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흥 쑥섬(2024년 5월말) 두 번째 여행

직장의  친목행사로 다시 쑥섬에 가볼 수 있게 되었다. 여행지가 고흥으로 정해졌을 때 쑥섬을 적극 추천했다. 거금도의 '연홍도'도 떠올랐지만 기록하지 않아 느낌에 확신을 갖기 어려웠다. 이래서 기록이 중요한 것일까?

초봄의 쑥섬과 초여름의 쑥섬은 어떻게 다를까, 2년 사이에 변화는 없을까? 

 

*2022년 쑥섬 여행기
https://danpung.tistory.com/911

 

 

2년 전 나로항은 쑥섬과 거문도를 갈 수 있는 곳이었는데 지금은 쑥섬 가는 여객선만 운행 중이었다. 2년 전에는 배낭을 들고 갈 수 없었는데 이제 그런 제한은 없어졌다. 또 여객선도 관광객에 따라 수시로 운항하고 있었다.

 

쑥섬 선착장 입구의 탐방 안내도. 표지판처럼 1시간 30분이면 충분히 한 바퀴 둘러볼 수 있다.
탐방로 입구, 갈매기카페 옆에 있는 게시판인데, 내 두 번째 쑥섬 방문을 기념해 주는듯 하다.

 

배에서 내려 마주한 쑥섬의 풍경은 낯설지 않았다. 여전히 갈매기 카페가 있었고 왼쪽으로 난 '헐떡길'을 따라 걸었다. 초봄에 비해 훨씬 울창한 숲길을 따라 '난대 원시림'을 지나 '환희의 언덕'까지 걸었다. 동료들은 실루엣을 담을 수 있는 두 곳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두 곳은 바로 이어져 있는데 쑥섬을 찾는 사람들의 마음을 열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난대 원시림에서 환희의 언덕까지

 

이번 쑥섬 여행은 별정원(비밀 꽃정원)에서 쑥섬등대, 우끄터리 상우물, 동백길 산책로 등 지난번에 걷지 못했던 길을 중심으로 메모해 보았다. 

 

별정원에는 5월의 꽃들로 가득했다. 접시꽃, 당아욱꽃, 꽃양귀비가 가득했고 수국도 꽃피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반가운 꿀벌들이 참 많았다. 지난번에 수국정원을 지나 마을로 걸었기에 이번에는 쑥섬등대 쪽으로 걸어갔다.

 

별정원의 당아욱꽃. 나로항을 배경으로.
별정원의 접시꽃, 당아욱꽃, 꽃양귀비 사이로 보이는 나로항
별정원의 모습. 보라색 꽃은 라벤더인듯.
별정원에서 '여자 산포바위'로 가는 길.
별정원 근처의 자연스런 석부작.
쑥섬 여자산포바위

 

'여자산포바위'는 쑥섬 여자분들이 명절이나 보름날 달밤에 음식을 싸와 노래와 춤을 즐기고, 가정과 미래에 대한 꿈과 안녕을 기원하는 곳이었다고 한다. '산보'를 '살포'라고 불렀나 보다. 이름처럼 넓고 평평한 바위로 앞바다가 훤히 보인다.

 

쑥섬 정상

 

여자산포바위를 지나면 갑자기 '쑥섬 정상'임을 알리는 푯말이 두 군데나 등장한다. 83m 쑥섬 정상을 에베레스트나 백두산, 한라산 위에 적어 놓은 게 재밌다. 삶은 상대적이니 여기서는 이곳이 제일 높은 곳이다^^

 

제일 높은 곳인만큼 이곳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시원스럽다. 앞섬 '사양도'가 훤히 보인다.
쑥섬 남자산포바위.

 

남자산포바위를 지나면 이제 내려가는 길이다. 간간이 거친 돌길도 나타나지만 덕석을 깔아 놓은 깔끔한 길이 계속 이어진다. 쑥섬 소머리 자리를 지나 덕석이 깔려 있는 잘 닦인 도로를 내려가다 보면 '선택의 순간'이 찾아온다.

 

쑥섬 소머리 자리. 쑥섬 뒤편 바다에서 보면 소가 비스듬하게 누워 있는 형태인데, 이곳이 소머리 자리이며 팽나무가 소뿔의 느낌을 준다고 한다.
(왼쪽) 성화 등대로 내려 가는 길, (오른쪽) 걸어온 길을 되돌아 본 길.
(왼쪽) 성화등대 가는 길 (오른쪽) 마을로 가는 길. 물론 이 길로도 쑥섬등대(성화등대)로 갈 수도 있다.
(왼쪽) 거친길 방향 (오른쪽) 덜 거친길 방향
신선대, 뒤편 벼랑에 중빠진 굴
신선대 근처의 바위

 

거친 길을 따라 내려오다 보면 '신선대'를 만난다. 고흥이나 여수의 섬이나 해안단구에는 신선대란 이름이 붙여진 지명이 몇 곳 있다. 여수 낭도에도 신선대가 있는데, 그만큼 하늘과 가까운 절벽의 평범한 곳이 아름답다는 의미로 들린다.

