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밭 아이들
- 상황별 청소년 소설 추천/친구,학교,사회 문제로 갈등할 때
- 2008. 9. 15.
교육 10년 차.
아이들이 변한 건지 내가 변한 건지 초년 시절의 열정은 오간 데 없고 스트레스와 짜증으로 얼룩진 하루를 바라보며 앞으로 걸어가야 할 남은 교사생활을 떠올린다. 결코 밝지 않은 나의 미래에 이 책은 ‘교육’에 대한 무거운 화두를 던진다.
하이타니의 작품들 중 이 책은 가장 직설적인 화법으로 교육의 문제에 정면 대응한다. 이렇게 직설적일 수 있는 까닭은 구즈하라 준이 교사이기도 하지만, 또 교사 아닌 입장에서 교육현장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사회생활을 했던 사람으로서, 교사인 아내를 두고 있다는 점, 무한숙을 한 때 운영했던 사람으로서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고민했던 사람이라는 점 등 교육현장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있으면서 떨어질 수 없기에 교육현장의 가장 미시적인 부분까지 다가갈 수 있었다.
그렇게 학생들의 시선에서 그가 바라본 교육현장은 모순덩어리 그 자체이다.
교칙을 사이에 둔 학생과 교사의 관계, 교육과정과 내용, 방법의 문제, 서열화 속에 사라져가는 인간성의 문제, 소외(학생과 교사를 포함한) 등의 문제가 구즈하라 준의 따뜻하면서도 열정적이며 지치지 않는 시선 속에서 새롭게 팔딱인다. 이전에는 그냥 지나쳤을 법한 일도 구즈하라와 아이들의 이야기 속에서 모순이 되고 새로운 인식으로 다가왔다.
그 동안 수많은 변명과 자기방어 속에서 타협하며 아이들 위에 군림했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자괴감! 니시 분페이의 냉소가, 호시노 도시오의 저항이, 간바라 미치코의 침묵이 나를 다시 돌아보게 했다.
때론 고민하고, 때론 부끄러워하고, 때론 결말이 궁금해서 정말 더디게 책을 읽었다. 더 고백하자면 번역의 문제인지 작가의 작법 때문인지 툭툭 끊기듯 이어지는 서술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기도 했다. 어찌 보면 이렇게 서투른 듯 거친 서술이 우리 교육 현장과 닮아있는 지도 모르겠다.
이명박 정부 이후 경쟁과 줄 세우기의 광풍이 몰아닥치고 있다. 이젠 교육의 가장 근원적인 문제에 대한 기나긴 싸움이 시작될 지도 모르겠다. 아마 몇십년이 지난 후에도 이 책은 권장도서로 남아 있지 않을까? 그 몇십년 사이 구즈하라 준만큼은 아니겠지만 그가 고민한 것들이 계속 내 가슴 속에 불씨로 살아있기를 바란다.
<수준>
중학교 3학년부터
<인상 깊은 구절>
(108) 학교 쪽에서는 그 어머니를 몰상식하다고 비난했다지만, 정말로 그럴까요? 제가 만나 본 그 어머니는 그야말로 점잖은 분이셨어요. 교사들을 점검하고 그 어머니가 알게 된 것은, 선생님도 지각을 한다는 것, 선생님의 옷차림은 제각각 다르다는 것, 실내화를 신고 밖을 돌아다니기도 한다는 것, 그리고 아이들의 머리 모양을 갖고 야단치는 선생님의 머리가 기름기로 번들번들하거나 어깨나 깃 뒤쪽에서 비듬이나 먼지가 앉아 있기도 하다는 것이었죠
~ 유리코의 어머니가 지혜롭다고 한 이유는 이른바 그 조사 결과를 학교에 들이대며 아이들을 그렇게 닦달할 거면 교사들도 규칙을 엄격히 지키라고 비난한 것이 아니라, 서로 간에 흉만 들춰 내려 하지 말고 좀 더 여유를 가지고 느긋하게 생각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말했기 때문이에요.
(138) “엄마가 학교 선생님이었다면 학생들이 불행했을 거야.” “왜?”
“세상에 이상한 아이는 없어. 여주를 좋아하는 애는 여주를 좋아하는 것뿐이야.” 구즈하라 준은 웃었다. “‘세상에 이상한 아이는 없어.’라는 말, 참 좋구나.”
(183) 미즈타니 레이코는 날카롭게 지적했다. “선생님은 말끝마다 지도, 지도 하시는데, 정말로 지도를 하실 생각이라면 저희들이 배워서 변화할 수 있도록, 생각하거나 행동할 수 있는 세계를 만들어 주세요. 일방적인 말이나 감정을 앞세워 학생을 때리는 것이 무슨 지도란 말이죠? 엄격하게 지도한다는 것이 학생을 때리는 것인가요?”
(184) “벌을 받느라 1시간이 다 가버렸습니다. 저희들은 체육 수업을 받을 권리가 있는데도, 헌법과 교육기본법을 지켜야 할 선생님은 저희한테서 그 권리를 빼앗으셨어요. 전원에게 명령하셨으니까, 선생님은 차별도 하신 셈입니다. 책임지세요.”
“참고로, 체벌이란 육체적 고통을 수반한 모든 것을 말하죠. 그리고 지각한 학생을 교실에 들이지 않아 수업을 못 받게 하는 일은 아무리 단시간이라 하더라도 의무교육에서는 허용되지 않습니다. 수업 시간에 떠들거나 태만한 학생을 교실 밖으로 내모는 일 역시 허용되지 않고요. 그렇죠, 교감선생님?”
