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여는 국어교육 2010년 3.4월호에 추천한 상황 도서 목록


새 학기, 선생님들과 함께 읽고 싶은 책

광주국어교사모임 독서 소모임 ‘상캐’


‘상캐’는 ‘문제 상황에 맞는 도서를 캐내다’를 의미합니다. 중고생 수준에 맞는 청소년 소설을 읽고, 아이들이 처한 여러 가지 갈등 상황(가족 문제, 친구·선후배 문제, 선생님·학교 문제, 성·사랑·이성 문제, 내적 갈등)에 맞는 도서를 발굴, 정리, 추천하여 궁극적으로 아이들이 책을 가까이하도록 고민하는 교사들의 모임입니다.

그리고 지난 2009년 9·10월호에 그동안 캐냈던 도서 목록을 발표했습니다. 이번 호에는 이후 새로 발견한 책과 새 학기를 맞아 선생님들과 함께 읽고 싶은 책(새 학년을 준비하는 선생님과 함께, 성장소설 고전 다시 읽기)을 함께 추천합니다.



<새 학년을 준비하는 선생님들과 함께>

1. 프리덤 라이터스 다이어리(에린 그루웰, 랜덤하우스코리아)

<나라말향기> 모임을 하며 이루고자 했던 꿈들이 이 책에 녹아 있었다. 우린 학생 개개인의 고민에 주목해 그걸 내적 동기로 삼아 독서를 통해 치유의 경험을 주고자 했으나 결국 현실적인 한계 때문에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이해라는 차원으로 문제를 다소 일반화한 후 또래의 경험을 나누고 힘을 얻기를 바랐다. 즉 독서를 바탕으로 또래 상담을 통해 치유의 경험을 얻다 보면 자연스럽게 책을 가까이 하고 그런 경험이 축적되었을 때 독서를 생활화하고 책을 통해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 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우리가 생각했던 <상황별 독서프로그램> 역시 그런 흐름을 고려해서 만들었으나 지금 생각해 보면 교실 안에서 적용하기에 여러 가지 제약이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루웰 선생님과 반 아이들의 일기에는 현장성을 바탕으로 고민하는 교사와 그를 방증하는 변화들이 500여 쪽에 잘 나타나 있다. 인종 차별과 폭력이 끊이지 않는 미국 사회에서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한 사람으로 상대를 인정하는 배려와 관용이고, 그것은 적절한 배움의 과정을 통해 읽기와 쓰기라는 자아 확인 과정을 거치며 실천으로써 가능하다는 희망을 주고 있다.


<밑줄 긋기>

•샤로드는 짖궂은 장난의 대상이 되었다. 샤로드의 튀는 행동에 짜증이 난 반 아이 하나가 입술을 과장되게 부풀린 인종차별적인 그림을 그린 것이다. 그런데 그림을 몰래 돌려보던 아이들 중 하나가 크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 그림을 본 샤로드는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거칠게만 굴던 샤로드의 허울이 벗겨지는 순간이었다. 그림을 뺏어든 나는 화를 참을 수 없어서 아이들에게 고함을 질렀다.

“이건 나치들이 홀로코스트 때 썼던 선전포고하고 다를 게 없어!”

그러자 놀랍게도 한 아이가 머뭇거리며 “홀로코스트가 뭐예요?”라고 묻는 게 아닌가. 나는 뜻밖의 질문에 충격을 받고 아이들에게 되물었다. “홀로코스트에 대해 들어본 사람 있니?”그러나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이번엔 “그럼 총에 맞을 뻔한 사람은?”하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거의 모든 아이가 손을 들었다.

그 순간 나는 공들여 준비한 수업 계획을 포기하고, ‘관용’을 교육 내용의 핵심으로 삼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 이후로 나는 새로운 책을 활용하고, 일일 교사를 초빙하거나 현장 학습을 통해 아이들에게 역사를 가르치고자 애썼다. 하지만 교생에 불과했기 때문에 아무런 예산이 주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저녁에 메리어트 호텔의 접수계 일을 하고, 노드스트롬 백화점에서 란제리를 팔기도 했다.


