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릉도 여행(2022년 5월) 1

울릉도를 크루즈로 갈 수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직은 배를 타고 갈 수밖에 없는 울릉도를, 조금 더 편하게 갈 수 있다니 가족들도 모두 가고 싶다고 한다. 어린이날 연휴 여행 준비가 시작되었다.

 

먼저 '울릉크루즈' 홈페이지에서 예약을 하려고 했으나 5월 일정이 나오지 않았다. 선사에 연락했더니 3월 15일 예약을 받는다고 한다. 기다리는 동안 에어비앤비에서 숙소를 예약했고, 다행히 배표 예약도 성공했다(거의 5분만에 4~6인실은 마감이 되었다). 이어 렌터카도 예약했고. 여행 떠나기 3주전 "이번엔 울릉도.독도(장치은 외)"란 책을 구입해 틈나는 대로 여정을 짜보았다. 

 

그런데 여행 2주 전, 첫째의 십자인대가 파열돼 수술치료를 하게 되었다. 또 어머니는 코로나 확진이 되셨고.

여행을 갈 수 있을지 불투명했다. 하지만 아직 2주라는 시간이 있으니 지켜보기로 했다. 생각보다 입원이 길어지자 첫째는 괜찮으니 잘 다녀오라고 했다. 아이의 진심이라 믿으며...

 

첫째 날(5월 4일)

광주에서 대구와 포항이 이렇게 가까웠나. 네다섯 시간은 걸릴 거라 생각해 일찍 출발했는데 세 시간 남짓만에 도착했다. 출항 시각이 오후 11시 50분인데, 9시 20분에 영일만항에 도착했다. 8층짜리 크루즈가 접안돼 있었다.

승선 시각이 10시인데 벌써 대기줄이 가건물인 매표소까지 닿아 있어, 줄 설 곳이 없었다. 새로운 줄을 만들자니 그동안 줄선 사람들에게 미안하고 애매하게 서 있다 사람들이 모이며 하나의 줄이 되었다. 그러자 어떤 사람들이 가족들과 가운데로 들어오면서 새로 줄을 만들자고 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다행히 두 줄로 승선하게 되었지만 '줄' 등으로 미리 동선을 만들어 놓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울릉크루즈 '뉴시다오펄' 호(좌), 4인실(inside) 객실 모습(우) 

울릉도 일출 시각이 5시 30분, 울릉도 도착 시각이 6시 30분이니 배에서 일출을 맞이하기 위해 일찍 잤다.

 

둘째 날(5월 5일)

일출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있다는 글을 어디에선가 보았는데 듣지 못했다. 5시 20분 일어나자마자 선미로 이동했으나 옥상 갑판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줄로 통재돼 있었다. 좁은 통로에서 사람들 사이에서 일출을 맞이했다. 급히 가족들을 데려왔다. 그 사이 옥상 갑판이 열려 있었다. 이런..

 

옥상 갑판으로 올라가는 통로에서 찍은 일출.
옥상 갑판에서 바라본 울릉도 서쪽 해안 모습, 맨 왼쪽이 대풍감, 맨 오른쪽은 사동.

 

일출보다 울릉도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이렇게 큰 섬이었다니! 그런데 평지는 거의 없고 가파른 산과 봉우리가 가득해 보였다. 그래서 '울릉도(鬱陵島)'라고 했을까? 언덕이나 산이 많아서. 그런데 자료를 읽다 보면 울릉도를 중세에서는 '우르마'로 불렀고 이를 한자로 기록하는 과정에서 울릉도가 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많은 자료들이 울릉도의 지명을 한자를 해석해서 풀이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설명을 듣다보면 잘 떠올려지지 않거나 지명의 원칙이 없어보인다는 느낌이 들었다. 지명은 당시 사람들의 생활을 드러내는 것인데...

그렇게 울릉도 지명과 관련해 자료를 찾다 두 가지 인상적인 글을 찾았다.

 

먼저 동아일보의 독도뉴스 중 '울릉'이란 지명의 유래를 밝힌 글.

