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수아비춤(조정래)

 

소설이 그린 세상을 어떻게 볼 것인가.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을 말한다>와 김두식의 <불멸의 신성가족>을 미리 읽지 않았다면, <허수아비춤>의 현실을 개연성 있는 이야기 정도로만 파악했을 것이다. '현실'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삼성을 말한다>는 전직 부장검사로서 삼성의 법무팀장을 맡았던, 김용철 변호사가 글로벌 기업 삼성이 어떤 방식으로 비자금을 조성하고, 경영권을 불법 승계하는지, 가장 투명해야 할 대기업이 가장 혼탁하다는 양심선언과 의혹들이 묻히는 과정을 돌아보게 하는 책이다.
<불멸의 신성가족>은 이른바 삼륜이라 불리는 판사, 검사, 변호사와 변호사 사무실의 사무장, 브로커 등 법조인들을 취재하고 그들의 인터뷰를 생생하게 들려주며, 그들이 왜 국민의 정서에 반하는 재판 결과를 내놓는지 그 이유를 짐작하게 해주는 책이다.

그러고 보니, 이 정부 들어 사회 기득권층의 각종 비리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심지어 가장 투명해야할 공직인 외교부의 직원 채용에서도 비리가 터졌다. 그런데, 그러한 비리들과 <삼성을 말한다>, <불멸의 신성가족>, <허수아비춤>이 이야기하는 비리는 좀 다르다. 그 영향력과 피해가 사회 전반에 걸쳐 크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도 대기업의 온갖 문제들이 재탕되고 있다. 태광그룹, C&그룹의 비자금 조성과 불법 로비 사건을 보라.

저들이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말하는 기간은, 이젠 우리가 꼭 찾아와야하는 절박한 시간이 되었다.
저들이 되찾는 2년 동안, 사회와 자연 등 모든 분야가 약육강식의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사회 전반에서 대 반격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그 반격은 특정 세력이 주도하는 반격이 아닌, 사회 전반의 자각에 따른 반격인 것이다.

<허수아비춤>도 그런 책이라고 생각된다. 돈을 좇아가는 인간의 본능을 파노라마로 보여 주며, 경제 정의가 왜 필요한지 역설한다. 작가는 <허수아비춤>을 통해, 우리나라 대기업 스스로 자정 능력이 없으며, 법조계, 금융 당국 등 정부 역시 지금의 구조를 바꿀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결국 가려진 진실을 드러내는 방식은, 시민의 지지와 지원으로 대기업에서 자유로운 시민단체의 힘으로 가능하며, 무엇보다 소비자의 '불매 운동'으로 자본가에게 소비자의 힘을 끊임없이 보여줄 때 가능하다는 것이다.

작가는 허민 교수를 통해 두 개의 칼럼 속에, 의도를 핵심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 부분 만큼은 꼭 같이 읽고 싶다.

*322~327  국민, 당신들은 노예다.    *393~396 착해라, 자발적 복종

(325) 재벌들이 저지르는 그 불법 행위는 분명 사회를 병들게 하고 나라를 망치는 범죄이고, 그 피해는 국민 전체에게 씌워진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동안 재벌들의 경제 범죄에 대해 너무나 관대했다. 왜 그랬을까. 기업들이 잘 되어야 우리도 잘 살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건 순진함을 넘어 바보 같은 기대고 희망이었다. 그건 지난 40여 년 동안 우리가 취해 있었던 환상이고 몽상이고 망상이었다. 우리가 그동안 일방적으로 품어 왔던 그 기대와 희망은 바로 자발적 복종이었다. 스스로 노예 되기를 자청한 것이었다.
긴 인류의 역사는 증언한다. 저항하고 투쟁하지 않은 노예에게 자유와 권리가 주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그런데 노예 중에 가장 바보 같고 한심스런 노예가 있다. 자기가 노예인 줄을 모르는 노예와 짓밟히고 무시당하면서도 그 고통과 비참함을 모르는 노예들이다. 그 노예들이 바로 지난 40년 동안 우리들 자신이었다. (중략) 감기 고뿔도 남 안 준다는 말이 있다. 하물며 왜 재벌들이 당신들에게 돈을 주겠는가. 모기도 모이면 천둥소리를 내고, 거미줄도 수만 겹이면 호랑이를 묶는다. 조상들의 일깨움이다. 국민, 당신들은 지금 노예다.

 

#자발적 복종, 노예, 불매운동, 경제민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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