•그루웰 선생에게 “왜 나하고 상관없는 사람들이 나오는 책을 읽어야 하죠? 나는 그들을 모르고, 그들이나 나나 서로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이라구요!”라고 말했다. 처음에는 영리한 질문이라고 생각했다. 속으로 ‘이번엔 내 말이 맞으니까 아무 대답도 못하겠지’라고 짐작했다. 그녀는 고개를 들고 나를 보며 침착하게 말했다. “그걸 어떻게 장담하지? 넌 책을 열어보지도 않았잖아. 직접 읽어보기 전에는 절대 알 수 없어. 아마 읽다 보면 생생하게 살아 있는 이야기라는 걸 알게 될 거야.”



2. 남자아이 여자아이(레너드 삭스, 아침이슬)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의 아이들 편이라면 맞을까. 남자아이와 여자아이의 다른 점을 너무나 명확히 짚어주는 신기한 보고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많은 사람들이 여자와 남자는 다르지 않다고 주장했고, 교육 방식과 가치관에 따라 남자와 여자의 차이가 조장된다고 했다.

그러나 이 책은 그 주장과 아주 상반된 이야기를 한다. 남자아이와 여자아이는 두뇌 구조부터 시각 체계, 청각에 이르기까지 생물학적으로 다르고, 당연히 생물행동적인 반응도 다르단다. 따라서 남자 아이와 여자아이를 키우고 가르치는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저자가 직접 만난 아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부모와 교사가 남녀의 근본적인 성차를 어떻게 이해하고 적용하는지에 따라 아이들의 삶이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보면 ‘남자아이들은 왜 이럴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될 때가 있다. 이 책을 읽고 풀리지 않았던 수수께끼에 대한 답을 찾은 기분이다. 어제도 오늘도 있었고, 내일도 있을 그들과의 전쟁을 끝내고 평화를 이끌어낼 해답의 실마리를 찾게 되었다고 할까.

옆에 두고, 주변에서 어려움을 겪는 선생님, 학부모님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픈 책이다. 저자의 다른 책, <알파걸들에게 주눅 든 내 아들을 지켜라(레너드 삭스/웅진지식하우스)>도 함께 읽어볼만 하다.


<밑줄 긋기>

•아이가 태어난 후 첫 일 년 동안에 부모는 아기에게 한 가지 기본적인 사실, 즉 ‘부모가 부모라는 사실’을 인식시켜야 한다. 결정권은 부모에게 있다. 만일 부모가 4개월짜리 아기에게 젖먹이는 문제에 확고한 태도를 취할 수 없다면, 자녀가 8세가 되었을 때에는 잠자리에 드는 시간을 가지고, 또 15세가 되어서는 통행  금지 시간이나 ‘12시까지는 귀가해야 한다.’는 규칙들을 가지고 끝도 없는 논쟁을 벌일 씨앗을 뿌리는 것이다. 하지만 아기가 부모의 규칙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아동기와 사춘기에 이르러 부모가 시키는 훈련이 보다 큰 효과를 발휘하게 될 것이다.

•소년들은 교사의 부드럽고 나직한 목소리를 알아듣기 어렵다.

•소녀들은 명사를 그리고, 소년들은 동사를 그린다.

•소년은 자기를 과대평가하고, 소녀는 자신을 과소평가한다.

•(10세~15세 소년들) 이 시기 소년들의 훈련 전략은 두 가지 면에서 달라져야 한다. 첫째, 체벌은 더 이상 효과가 없다. (중략) 둘째, 유도 기법을 변화시켜 활용해야 한다.



<가족문제로 갈등할 때>

1. 위저드 베이커리(구병모, 창비)

마인드 컨트롤을 시켜주는 ‘마인드 커스터드푸딩’, 화해의 ‘메이킹 피스 건포도 스콘’, 실연의 상처를 잊게 해주는 ‘브로큰 하트 파인애플 마들렌’, 싫은 사람이 먹고 떨어질 수 있도록 만드는 ‘노 땡큐 사브레 쇼꼴라’. 이상야릇한 낯선 이름이 향기롭고 맛있을 거라는 기대보다는 마녀가 만든 약물처럼 신비스럽고 기괴한 느낌을 준다.


이 책의 줄거리 자체도 그렇다. 판타지라는 과일과 꽃으로 장식을 입힌 생크림 케이크를 닮은 성장소설. 신비한 마법의 힘을 지닌 지점장이 만들어낸 빵과 쿠키는 ‘나’의 상처 많은 유년기와 청소년기의 눈물 젖은 빵처럼 축축하게 다가온다. <완득이>가 다문화 사회로 접어드는 우리 사회의 현실을 청소년의 꿈과 희망에 절묘하게 접목시켰다면, 이 소설은 지금껏 보아온 청소년 소설 중 가장 참신한 판타지적인 요소를 끌어들였다.


