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날 기념 수업(주제2-4)을 하고 나서
- 행복한 글쓰기/가르치고 배우며
- 2006. 12. 3.
광주에 사는 국어교사에겐 두 가지 의무감 같은 것이 있지 않을까. 하나는 광주에 살기에 마음의 빚을 지고 있는 5.18민중항쟁, 또 하나는 경쟁과 효율에 내몰려 끊임없이 존재를 위협받는 한국어와 한글의 의미를 되새기고 기념하는 것이다.
올해 한글날은 훈민정음 반포 후 560돌, 기념일로는 80돌, 게다가 기념일이 아닌 국경일로 다시 지정되었기에 그 의미 또한 크다. 마침 교과서에 훈민정음 창제 과정의 논란을 통해 훈민정음을 창제한 세종대왕의 뜻, 언어의 민주화에 대한 글이 실려 있어 교과서와 동영상을 통해 한글 창제 배경을 살피고, 틀리기 쉬운 우리말, 어원도 모르고 쓰는 우리말을 골라 우리말 겨루기를 해 보면서 우리말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고 싶었다.
그리고 수행과제로 중학교 1학년 수준에서 살려 쓰면 좋은 우리말이나 토박이말, 정감이 듬뿍 담겨 있는 사투리를 찾아 “아름다운 우리말 사전 만들기”를 했다. 국적을 알 수 없는 말, 우리말을 천시하고 외국어(특히 영어)를 수준 높게 생각하는 아이들에게 우리말을 찾아보고 쓰임새를 만들어 보는 일은 내용이나 당위적인 측면에서 수행평가 과제일 수밖에 없다.
수행평가는 먼저 아이들과 협의한 대로 원하는 사람끼리 모둠을 편성했다. 활동과 평가는 개별과제와 모둠과제로 나눠 실시했는데 개별과제로는 살려 쓸 우리말과 뜻을 3개 이상 정하고 각 낱말의 뜻, 낱말이 들어간 짧은 문장 5개, 연상 그림, 낱말 수만큼의 행시나 낱말이 들어갈 시나 노래 가사를 적는 것이며, 모둠 과제로는 사전의 이름, 모둠 이름, 한글 사랑의 마음이 담긴 표어 짓기, 제작 과정을 간단하게 정리하는 활동이다.
3년 전, 이 수업을 계획할 때보다 지금은 상상플러스나 말美잘 등 재미있게 살려 쓸 우리말을 소재로 방송하는 프로그램이 많아 과제 자체가 어렵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수행 과정을 지켜보며 남학생과 여학생, 또 학생 개개인의 특성을 볼 수도 있었다.
수업 시간 3시간이면 충분한 수행평가 활동인데도 주어진 시간에 과제를 제출한 모둠은 여학생의 경우 절반 정도, 남학생은 여학생의 절반 정도 되었다. 과제를 제 때에 제출하지 못한 이유는 여학생의 경우 내용을 채우는 것보다 꾸미는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였기 때문이고, 남학생의 경우는 개별 과제를 제대로 준비하지 않았거나 역할 분담을 해 놓고도 자신이 맡은 일을 제대로 하지 않은(이 경우 사실 역할 분담이 제대로 안 됐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다) 경우다.
수행평가는 말 그대로 수업 과정의 평가라는 생각에 수업 시간에 필요한 시간을 계산해 활동하는데 남녀학생 모두 주어진 시간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 아이들의 마음은 이 일을 핑계 삼아 학원에 빠지거나 숙제를 핑계로 친구집에 모이는 것에 더 큰 재미를 느끼고 있다. 공식적인 자유의 시간을 잘 활용하는 아이들의 생존 전략일수도 있지만 우리 교사는 무수한 민원에 시달리게 되고 아이들도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지도도 병행해야 한다.
학생 개인의 특징을 보면 충분히 창의적인 내용을 채울 수 있는 활동인데도 대부분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구절에 찾은 말을 기계적으로 결합하는 경우가 많았다. 또 모둠간 의사소통을 통해 사전의 이름이나 연상 그림 등을 그릴 수 있는 데도 인터넷 검색 “좋은 제목” 등을 검색해 과제를 해결하려는 모둠도 있었다.
여러 번 설명해도 수행 과제를 잘못 이해해 과제의 요구사항을 정확하게 반응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는데 살려 쓰면 좋은 아름답고 예쁜 우리말을 선정하자고 했는데 자신이 잘 모르는 국어교과서에 나오는 단어(주로 한자어)를 찾아오는 경우도 많았고 살려 쓸 우리말을 ‘한글 이름 짓기’와 혼동하여 낱말이 아니라 이름용으로 새로 만든 자료를 찾아오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수업을 방해하는 요인은 출처를 확인할 수 없는 인터넷 정보다. 무엇이 우리말인지 확인할 수 있는 사이트가 필요하고 국적을 알 수 없는 무분별한 외래어만큼이나 출처 없이 상업적인 목적으로 생산되는 낱말에 국어교사나 아이들 모두 노출되어 있다.
그래도 아이들의 결과물을 읽으면서 나 역시 잘 몰랐던 우리말과 쓰임새를 다시 배우는 소중한 기회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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