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밀밭의 파수꾼(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이래서 모임을 해야할까. 여러 차례 읽기를 시도했으나 완독하지 못한 이 책을 결국 다 읽고야 말았다. 읽고 나서 책에 대한 마음이 달라지긴 했지만, 책을 읽을 수 있었던 힘은 모임 때문이다.

그동안 이 책을 다 읽지 못했던 이유는 결국 책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였다.
2박 3일의 이야기를 300쪽 가까이 너무나 세밀하고 풀어내는 이야기 형식에 마음에 들지 않았고, 세밀하게 드러난 홀든의 마음 상태에 공감하기 어려웠다.

책을 다 읽고 나서 홀든의 마음을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홀든은 아픔이 많았고 세심하며 민감한 아이다.
마음을 나누었던 동생이 죽었고, 겁이 많은 자신에 비해 외소하면서도 강단지게 자기 의견을 표현했던 친구(제임스 캐슬)는 자살을 했으며, 형은 자신의 기준에서 변절자가 돼 헐리우드를 선택했다. 학교 교육과 그 안에 있는 학생들, 선생들, 부모를 포함한 어른들은 기존 사회 구조를 지지하고 있으며 그를 위해 살라고까지 하는 결국은 위선자들이다. 춤과 음악과 문학에 밝아 항상 지적인 대화를 나누고 싶지만, 자신에겐 청소년이라 술을 팔지 않으면서도, 어른들은 춤만 잘 추거나 변태스럽거나, 겉과 속이 다르다. 홀든은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없고, 학교나 사회는 위선적이다. 그래서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 뜻을 잘 파악하는 여동생과 같은 아이들의 순수함을 지켜주는 것이 자신의 가장 큰 바람이라고 말한다. 

홀든이 지적하는 사회의 위선적인 모습에 공감하는 부분도 많다. 그러나 '홀든'이란 인물에 대해서도 고민이 많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인물이 앤톨리니(이틀 째 밤에 찾아갔던 영어 선생님) 선생이다. 앤톨리니 선생은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홀든을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다. 홀든의 특별한 성격 때문에 충분한 교육을 받지 못하고 그래서 왜곡된 마음을 갖게 될까 걱정하며, 심지어 홀든이 생을 마감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그래서 "미성숙한 인간의 특징이 어떤 이유를 위해 고귀하게 죽기를 바라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반면 성숙한 인간의 특징은 동일한 상황에서 묵묵히 살아가기를 원한다는 것이다."라는 구절을 인용하기도 하고, 잠든 홀든의 머리를 연민의 심정으로 만진 것은 아닌가 싶다. 
홀든이 앤톨리니 선생의 행동을 변태로 보고 급하게 선생의 집을 뛰쳐나온 건, 너무나 예민한 성격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지만, 홀든의 마음과 사회에 대한 인식이 필요 이상의 감정이라는 느낌도 갖게 한다. 학교에 적응하지 못해 퇴학당한 고등학생에게 들이댄 잣대가 너무 경직되었다고 지적할 수도 있다.

그래도 난 홀든이 몸을 좀 움직였으면 좋겠다. 홀든에게 보내는 삐딱한 시선을 다 거두기가 힘들다. 

<인상 깊은 구절>

(19) "인생은 시합이지. 맞아, 인생이란 규칙에 따라야 하는 운동 경기와 같단다. "

"예, 선생님. 저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시합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시합은 무슨. 만약 잘난 놈들 측에 끼어 있게 된다면 그때는 시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건 나도 인정한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측에 끼게 된다면, 잘난 놈이라고는 하나도 찾아볼 수 없는 그런 편에 서게 된다면 그때는 어떻게 시합이 되겠는가? 아니. 그런 시합은 있을 수 없다.


(84-85) 전화를 걸려고 생각했지만 아무에게도 하지 못한 것!


(88) 이 호텔에는 온통 지저분한 변태들뿐이었다. 어쩌면 이곳에서 정상적인 인간이라고는 나 하나밖에 없는지도 몰랐다. 무슨 말을 해도 지나치지 않았다. 스트라드레이터에게 전보라도 보내, 뉴욕행 첫기차를 타고 이곳으로 오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였다. 그 녀석이 왔다면 틀림없이 이 호텔에서 왕 노릇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가 있다면, 이런 일들은 세상에서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바라면서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일종의 마력 같은 것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얼굴에 물을 내뿜고 있는 여자같은 경우는 굉장히 매력적으로 생겼다는 것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게 내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문제점이다. 난 어쩌면 이 세상 누구보다도 가장 지독한 색광인지도 몰랐다. 종종 나는 이런 지저분하기 짝이 없는 일들을 생각할 뿐만 아니라, 그런 일들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온다면 기꺼이 하고 싶으니 말이다. 하지만 나 그런 일들은 좋아하지 않는다. 생각해 보면 정말 고약한 일이기도 하고 말이다. 정말로 좋아하지 않는 여자라면, 그런 식으로 어울려서는 안 될 것이다. 그리고 진짜 좋아하는 여자면, 그때는 그 여자의 얼굴을 좋아할 테니까, 물을 얼굴에다 내뿜는 짓 같은 지저분한 짓을 해서는 안 될 테니까 말이다. 그렇지만 실제로는 저런 추잡한 일들이 재미있게 느껴질 때가 있다.


(137) 난 교회에 가지 않는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난 목사들에 대해서 도저히 참아줄 수가 없다. 내가 다녔던 학교마다 목사들이 있었는데, 하나같이 틀에 박한 거룩한 목소리를 만들어 설교를 하곤 하는 것이다. 난 그게 싫었다. 왜 좀더 자연스러운 목소리로 설교를 하지 않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하기 때문에 목사들의 이야기가 순 거짓말처럼 들리는데도 말이다.(호텔에서 창녀 서니와 포주 모리스를 만나기 전 기도가 잘 안 된다고 할 때)


(176) 언제 한 번 남학교에 가봐. 시험 삼아서 말이야. 온통 엉터리 같은 녀석들뿐일 테니. 그 자식들이 공부하는 이유는 오직 나중에 캐딜락을 살 수 있을 정도의 위치에 오르기 위해서야. 축구팀이 경기에서 지면 온갖 욕설이나 해대고, 온종일 여자나 술, 섹스같은 이야기만 지껄여대. 더럽기 짝이 없는 온갖 파벌을 만들어, 그놈들끼리 뭉쳐 다니지 않나. 농구팀은 자기들끼리 몰려다니고, 가톨릭 신자들은 자기들끼리 뭉치지. 똑똑하다는 것들은 자기들끼리 몰려다니고, 브리지 하는 놈들은 또 저희끼리 모이거든.


(204) 가면서 계속 울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계속 울었다. 지독하게 외롭고 우울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229) 나는 늘 넓은 호밀밭에서 꼬마들이 재미있게 놀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어. 어린애들만 수천 명이 있을 뿐 주위에 어른이라고는 나밖에 없는 거야. 그리고 난 아득한 절벽 옆에 서 있어. 내가 할 일은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으면, 재빨리 붙잡아주는 거야. 애들이란 앞뒤 생각 없이 마구 달리는 법이니까 말이야. 그럴 때 어딘가에서 내가 나타나서는 꼬마가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거지. 온종일 그 일만 하는 거야. 말하자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나 할까. 바보 같은 얘기라는 건 알고 있어. 하지만 정말 내가 되고 싶은 건 그거야. 바보 같겠지만 말이야.


호밀밭의 파수꾼
국내도서
저자 :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Jerome David Salinger) / 공경희역
출판 : 민음사 2001.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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