하지만 주인공인 ‘나’가 겪어야 하는 아픔이 배선생이라는 계모와 아버지의 이중성에 의한 것이었다는 점은 다소 선정적이고 자극적이다. 특히 두 사람이 빚어내는 모습이 바로 우리 가족 관계의 폭력성의 극단을 보여주며, 두 캐릭터의 불쾌한 이중주는 달콤한 케이크의 맛과는 정반의 씁쓸한 맛이기에 아이들이 읽는다면 중학교 3학년 이상의 아이들에게 권하고 싶다.


<밑줄 긋기>

•긍정이나 부정, 자기가 바라던 어느 쪽의 변화든 간에 이것은 물질계와 눈에 보이지 않는 비물질계의 질서에 변화를 일으키는 일입니다. 따라서 모든 마법의 이용 시 그 힘이 자신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수 있다는 사실을 반드시 명심하십시오.

•“언제나 옳은 답지만 고르면서 살아온 사람이 어디 있어요. 당신은 인생에서 한 번도 잘못된 선택을 한 적이 없나요?”

“틀린 선택을 했다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는 게 아니야. 선택의 결과는 스스로 책임지라는 뜻이지. 그 선택의 결과까지 눈에 보이지 않는 힘에 의존하기 시작하면, 너의 선택은 더욱 돌이킬 수 없는 방향을 나아갈 거란 말을 하는 거야.”

•무엇보다도 사람의 감정은 어째서, 뜨거운 물에 닿은 소금처럼 녹아 사라질 수 없는 걸까. 때로 어떤 사람들에게는 참치 통조림만도 못한 주제에.

“그러다 문득 소금이란 다만 녹을 뿐 사라지지 않는다는 걸 깨닫는다. 어떤 강제와 분리가 없다면 언제고 언제까지고 그 안에서.”



2. 파파스 1·2(오진원, 풀그림)

요한, 테호, 안나, 파파스, 익숙한 듯 낯선 이국적인 이름과 미국 어느 중산층 가정의 풍경을 닮은 배경에 처음엔 외국작가의 소설인 줄 알았다. 인물과 배경의 이국적인 설정은 분명 작가의 의도일 것이다. 특히 가정 폭력이라는 까다로운 소재를 말랑말랑한 이야기로 버무리기 위한 배경과 인물 설정은 매우 탁월하다. 무엇보다 단순한 줄거리와 인간관계, 쉽게 빠져드는 판타지적인 요소들이 잘 짜인 한 편의 동화를 보는 것 같았다. 다양한 글씨체와 재미있는 삽화로 쉽게 읽히는 반면, 잠깐씩 멈추고 자기 자신과 나의 가족을 돌아보게 하는 구절 속에서 이 책은 묘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엄마를 잃은 슬픔 속에서도 동생을 돌봐야하는 테호. 아이들의 슬픔을 안아주고 지켜줘야 하지만 자신의 더 큰 상처에 방황하는 아빠, 요한 씨. 그리고 복지사인 제인은 어린 시절 입양되어 엄마의 사랑에 대한 목마름으로 사랑의 아픔을 지녔다. 꼬마 마법사 파파스도 자신의 상처가 너무도 크고 아파, 곁에 있는 이의 아픔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을 어루만져 주는 마법사였던 것이다. 아이들만을 위한 단순한 동화라고 생각했는데, 누구나 가지고 있을 법한 마음의 상처에 대한 이야기였고, 어른을 위한 동화이기도 했다.


대중성과 작품성을 두루 갖추었기에 <마시멜로 이야기>나 <해리포터>에 견줄만한 경쟁력이 있다고 본다. 나와 남의 상황을 거꾸로 생각해 보기, 소통하기, 내 마음 표현하기 등에 대한 통찰력은 분명 뛰어나다. 특히 어른과 아이들이 함께 읽을 수 있기에 모두에게 주저 없이 추천할 수 있을 것 같다.


<밑줄 긋기>

•더 이상 도망치지 않을 거야. 난 다 잃은 줄 알았단다. 그런데 아니었어. 난 이렇게 지킬 것이 많은 사람이었어.

