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 여행(2023.5.5~7.)

누나 덕분에 당분간 대명리조트를 중심으로 여행을 다니게 될 것 같다. 이번 어린이날, 어버이날 연휴를 '진도 쏠비치'에서 보냈던 것은 그 시작이었다. 가족여행을 수학여행처럼 진행하지 않기 위해 여유 있게 일정을 짰지만 3일 내내 비가 내려 결국은 틈새를 활용한 분주한 여행이 돼 버렸다. 그래도 이 시기에 이처럼 반가운 비가 어디 있으랴. 오히려 잠시 비가 그친 동안 살짝이 만난 진도의 마을과 도로, 유적지 덕분에 다시 차분히 둘러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런 마음으로 진도의 1%도 접근하지 못한 상태에서 여행기를 남긴다. 나중에 다시 내용을 채울 것을 다짐하며.
 

0. 강진 석천 한정식

아버지나 어머니 모두 대가족 집안의 셋째로 태어나셔서 나는 막내 친삼촌, 외삼촌과 같이 학교를 다녔다. 심지어 어머니의 사촌 동생과는 중3 때 같은 반이어서 호칭이 애매하기도 했다. 중고등학교 시절을 공유하는 막내 외삼촌 내외가 올 1월 강진읍에 한정식 식당을 열었다. 이미 강진읍에는 맛집으로 손꼽히는 한정식당이 여러 곳 있지만 막내삼촌 식당도 개성과 다양한 상차림으로 대접받는 느낌을 주는 맛집이었다. 혹 이 블로그를 보신 분들께서 강진읍을 방문하신다면 강진터미널 근처 KT 앞 '석천한정식'을 방문해 보길 추천한다. 

 

쏠비치 진도~접도 남망산~팽목항~진도개테마파크~운림산방~해남 우수영


1-1. 쏠비치 신비의 바닷길

점심을 맛있게 먹고 진도 쏠비치로 출발했다. 그런데 가는 길의 빗줄기가 더 굵어졌다. 특히 진도 쏠비치 웰컴센터에서 도착해서는 태풍급 비바람이 몰아치고 있었다. 체크인도 시간이 걸리고, 투숙객도 몰려 C동의 입구인 5층은 짐을 내리는 사람들로 대기 차량이 제법 길게 늘어섰다.
창밖은 폭풍우가 휘몰아치고 있지만 숙소 안은 곧 차분해 졌다. 심심해하는 아이들과 숙소 건물 C동에서 옆 D동을 거쳐 웰컴센터까지 통로를 따라 걸었다. 회사에서 탁구 실력이 부쩍 늘었다는 산하와 운동을 하려 했으나 대기 시간이 너무 길어 아이들을 "레전드 게임방"에 보내고 아내와 건물 이곳저곳을 구경하다 건물 밖으로 나왔는데 마침 비가 그쳤다. 리조트 주변 해안 산책로를 따라 걷다 쏠비치 신비의 바닷길 안내문을 만났다.
나무 계단을 따라 내려가니 썰물이라 쏠비치와 소삼도가 연결돼 있었다. 여수 사도의 양면해수욕장 같은 느낌이 들었다.  산책하는 사람은 뜸했지만 아직 물이 들어오기까지 시간 여유가 있고 또 섬이 작아 금방 일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섬을 일주하는 산책로가 잘 조성돼 있었다. 생각지 못한 만남! 여행의 묘미다. 우리 부부만 걷기에 아까운 길이었지만 우리 부부만 미음완보할 수 있어 기억에 남는 산책이 되었다.

 

왼쪽 계단을 따라 내려오면 소삼도와 연결된 모랫길이 보인다.
소삼도에서 바라본 쏠비치. 두 곳의 풍광이 비슷하다^^
소삼도 산책로 입구. 걷고 싶게 만드는 길이다.
위의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돌아 걸으면 쏠비치를 조망할 수 있는 쉼터가 나온다. 섬을 한바퀴 돌면 왼쪽 길로 나온다
쏠비치 C동 12층에서 바라본 신비의 바닷길 밀물 때의 모습. 자세히 보면 연륙교가 밀물에 잠겨 있다.