신라나 고려 때 울릉도 사람을 '우루마' 사람이라고 불렀다는데 '우루'는 '왕'을 뜻하고, '마'는 뫼(산, 릉)를 뜻했다고 한다. 따라서 우루를 줄어 '울'이라고 하고 이를 한자로 음차했으며, 마(뫼)는 '릉'을 훈차해 '울릉'이라고 표기했을 거라고 한다. '우산국' 또한 '우루'에서 '루'를 생략해 '우'를 음차하고, 마(뫼)는 '산'을 훈차해 '우산'이라고 표기했을 거라고 한다. 문헌 자료를 통해 해석한 자료로 설득력 있어 보인다.

 

또 하나 유미림의 '울릉도 마을지명의 형성과 고착과정' 중 '사동'의 유래를 밝힌 글.

'사동(沙洞)'은 모래가 드문 울릉도에서 모래가 많아서, 또는 옥같은 모래가 누워 있어서 '와옥사(臥玉沙)', 뒤산의 모양이 사슴이 누워 있는 것 같아서 '와록사(臥鹿沙)'라고도 했는데 한자로 표기하면서 '사'만 써서 사동이 됐다는 설명이 많았다. 그러나 위의 논문을 보면, '아래구석' 즉 '아릭사'를 한자로 훈차하는 과정에서 '와릭사'로 표기했다가 '사동'이 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보니 울릉도 여행 동안 베이스캠프가 있었던 '사동'도 좀 다르게 보인다.

 

배는 6시 30분 사동항에 도착했다. 배가 도착할 무렵 미리 예약한 '울릉도렌터카'의 셔틀버스 위치를 알리는 문자가 왔다. 운전자만 타라고 했는데 셔틀버스에 가보니 자리에 여유가 있어 보였다. 가족들이 있다고 같이 타도 되냐고 했더니 그렇게 하라고 한다. *울릉도 렌터카 이용시 셔틀버스를 탈 때 일행도 같이 탈 수 있는지 현지에서 물어보는 게 편리할 것 같다.

셔틀버스를 타고 대아리조트 근처 차고지로 가는 동안  사장님은 운전할 때의 주의사항을 이야기해 주었다. 울릉도 길이 좁고, 경사가 심하고, 특히 도동이나 저동은 주차할 곳이 없으며, 어디든 주차할 때 다른 차가 지나갈 수 있는지, 버스 회차지인지 꼭 살펴보라고 했다. 

 

차를 인수해 숙소 '수펜션'으로 이동했다. 사동항에서 가까웠다. 눈에 잘 띄는 나무 대문과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니 편백나무 향기가 진했다. 인테리어가 깔끔했다. 식탁에 사장님이 작성한 손편지가 우리를 맞았다. 어린이날 초3 둘째를 위해 아이스크림을 선물로 주셨다. 숙소는 여행 전부터 숙소 외 여행 정보 등에 대해서도 편하게 문의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다. 그래서인지 숙소에 도착했을 때의 낯섦이 상당히 줄었다. 특히 2박 3일을 예약했는데, 우리 사정을 고려해 첫째 날 아침 7시 체크인, 셋째 날 오후 1시 체크아웃도 너그러이 받아주었다. 여행 내내 베이스캠프가 든든해 잘 쉬었다. 

 

대문과 현관
초딩 둘째 아이를 배려해 어린이날 선물로 편지와 아이스크림을 주셨다.(좌) 1965년 대들보를 올렸다는 상량문. 전통을 지키면서도 현대화했다는 점에서 펜션 이름 '수(守)'가 잘 어울린다.
거실에서 본 주방과 사동항 풍경, 왼쪽 침실

 

숙소 바로 앞 '몽돌식당'에 아침식사를 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1인당 만원짜리 백반뷔페였는데 간이 세지 않고 맛있었다. 오늘 도착했다고 하니, 사장님이 여행안내 책자를 주시며 여행지와 맛집을 추천해 주셨다.

몽돌식상의 백반뷔페(좌), 울릉크루즈에도 홍보가 돼 있다.