•상처가 아물지 않는 한 그건 과거가 될 수 없어. 언제나 현재일 뿐이지

•넘어질 걸 알면서도 달려가는 거. 절망할 걸 알면서도 희망하는 거. 끝이 빤히 보이는 길일지라도 눈 감고 걸어갈 수 있는 거. 그런 게 사랑 아니니? 넌 왜 아프지 않은 사랑만 하려고 하니?



<친구, 선후배 문제로 갈등할 때>

1. 트루먼스쿨 악플 사건(도리 힐레스타드 버틀러, 미래인)

요새 '왕따' 문제는 메신저 프로그램이나 미니홈과 같은 곳에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개인의 불만으로건, 친구와 의리 때문이건, 상대방 친구에 대해 알아보기 힘들게 욕설을 적어 두면, 그 이야기를 아무 생각 없이 옮긴다. 그것이 시작이 돼 서로 퍼가고 소문이 나, 현실에서 그 아이에 대한 따돌림 역시 커진다.


<트루먼 스쿨 악플 사건>은 이런 과정을 잘 보여준다. 왕따를 주도하는 아이도 있고, 인터넷의 속성을 이용해 흠을 만들어 내는 아이도 있으며, 그것을 보고 넘겨 일을 크게 만드는 아이들이 있다. 이 소설의 이런 아이들의 문제를 여러 사람의 목소리로 잘 드러나고 있다.

제목이 너무 명확하고, 이야기의 구성도 여러 아이의 입장에서 자기의 생각을 풀어가는 형태로 돼 있어, 주제가 너무 선명하지만, 아이들의 시각에서 잘 구성된 책이다. 인물 파악이 어려운 아이들을 위해 인물 옆에 그들의 특성이 잘 드러난 아이콘이 붙어 있고, 따돌림을 주도하는 익명의 글을 올리는 아이가 글의 말미가 되어서야 밝혀지는 등 흥미로운 사건 전개도 아이들의 눈을 끌만하다.


<밑줄 긋기>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릴리나 리스처럼 인기 있는 애들은 자기가 가진 능력을 좋은 일에 쓸 수 있다는 점이다. 네로처럼 말이다. 모든 애들이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그저 더 이상 아이들을 괴롭히지 않겠다고 말해주면 되는 것이다.

•당신도 사람들이 실생활에서는 절대 하지 않을 행동을 인터넷에서는 맘대로 말하고 행동한다고 느낀 적이 있겠지? 맞다, 사실이다. 예를 들어, 나라면 절대로 릴리한테 가서 “와, 너 정말 뚱뚱했더라.”라고 말하지 않겠지만, 인터넷에서는 아무 거리낌 없이 그렇게 말할 수 있으니까.

•인터넷은 참 별난 세상이다. 어느 누구도 내가 한 말과 행동인지 모른다. 그렇기에 인터넷에서는 얼마든지 원하는 대로 말하고 행동할 수 있다. 껄끄러운 상대가 있어도 직접 만날 필요가 없다.

•아무도 당신을 지켜보지 않은 때, 혹은 아무도 당신이 누구인지 모를 때... 그 모습이 진정한 당신의 모습이다!



2. 모두가 침묵하는 아이(얀 데 장어르, 이름)

어른이 된 어린 시절 친구들이 모였다. 대부분의 성장 소설이 아이들의 시선을 중심으로 자신들의 어린 시절을 서술하는 반면 이 책은 어른이 된 주인공들이 지금의 시점에서 기억하는 어린 시절의 자신들을 이야기한다. 주인공들이 학창시절에 함께 저지른 집단따돌림과 그로 인한 급우의 비극적 죽음을 되돌아보고 자신들의 잘못을 강하고 날카롭게 책임 지운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작품이다.


또한 이 책은 학생들에게도 유익하지만 어른인 우리에게도 꽤나 강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이 책의 어른들은 어린 시절의 자신의 잘못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러한 모습을 통해 왕따 문제의 이면이 존재함을 보여준다. 아이들의 집단 따돌림에는 어른인 학부모와 교사까지도 침묵하고 있다는 것. 이 시대는 술 권하는 사회가 아니라 침묵을 권하는 사회가 되어 버린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게 한다.