 

2. 접도 남망산과 팽목항

여행 둘째 날 오전은 식구들 각자 자유 시간을 보냈다. 어머니와 두 아들은 쏠비치 인피니티 풀장에서 바다를 원없이 바라보며 물놀이를 즐겼고, 누나네 식구들은 '신비의 바닷길'과 해안 산책로를 걷고 숙소에서 쉬었다.
아내와 나는 미리 눈여겨 보았던 쏠비치 건너편, 접도의 남망산을 걷기로 했다. 점심시간까지 3시간 정도밖에 시간 여유가 없어 1코스만 걸으려고 수품항을 찾았다. 그런데 목줄조차 없는 중형견들이 도로를 활보하고 있어 주차할 곳이 없었다. 개들에게 쫓겨 임도를 따라 움직이다 정자까지 갖춰진 널찍한 주차공간을 만났다. (숙소에서 확인해 보니 이곳이 '여미재'였다.)
여기서 남망산 정상까지 길이 연결돼 있다고 해, 물기가 가득한, 그러나 걸으만한 산길을 걸었다. 다소 가파른 길을 10여 분 걸으니 수품항이 훤히 내려다 보이는 너른 바위가 나타났다. 비구름이 산 주위를 감싸고 있어 시야가 넓지 않았지만 느낌으로 이곳에서 조망하는 남해의 모습이 상당할 것 같다. 그리고 1~2분 더 오르자 남망산 정상에 도착했다. 괄호로 '쥐바위'라고 써 있었지만 표지석에 높이까지 나와 있고 주위 능선들이 구름에 가려 있어 정상이라 느끼기에 충분했다^^ 더 걷고 싶었으나 주위 시야가 좁고 이곳 등산로가 4~5시간 코스라는 글을 진도군청홈페이지에서 본 것 같아 빨리 마음을 접었다. 얼른 팽목항으로 가야 한다.
*남망산에 대한 정보를 찾다 만난 블로그. 이 블로그를 보면 남방산을 다시 가지 않을 수 없겠다!
https://sane8253.tistory.com/1532
 

 

수품항 근처 만물슈퍼 앞 여미재로 난 도로를 따라 이동하면 여미재 고개 쉼터가 눈에 들어온다. 접도웰빙등산로 입구
잘 정도된 산길을 따라 오르면 쥐바위 전망대가 나타난다. 가운데 항구가 수품항이다.
남망산 정산인줄 알았다^^; 연휴 사흘 내내 비가 오는 상황에서 이만큼이라도 둘러 볼 수 있어 운이 좋았다.

 

진도까지 왔으니 팽목항은 꼭 들러야할 것 같았다.
접도에서 나와 쏠비치와 반대 방향으로 잘 정돈된 지방도와 잘 단장된 마을에 눈길을 주며, 진안 마이산 탑사와 비슷한 돌탑이 보이는 마을(탑립마을)과 아리랑 마을을 지나쳐 팽목항에 도착했다.
팽목항은 진도항으로도 불리는데 제주나 관매도로 가는 여객선이 여기서 출발한다. 여객터미널과 주변 모두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곳곳에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는 플래카드와 상징물들이 많았다. 9년이란 시간이 지나면서 노란리본 상징물은 녹슬어 훼손되었다. 그래도 이곳을 찾는 추모객들이 많았다. 세월호 참사가 있기 1년 전, 장흥 노력항에서 제주 성산포까지 배를 타고 아이들을 인솔해 수학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 그래서 세월호 참사는 남일이 아니다.
지나가는 몇 분이 세월호는 추모라도 할 수 있지만 이태원 참사는 제대로 추모도 하지 못해 안타깝다는 이야기를 했다. 기억하고 마음에 담아야 할 일들이 더이상 생기지 않길 바랄 뿐이다.

팽목항 등대. 진실은 기억과의 싸움이다.
이곳에서 세월호 참사현장까지의 거리는 30여 km.
하늘로 보내는 편지만 애처롭다.

 

3. 진도개 테마파크

점심은 진도군청에서 진도개 테마파크 가는 길의 '서우담'이라는 회정식 식당에서 먹었다. 회가 크지막하게 썰어져 있고 곁들인 안주도 푸짐해 맛있었다. 그리고 인근 진도개 테마파크를 찾았다. 어린이날을 맞아 이틀 간 진도개 축제를 하는데 내용이 어떻게 구성돼 있는지 궁금했다.

비가 내려서인지 축제 현장은 요란하지 않았다. 차도 여유 있게 주차할 수 있었다. 입장료가 무료인데도, 아이들이 물놀이하고 낚시 체험할 수 있는 시설이 있었다. 또 곳곳에 친근한 반려동물을 만날 수 있었고 식물원을 둘러볼 수 있었다.  특히 진도개와 산책하는 체험도 있었는데, 개를 무서워하는 둘째 민주가 용기를 내 진도개를 쓰다듬고 산책하며 개에 대한 무서움을 다소 극복한 것 같았다. 
그런데 국어교사로서 '진도개'라고 쓰는 게 참 불편하다. 사잇소리현상에 따라 '진돗개'라는 편하게 쓸 수 있으면 좋겠다. 

