가 배우는 이유는 무엇일까, 학교나 교사가 교육과정을 통해 사회구조를 재생산한다면 우리 역시 자연과 다를 바 없는 카드일 뿐이다. 기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내가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가야하는지, 그런 과정을 통해 창조된 모든 사람들에 대한 경탄과 예의일 것 같다.


<인상 깊은 구절>

(164~166) “네 조상 가운데 그 누구도 절대적으로 어려서 죽지 않을 확률은 수십억 분의 일이란다. 왜냐면 여기서 페스트만 문제가 되는 건 아니거든, 알겠니? 너의 조상은 모두 성장해서 아이를 얻었지. 그것도 끔찍한 자연재해나 무서운 영아 사망의 시대에 말이다. 그들 가운데 많은 이가 질병으로 고통받았지만 매번 살아남았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넌 수십억 번이나 죽음에서 겨우 1밀리미터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던 거야, 한스 토마스야. 이 행성에서 너는 해충과 사나운 짐승들, 운석과 벼락, 질병과 전쟁, 홍수와 큰 화재, 독살과 살인 미수의 위협을 받으며 살고 있단다. 30년 전쟁 중 너는 수백 만 번의 상처를 입었지. 왜냐면 넌 양쪽으로 조상을 가지고 있으니까. 그래, 사실 넌 3세기 후에 태어날 가능성에 대항하여 너 자신과 전쟁을 한 거지.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에서도 마찬가지였고. 선량한 노르웨어 사람들이 점렴 당한 동안 네 할아버지를 총으로 쏴 죽였더라면 너도 나도 태어날 수 없었을 거야. 중요한 건 이것이 역사가 흐르면서 수십억 번이나 일어났다는 것이다. 화살이 공중으로 날아갈 때마다 네가 태어날 가능성은 그만큼 줄어들곤 했지. 하지만 너는 지금 여기 앉아서 나와 이야기를 하고 있구나, 한스 토마스야. 이해하겠니?”


난 단 하나의 긴 우연의 고리에 대해 말하고 있단다. 그리고 이 고리는 최초의 생명이 있는 세포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데, 이 세포가 분리됨으로써 오늘날 이 행성 위에서 자라고 번성하는 모든 것의 원동력이 된 것이다. 나의 고리가 언제가 30억 년이나 40억 년이 흐르는 동안 중단되지 않았을 확률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적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살아남았어. 그래, 그게 나야. 그리고 내가 이 행성을 너와 함께 체험한다는 게 얼마나 환상적인 행운인지, 이 행성에 있는 온갖 작은 벌레조차도 저마다 얼마나 운 좋은 존재들인지 난 알고 있단다.”


그리고 운이 나빴던 이들은요?”

그런 사람은 없어!” 아버지는 고함치듯 말했다. “그들은 결코 태어난 적이 없어. 삶이란 당첨 복권만 눈에 보이는 어마어마한 복권 뽑기야.

✎ 저자는 책에서 삶은 우연이 아닌 운명적인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우연과 운명의 차이는 의도성에 있다. 물론 그 의도는 인간의 의지일 수도 있고 초월적인 어떤 힘, 즉 종교이거나 법칙일 수도 있다. 인간이 본질에 대한 의문과 이해는, 곧 인간의 주체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점에서 생각할 점이 많은 책이다.


-나와 연결된 우연의 고리에는 무엇이 있을까?

-우리가 이렇게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억세게 운 좋은 사람들이라는 마을 부정해 보자.


수상한 빵집과 52장의 카드
국내도서
저자 : 요슈타인 가아더(Jostein Gaarder) / 백설자역
출판 : 현암사 2016.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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