<밑줄 긋기>

•당신과 같이 그토록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 젊은이를 교육한다는 임무를 자랑스럽게 떠들어 대는 바로 당신 같은 사람은 절대 책임을 회피해서는 안 됩니다. 특히 자신이 그릇되게 망쳐 놓은 사람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리고 시히 본스트라뿐만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망쳐 놓았는지 자못 궁금합니다. 비록 시히만큼 심하게 망쳐 놓은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난 최근 들어 죽음에 대해 자주 생각할 수밖에 없어. 6개월 전에 옛 친구 세 명이 공군기를 타고 있다가 사고가 났어. 두 사람은 살아남을 수가 없었지. 그러자 너무 일찍 죽었다는 생각이 들더군. 그런데 문득 시히는 그보다 훨씬 어렸구나 하는 생각이 떠올랐어. 그러면서 시히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을 내 자신이 더 이상 참기 어렵게 되었어.

•우리는 엘리를 주범이라고 고발할 수 있지만, 우리 중에 그 누구도 벗어날 수는 없어. 그리고 시히를 조롱하는 일에 직접 참여하지 않았다 해도 마찬가지야. 여러분, 누군가 시히를 괴롭힐 때 아무도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았습니다.



<성, 사랑, 이성문제에 대한 고민이 있을 때>

1. 첫사랑(이금이, 푸른책들)

첫사랑의 주인공은 열세 살 동재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열세 살 동재의 사랑만 다룬 것이 아니라, 여러 형태의 사랑을 다루었고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한쪽의 일방적인 희생 때문에 이혼하게 된 동재의 부모님, 필요에 의해 재혼했으나 한 가족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동재와 은재 가족, 늘그막에 만나서도 첫사랑의 추억을 잊지 못해 다시 사랑을 시작하는 이웃 할머니와 할아버지. 그리고 친엄마의 외국인 남자친구까지.


이들의 사랑을 그리며 작가는 사랑을 지키기 위한 바람직한 태도와 건강하고 행복한 가정의 모습이 어떤 것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동재의 부모님을 통해, 한 사람의 일방적인 희생보다 평등한 부부가 더 바람직함을 느끼게 하고, 연아에 대한 동재의 마음을 통해 첫사랑의 풋풋하고 싱그러운 추억 속으로 들어가게도 해 준다. 또한 동재와 연아의 이별은 사랑하는 사람과의 바람직한 관계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만들어 준다. 친구간의 우정, 부모의 재혼으로 가족이 된 동재와 은재의 형제애 등도 이야기 속에 잘 어우러져 있다.



<밑줄 긋기>

•사랑은 자전거 타는 거랑 같다는 생각이 들어. 그래. 자전거 탈 때 계속 페달을 굴리지 않으면 넘어지잖아. 사랑이 제대로 유지되게 하려면 끊임없이 페달을 굴리는 노력을 해야 된다는 거지.

•어떤 만남이든 한쪽이 희생한다고 여겨지는 만남은 건강한 게 아니야. 오래 가지도 못하고.



<나를 좀더 변화시키는 책>

1. 꼴찌들이 떴다(양호문, 비룡소)

우리는 현재도 이른 바 평균 코스라고 하는 인문계를 지원하지 못하고 전문계를 가야하는 아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살고 있다. 그 아이들에게 스스로 떳떳하게 자신의 꿈을 펼쳐보라 이야기하지만 사실은 열패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는 것을 감추기 위한 아이들에 대한 기만은 아니었는지.


<꼴찌들이 떴다>는 고3 졸업을 앞둔 전문계 아이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사회의 가장 낮은 층으로 흘러들어갈 것이 뻔한 아이들이 사회경험을 통해 진정한 ‘사람’이 돼 간다는 이야기인데, 단순히 아이들에게 허황된 말로만 현실을 가리는 것이 아닌 이야기의 첫 시작부터 현실을 직시하라고 날것을 그대로 보여준다. 실제 실업계 학교에서 고3 담임을 한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으니 더욱더 실감이 난다. ‘점심 먹으러 학교에 간다’는 아이들의 말이 진짜였다는 것이 슬프고도 화가 난다. 소설 속 아이들은 우여곡절 끝에 마을도 살리고 스스로를 살리는 길을 걸어갔는데, 지금 현실 속 우리 아이들은?

공부로만 모든 것을 재단하는 현실 속에서 아이들은 계속해서 서열화 되고 도태된 아이들은 사회의 가장 바깥 언저리에서 그렇게 삶을 이어갈 것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아이들이 뛰어놀면서 공부할 수 있는 마음을 심어주고, 무엇이 진정한 공부인지를 가르쳐주고, 무엇보다 자존감을 키울 수 있는 노력이 절실하다.


