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언 숲으로 가다(오이예사)


‘비인간화’로 대표되는 현대산업사회의 문제점을 극복하려는 시도가 다양하게 일어나고 있다. 그것은 특히 현대사업사회의 수혜자인 유럽과 미국인들에게서 더 급박하게 유행처럼 나타나고 있는 것 같은데, 어떤이는 동양철학에서 그것을 찾는다고 하고, 어떤이는 원주민들의 삶에서 찾는다고도 한다. 

그래서 빈약한 내용에 비례한만큼 돈과 과학으로 덧칠하는 헐리우드 영화(이것 자체가 바로 산업사회의 문제점이 집약되어 있고, 문제점을 잘 보여준다)에서 조차 어쭙잖게 동양의 무술이나 철학으로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꽤 유행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물론 매트릭스 같은 명작은 0과 1로 대표되는 산업사회의 코드를 동양적인 사유로 마무리지었지만).

또 미국에서는 그들이 무참히 학살하고 터전에서 격리시켰던 인디어들의 삶의 방식을 재고해보는 바람이 불고 있다고 한다.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이나 ‘인디안 숲으로 가다’ 등이 바로 그런 흐름을 주도했거나 주도한 결과물 아니겠는가.


**굳이 비교하자면?
그러나 ‘인디언 숲으로 가’는 동안 내 마음은 별로 유쾌하지 못 했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내가 기대한 것과, 또 우리가 이 책을 선정한 것과 거리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는 한편 인디언 ‘수’ 족의 유목생활과 ‘체로키 족’의 산중생활에서 얻은 교훈을 굳이 비교하며 어느것이 더 낫다거나, 더 감동적이라고 말할 필요도 없었지만 글을 읽는 내내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을 읽었을 때 가슴 벅찼던 그 ‘감동’들이 이 책에서는 잘 느껴지지 않는다고 고개를 흔들었던 기억만 난다. 

아무래도 나에겐 ‘인디언 숲’을 보기에 여러 가지 걸림돌이 있었던 것 같다.
먼저는 ‘수’ 족의 어른들이 ‘수’ 족의 아이들에게 옛날이야기를 들려주고 그것을 외우게하는 것으로 교육을 했던 그들의 방식과 연관된 것인지 단편적인 이야기가 많았다. 단편적이다보니 사고가 계속 진행되지 못해 좀더 깊은 이야기를 얻기가 힘들었다.

또 ‘수’ 족의 삶이 ‘와세추’와 ‘오지브웨이’ 족으로부터 쫓겨 유목생활을 하고 있는 까닭에 삶의 지혜들이 전쟁과 사냥의 과정에서 얻게된 것들이 많아 마음에 닿지 않는 부분들이 적지 않았다. 우리가 만약 기마민족이며 척박한 땅에 살고 있는 상황에서라면 공감할 부분도 많았겠지만, 자연 속에서 정착하며 자연의 섭리를 받아들이며 현대문명을 반성하는 처지에서 보면 거리감 느껴지는 부분이 많았다.

마지막에 오이예사가 인디언 생활에서 문명 생활(오이예사의 아버지는 미합중국 또는 백인의 생활을 문명생활이라고 이야기했다)로 적응하는 과정을 보면 여러 가지로 개운하지 않다. 문명생활의 우수성(또는 그것을 대세로 받아들임)을 인정한 아버지의 굳은 믿음과 노력때문에, 또 할머니의 말에 따라 ‘새로운 흔적을 찾아’갔다는 것은 지금까지의 숲속에서의 생활과 거리감이 느껴진다.   책을 덮었을 때 “인디언 숲으로 가다”는 ‘수’ 족 그들 나름의 철학과 생활방식(태교, 성장, 신앙 등)이 있어, ‘와세추’보다 열등하지 않는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확인해 주었다면 보람이랄 수 있을까?


인디언 숲으로 가다
국내도서
저자 : 오이예사 / 장성희역
출판 : 지식의풍경 2000.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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