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프랑스 여행 4[9.11~9.12]
- 행복한 글쓰기/일상에서
- 2020. 3. 8.
¶ 여행 일곱 째날(9월 11일 수요일) 지베르니, 오베르, 베르사유 궁전, 루브르박물관
아침부터 일이 꼬였다.
여행 마지막 하루 전날이라 세탁기에 들어 있는 빨래를 해결하기 위해 새벽에 일어나 빨래를 돌렸다. 끝났다는 표시를 보고 전원을 껐는데 문이 열리지 않는다. 7시 40분까지 개선문으로 가려면 7시 전에는 출발해야 해 빨래를 그대로 두고 숙소 앞 벨리브 정류장을 찾았다. 탈만한 자전거가 한 대도 없었다. 얼른 오르세미술관 뒤편 벨리브 정류장으로 갔으나 여기에도 자전거가 몇 대 주차돼 있지만 탈 수 있는 자전거가 없었다. 세느강 둔치에도 자전거가 없었다. 그러는 사이 7시 10분이되었다. 출근 시간 대라는 걸 고려하지 못했다. 택시라도 잡아타고 싶었지만 파리는 택시정류장이 따로 있다고 한다.
얼른 ‘우버’ 앱을 깔고 가입을 한 뒤 목적지를 입력했다. 1분도 안돼 개인 자가용(우버 택시)이 도착했다. 택시에 타자마자 앱에 요금이 미리 안내되었고 등록한 카드에서 자동 결재된다는 안내와 기사의 신상과 만족도가 표시되었다. 10분 만에 개선문에 도착했다. 가격은 9유로 아마 기본요금인 듯했다. 편했다. 이래서 택시운전사들이 공유 택시 도입을 반대하나 보다. 파리 여행 내내 발이 돼 주었던 자전거여행의 단점이 겹치는 순간이다.
지금까지 이용했던 ‘유로자전거나라’ 투어를 이용하고 싶었지만, 여정을 고민하는 사이 마감이 돼 버렸다. 그래서 ‘인디고트래블’의 ‘착한 인상파, 베르사유 투어’를 예약했다. 인디고트래블은 수신기를 최대한 활용하는 게 인상적이었다. 라디오 방송을 하듯 음악과 여행지에 대한 소개, 관련 지식들을 차분히 소개해 주었다. 샹송에서 추억의 가요까지 여기까지 오기 전 분주했던 마음이 편안해졌다.
1시간 30분 정도 이동해 '지베르니'에 도착했다. 이곳은 클로드 모네가 44년을 보낸 곳으로 도로를 사이에 두고 꽃의 정원(집이 있는 쪽)과 도로 건너 개천이 흐르는 물의 정원으로 구성돼 있다. 모네의 집에는 모네와 부인, 그리고 두 아들과 후원자의 가족이 함께 살았다고 한다. 모네는 일본 판화인 '우기요'를 좋아해서 그가 생전에 가보지 못했던 동양식 정원을 상상해서 만든 장소라고 한다. 모네의 삶은 여유 있었던 것 같다. 살아생전 그림으로 인정받았고, 생활도 여유가 있었으며 심지어 복권까지 당첨이 되었다고 하니. 하지만 모네도 안타까운 사랑의 주인공이기도 한데 그가 사랑했던 첫 번째 부인 까미유의 모습을 자주 그리다 아내가 죽자 여자 모델을 그릴 때면 죽은 아내가 생각나 이목구비를 뭉개버렸다고 한다. 그 작품들이 오르세미술관에 전시돼 있기도 하다. 여기서 바게트로 간단히 점심을 해결했다.
1시간 30분 정도 이동해 도착한 곳은 '오베르 쉬르 우아즈'다. 줄여서 '오베르'라고 하는데 이곳은 고흐가 죽기 전 마지막 70일을 보낸 곳으로 달리는 차 안에서 고흐의 삶을 들어서인지 곳곳에 슬픔이 배어 있었다. 그런 분위기를 가이드 샘이 잘 만들어 주었다.
화방에서 일하다 맞지 않아 신학대를 다녔지만 목사가 되기 어려웠던 고흐는 동생 태호도르의 조언에 따라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고흐는 초기 밀레를 존경하며 자연주의 경향을 띤 작품을 많이 그렸다. 그러나 잘 팔리지 않아 동생의 조언에 따라 몽마르뜨로, 그리고 생활비가 싼 ‘아를’로 옮기며 작품활동을 한다.
고갱과 사이가 어긋난 뒤에는 생 레미의 정신병원에서 살다, 정신병 치료차 파리 근교 우베르에 정착한다. 고흐는 이곳에서 마음의 안정을 찾으며 그림에 몰두할 수 있었다. 그러나 더 이상 지원하기 어렵다는 동생 태호와 다투고 나서 자신이 사랑했던 밀밭에서 자살을 시도한다. 하지만 그마저도 뜻대로 되지 않아 피를 흘리며 여관으로 돌아와 고통과 싸우다 숨진다.
