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려라, 모터싸이클(벤 마이켈슨)

가출 엿새 뒤, 아들이 ‘기적같이’ 들어왔다. 그날 부부는 가출 청소년을 모험가, 반항자로 부르는 까닭을 알 수 있었다. 조심스레 어디에서 먹고 잤느냐고 묻자 아들은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친구 집에서….” (확인 결과, 아들의 말은 모두 사실이었다) 가출 이유에 대해서는 “대답하기 싫어!” 소리를 반복하더니, 마지못해 “그냥 집이 싫었어. 갑갑해!”, “휴대폰을 일방적으로 끊은 것도 짜증났어.”라고 말했다.


“겨우 그것 때문에 가출한 거야?” 김씨는 어이가 없어서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이번 사건의 결말이 ‘개과천선을 다룬 사춘기 드라마 같다’는 생각을 했다. 또 자신이 아들의 경이로운 외적 성장(8개월 만에 키와 몸무게가 14cm, 10여kg 늘었다!)에만 관심을 쏟았지, 내적 성장통과 심리 변화에는 거의 신경을 쓰지 않았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김씨는 더 이상 노도와 같은 아들의 심사를 이해하려 노력하지 않았다.

 

"신체 변화에 ‘헉헉’. 공부 압박에 ‘학학’" 위기의 교육, 위기의 중학생 <시사인 2009. 2. 28. 제76호>


‘가출’에 대한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현실은 물론이고 현실을 반영한 소설에서도. 가출에 대해 가장 충격적인 이야기는 <내가 나인 것>의 히데카즈였다. 신나는 모험 속에서 부모님의 편견을 이겨내고 살인자를 잡아낸 히데카즈는 그야말로 영웅이었다. 그리고 <유진과 유진>, 최근작인 <스프링 벅> 속의 주인공이나 주인공 주변 친구들도 모두 다 가출을 통해 성숙한다. 교과서의 홍길동전을 통해 익숙해진 ‘출가’ 아니 ‘가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보지 않은 10대는 없을 정도로 ‘가출’은 매력적인 일탈이라 생각한다.


<달려라, 모터사이클>의 조쉬는 조금은 다른 이유로 가출을 감행한다. 새끼 곰이 딸린 어미 곰을 죽인 아버지의 만행 앞에서 새끼 곰을 살리고자 감행한 조시의 가출은 지역 보안관과 전국 방송 기자들이 합세하면서 전국적인 뉴스거리가 되었고 손에 땀을 쥘 만큼 긴박감과 흥미진진한 재미를 안겨 준다. 물론 실제 상황이라면 조쉬가 겪었을 고난과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었겠지만. 조심스럽게 걱정해 보건대, 아이들이 이 작품을 접할 때에도 조쉬가 겪을 스릴이나 긴장감보다 아무런 보호 장치 없는 세상과 자연이 안겨 주는 고난과 고통을 좀 더 느끼길 바랄 뿐이다. 이 작품이 자칫 가출로 유도할 수 있는 매력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물론 위에서 거론한 작품들도 마찬가지다.


조쉬가 비록 새끼 곰 때문에 일을 저지르기는 하지만 아버지의 폭력과 무관심 또한 크나큰 이유였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 아이들 이야기와 맥이 닿는다. 타이를 잃은 슬픔에 알콜로 고통을 잊으려 하는 샘은 상처받은 나약한 인간일 뿐이다. 하지만 그 고통이 고스란히 조쉬에게 전달되면서 아픔은 배가 된다. 우리가 사는 세상도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세상이 주는 힘겨움에 부모들은 상처받고, 그 상처는 고스란히 자녀들에게 전달된다. 최소한의 소통도 되지 않으면서 일방적으로 공부만을 강요하는 것은 또 다른 폭력이며, 무관심이라 생각한다. 


조쉬는 가출로 인해 극적으로 아버지와 화해하지만, 현실 속의 아이들에게 ‘가출’은 극단적인 선택일 뿐이다. 혹여 아이들이 가출을 선택했다면 아이들이 돌아올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것인지를 점검해 보자. 가출의 원인이 성적이든, 부모님의 무관심이든, 지나친 학대이든, 호르몬의 과잉분비이든 이유는 다양하고, 모두 그럴 수 있으리라 공감할 수 있다. 하지만 아이들이 집으로 다시 돌아오는 건 아이들이 그 동안 겪어 왔던, 믿어 의심치 않았던 사랑의 경험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조쉬가 샘을 결코 등질 수 없었던 건 바로 샘과 타이, 엄마와 함께 나눈 따뜻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다.<시사인>에서 지적한 것처럼 아이들의 외적 성장뿐 아니라, 내적 성장에 끊임없이 주목하고 소통하려 노력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아이들이 지금 당장 필요한 건 내일을 위한 희생이 아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아이들이 누려야 할 사랑과 행복이다. 작년 학업 성취도 평가에 대한 파행 뉴스가 연일 이어진다. 그 속에서 아이들은 무엇을 꿈꿀까? 아름다운 미래일까? 또는 뛰어난 성적? 혹은 가출?



<인상깊은 구절>

(344) “어미를 일부러 쏘려 했던 것은 아니야. 사고였어. 하지만 그것을 인정하지 않은 것은 잘못이었어.” 

조쉬는 눈물을 참으려고 눈을 마구 깜빡거리며 고개를 들었다. 입에서 말이 흘러나왔다. 

“왜 날 때렸어, 아빠? 왜 때렸어?”

샘은 조쉬를 똑바로 보았다. 

“얘야, 너무 화가 나서 벽 같은 걸 걷어찬 적이 있었니?”

조쉬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샘이 말을 이었다.

“벽이 뭘 잘못해서 그러는 것은 아니잖아. 난 그냥…….”

조쉬가 대들었다. 

“난 벽이 아니야, 아빠.”

샘은 침을 꿀꺽 삼겼다.

“물론 아니지. 난 그냥 세상에 화가 났고, 나 자신에 대해서도 그랬어. 그 화를 너한테 쏟아 부었고……. 그렇게 하는 것은 정말 지독한 짓이었어. 내가 바로 무키맨이었어.”

✎ 어른들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너무도 잘 알고 있기에 아버지의 고백이 정말 아름답게 느껴지는 장면이다. 어른들이여, 솔직해지자. 나약해지지는 말되, 아이들과 솔직하게 소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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