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루먼 스쿨 악플 사건(도리 힐레스타드 버틀러)

비내리는 땅을 바라볼 때마다 '왕따'와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빗줄기의 차이도 있겠지만, 한 지역에 비슷한 비가 뿌려도 파이는 곳이 있고, 한 번 파이기 시작하면, 그곳만 집중적으로 골이 생겨 지울 수 없는 흔적이 남는 것이 비슷해 보이기 때문이다. 메워도 다시 파이기 마련인.

요새 '왕따' 문제는 메신저 프로그램이나 미니홈과 같은 곳에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개인의 불만으로건, 친구와 의리 때문이건, 상대방 친구에 대해 알아보기 힘들게 욕설을 적어 두면, 그 이야기를 아무 생각없이 옮긴다. 그것이 시작이 돼 서로 퍼가고 소문이 나, 현실에서 그 아이에 대한 따돌림 역시 커진다.

"트루먼 스쿨 악플 사건"은 이런 과정을 잘 보여준다.
왕따를 주도하는 아이도 있고, 인터넷의 속성을 이용해 흠을 만들어 내는 아이도 있으며, 그것을 보고 넘겨 일을 크게 만드는 아이들이 있다. 이 소설의 이런 아이들의 문제를 여러 사람의 목소리로 잘 드러나고 있다.

제목이 너무 명확하고, 이야기의 구성도 여러 아이의 입장에서 자기의 생각을 풀어가는 형태로 돼 있어, 주제가 너무 선명하지만, 아이들의 시각에서 잘 구성된 책이다.
인물 파악이 어려운 아이들을 위해 인물 옆에 그들의 특성이 잘 드러난 아이콘이 붙어 있고, 따돌림을 주도하는 익명의 글을 올리는 아이가 글의 말미가 되어서야 밝혀지는 등 흥미로운 사건 전개도 아이들의 눈을 끌만하다.

 

(87) 당신도 사람들이 실생활에서는 절대 하지 않을 행동을 인터넷에서는 맘대로 말하고 행동한다고 느낀 적이 있겠지? 맞다, 사실이다. 예를 들어, 나라면 절대로 릴리한테 가서 “와 너 정말 뚱뚱했더라”라고 말하지 않겠지만, 인터넷에서는 아무 거리낌 없이 그렇게 할 수 있으니까. (익명)

 

✎ 맞다, 정말 맞는 사실이다. 나도 그렇고 우리 아이들도 그렇다. 특히 인터넷 상에서 만나는 아이들은 정말 자유로운 영혼을 보는 것 같다. 진짜 모습일 것 같기도 하고, 한껏 가면을 쓴 것 같기도 하고. 분간은 되지 않지만 진심을 볼 수 있을 때가 더 많은 것 같다. 나도 어떤 기사나 이야깃거리를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그걸 표현하고 싶은 욕구가 있으나 정말 사회적인 체면 때문에 참는 경우가 많다. 대신 그 기사에 달린 댓글을 보며 만족할 때가 많다.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구나 하면서. 특히 요즘 정치에 할 말 많은데, 분석형 비판 댓글부터 쌍시옷자, 인신비하 댓들까지.. 어쩌면 나는 그 글들을 보면서 대리만족하는 것 같다.

 

(120) 흠, 나름 괜찮은 방법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함께 메일을 썼다. 남자 행세를 한다는 게 재미가 쏠쏠했다. 우리가 써놓은 메일을 걸걸한 남자의 목소리로 다시 읽으면서 브리아나와 나는 깔깔대며 웃고 또 웃었다. 잔뜩 볼멘소리를 내면서 말이다. 분명한 건 메일이 있다는 게 고마울 따름이다! 누군가를 왕따시킬 때 직접 얼굴을 맞대는 것보다는 메일로 하는 게 훨씬 편한 것 같았다.(헤일리)

 

✎ 정곡이다.

 

(133) 갈수록 <트루먼의 진실>은 릴리에 관한 뜬소문에 집중되고 있었다. 모든 것이 제 살 깎아먹은 일과 같아서 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나는 <트루먼의 진실>이 학교생활에 관한 진실하고 솔직한 신문이 되기를 바랐다. 그것이 모든 학생들과 결합된 무엇이기를 원했고, 모두가 그 안에 속하는 느낌을 갖길 원했으며, 좋지 않은 생각과 감정일지라도 누구나 자유롭게 대화할 수 있기를 원했다. 그러나 어쩌면 나의 기대가 너무 지나쳤는지도 모른다.(제이비)

 

✎ 해답은 스스로 알고 있는데.. 뜬소문이라면 그것을 바로 잡고 정화할 수 있는 것도 인터넷의 역할이 아닐까? 제이비가 원하는 바른 소통의 장소로 만들기 위해서 릴리 주변에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 대해 방관하지 않고 토론할 수 있는 마음가짐을 가져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어떨까? 

 

(154) “저도 사람들이 이따위 글을 올리길 바랐던 건 아니에요. 사실 그런 건 딱히 뉴스라고 할 수 없기 때문에 저도 사람들이 그런 글은 올리지 않기를 바랐다구요.”

“그렇다면 그런 글을 삭제하면 되잖니.”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

“그건 정말 쉬운 일이야, 제이비. 넌 사이트의 편집장이잖니. 이 말은 어떤 글을 보여줘도 좋은 것인지 결정할 사람은 오직 너밖에 없다는 뜻이야.”(제이비)

 

✎ 신문이나 인터넷신문 등의 편집장의 주된 임무가 이런 것이라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170) 나는 그저 다른 대안이 될 신문을 만들고 싶었다. 중학교 생활에 대해 뭔가 의미 있고 활기찬 기사를 싣고 싶었을 뿐이다. 나는 뭔가 중요한 문제를 알리고 싶었다. 하지만 <트루먼의 진실>은 나와 아무르를 제외하면 아무에게도 중요한 문제가 되지 못했다. 글을 읽는 유일한 이유는 누가 누구에 대해서 어떤 말을 하는지 알고 싶어서였을 뿐이다. 그건 내가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이유였다. 결국 사이트 전체를 폐쇄했다. 나는 모든 내용을 한 줄의 글로 대신했다. 그렇게 해서 <트루먼의 진실> 첫 페이지에 이런 글을 적어놓았다.

사람들은 누구나 비열해질 수 있습니다. (제이비)

 

✎ 인터넷 사용에 대한 인간의 진정한 본능은 무엇일까? 지식탐구? 자기과시? 소통? 아니면 소문만들기와 즐기기? 은밀한 비방과 쾌감? 아님 모두 다?

 

(188) 마이클 선생님은 “인터넷에서는 누구든지 자신의 존재를 숨길 수 있기 때문에, 인터넷에서 보이는 것은 진정한 자신이 아니에요”라고 말했다. 나는 선생님이 완전히 틀렸다고 생각한다. 인터넷에서 보이는 나야말로 진정한 나라고 생각한다. 현실에서 보이는 나는 거짓이다. 생각해보라. 사람들은 대부분 카멜레온 같다. 각각 다른 사람 앞에서 서로 다른 행동을 한다. 어느 것이 진정한 ‘나’라는 말인가? 아무도 당신을 지켜보지 않을 때, 혹은 아무도 당신이 누구인지 모를 때…… 그 모습이 진정한 당신의 모습이다!

 

✎ 트레버의 마음은 십분 이해한다. 하지만 그것이 결코 인간의 진정한 모습이어서는 안 된다는 마음도 우리의 진정한 모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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