동생 태호에게 보낸 편지 속에 고흐의 마음의 삶의 태도가 잘 담겨 있다. 죽는 것마저도 뜻대로 안된다는 고흐. 그러나 동생 태호에게 보낸 편지에서 "죽음이란 별로 가는 과정이다. 지상에서의 이동 수단은 기차, 마차 같은 것들이 있지만 별로 가는 이동수단은 콜레라, 결핵 등이다. 갑작스럽게 죽는 것은 별에 빨리 가는 것이고, 자연사를 하는 것은 별까지 걸어서 가는 것과 같다"고 했단다. 고흐는 절망하다 죽은 게 아니라, 자신의 희망인 별로 가기위한 급행열차를 탄 것이라는 이야기는 가이드 선생님의 목소리와 어울려 고흐의 삶을 깊이 공감하게 했다.
고흐가 죽고 6개월 뒤 동생 테호도 병으로 죽는다. 원래 둘은 다른 곳에 묻혀 있었는데 고흐가 테오에게 보낸 편 중 한 구절인 "너와 나는 한 개의 영혼이지만 육체는 두 개다"라고 말한 것을 토대로 고흐의 팬들이 동생 테오를 같이 무덤에 묻히게 해 달라고 요청하면서 오베르 마을의 공동묘지에 형제가 사이좋게 묻혀 있다.
모네와 정반대로 살아생전 그림을 한 점밖에 팔지 못했을 정도로 인정받지 못했던 고흐, 하지만 그는 미술사에서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던 이전 시대에 달리 새로운 표현법을 시도한 선구자였다.
고흐의 작품과 작품의 배경을 찾아 돌아다니고, 숨을 거둔 여인숙에 들러 그의 영상까지 보고 나니 숙연해 졌다. 여행을 마치고 산하의 체험학습보고서를 보니 이날 여행에 대해 길게 메모해 두었다. 여행 잘 다녀왔다.
1시간 정도 이동해 절대권력의 상징인 베르사유 궁전에 도착했다. 고흐의 인상이 너무 강해서인지 베르사유 궁전의 거대하고 화려함이 다 부질없어 보였다. 그래도 언제 다시 오겠나 싶어 견문에 충실하려고 했다.
베르사유 궁전은 루이 14세가, 재무대신인 푸케가 루브르궁보다 더 큰 궁전을 지었다는 사실에 화가 나 그를 대역죄인으로 몰고, 귀족들의 기반인 파리를 떠나 이곳에 궁전을 짓고 귀족들과 함께 살며 자신에게 충성하도록 했다고 한다. 그래서 베르사유 궁 내부에는 방도 많고, 신하들의 초상화나 흉상이 엄청 많았다.
관람 시간이 2시간 정도 주어져서 1층의 역사박물관은 넘기고 바로 2층으로 갔다. 모든 방에는 하나같이 천장에 그리스 로마신화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고 여왕과 왕의 흉상이 많았다. 특히 '거울의 방'은 부귀가 넘쳤다. 당시 거울이 엄청 비쌌기에 이렇게 거울이 많고, 여러 거울에 비친 모습을 보여 부담스러웠다. 그 뒤로 루이 14세의 침실, 나폴레옹의 대관식이라는 엄청 큰 그림도 있었다. 너무 대단한 작품들이 많아 구경하는 게 피로해졌다. 바로 밖으로 나왔다.
가이드 샘은 정원이 넓어 다 볼 수 없으니 대운하만 보고 오라고 했다. 대운하까지 걸어가다 아이스크림 가게를 만났다. 단 것을 먹으니 정신이 차려졌다. 날씨도 좋아 베르사유 정원의 풍경이 더욱 아름답게 보였다. 5년 전 오스트리아의 쇤브룬궁도 꽤 넓었다. 그런데 거기는 관람할 수 있는 공간이 제한돼 있었고 정원도 여기보다는 적었던 것 같다. 베르사유 궁전의 규모가 새삼 실감난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차안에서 7일 동안의 파리 생활을 떠올려 보다, 충분히 감상하지 못한 ‘모나리자’가 떠올랐다. 마침 수요일은 야간개장이 있는 날이라, 루브르 박물관 어플리케이션을 설치해 예약을 했다(뮤지엄 패스가 있어 무료였다). 기대하고 갔지만 엄청나게 긴 줄에 떠밀려 인증사진조차 찍지 못했다. 아니 처음부터 사진 찍을 생각은 포기하고 눈에 담으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아쉬움만 더 컸다. 처음 루브르 박물관에 왔을 때 산하가 배가 아파 둘러보지 못했던 중동지역의 문화재들을 여유 있게 관람했다. 그리고 루브르의 상징이라는 피라미드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이렇게 파리 여행이 끝났다.