조금 더 내려가면 등대로 가는 표지판과 함께 나무 계단이 나타난다. 그리고 나무에 가려진 등대가 보인다. 외진 곳에 등대가 있다 싶었는데 '쑥섬 등대'를 소개하는 표지판이 바로 붙어 있었다. 쑥섬 등대는 2000년 전반기에 만들어졌으며, 거문도와 완도 등지를 다니는 배들에게 중요한 등대 역할을 했다고 한다. 등대 아래 해안 절벽으로 내려갈 수 있는 계단도 있으나 '낙석' 위험 때문에  출입을 자제하라는 안내가 돼 있다. 

 

성화등대(쑥등대). 모양이 성화를 닮아서 지어진 이름일까.
쑥섬등대에서 바라본 쑥섬 서쪽의 모습. 낙석 위험과 돌아가야할 시간이라 가보지 못함.
쑥섬 등대 해안절벽을 걸어 볼 수 있는 곳들.

 

등대에서 나와 갈림길을 지나 마을로 향하는 길을 걸었다. 마음이 급해졌다. 사람들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을 보니 일행들은 별정원에서 바로 수국정원을 지나 마을을 거쳐  선착장으로 간 것 같다. 차를 따로 가져와 일행을 기다리게 하는 불편을 주지는 않겠지만 찾는 동료들이 있을 것 같아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런데 눈길을 끄는 장소들이 연이어 나타났다. 먼저 '후박나무 그늘과 통나무 의자'. 칡넝쿨을 이기고 자리를 잡은 후박나무와 이 그늘을 사랑한 관람객이 벤치를 만들어 선물했다고 한다. 풍성한 후박나무가 먼저 눈에 보이고 벤치에 앉으면 이름처럼 두툼한 나무줄기가 그대로 드러난다. 신비로웠다.

 

후박나무 그늘과 통나무 의자

 

이어 대나무숲이 굴을 이룬 곳을 지나 철탑을 지나면 마을 사람들이 사용했던 '쌍우물'을 만난다. 안내문을 읽어보니 섬의 위쪽(북쪽) 끄리머리에 있다고 하여 '우끄터리 쌍우물'이라고 부른 듯싶다. 특히 '천원지방' 우물로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다'라는 옛사람의 생각이 반영되었다고 한다. '천원지방(天圓地方)'은 옛날에 조성된(또는 이를 계승한), 조금만 섬이 있는 연못 등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사고이다. 문득 "뿌리 깊은 나무(이정명)"라는 소설이 생각났다. 한글 창제 후 이를 반포하려는 사람과 이를 막으려는 사람 사이의 암살 사건에서 '천원지방'이 등장하는데 우리 글자 한글의 철학적인 면을 드러내 주는 소설이었다.

 

우끄터리 쌍우물. 설명을 보니 천원지방이 반영된 동굴이라 하는데 위의 우물에 해당된 설명인 듯 싶다.
우물 안에는 지금도 물이 있고 두레박으로 뜰 수 있다. 초등학교 때까지 살던 집에 이런 우물이 있었다.

 

우물에서 내려오면 잘 닦인 해안도로가 나타난다. 곳곳에 벤치가 설치돼 있어 깨끗하게 정돈돼 있었다. 한참을 앉아 바다와 산을 볼 수 있는 곳이었다. 잠깐 앉았다 걸어 보니 이곳의 동백숲 수령이 200년 이상 되었다고 한다. 동백숲 군락이 엄청났다. 걷다 보니 2018년에 쑥섬에서 "한국인의 밥상"을 촬영했는데 이곳에서 최불암 선생님이 "앉아 있기만 해도 좋은 곳이지요."라는 오프닝 멘트를 하셨다고 한다. 나도 그런 생각을 했다^^

 

동백숲길 끝.
동백숲길에서 나로항 방향

 

마을의 돌담은 담쟁이넝쿨이 온통 감싸고 있었다. 좁을 고샅길이 담쟁이넝쿨로 더 좁아 보였다. 굽은 길에 마을 어르신이 나와 계셨다. 반갑고 인사를 나누고 선착장이 보이는 곳을 보니 우리 일행들이 배를 타는 모습이 보였다. 정원이 12명이니 다시 배가 오지 않을까 생각하며 부지런히 걸었다.

그런데 선착장에 기다리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나로항으로 떠났던 배도 다시 오지 않았다. 저녁 식사 장소를 알고 있지만 일행들이 기다릴까 싶어 배표에 있는 연락처로 전화를 드렸다. 조금 더 기다려 보라고 한다. 10여 분 뒤 여객선이 왔다. 나를 태우려고 빈 배로 왔다. 선장님 말씀을 들으니 직장 동료가 내가 나오지 못했다고 나로항에 이야기해 오셨다고 한다.

미안했다.

그래서 쑥섬 이야기를 최대한 빨리 정리했다. 정리하면서 쑥섬 홈페이지에 들어가니 6월부터 수국이 만발한다고 한다. 지금까지 함께 여행했던 사람들 모두 쑥섬의 매력에 반하며 가족, 지인들과 같이 오고 싶은 곳이라고 했다. 두 번 갔지만 또 가고 싶은 섬이다!

 

마을길의 담쟁이 넝쿨
쑥섬 선착장에서 갈매기 카페 방향. 기다리는 사람을 위해 제법 길게 대기실이 만들어졌다.
쑥섬 여객선. 정말 함께 걷고 싶은 길 '쑥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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