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월, 전국국어교사모임의 회지 “함께 여는 국어교육” 2023 봄호에 ‘내면의 문제로 고민하는 학생들에게 추천하는 청소년 소설’이란 글을 쓴(내용을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하고 편집팀의 도움을 받아 마무리한 글이라 공유하지 못했다)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글을 보고 ‘책폴’ 출판사 편집자께서 연락을 주셨다. 1인 출판사로 청소년과 어른이 함께 읽고 소통하는 다양한 분야의 책을 출간하고 있는데 이번에 “마녀가 되는 주문”을 새로 출간했다고 추천해 주셨다. 보내 주신 소개 자료를 읽어보니 재미있을 것 같았다. 뒷감당할 생각도 못하고 책 욕심에 읽어보겠다고 했다. 금방 책이 도착했고 얼른 소감을 나누고 싶어 읽었지만 끝까지 읽지 못했다. 당시 아이들과 자유학기제 수업으로 'SF 단편소설' 쓰기 수업을 하고..
방학을 며칠 앞두고 2시간 교무실과 복도가 시끌시끌했다. 선생님들의 신발이나 교과서를 빌려 달라는 아이, 학교운영위원실에서 제기차기나 팔씨름, 공기놀이를 하자고 초대하는 아이들로. 이른바 1학년부에서 주관한 '독서맨' 활동이 시작되었다. 이름에서 살짝 느껴지듯 SBS '런닝맨'의 학교 버전이었다. 1학년부장 선생님의 강력한 독서교육 의지로 진행된 행사인데, 시교육청에서 중학생들에게 추천한 도서 4권(세계사를 바꾼 13가지 식물, 기후위기인간, 불편한 미술관,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중 2권을 읽고 학년부장 선생님이 출제한 퀴즈에 통과하면 모둠 단위로 학교 곳곳을 돌아다니며 미션을 해결하는 활동이었다. 아이들은 서로 격려하며 경쟁적으로 책을 읽고 활동에도 재미 있게 참여했다. 1학기를 돌아보는 글쓰기에서 ..
하고 많은 유럽 나라들 중에서 ‘폴란드’라니! 축산업이 발달해서 우리가 먹는 돼지고기 중 수입산의 대부분이 폴란드인 것 정도만 알고 있는 정도의 나라인데... 어쨌든 폴란드가 과연 러시아, 프랑스, 영국처럼 우리가 읽어볼 만한 작품들이 많은 나라인가? 혹은 스페인어처럼 언어와 문화가 방대한 영향을 끼치는 나라도 아닌데, ‘폴란드’라니! 심지어 400쪽이 넘는 분량이라니! 그런데 첫 작품 를 읽고 단번에 생각이 바뀌었다. 대단한 문학적 성취를 느껴서라기 보다는(솔직히 그걸 가늠할 수 있는 안목도 없지만), 폴란드라는 나라가 한국과 비슷한 공감대와 정서를 지니고 있구나 하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기 때문인 것 같다. 알퐁스 도데의 을 읽고 느꼈던 그 간질간질한 감동과 비슷한? 스카빈스키에 반영된 폴란드 사람들의..
국어교사모임 계간지 중 '소설교육' 관련해서 두 번이나 추천을 받은 책이기에 기대가 컸다. 막상 받아보니 얇고, 동화책에 가까운 책이라 놀라웠다. 그리고 막상 읽어보니 글보다는 그림이, 이야기보다는 생각이 더 많거나 많아지는 책이었다. 왜 제목이 '긴긴밤'인지는 노든이 코끼리 고아원에서 시작한 선택에서부터 그 이유를 따라가야 한다. 비록 같은 종은 아니지만 가족같고 따뜻하고 안전한 코끼리 고아원을 떠나는 선택, 사랑하는 아내와 딸을 잔인하게 잃고 인간에게 복수심을 품고 살아가다 앙가부를 만나 어렵게 속내를 드러내는 선택, 화마에 휩싸인 동물원을 탈출해 한쪽 눈이 먼 치쿠와 동행하는 선택... 그리고 알에서 깨어난 어린 펭귄과 함께 바다로 가는 여정과 도저히 함께 할 수 없는 몸이 되었을 때 어린 펭귄을 ..
