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 여행(2022년 1월)

코로나로 많은 일상이 제한받고 있지만 꼭 가봐야 할 결혼식이 있어 전북 익산으로 떠났다.

아내의 운남중 제자이자 지금은 같은 길을 걷고 있는 대천의 박 선생의 결혼식이 천안아산역에서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아내의 제자이지만 마을 '자연학교'의 선생님으로 자원봉사도 하고, 재작년에는 대천으로 초대받은 인연도 있어 동행했다. 다만 결혼식 참석만으로 천안아산역까지 가기는 아쉬워 익산을 경유지로 선택해, 익산을 여행한 뒤, 결혼식에 참석하기로 마음먹고.

 

익산은 거의 20여 년만이다.

2000년 초 아내가 활동하는 답사모임을 따라 미륵사지를 다녀왔던 게 처음이다. 용화산 아래 넓은 대지에 새것의 냄새가 지나쳤던 동탑과 복원공사로 가려져 담벼락 그림으로 존재했던 서탑이 떠오른다. 그리고 그즈음 전국국어교사모임 호남권 겨울 연수가 원광대에 있어 연수가 끝난 뒤 왕궁리 유적지를 들렀던 것도 이어 떠오르고. 두 곳 모두 넓게 펼쳐진 공간에 세워진 석탑이 홀로 외롭게 보일만도 했는데 날씨도 좋고 배경설화도 넉넉해 허전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 여행도 미륵사지 석탑과 주변, 왕궁리 석탑과 주변을 중심에 두고, 익산으로 들어오는 길에 항아리 정원이 인상적인 고스락에서 점심, 숙소로 가기 전 달빛소리수목원을 들르는 것으로 계획을 짰다.(코로나로 마한박물관, 보석박문관은 운영하지 않아서.)

 

고스락 입구 '이화동산'에서 점심을 먹었다. 한정식 집인데 찾아오는 사람이 참 많았다. 내 나이 또래의 사람들이 대체로 자리를 채우고 있었는데 따로 공간이 구분되지 않아 음식만 먹고 얼른 나왔다. 고스락이 발효장을 만드는 곳이니 젓갈이나 장아찌 류의 특색을 살리면 좋지 않을까, 담양 한정식 집들이 생각났다. 

 

고스락은 4,000여 개의 항아리와 산책로가 인상적이었다. 무엇보다 낮인데도 영하의 기온이었지만 햇볕이 좋아 따뜻한 풍경이 느껴졌다. 

 

고스락 정원, 전망대에서 바라본 풍경. 가운데 하얀색 건물이 '이화동산'이멀리 보이는 하얀색 건물이 '이화동산'이다.
항아리 하나하나에 채색을 더했다. 나란히 늘어선 항아리도 예쁘지만 하늘빛이 너무 곱다.

 

항아리 하나하나가 세월과 사연을 담고 있는 것 같아 눈길이 갔다.

 

고스락을 나와 우회전하여 대략 10여 킬로 미터 직진하면 미륵사지 석탑이 나타난다.

미륵사지는 여전히 그 규모만으로도 압도적이다. 요새 메타버스 강의를 듣고 있어서인지, 이 공간을 AR로 채우면 어떨까 싶었다. 재작년 1월 가족들과 경남 남해 여행 중 '유배박물관'을 들이 좀 채워 주는 것은 어떨까 생각했다. 요새 메타버스가 화두라서.. 2020년 1월 겨울, 가족들과 '남해유배박물관'에 들렀을 때 VR로 유배 과정을 체험하는 프로그램이 생각났다. 

서탑 복원공사가 언제 끝났는지 살펴보다, 좋은 블로그를 찾았다. '내 나라 문화유산 답사'란 블로그인데 서탑의 보수공사 과정에 대해 자세히 정리돼 있다. 아, 선화공주!

 

미륵사지 주차장에서 용화산과 미륵사지 석탑을 바라본 풍경이다.
미륵사 동탑. 서탑을 모방해 복원했는데 구체적인 근거 없이 복원해 문제제기가 많았다고 한다. 그리고 30년 가까이 지났다. 세월이 지날수록 빛이 나는 석탑으로서는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한 듯 싶다.
동탑 기단부에서 바라본 서탑 풍경. 석탑은 이렇게 내부로 들어갈 수 있다.
복원에 가까운 보수공사를 끝낸 서탑. 규모가 엄청나다.

 

날이 좋아 모든 것이 아름답게 보였다. 예전부터 말이 많았던 동탑은 차치하고라도 서탑은 생각보다 복원에 많은 공을 들인 것 같았다. 시멘트로 면면히 자리를 유지했던 풍경에 비하면 훨씬 시원스러웠다. 그래서 익산박물관에서 서탑의 모형으로 박물관 상징을 만들 수 있었으리라.

 

익산 어린이박물관 벽에 비친 나무 그림자들

 

어린이 박물관을 돌아 국립익산박물관으로 도는 길에 드리운 나무 그림자다. 아름다웠다. 미륵자사의 동탑과 석탑, 그리고 박물관 안에 복원된 목탑의 느낌을 받았다. 유적은 흔적이고, 우리는 그 속에서 조상들의 삶을 상상하며 교통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익산박물관은 익산지역 및 부여의 문화재에 대해 매우 자세하게 설명해 놓았다. 박물관 관람은 매번 피곤하다. 정보가 너무 많다. 좀 더 편하게 만나는 방법은 없을까. 물론 이중적인 태도이긴 하다. 몇 년 전 파리 여행을 하면서 첫 번째 꼽았던 여정지도 '루브르 박물관'이었다. 근 10여 년 전에 베를린을 여행할 때에도 '페르가몬 박물관'을 제일 먼저 찾았던 걸 생각하면...

 

 

왕궁리 유적지도 들렀다. 코로나로 방문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유적지를 정돈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았다.

왕궁리 주차장에서 석탑 가는 길에 이상한 잡음이 들렸다. 소리가 나는 곳으로 이동하니 홍보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소리였다. 가까이 다가가니 왕궁리 유적지를 3D로 복원해 안내해 주고 있었다. 이곳도 참 넓다.

 

마한박물관도, 보석박물관도 코로나로 모두 문을 닫았다. 서동공원도 사정이 비슷했고. 숙소로 가는 길에 '달빛소리수목원'을 들렀다. 수목원 동선 중간중간 계절별 또는 월별 특징적인 수목을 표시해 놓긴 했으나 사람이 없어 고요했다. 전망대에서 커피를 마시며 삼례 쪽 풍경을 보았다. 가을밤에 오면 달빛소리가 들릴 것 같다. 아참 찻값에 입장료가 포함돼 있다. 

 

수목원 입구 황순원의 소나기 나무로 소개된 느티나무.

 

집에 와서, 지역 월간지 "전라도닷컴" 1월호를 읽다 석공 형제의 이야기(돌덩어리에서 사자를 꺼내고 바람을 빚고, 익산 '승화석재' 전호성, 전호갑 형제)를 읽었는데, 미륵사지 서탑을 보고 온 다음이어서인지 생생하게 읽혔다. 금속 명패 등의 화려함은 금방 사라지지만 석공예품은 수백 년을 이어가며 빛깔을 찾아간다는 말을 익산에서 확인하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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