 

오늘 가장 중요한 일정은 독도 탐방이다. 그래서 첫 여행지를 '도동'으로 잡았다. 여기에서 산책하다, 독도행 쾌속선을 탈 생각으로. '도동'은 이름에서 느껴지듯 소재지다. 관광객과 관광객을 실어나르는 관광버스와 택시만으로도 분주한데 길이 좁아 교행하기도 어렵고 주차할 곳은 더더욱 없었다. 휴일이니 관공서 주차장이 비어 있을 것 같아 근처 울릉도의회로 가 보았다. 빈 차리가 몇 곳 있었다. 차를 세우니 의회에서 관광안내소까지의 내리막길 간판이 제대로 보였다.

 

먼저 '행남해안산책길'부터 걸었다.

 

도동여객선터미널 위 행남해안산책길에서 바라본 도동항 풍경
독도새우 사러 도동항에 한 번 더 갔다. 5월 6일 도동여객터미널 모습
해안산책길은 기슭이 있으면 활용하고, 없는 곳은 다리를 놓아 이루어졌다. 수고로움 덕택에 만날 수 있는 풍경이다.
도동여객선터미널(왼쪽 건물)로 돌아가는 길의 행남해안산책길

 

여기서 도동등대, 그리고 저동까지 가서 점심 먹고 올 계획이었지만, 바람이 쎘다. 파도가 산책길로 들이치기도 했고 포말이 얼굴에 닿기도 했다. 절경을 눈에 담으면서도, 오후 독도접안이 어렵지 않을지 걱정이 되었다. 한 30분쯤 걸어갔을 때 해안도로를 보수하시던 분들이 바람 때문에 통행을 통제한다고 돌아가라고 했다. 함께 이동해 출입구로 나오자 문을 잠궜다. 기다리던 사람들의 아쉬움이 느껴졌다.

이런 곳이어서 '행남'이란 이름이 붙여졌나 보다.

"이번엔 울릉도.독도" 책에서는 여기서 도동등대까지 가다보면 갈림길이 나오는데 거기에 큰 은행나무가 있어 '행남'이라고 불리운다고 했지만, 유미림의 논문에서는 아무도 이곳 고개를 넘지 못했는데 사공이 먼저 넘었다고 해 '사공넘어'로 불리다가, 사공남→살구남→행남으로 표기됐다고 한다. 몸으로 느껴보니 '사공넘어'가 더 설득력 있다.  

 

갑자기 시간이 많이 남았다. 옆동네 '저동'으로 갔다. 숙소에서 우리를 맞이해 준 편지지와 독도 슬리퍼를 판매하는 곳이 '독도 문방구'였는데 아내가 가보고 싶어했다. 또 어린이날을 맞은 둘째에게도 기념품을 사주고 싶었고.

차를 끌고 저동으로 갔다 다시 도동으로 오면 주차할 곳이 없을 것 같아 대중교통을 살피러 길찾기 어플을 사용하니 바로 군내 버스가 있단다. 봉래폭포행 군내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기사님이 '독도 문방구' 입구에서 내려주셨다. 버스비는 3000원. 성인 2명, 경로 1명, 초딩 1명의 요금..

 

그런데 독도문방구는 20~30대 성인 대상이 상품이 많았다. 결국 아내만 굿즈들을 사고 둘째는 그냥 나왔다. 오토바이를 타고 이곳을 들르는 20대 연인들이 제법 많았다. 콘셉트(컨셉이 자연스러운데  맞춤법은 콘셉트다)가 특징적인 곳이다.

 

아직 11시 30분인데 하루를 일찍 시작해서인지 배가 고팠다. 마침 촛대바위로 걸어가는 길에 몽돌식당 사장님이 추천해 준 '은하반점'이 눈에 보였다. 짬뽕이 유명하다고 적혀 있지만 매운 음식에 약해, 우동과 짜장을 주문했다. 역시 담백한 맛이 좋았다. 더워서 콜라를 주문했는데 나중에 계산할 때 몽돌식당 사장님이 추천해 주셨다고 음료수 값은 받지 않았다.

 

은하반점의 삼선우동. 13000원.

 

저동수산시장과 제빙냉동공장을 지나 방파제에 있는 촛대바위까지 산책했다. 방파제 시작부분의 오른쪽으로는 도동등대로 이어지는 해안길이 있었다. 지난 태풍으로 군데군데 길이 끊겨 있었다. 행남해안산책길에서 도동등대까지 갔어도 결국 되돌아 와야하는 상황이었다. 방파제를 따라 '촛대바위'가 보이고 멀리 등대와 죽도가 보였다. 한적한 방파제 위를 차분히 걸었다. 