오랜만에 학교 샘들과 독서 모임을 만들었다. 처음 읽기로 한 책이 이 책이다. 각자 읽고 싶은 책을 찾아오기로 했는데 두 샘의 추천 목록에서 이 책이 겹쳤다. 띠지에 ‘2022 최고의 화제작’이라고 써 있었다. 검색해 보니 블로그, 유튜브 할 것 없이 리뷰가 많았다. 그런데 첫 번째 살펴본 리뷰에서 반전이 많은 책이라 스포일러가 될 수밖에 없으니 먼저 읽어보고 리뷰를 보라고 했다. 읽어보니 그 말이 맞았다. 모임을 며칠 앞둔 금요일 저녁부터 책을 읽기 시작했다. 흥미로운 책이었다. 과학 책이지만 소설이나 에세이 느낌이 강했다. 또 인간이란 존재는? 또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답하는 책으로 읽혔다. 철학책인가? 도서십진분류표를 보니 409번. 과학사 관련 책이었다. 그렇다. 세상에 명확하게 구..
전국교사대회에 참여했다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큰아들과 남산 근처에서 하루를 보냈다. 날마다 부쩍 커 있는 아들과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 재미있다. 남산에 올라 서울을 조망하고 돈가스를 먹은 뒤 서울역에서 헤어졌다. 생각보다 일찍 용산역에 도착했다. 예약해둔 기차 출발시각까지 여유가 있어 용산역 광장으로 통하는 계단에 매트를 깔고 앉았다. 아직은 오월이라 그늘은 제법 선선했다. 바람을 쐬며 "알로하, 나의 엄마들"을 읽기 시작했다. 머나먼 타국에서의 삶에 일제강점기라는 상황이 더해져 이야기는 불안 불안하면서도 재미있었다. 그리고 광주송정역까지, 집에 도착해서도 줄곧 읽을 수밖에 없었다.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책은 가급적 피하고 싶다. 책 속 상황을 견디는 게 너무 힘들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그런 ..
단 몇 작품으로 일본 문학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조심스럽지만, 창비 단편선에 실린 소설들은 캐릭터 중심의 이야기들과 극강의 가난을 묘사한 작품들이 많았다. 극과 극을 오가는 인물들의 대비, 그리고 가난에 대한 묘사가 충격적이어서 한 작품 씩 읽어나갈 때마다 롤러코스터를 타는 만큼 아찔했다. 에 등장하는 가난한 정원사 부부(부부가 내외로 석탄을 훔침)와 하녀를 비롯한 북적이는 대가족 집안의 대비, 의 철없는 도련님 오오쯔와 본인의 의사와 다르게 주인들의 변덕으로 삶의 운명이 흔들리는 하녀 찌요, 그리고 정말 가난한 삶의 밑바닥을 보여주는 ! 이 단편에서는 ‘젠바까’라고 불리는 광인가 소작농 진스께 집안의 형제들, 그리고 가난으로 인해 얻은 병으로 고통받다 어머니의 사랑 한 줌도 받지 못한 채 비참하게 자살한..
작년부터 읽어보려 책장에 꽂아두었는데, 드디어 손에 잡고 읽게 되었다. 표지부터 '나 정말 재미없음'이라고 표현하는 것처럼, 제목도 작은 글씨로 상단 왼쪽에 '읽어도 도대체', 하단 오른쪽에 '무슨 소린지'라고 아주 작게 적혀 있다. 자세히 보니 초록색 표지는 요철처럼 미로를 새기듯이 올록볼록한 벽돌 같은 문양이 있는데, 글을 읽으면서 해독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글자나 단어를 인식할 때 생기는 불편함을 마치 암호를 새기듯 표현한 것 같다. 어떤 선생님이 말씀하기를, 문해력 관련 책 중에서 그래도 가장 쉽게 읽어볼 만한 책이라고 했는데 과연 그럴만했다. 특히 교사로서 생각해 보고, 수업에 가져올만한 좋은 정보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저자가 학교에서 쌓은 경험들을 아주 솔직하면서도 자세하게 기록하고 수업방법들을..
책을 다 읽고 아주 아주 오랫동안 가슴이 먹먹해졌다. 작년 박소형 선생님의 블로그에 들렀다가, 선생님의 극찬이 담긴 리뷰를 보고 일단 책부터 구입했다. 책꽂이에서 우선순위에 밀리다 5월 어느 날 시작한 독서! 책장을 넘기면서 나는 이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이들과 사랑에 빠졌다. 엉뚱하면서도 진지하게 삶 앞에 당당한 모모, 모모가 사랑한 죽음을 앞둔 유태인 로자 아줌마, 코란과 빅토르 위고의 책을 같은 반열에 올린 하밀 할아버지(나중에는 레미제라블만 들고 다니심), 가장 불완전한 신체(전직 복서 남성이면서도 여성이 되고자 한)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가장 충만한 영혼을 가진 세네갈 롤라 아줌마, 그리고 의사 카츠 선생님(자신의 직무에 너무도 성실한)을 비롯하여 왈룸바씨 일행(로자 아줌마의 마지막 삶의 순간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