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변 이맘 때, 할머니 할아버지 추도예배로 고향에 다녀온다. 그 덕분에 일년에 한두 번 다녀오는 고향이지만 변화가 크고 빠르지 않아 익숙하고 추억하기에 충분하다. 그럼에도 20년 새 풍경이 달라진 곳이 있다면 전라병영성이다. 2000년 대까지도 이곳은 '병영초등학교'와 '병영면사무소', 민가가 있었다. 내가 중학교 2학년때까지 살던 집도 병영성 복원과 함께 사라졌다. 성터에 학교가 있어, 지금 생각해 보면 특이한 장면들이 많았다. 일단 학교 담벼락이 없었다. 아니 성곽이 학교 담벼락이었으며 그래서 매우 높았다. 학교 담벼락은 바깥에서 보면 수직선으로 매우 높았고, 담벼락 안쪽은 스탠드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져 있었다. 성곽을 따라 아름드리 나무들이 자라 그늘이 제법 많았다. 관방제림 나무 그늘아래에서 섬진강..
안으로만 꽁꽁 닫혀 있었던 조선왕조 500년 역사에 이토록 낯설면서, 새로운 만남이 있었다. 500년 역사 속 13년은 짧은 시간이었지만, 하멜을 비롯한 네덜란드인들에게는 엄청난 인고의 세월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만남이 새로운 조선의 역사를 쓸 수 있는 신선한 충격파가 될 수 있었겠지만, 아쉽게도 조용히 묻혀 버렸다. 강진 병영성 근처 동성리 은행나무만 기억하고 있을 뿐. 는 생각보다 얇았다. 조선에 13년이나 지내면서 많은 것을 체험하고, 생각하고, 기록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얇은 만큼, 그 기간의 조선이 아주 희미하게 드러날 뿐이었다. 물론 13년의 기록을 단 1년 만에 완성해야했고, 조선에 대해 알리는 것이 아니라 밀린 급여를 받기 위해서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낯선 이의 눈으로 본 17세기의 ..
의 단촐함과 간략함에 이 책을 골라 들었다. 굉장히 메마르고 건조한 하멜의 기록에는 하멜일행들의 인간적인 체취를 맡기에는 너무도 부족한 감이 있었다. 13년이나 지낸 그들은 정말 단순히 부역이나 하고 제주에서 한양으로 다시 병영, 여수로 옮겨다니는 수동적인 생활만을 했을까. 무엇을 먹고, 무엇을 보고, 어떻게 살았을까?김영희 작가는 400쪽이 넘는 소설 속에 그들의 체취를 담았다. 그리고 효종, 현종 시대의 문화, 역사, 당쟁으로 인한 소모적인 정쟁, 현실성 없는 북벌 정책, 그리고 청나라 정세, 일본의 정세, 유럽의 정세까지 담아냈다. 특히 하멜 일행을 제대로 쓰지 못한 당시 조정의 임금과 사대부들에게 화살을 돌린다. 그들을 제대로 쓰지 못해 뒤의 아픈 역사를 가져왔다고. 나름 일리 있는 의견이라고 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