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속의 문맹자들(엄훈, 우리교육)

기초 학력, 또는 기초 학력 미달 학생이 많아 ‘배움이 있는 수업’을 만들어 가는데 어려움이 많다. 학년별·학급별 편차도 있어 1학년의 어떤 학급은 교사의 안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거나, 교과서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멍하니 있거나 딴짓을 하거나 친구들과 눈짓으로 장난을 쳐 곧 수업 분위기를 흩트린다. 

비슷한 문제의식을 가진 교사 여러 명이 수업을 열고 보조 교사로 참여하면서 학습 분위기는 한결 나아졌지만, 뜻을 모으지 못한 여러 학급은 결국 학년 말까지 차분한 배움으로 마무리하지 못했다.


혁신학교 2년차 컨설팅 요청 과제의 하나로 기초 학력 미달 문제를 의뢰했다. 교육과정, 수업, 평가, 교실 환경 등에 걸친 조언과 함께, 이 책 “학교 속의 문맹자들”을 추천 받았다.

작년 한글날 기념 훈화 자료를 만들면서, 우리나라 문맹률이 선진국들에 비해 높다는 기사를 접한 적이 있지만 한글의 우수성을 강조하느라 넘겼던 기억이 난다.


이 책의 문제제기는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눈에 보이는 기준인 ‘한글 해득’ 만으로 배움의 터전인 학교는 아이러니하게도 문맹자들을 방치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학교가 구조적으로 교육보다는 행정을 중심에 두고 있어 이 문제를 지나치고 있거나 의도적으로 회피하고 있었다는 것을. 그러면서도 저자가 시도했던 프로그램들 속에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시하고 있다.


(28) 한국의 경우 문해력 조사 초기에는 초등학교 2학년이 언급되다가 초등학교 3학년 수준에 이어 최근에는 초등학교 6학년 수준으로 조정되었다. 서구의 경우 초기에는 초등학교 6학년 수준 정도를 기능적 문해력의 기준으로 삼다가 중학교 2~3학년이나 고등학교 2~3학년 수준으로 문해력의 기준을 높여서 측정하는 경향이 있다. (중략) 수업 장면에서 정상적인 읽기 수준보다 2년 이상 뒤처진 학생들은 그 수업 장면에서 읽기와 쓰기 활동을 통해 정상적으로 상호작용하기가 힘들다. 그런 점에서 학교에서의 기능적 문맹은 정상적인 학년 수준에서 읽기 능력이 2년 이상 뒤떨어지면 교실 수업에서 실질적으로 문맹자가 된다. 

 저자는 먼저 문맹의 기준을 ‘한글 해득’에서 ‘기능적 문해력’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2년 이상의 수준 차이를 어떻게 객관적으로 드러낼 것인지가 문제다. 또 이를 바탕으로 기능적 문맹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교사와 학교, 학부모가 어떻게 노력해 나갈 것인지, 이를 심각하게 인지하며 학교나 교육청 차원에서 풀어나갈 수 있을지 고민이다. 그러나 우리 아이들과 1년을 부대끼면서 막연하게 느꼈던 답답함은 뚜렷해진다. 물론 충격도.


(98) 읽기 부진을 겪는 아이들은 그 원이 무엇인가와는 상관없이 수업에 강한 염증을 느낀다. 이들에게 수업 시간은 학습이 이루어지는 시간이 아니라 관리하고 때워야 하는 시간이다. 이들에게 수업 관리는 학습에 대한 교사의 강한 압력을 노골적으로 혹은 은밀하게 회피하는 것이며, 무료한 수업 시간을 견디기 위해 시시때때로 재미있는 일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들은 소극적으로는 잡담을 나누거나 장난을 치기도 하고 적극적으로는 뭔가를 열심히 설명하고 있는데 갑자기 엉뚱한 질문을 해서 수업의 흐름을 끊어 놓기도 한다. 어떤 아이들에게 수업 시간에 일어나는 교사와의 갈등은 그 자체가 하나의 흥미로운 사건일 수도 있다.

물론 이들에게 수업 시간이 그러한 의미를 지니는 까닭은 누적된 학습 실패 경험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방법은 성공적인 학습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다.

 수업 내용을 삶과 연관된 내용으로 디자인하라고 조언한다. 소재나 배경지식 면에서 부족한 능력을 최소화할 수도 있기 때문인 듯 싶다. 한편, 이 아이들이 새로운 내용을 받아들이는데 어려운 가장 큰 문제는 배경지식이므로 교과 내용과 연관된 책들을 꾸준히 읽히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213) 행정 업무가 학교의 조직과 위계를 형성하는 지배적 영역이라면, 수업은 순전히 교사 개인의 실존적 자각에 의존하는 배타적 영역이다. 학교는 수업 시간이나 진도 등 수업의 외형적이고 양적인 측면에 대해서는 통제를 가하지만 수업 시간에 이루어지는 학생의 경험과 같은 수업의 질적인 측면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지지도 통제를 하지도 않는다. 이러한 학교 운영의 원리에 다라 교실 공간의 독특한 문화적 의미가 형성되고 유지된다. (중략)

어느 날 수업에 관심이 많은 교장 선생님이 순시를 하다가 어느 교실의 뒷문을 열고 들어갔다. 이때 수업을 하고 있던 교사가 수업을 중단하고 “한 교실에 태양이 두 개 있을 수 없다.”는  말을 남기고 교실 문을 열고 나가 버렸다는 것이다. 교실은 아직도 학교의 최고 결정권자인 교장조차도 함부로 침범할 수 없는 배타적인 영역으로 남아 있다. 

