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하루의 반은 공부를 한다. 지겹고 서럽다. 학원 갔다 와서 컴퓨터하면 아빠가 뭐라고 하고 서럽다 못해 난 너무 불쌍하다. 지금도 빨리 자고 싶다. 또 잠자고 나서 아침에 일어나면…….” “매일 매일 똑같은 하루이다. 지루한 생활이다. 나도 학교, 학원 땡땡이 치고 친구들과 놀러 가고 싶다는 생각을 중학교에 들어와서 부쩍 많이 한다. 중학교 생활은 너무 힘들다. 잠도 제대로 못 자고 공부는 날이 갈수록 점점 어려워지고…….” 우리반 아이들 일기장에 적혀 있는 내용들이다. 너무나 많이 들어 그만그만한 넋두리로 들릴 수도 있고, 대한민국 중·고등학생이면 누구나 거쳐가는 통과의례 정도로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이 중학교 1학년의 글이라면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학교를 옮기면서 중학교 1학년 아이들..
“선생님! 윈엠프 아세요? 아시면 제 방송을 들을 수 있는데…….” 큰 일을 저질러 집밖을 떠돌아다니는 아이의 위치를 파악하느라 ‘버디버디’에 들어갔다. 다행히 아이에게 쪽지가 와 있었고, 얼른 학교로 돌아오라는 답장을 쓰고 있었다. 말이 거의 끝날 무렵 원기에게서 오늘이 방송하는 첫날이라며 ‘윈엠프’를 사용하는지, 사용하면 지정한 사이트로 들어와 달라는 쪽지를 받았다. 사이트에 접속을 하자 노래가 들리고 잠시 후 원기의 낭랑한 목소리가 들렸다. 신기하기도 하고 놀라기도 했지만,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화면만 바라보고 있는데 노래를 신청해 달라는 쪽지가 다시 왔다. 진행 중이었던 노래가 끝나자 내가 신청한 노래를 이어서 들려주었다. 2시간을 공들여 읽을거리도 마련하고 프로그램도 익혀 방송하고 있다는데 꽤 ..
매년 새로운 아이들과 학급담임으로, 교과담임으로 만나는 일은 흥분되면서도 긴장되는 일이다. 그래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은 다른 직업에 비해 끊임없는 노력과 성숙을 요구한다는 생각이 들고 이것이 아이를 가르치는 우리 직업의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일년간 함께 할 우리반은 남학생 29명으로 구성되었다. 나이 29와 30의 차이만큼 29명이라는 숫자는 아이들과 한결 가까운 느낌을 준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한 눈에 들어오고 정말 아이들을 한품에 안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아이들에 대한 기대만큼 학교의 3월, 담임은 아이들을 파악하느라 바쁘다. 아이들과 새로운 관계를 맺는 시작이기도 하지만, 급식이나 학비 지원 등 경제적인 부담을 덜어 줄 수 있는 서류 신청이 거의 이 시기에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1. '왜' '나'는 독서교육을 하려고 할까? 교과서는 이상적인 평범한(?) 학생을 염두해 두고 만들어졌다. 그러나 우리 아이들과 생활하고 이야기하다 보면 '교과서의 내용(이른바 '정전'을 선택하는 등 '공급자 중심의 내용)'이 아이들이 살고 있는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있음을 알게된다. 그래서 아이들의 '지금, 여기'의 상황을 파악하여 거기에 맞는 책을 추천하는 것이 좀더 삶과 아이들에게 다가가는 독서란 생각이 들었다. 2. 교사의 독서량 부족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 교사가 읽은 책이 너무 한정돼 있고, 분량도 적었다. 우리 역시 '고전' 중심의 책을 읽어왔고, 교과서만 외우면 되는 학교생활을 보냈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추천할 수 있는 책이 없었다. 그래서 여러 군데서 추천한 책들(전교조, 교육청, 여러 단..
아이들이나 나나 시차적응에 온 힘을 기울이고 있는 동안 난데없이 봉사 주무로부터 이번 봉사활동 차례가 우리반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무런 준비도 되어 있지 않고 뭘 해야할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아이들과 학부모님께 안내를 하다보니 어느새 토요일이 되었다. 가는 방법 외에 아는 것도 전혀 없이.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우리반 32명 중 21명이 어제까지 봉사활동에 가겠다더니 갑자기 종례시간 즈음에 할머니댁을 가야한다는 둥, 갑자기 감기에 걸렸다는 둥, 부모님을 도와 드려야한다는 둥.. 하여간 별로 설득력이 없는 핑계를 대며 못 가겠다는 것이다. 얼른 인원을 점검해 보니 희망자는 14명. 아이들을 모두 모아놓고 봉사활동의 의미며, 봉사활동시간 20시간을 모두 채워야한다는 협박을 조용히 하는 한편, 마음의 평정..
우리반 쉬는 시간, 여러 선생님들의 말소리가 가득하다. 중학교 3학년 남학생들만 모여 지내는 교실이라 당연히 소란스럽기도 하지만 우리반에는 나를 비롯한 여러 선생님들의 목소리와 똑같거나 어설픈 구절이 반복되어 들린다. 아이들이 연습을 시작한 모양이다. 세태가 개인기를 요구해서인지 올해 아이들 중에는 노래와 춤, 성대모사에 특별한 재능을 보이는 아이들이 여럿 있다. 한 춤 하는 승용이와 성대모사에 능통한 양기, 온갖 춤을 섞어 자신만의 몸짓으로 학교 댄스계를 평정한 형식이, 성대모사 뿐만 아니라 행동까지도 똑같이 흉내내는 규훈이는 반과 학교에서 이미 그 능력을 인정받았다. 분위기가 이렇다 보니 내 목소리나 말버릇은 아무나 낼 수 있는, 그래서 개인기에도 끼지 않는다. 그 중에 규훈이는 세심한 관찰력과 꾸준..
개학한지 일주일. 이젠 모든 것이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온 듯 싶다. 아이들도, 나도 수업시차에 적응하기 시작한 듯 싶고 서로의 언어에 익숙해지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좀처럼 돌아오지 않는 것이 있다. 학기초에 품었던 학급운영과 국어수업의 목표, 아이들에 대한 마음은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아이들 역시 학기초에 품었던 다짐을 잊어버려 마음을 붙잡지 못하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 좀 나아질까. 2학기 개학은 좀 애매하다. 나와 같은 국어교사에게는 새로운 교과서가 시작되기에 계획과 다짐의 시기이지만 현실은 1학기를 마무리하거나 1학기와 마찬가지의 일이 지속되기에 그다지 새로운 것도 없다. 결국 나만 마음이 급한 것이다. 어제도, 오늘도 업무로 바쁜 새 학기를 보냈다. 아이들을 관찰하고 아이들의 변화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