 

(왼쪽) 의신면의 돌아온 백구 모습 (오른쪽) 물레방아 배
(왼쪽) 파인애플이 이렇게 자란다니 (오른쪽) 우리 가족과 산책한 황구
마침 원반받기 대회가 진행되고 있었다. 대부분 '보더콜리'종이었다. 잘 달리고 잘 받는다. 사람들의 박수소리가 컸다.

 

4. 운림산방

운림산방은 '의신면'에 있다. 믿을 '신'자가 들어가는데, 대전에서 진도까지 달려 온 '백구'가 의'신'면에서 살았던 게 예사롭지 않다. 운림산방은 참으로 오랫만에 방문한다. 경신여고에서 일할 때 이곳으로 소풍 왔는데 그 때 이후로 처음인듯 싶다. 
먼저 운림산방 입구 '남도전통미술관'을 들렀다. 그림도 보고 체험도 할 수 있는 곳이었다.
이곳을 지나면 운림산방에 한눈에 들어온다. 운림산방은 화가 허련 선생이 머문 곳이라고 한다. 무엇보다 5대가 가업으로 이어가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다. 

남도전통미술관 전경과 체험
운림산방의 모습

 

*운림산방에 대한 정보를 찾다 만난 블로그. 운림산방의 아름다운 풍경을 잘 담았다.
https://yun-blog.tistory.com/2099
 

1-2. 진도 쏠비치의 밤

'벌써' 여행의 마지막 밤이다. 아쉬운 마음에 이슬비가 내리지만 산책로를 한 번 더 돌았다. 밤과 낮은 단어처럼 이미지가 다르니까..

 

5. 해남 우수영 관광단지

여행 마지막 날에도 비가 내렸다. 우산을 쓸까말까 고민하게 하는 비라서 가는 길에 울돌목을 둘러보기로 했다. 울돌목을 사이에 두고 해남과 진도 두 지자체가 경쟁하고 있었는데 '명량 축제' 공연을 해남 우수영에서 본 기억이 있어 우수영으로 목적지를 정했다. 
우수영의 '명량대첩 박물관'은 당시 조선 수군과 왜 수군의 상황을 체험 위주로 잘 구성했다. '울돌목 스카이워크'는 울돌목의 물살이 명량대첩의 중요 변수임을 바로 알 수 있었다.
얼마 전, 김훈 작가의 "하얼빈"을 읽으면서 영웅들의 태도에 주목했었다. 객관적인 상황의 불리함을 극복할 수 있는 그 힘, 문득 브레이트의 '이성으로 비관하되 의지로 낙관하라'는 말이 떠올랐다. 3년 후배였지만 함께 임용고사를 준비했고, 함께 청소년 독서모임을 했던 후배의 프사 문구였다. 남편을 따라 구미에서 국어교사를 하는 후배도 그렇게 살고 있을까...
그런데 유독 우리나라에 이런 위인들이 많은 것 같다. 대의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린 분들. 
곧 5.18이기도 하다..
 

(왼쪽) 명량대첩 박물관 입구의 트릭 아트.  (오른쪽) 왜와 우리나라 돛단배의 성능을 비교하는 체험
(왼쪽) 이순신 장군과 (오른쪽) 조선 수군의 배와 일본 수군의 노젓는 방식을 비교하는 체험
진도대교와 울돌목의 물살


월요일, 출근해서 직장 동료들과 어린이날 어떻게 보냈는지 이야기를 나눴다. 비가 내려 집에 있었다는 의견이 많았다. 진도에 다녀왔다고 하니 비가 와서 아쉬웠겠다는 위로의 말이 많았다. 거기에 더해 진도는 별로 볼 게 없다고.
진도에 공감했기에 항변하고 싶었지만 내 경험을 어떻게 이야기할 수 없었다. 그래서 비가 갠 틈틈이 만난 진도에 대한 느낌을 함부로 메모하고 있다. 
진도. 이름처럼 볼 수 있는 여유가 있어야 본 모습을 볼 수 있는 '보배로운 섬'인듯 싶다. 겨울에 차분히 둘러봐야겠다고 마음 먹었는데 메모하면서 보니 가을이 오기 전에 다시 돌아보고 싶다. 그냥 나한테 준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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