 교사·학생·학부모의 관심사여서 가장 공적인 영역인 수업이 가장 사적인 영역이 되었다는 지적은 수업 공개의 필요성을 이야기할 때마다 등장하는 내용이다. 수업을 여는 것까지는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문제는 수업을 통해 교사로서의 고민, 아이들의 배움을 나누고 성찰하고 환류하는 시스템까지 나아가고 있지 못하다. 즉 또다른 의미의 사적인 영역이 지속되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학년 차원의 수업연구회와 생활교육협의회를 강조했으나 역설적이게도 행정 업무를 먼저 편성하는 우를 범하게 되었다.


(246) 사람마다 읽기의 방식은 조금씩 다르며 목적과 상황에 따라 읽는 방법이 달라지기도 한다. 그러나 읽기 능력을 지속적으로 발달시키는 성공적인 읽기 방법과 읽기 실패를 초래하는 나쁜 읽기 방법이 존재한다. 성공적인 읽기 방법의 기본 원리는 ‘의미 중심의 읽기’이다. 의미 중심의 읽기란 의미를 재구성하는 것에 초점을 둔 읽기 방법이며, 무의미한 훈련보다는 읽기의 실제적인 목적을 달성하는 데 초점을 맞춘 읽기 방법이다. 읽기는 읽기를 통해서만 발달한다. (중략) 경우에 따라서는 읽기에 어려움을 유발하는 특정한 기능을 훈련하는 것이 필요하기도 하지만 진정한 읽기 능력의 발달은 성공적이고 유의미한 읽기 경험을 통해서만 이루어진다.

 읽기 능력을 지속적으로 발달시키는 성공적인 방법이 제시돼 있다. 과목별로 다양한 수준의 읽기 목록을 제시하거나, 프로젝트 학습 같은 것을 통해 관련 교과 책을 즐겨 읽는 태도와 배경지식(비시각 정보)을 키워 궁극적으로 ‘성공적이고 유의미한 읽기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의미에서 모든 교과에서 다양한 수준의 도서 목록을 제시하거나 독서를 수행평가 영역으로 제시하여, 유의미한 읽기 경험즉, 긍정적 매튜 이펙트 형성 필요하다.


(284) 스타노비치는 여러 연구자들의 연구 결과를 토대로 읽기 능력의 발달과 지속적으로 상호작용하는 요인이 어휘력임을 밝히고 있다.

어휘력은 보통 구어와 문어 사용 상황에서 접하게 되는 낯선 단어들의 의미를 귀납적으로 학습함으로써 신장된다는 데 대해 학자들 사이에 이견이 없다. 즉 어휘력은 직접적인 어휘 지도보다 읽기를 통해 주로 신장된다.

  저자의 말을 따라 읽으며 읽기를 많이 할수록 어휘력이 신장된다.(매튜 이펙트)


(291) 셰어 외는 읽기 성취도 영역에서 수동적 유기체-환경 상호작용이 어떻게 매튜 이펙트에 기여하는지를 보여 주는 흥미로운 능력-집단 구성 효과를 밝혀 내었다. 그들은 39가지의 인지-가정 환경 요인들의 관계를 조사하였다. 여기서 개인 점수와 학습 점수와의 상관계수는 .59로 나타났고, 개인 점수와 학교 점수와의 상관계수는 .45로 나타났다.

 학급 분위기와 읽기 능력의 상관 관계가 높다. 수업 연구와 생활교육을 함께 해야하는 구체적인 근거로 보인다.


(396) 읽기 부진아들에게 필요한 상호작용은 교사와 학생 사이의 개별적이고 친밀한 상호작용이라는 것도 강산중학교 실행 연구의 실행착오를 통해 깨달은 것이었다. 보충 학습반 자체는 소그룹 활동으로 전개되었지만 이때 이루어진 유의미한 상호작용은 모두 교사와 학생 사이의 개별적 상호작용이었다. 읽기에 대한 긍정적인 경험이 거의 없고 자존감이 낮은 아이들의 특성 때문에 매우 효과적이라고 보고되어 온 학생과 학생 사이의 또래 상호작용은 역효과를 낳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도 새롭게 깨달은 사실이었다.

 저자의 경험을 일반화할 수 있을지 고민된다. 저자는 읽기 능력이 부족한 학생의 경우에는 교사와 학생 사이의 개별적 상호작용이 또래 상호작용보다 더 효과적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할 수만 있다면 교사가 직접 개입하는 것이 효과적이지만, 저자가 지적한 학교의 문제도 현실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교육 현장이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학교도 2년 동안 수업을 열고 들여다 보면서 '기초 학력'의 문제를 다 함께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책 역시 15명의 교사가 지금 읽고 있다.

먼저 학교 안에서 기능적 문맹자들의 실태부터 파악해 보아야겠다. 또 기능적 문맹에서 벗어나기 위해 '의미 중심의 읽기'란 측면에서 과목별로 긍정적인 읽기 경험을 쌓을 수 있는 프로그램도 학년 차원에서 만들어 볼 수 있지 않을까. 걱정도 많지만 기대도 된다.

학교 속의 문맹자들
국내도서
저자 : 엄훈
출판 : 우리교육 2012.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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