 

촛대바위 가는 길에 제빙냉동공장. 펭귄 구조물 아래 조각얼음을 받을 수 있게 돼 있었다.
왼쪽 언덕의 등대가 도동등대다. 오른쪽 수직계단과 이어진 산책로가 끊긴 모습이 보인다.
방파제에서 바라 본 촛대바위. 방파제 끝 등대까지 걸어가는 사람은 우리밖에 없어 여유 있게 걸었다.
방파제에서 바라본 저동항 풍경.

 

다시 도동여객선터미널로 이동했다.

터미널 안에서는 독도에서 사진 찍을 때 활용하라며 태극기와 태극기 머리띠를 판매하고 있었다. 일단 기념으로 구입했다. 배는 사람이 많은데도 소란스럽지 않았다. 연거푸 5번 독도 가는 길에 배가 심하게 흔들릴 거라며 멀미약을 꼭 먹으라고 안내 방송이 흘러 나왔다. 멀미약을 먹어서인지 자주 졸았다. 잠에 깰 때마다 크게 흔들리는 배에 놀라다 다시 잠을 청했다.  그렇게 자다 깨다 하다 15시 30분경 창밖으로 독도가 보였다. 그리고 독도에 접안해 보겠으나 방파제가 없어 힘들 수 있다는 안내 방송이 나왔고 곧 안전을 위해 선회관광을 하겠다는 안내가 나왔다. 그리고 후미가 열렸다.

 

좁은 후미 갑판에서 서로 인증샷을 찍느라 혼잡스러웠다. 몇 년 전, 루브르박물관에서 모나리자를 만났을 때가 생각났다. 여행의 시작과 끝을 모나리자와 눈을 맞춰 보려고 갔으나 기다리는 시간에 비해 만남은 정말 순간이었다. 모나리자의 미소를 제대로 볼 수 없는 거리에서 떠밀려 인증샷만 급하게 찍고 나가야 했던 그때의 감정이. 감격보다는 아쉬움과 허망함이 컸던. 그래서 독도도 사진을 제대로 찍지 못할 바에야 눈에라도 넣자! 그런데 30여분 동안 뱃머리가 좌우로 움직여 어디에 있든 결국 독도를 눈으로 볼 수 있었다. 그것도 충분히!

그런데 누가 독도를 '암초'라고 했을까. 그 웅장한 크기에 놀랐다. 울릉동에서 쾌속선을 타고도 1시간 45분을 와야하는 동해바다 한가운데 솟아 있는 독도가 새삼 신비로웠다. 그래서 소중했다.

 

독도 서도. 왼편에 독립문바위가 보인다. 이렇게 날이 좋은데...
왼쪽 서도, 오른쪽 동도

 

하선 없이 바로 돌아오는 길이라 멀미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 고통스러워하는 아이의 울음섞인 목소리도 들렸다. 멀미약 기운이 계속 이어지길 바라며 잠을 청했다. 

 

아쉬움에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마트와 식육점에 들러 울릉약소와 명이나물, 술을 샀다. 둘째는 여기서 포켓몬빵을 두 개나 구입했다고 좋아했다. (농협 하나로마트 건너편 '365할인마트'에 있다)

숙소에서 저녁을 먹으려는데 펜션 사장님이 직접 담근 명이나물과 초장, 산두릅을 데쳐서 주셨다. 시중에서 판매하는 명이나물이 달달한데 비해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음식 본연이 맛이 잘 느껴졌다. 맛있었다. 맛은 미각이지만 시각과 후각의 영향도 크기에.. 

 

 

이번 여행은 여러 사정으로 여행 계획을 충분히 세우지 못했는데도 즐거운 여행을 만들어 가고 있다.

수펜션, 몽돌식당, 은하반점, 365할인마트, 군내버스 기사님, 울릉도렌터카 사장님, 그리고 관광객들을 위해 울릉군의회 앞 주차장을 열어주신 울릉도 분들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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