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도시 이야기(찰스 디킨스)
- 행복한 책읽기/문학
- 2017. 8.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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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표지 이야기
이 책을 도서관에서 빌렸을 때부터 표지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 궁금했다. 제목과는 거의 연관선이 없어 보이는 한 인물이 결연하게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 모습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처음에는 폭도 또는 궐기한 군중들 앞에서 연설하는 남자 주인공이지 않을까 짐작했다. 그런데 마지막에서야 비로소 그가 시드니 카턴이었다는 것을 알고 얼마나 전율했던지. 기요틴 앞에서도 당당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 진정 사랑이었을까?
2. 거대한 역사의 흐름 속 드라마
이 소설의 큰 줄기는 프랑스 대혁명이다. 솔직히 서양 역사에는 거의 문외한이었기에 이런저런 서양의 복잡한 역사를 담고 있는 이런 소설들이 다가가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었다. 두께도 만만치 않은 이 소설을 대했을 때, 엄청난 두께와 빡빡한 글씨, 그리고 잘 알지 못하는 영국과 프랑스의 역사 속 인물들의 이야기는 도무지 책장을 들출 엄두를 내지 못하게 만들었다. 예상과 다르게 첫 구절부터 가슴 떨리게 만드는 그 무엇이 있었지만, 내 마음을 가장 잡아끌었던 것은 사람 사는 이야기, 곧 드라마였다. 실종 되었던 아버지를 찾기 위해, 그리고 먼훗날 감옥에 갇힌 남편을 찾아 국경을 넘어서는 강인하고 아름다운 루시의 이야기, 자신의 신분에 부끄러움을 느끼고 숨어 살며 죽을 뻔한 고비를 두 번이나 넘긴 찰스 다네이(샤를 에브레몽드), 사랑을 위해 목숨까지 바치는 순수한 탕아 시드니 카턴, 억압된 사회를 바꾸고 참혹한 과거에 대한 복수를 꿈꾸는 드파르주 부부 이야기, 그리고 주변 인물들 로리, 미스 프로스, 제리 크런처 등. 이들이 하나의 이야기(프랑스 대혁명+개인사)로 얽혀 있다는 것이 너무도 흥미진진했다. 특히 드파르주 부인이 에브레몽드 후작(샤를의 숙부)이 능욕한 언니의 동생이었다는 것이 밝혀지는 순간은 정말 심장이 짜릿할 정도였다.
3. 레미제라블과 두 도시 이야기
책의 뒤편 리처드 맥스웰의 작품해설이 실려 있다. 솔직히 소설보다 더 이해가 되지 않는 글이지만 566쪽에서 거론한 <레미제라블>과의 연관성은 눈이 번쩍 뜨이게 했다. ‘오랫 동안 부당하게 투옥된 적이 있는 남자(장발장-마네트박사)’, ‘젊은 여자가 딸이라고 주장하고(코제트-루시)’ ‘이들은 그들의 과거가 알려지지 않은 대도시의 심장부에서 반쯤 익명으로 살아간다. 그는 자신의 영혼과 생명을 구원해 준 아름답고 젊은 여자에게 지나칠 정도로 집착한다.’ ‘그리고 거의 의식하지 못하지만 이상적이면서도 타당해 보이지 않는 딸의 구혼자, 자기 집안의 권세에 반대하고 저항하는 사윗감(마리우스-샤를)에 불만을 갖는다.’ ‘그는 또한 봉기가 일어났을 때 대단한 능력과 위엄을 가진 인물로 나타나 평소라면 가까이 할 일도 없는 정치적, 군사적 폭력의 소용돌이에 맞서 얼굴이 창백해진 딸의 구혼자를 구한다, 그는 상징적인 죽음(시드니)을 맞고, 즉시 탈출했지만 기적적으로 변신하고, 그런 사건들을 겪는 동안 겉으로는 모르게 상징적인 부활을 한다.’
결국 마네트 박사와 시드니 카턴의 역할을 장발장이 고스란히 흡수했다고 할까?
이런 연결들이 정말 놀라울 정도로 맞아 떨어져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심지어 맥스웰은 확정적으로 위고가 디킨스로부터 많은 부분에서 빚을 많이 졌다고 했다. 두 거장이 이렇게 이어지다니. 놀랍고 흥미로웠다.
4. 궁금한 점
왜 ‘두 도시’일까? 소설의 첫 부분은 프랑스나 영국이나 도긴개긴으로 표현된다. 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프랑스는 혼란과 무질서, 폭력의 아수라장, 핏빛 살육의 현장으로 그려지고, 루시 가족이 떠나온 런던의 집은 평화로움과 행복 그 자체로 느껴지게 만든다. 디킨스는 프랑스 혁명의 시작이 타당한 이유가 있음을 잘 알고 있는 작가임에는 분명하다. 그런데 결국 파리를 떠나오는 루시 가족들을 통해 체제가 전복되지 않는 질서의 우위를 보여주려 했던 것은 아닌지? 어쨌든 왜 하필 ‘두 도시 이야기’일까?
5. 꼭 적어 놓고 싶은 인상 깊은 구절
13쪽
최고의 시절이자 최악의 시절, 지혜의 시대이자 어리석음의 시대였다. 믿음의 세기이자 의심의 세기였으며, 빛의 계절이자 어둠의 계절이었다. 희망의 봄이자 절망의 겨울이었다. 우리 앞에는 모든 것이 있었지만 한편으로 아무것도 없었다. 모두들 천국으로 향해 가고자 했지만 엉뚱한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말하자면, 현재와 너무나 비슷하게도, 그 시절 목청 큰 권위자들 역시 좋든 나쁘든 간에 극단적인 비교로만 그 시대를 규정하려고 했다.
--> 책을 처음 펼쳤을 때의 전율을 잊을 수 없다. 대한민국의 2016, 2017년과 너무도 닮았기에. 제발 이 어둠을 벗어나 빛으로, 희망으로, 봄으로 갔으면 좋겠다. 진심으로!
<2017.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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