<밑줄 긋기>

•재웅이 자신도 앞날을 생각할 때마다 도무지 길이 보이지 않았다. 공부. 그 빌어먹을 공부 때문이었다. 공부만 잘하면 엄마의 잔소리도, 선생님의 무관심도, 앞이 캄캄한 일도 순식간에 다 사라지고 말 것이다. 하지만 그게 어디 가능한 일인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공부니……. 공부 빼고는 다른 건 웬만큼 자신 있는데……. 한숨이 메아리보다도 길게 새어 나왔다.

•1짱과 2짱 패거리들이 아예 학교에 나오지 않자, 자기가 1짱 행세를 하고 다니며 담뱃값이나 피시방 요금, 오토바이 기름값을 뜯어내는 악명 높은 노이었다. 녀석도 시내 여기저기를 배회하다가 밥 먹으러 학교에 온 모양이었다.

“에잇, 나가자!” 둘은 교정으로 나가 나무 밑 벤치에 앉아 운동장을 바라보았다. 이왕에 온 거 점심이나 먹고 가려는 속셈이었다. 오늘 급식은 또 뭐가 나올지. 결국 밥이나 얻어먹으려고 학교에 오는 것 같아 거지가 된 기분이었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야, 기준아, 우리 공부 좀 한번 해 볼까?”

“공부? 너 미쳤냐? 이제 와서 무슨 공부야? 꼴찌클럽 만든다고 해 놓고.”

“그건 그거고. 생각해 보니 졸업하기 전에 기능사 자격증이라도 하나 따야 할 것 같다. 그래야 회사에 들어가 꼴찌라도 하지. 그렇지 않으면 아예 취직도 못하고 등수에도 못 들겠지. 너, 횡성경찰서 보호실에 갇혀 있을 때, 그 청년 봤지? 구석에 꾸부정하게 누워 있던 그 곤드레만드레 말야. 야, 우리도 그렇게 되면 어떡하냐?”

“아이구, 이 자식 철들었네, 철들었어! 여기서 몇 날 조뺑이 치더니 아주 많이 컸구나!”

비아냥거리며 말은 그렇게 했지만 눈에는 저도 걱정이 된다는 기색이 담겨 있었다.



2. 삼봉이발소(하일권, 소담출판사)

산동네 꼭대기에 사선으로 돌아가는 봉이 세 개 달린 이발소가 있다.

못생긴 것도 서러운데 못생겼다는 것을 자각하는 순간 괴물처럼 변해서 난동을 부리다 죽는 ‘외모 바이러스’가 삽시간에 퍼지면 큰 가위를 들고 나타나 한 판 혈전을 벌인 뒤, 그 사람의 가장 아름다운 내면을 밖으로 끌어내어 멋진 헤어스타일을 완성해 주는, 삼봉 이발소의 주인 김상봉.


김상봉이 치유해지는 각기 다른 상황에 처한 인물을 등장시켜 다양한 모습의 외모 콤플렉스를 잘 담아내고 있다. 그러면서도 무겁지 않게, 섬세한 만화 컷으로 우리 사회의 문제를 잘 짚어내고 있다. 이 만화를 접한 아이들도 외모에 대한 편견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 좋은 만화이다. 무엇보다 청소년들에게 쉽게 읽힐 수 있다는 점이 이 작품의 강점이라고 본다.


<밑줄 긋기>

•자신감이 없어 보였달까? 행동이나 말투에서 그런 게 보이기 마련이거든. 남들이 네 내면의 좋은 점을 알아주지 못한다고 불평하지마. 네가 그냥 보여지는 외모만 가리려고 네 안의 보석 같은 반짝이는 것들도 함께 가려버렸던 거잖아.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어. 남들보다 한참 못나고 덜떨어져 보이는 나. 일반적인 사람들과는 뭔가 다른 나. 이게 뭐야……, 사실 나 지구와는 어딘가 동떨어진 아주 먼 별에서 온 외계인은 아닐까?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 지금 지구에 잘 적응하고 있잖아? ‘잘하고 있어, 좀 더 힘내라구!’

