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FO를 타다(배봉기)
- 상황별 청소년 소설 추천/여러 상황이 담긴 단편집
- 2010. 11. 9.
‘희곡집’이다. 그것도 ‘청소년’ 희곡집이다.
얼마 전 중학교 2학년 교과서에 실린 ‘들판에서’라는 작품을 가르치며 아이들의 역동적인 연극에 대한 열망을 읽을 수 있었기에 더더욱 끌릴 수밖에 없는 책이었다. 이 책을 열고 덮으며 드는 생각은 영화 ‘닫힌 교문을 열며’를 보았을 때와 비슷했다. 89년 해직 선생님들의 시대에 대한 절규와 희망에 공감하며 눈물 흘리며 보았던 영화의 순수함을 2010년에 다시 재현하는 느낌? 그만큼 순수하고, 원론적인 교육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는 책이다.
극적이고 몽환적이며 극단적인 요소가 희곡이라는 장르에 버무려지면서 각기 다른 이야기인 진수와 민수, 강수의 이야기가 오늘날 ‘현재’를 살아가는 모든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각인되었다. 영어와 수학 성적이 바닥인 민수와 학예회 연극 속에서 배역과 자아정체성을 찾아가는 민수, 외고 톱이지만 롤모델이 무너지면서 꿈이 허물어진 강수는 형제 또는 쌍둥이인 듯 오늘을 살아가는 청소년을 현실적으로 형상화하여 나타난다.
특히 이 희곡집의 매력은 현실 속의 문제를 직접적으로 터트리면서, 어쭙잖게 타협하고 있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마치 두 번째 희곡인 <‘나’를 위한 희곡>의 민수처럼 말이다. 그렇기에 더욱 절박하고, 책이 아닌 무대로 옮겨지고, 현실 속에서 끊임없이 논쟁되었으면 한다.
기존의 성장소설과는 다른 차원에서 대한민국 청소년의 성장과 교육의 이야기를 극적이면서, 역설적이게도 직설적으로 다루었기에 학생, 학부모, 교사에게 ‘강추’한다.
<인상 깊은 구절>
(54) 진수 : 교장도 그랬어. 우리 같은 애들은 잘하는 애들 밑에서 받쳐 주는 거라고. 그래서 학교 다니는 거라고. 그냥 교실에서 죽치고 앉아 있어야 한다고. 우리 같은 애들이 많이 있어야 위에서 편안하게 하는 애들이 있다고. 우리가 무슨 벽돌이야? 잘하는 애들 밑에서 받쳐 주려고 학교 다니기 싫어!
(97) 민수 : 난 그 아이, 그러니까 우리 연극 속 그 아이 말이야. 그 아이를 연기하면서 정말 그 아이를 이해하게 됐어. 사랑하게도 되고 말이야. 죽음으로 다가가는 그 아이의 심정이 내 가슴 속에 깊이 들어왔어. 그리고 그 아이를 연기하면서 생명이 정말 소중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 주인공의 죽음을 통해서 관객에게 생명의 소중함을 보여 줄 수 있을 것 같았어. 내 자신 그걸 느끼니까 관객에게 자신 있게 보여 줄 수 있을 것 같았어. 그런데, 지금 와서 그 아이를 살려 내야 한다고? 그래서 엄마랑 껴안고, 눈물 흘리며 반성하고, 친구들도 잘해 보자고 하고……. 그런 식으로 끝내자고? 그거야말로 그 아이를 죽이는 거야. 살리는 게 아니라고. 내가 연기한 그 아이는 살아 있는 인물이었어. 그런데 결말 바꿔서 죽이자는 거야? 나 그 아이 죽이고 싶지 않아. 살아 있는 인물로 만들고 싶어. 나한테는 이게 정말 중요해.
나는 그 아이를 연기하고 사랑하면서 느끼고 깨달았어. 한 인간의 생명은 정말 무겁고 소중한 거라고 말이야. 나 자신의 마음도 들여다볼 수 있었지. 그리고 내 자신의 생명도 무겁고 소중하다는 걸 마음으로 느끼고 깨닫게 된 거야. 그런데, 그 아이를 포기한다면, 나를 포기하는 거야. 나 스스로 소중한 내 마음을 버리는 거야. 그럴 수 없어. 결코 그럴 순 없어!
(111) 강수 : 저는 꿈과 이상이 있었습니다. 열심히 공부하고 좋은 대학 가서 그 김필성 CEO처럼 되는 것. 솔직히 그렇게 출세하고 성공하기 위해 저는 잠도 못 자고 미친 놈처럼 공부했던 겁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죽었습니다. 저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자살입니다. 이 사실에 저는 더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결정적인 충격은 그 다음에 왔습니다. 그분이 썼다는 자필 유서 때문입니다.
‘사는 것은 의미가 없다. 나는 불행하다.’ 저는 앵커가 이 말을 하는 순간, 저 멀리 허공에서 벽돌 하나가 떨어져 내 머리통을 갈기는 듯한 충격을 받고 말았습니다. 그 순간, 제 마음의 무엇인가가 툭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공원 같은 데에 가 보면 연을 날리는 걸 보수 있잖아요. 바람을 안고 까마득하게 떠 있는 연을, 팽팽한 연실이 연 날리는 사람과 연결하고 있죠.
그 연실이 뚝! 하고 끊어졌다 할까요. 저는 그분처럼 되기 위해서 솔직히 그렇게 완전하게 성공하기야 쉽지 않겠지만, 거기에 못 미치더라도, 그 비슷한 길을 가기 위해서 하루 스물네 시간 팽팽하게 긴장된 시간을 살아온 거지요. 바람을 가득 실은 연의 연실처럼요.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그랬습니다. 그래서 외고도 합격한 거고요.
그런데, ‘사는 것이 의미가 없다. 나는 불행하다.’ 이 말이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제 마음속의 그 팽팽한 연실을 단번에 끊어 버린 겁니다. 그런 사람이, 그렇게 성공하도고 출세한 사람이 불행하다니…….
그럼 나는 무엇 때문에 이렇게 힘들게 사는 걸까요?
의미 없는 삶을 위해서요? 불행해지기 위해서요?
그래서 어느 날 밤, 33층에서 뛰어내려 죽고 싶어서요? 이 몸이 산산조각이 나기 위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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