(188) “폭력을 일삼는 교사는 분명 있다. 물로 좋은 일은 아니지만 학교 질서를 위해, 여기서 학교 질서란 교내 폭력이 일어나거나 일부 학생 때문에 수업을 망치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이겠는데, 이 학교에는 교사의 폭력을 일종의 필요악으로서 인정하는 분위기가 깔려 있다는 것이다. 이 얘기를 해 준 선생님은 그것이 더 큰 문제라고 했다.”
(189) “교사에게는 자신에 대한 엄격함이 부족한지도 몰라. 그러나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교사의 폭력을 저지하는 것만이 문제 해결이 아니라는 점이다.”
~ “그건 교사의 교육관에 관계된 문제야. 폭력은 사라졌다 해도 교육 내용이 폭력을 휘두를 때와 똑같다면 아무 소용 없으니까.”
~ “폭력을 휘두르는 교사의 교육관을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학생의 존재가 훨씬 더 중요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 “아무리 교사들끼리 이러니저리니 토론을 하고 연수를 받아도 거기에는 한계가 있어.”
~ “아이들에게서 배운다, 학생들에게 배운다, 이 방법밖에 없지 않을까? 요즘, 아이들에게 배운다고 해 놓고는 게으름을 피우는 선생님이 아주 많은 것 같으니까……”
~ “비뚤어진 교육을 강요하면 아이들도 비뚤어져. 이건 필연이야. 아이들이 생기가 넘친다면 그 교육에는 진실이 담겨 있어. 아이들에게 큰 변화가 보인다면 그 교육은 진짜야. 아이들을 유심히 살펴볼 일이야.”
(193) 간바라 미치코가 자꾸 신경 쓰인다. 마치 가시가 목에 걸린 것처럼. 자신이 간바라 미치코에게 위화감을 느낀다면, 그건 곤란하다고 구즈하라 준은 생각했다. 거기까지 생각하자, 구즈하라 준은 아무 대책도 없는 자기 자신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교사에게 타인의 감정에 점점 무뎌지는 경향이 있다면, 그것은 자기 방어에서 비롯된 일일 거야, 분명히. 그런 교사를 비판할 자격이 나에겐 없는 것 같아.
(206 )“요즘 학교에서는 상대평가를 하고 있어서 아무리 공부를 해도 가장 좋은 점수를 얻을 수 있는 아이는 극히 적어요. 암울한 경쟁뿐이죠. 선생들까지 그런 분위기에 물들어, 대개 선생들은 어둡고 음습해요. 애들이 그걸 무슨 수로 견디겠어요?”
(211) “세상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게 되면 비판하거나 때로는 반항해야 할 일이 이 사회에는 수두룩하니까요. 그러면서 젊은이들은 살아가는 힘을 얻는다고 생각해요. 저도 예전에는 비행 청소년이란 말을 들었지만, 지금 이렇게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어요. 돈 몇 푼 벌자고 병든 소나 닭을 팔지는 않아요.”
~ “야스코는 사회의 약자로 취급받지 않는 강한 아이로 기를 거예요. 학교는 반면교사로 충분합니다. 선생님께는 미안한 말이지만.”
(224 )발상의 전환은 매우 중요합니다. 금지 사항이 있으니까 문제가 생기는 거예요. 한 번 학생들을 믿고 금지 사항을 모두 없애 버립시다.
~ 무책임한 말이 아닙니다. 제가 이렇게 말하는 데는 근거가 있습니다. 우리 반 아이들이 말하더군요. 규칙을 지켜야 하는 것도 싫지만, 이렇게 사소한 것까지 지도해야 할 만큼 선생님들이 우리를 믿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암담한 기분이 든다고요. 이 말을 교사가 곰곰이 곱씹어 봐야 할 내용이라고 생각하는데, 여러분 생각은 어떻습니까?
~227 윗사람 지시에는 그저 따르는 게 최고라는 식의 무사 안일주의에 빠진 교사도 있습니다. 절은 나이에 출세 지향주의에 빠진 교사도 있지요. 자동차나 집, 해외 여행밖에 흥미가 없는 듯한 선생님도 있습니다. 요즘 교사들 문제 있다고 생각하며 나를 되돌아보면, 나는 차도 있고 해외 여행도 뻔질나게 다니고 있습니다. 구즈하라 선생님이 말씀하신 생활 지도 안내문 문제도 그래요. 입으로는 그런 세세한 규칙은 필요 없다고 말하면서도 다수결 원칙에 의해 내 의지와 반대되는 결과가 나오면 하는 수 없는 일이라며 학생들에게 그 안내문을 나눠 주는 교사가 바로 나예요. 교사에게 절망할 자격 따위 나한테는 없습니다. ~ 사실 누구에게도 교사의 자격은 없습니다. 남에게 뭔가를 가르칠 자격, 그런 거 없어요. 하지만 교사는 필요합니다. 나는 계속해서 아이들을 가르치겠죠.
~ 나의 유일한 양심이라면, 자신은 학생들보다 한 단계 위에 서 있는 인간이니까 명령을 해도 괜찮다는 우쭐한 생각만은 갖지 말자는 소극적인 것뿐입니다.
(239 )가르치는 사람은 배우는 사람보다 더 많이 공부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의미심장한 말이지만, 일단 나는 지금보다 좀더 주위를 유심히 둘러보고 독서량도 늘려 교과서 수업 이외의, 뭐랄까 ‘특별방송’ 같은 수업을 되도록 많이 하도록 노력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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