•태어날 때부터 우울한 사람은 없어. 원래부터 절망적인 사람은 없다고. 행복하고 싶은 건 누구나 마찬가지잖아. 나를 행복하게 해 줄 사람을 찾아 헤매보지만 결국 나밖에 모르는 거잖아. 내가 행복해지는 비결.



<성장소설 고전 다시 읽기>

1. 호밀밭의 파수꾼(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민음사)

많이 알려져 있지만 막상 읽으려고 하면 부담스러운 책이 있다. 이른 바 ‘고전’이라는 이름으로 이상하게 주눅 들게 하는 책들 말이다. 그 중에서도 이 책은 정말 부담스럽고 겁이 나기까지 했다. 간혹 영화에 등장해서 등장인물(대개는 연쇄살인범과 관계된) 못지않은 관심을 끌었던 책, 존레논 암살범이 들고 있었던 그 책, 그리고 <프리덤 라이터스 다이어리>에 등장했던 바로 그 책, 바로 <호밀밭의 파수꾼> 말이다.


책읽기 전의 부담감 때문이었는지 홀든의 내면 세계를 따라가는 여정은 정말 버거웠다. 왜 이렇게 세상을 힘들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지 홀든이 걱정되기도 하고, 가엾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했다. 두 번이나 퇴학을 당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동행하는 것은 정말 불편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집으로 가까이 갈수록 (사랑하는 사람들 곁으로 다가갈수록) 홀든이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했다. 그는 너무나 여린 사람이었고, 솔직했으며(특히 성적인 관심에 대해), 남에게 절대 피해를 주지 않는 소심한 평화주의자였다. 세상의 부조리와 위선을 인지하는 촉각이 남달랐기에 ‘무덤 속에서 살면서 돌로 자신의 몸에 상처를 내면서 살아가는 미친 사람’처럼 살아갈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청년이었다. 그가 그렇게 되고 싶었던 ‘호밀밭의 파수꾼’에 대해 피비에게 이야기하는 대목에서는 묘한 감동마저 전해졌다. 홀든은 그렇게 거짓과 위선이 판치는 주류 세계에 편입되기를 거부하고 아이와 어른의 중간단계에서 영원히 방황하는 별이 될 것만 같았다.

홀든은 집으로 가는 길 내내 누군가와 이야기하기를, 소통하기를 끊임없이 갈구했다. 우리 아이들도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그 누군가를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닌지?

‘고전’을 다시 생각하게 하고, ‘교사의 역할’을 다시 새겨보게 하는 슬프지만 아름다운 책이었다.


<밑줄긋기>

•나는 길 건너편에 서 있던 차를 향해 눈 뭉치를 던지려고 했다. 하지만 곧 마음을 바꿨다. 그 차는 너무 좋고, 깨끗해 보였다. 그래서 난 소화전을 향해 눈 뭉치를 던지려고 했다. 그렇지만 그것도 너무 좋고, 깨끗해서 던질 마음이 나지 않았다. 결국 난 아무데도 던지지 않기로 했다.

•예수님은 좋아했지만, 성경에 나오는 대부분의 내용들은 도저히 좋아할 수가 없다. 예를 들자면, 열두 제자 같은 것. 사실 난 그 제자라는 사람들이 정말 싫다. 그 사람들도 예수님이 죽은 다음에는 괜찮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예수님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예수님을 뜯어먹고 살았던 군식구에 불과했으니까 말이다. 제자랍시고 그 사람들이 한 일은 예수님을 끌어내린 것밖에는 없다. 도리어 열두 제자들보다 성경에 나오는 다른 사람들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성서에서 예수님 다음으로 좋아하는 사람은 무덤 속에서 살면서 돌로 자신의 몸에 상처를 내면서 살아가는 미친 사람이다. 그 가련한 사람이 열두 제자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좋다.

•나는 늘 넓은 호밀밭에서 꼬마들이 재미있게 놀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어. 어린애들만 수천 명이 있을 뿐 주위에 어른이라고는 나밖에 없는 거야. 그리고 난 아득한 절벽 옆에 서 있어. 내가 할 일은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으면, 재빨리 붙잡아주는 거야. 애들이란 앞뒤 생각 없이 마구 달리는 법이니까 말이야. 그럴 때 어딘가에서 내가 나타나서는 꼬마가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거지. 온종일 그 일만 하는 거야. 말하자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나 할까. 바보 같은 얘기라는 건 알고 있어. 하지만 정말 내가 되고 싶은 건 그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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