숙소로 오는 길에 마트에 들러 마지막 만찬을 먹었다. 사춘기 아들과 단둘이 간 여행, 싸우지 않기를 바란다는 아내의 격려가 있었지만 여행을 통해 산하의 장점을 발견하는 시간이었다. 또 마이스터고를 진학하려는 산하와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산하는 1시간 넘게 일기를 쓰고, 숙소를 정리하고, ‘에어프랑스’ 앱을 설치해 체크인을 했다.
¶ 여행 여덟 째날(9월 12일 목요일) 샤를드골 공항, 인천공항, 집
여행 마지막 날답게 집에서 가져온 음식, K마트, 주위 마트에서 산 음식 모두 떨어졌다. 여행 전에는 파리의 식당을 활용해 보자고 했지만 식사 시간 적응이 어려웠다. 밥 한 끼 먹는데 2시간이라니.. 당장 아들 입에서 집에서 먹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돌아오며 생각해 보니, 프랑스는 달팽이 요리도 유명하고, 바게뜨도 엄청 맛있다는데 우린 둘 다 먹을 생각도 못했다. 적어도 내 마음속엔 아내와 둘째를 두고 첫째와 온 여행이라 '공부'해야 한다는 생각이 좀 더 있었던 것 같다.
짐을 하나하나 챙기고, 쓰레기까지 분류해 배출하다보니 예상시간보다 조금 늦게 숙소를 나왔다. 드골 공항까지는 오페라역에서 후아씨 버스를 타기로 하여 30여 분 걸었다. 일주일 동안 눈에 익었던 세느강, 에펠탑, 루브르박물관 앞에서 마지막 기념사진을 찍었다. 오페라 역까지는 쉽게 갔다. 일주일 동안 이곳을 몇 번 지났으니. 그런데 후아씨 버스 승차권판매소까지는 쉽게 찾았지만 기계에 문제가 생겨 승차권을 구입하고 있었다. 버스가 와 일단 탔다. 다행히 기사 아저씨가 버스표도 팔고 검표까지 해 주었다.
1시간 공항으로 가는 길도 머리가 복잡했다. 화장품에 대한 텍스리펀을 받아야하는데 어디서 받아야 할까, 그렇게 고민하는 사이 2C구역까지 왔고 사람들이 내리기 시작했다. 역시 자는듯 보였던 산하는 우리가 내릴 곳이 2E라며 더 가야한다고 했다. 신기한 녀석. 공항에 도착해 텍스리펀 표지를 따라 걸어갔다. 기경험자들의 블로그를 보면 바코드를 스캔하면 금방 되는 것 같던데 에러가 생겨 결국 직원을 만났다. 뭐 순순히 도장을 찍어주었다.
비행기에 타자마자 파리 여행을 정리했다. 여행 초반에는 갤럭시북의 원노트에 메모할 여유가 있었지만 산하가 소감문을 길게 쓰기 시작하면서 정작 내가 정리할 시간이 없었다. 비행기 안에서 차분히 감상문을 정리했다.
8일간의 파리 여행이 나에게 남긴 것은 무엇일까?
아, 이건 뭔가 의미 부여의 순간이기도 하지만, 김영하의 “여행의 이유”를 읽으면서 여행 준비를 충분히 하지 못한 나에게 변명거리를 제공해 주었다. 남은 시간이 얼마 안돼 엄청난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다.
난 파리를 가보고 싶었다. 선망의 관점은 아니다. 억지로 해야하는 영어에 비해, 입시에서 좀더 자유로운 제2외국어로 접한 나라였기 때문이다. “라붐”을 보며 신선한 장면도 많았고, 그러한 기분을 엘자의 노래를 들으며 이어갔다, 대학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방황할 때에는 빠뜨리샤 까스 노래를 들으며 째즈와 락 사이에서 흐트러지기도 했다. 그 파리에 오다니. 술을 마음껏 먹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아쉽기는 했지만 좋았다.
여행의 목적이기도 한, 산하와 이야기하고 산하에 대한 믿음이 더 크게 생겼다. 나 혼자였다면 많이 버벅거렸을 파리 여행을, 산하가 잘 보완해 주었다. 오늘 공항에 내리고, 게이트로 이동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주변을 잘 살피고 있다 적절하게 의견을 제시하고 있었다. 어느덧 내가 믿고 산하의 의견을 따르고 있었다. 산하가 그런 장점을 더 살렸으면 좋겠다. 물론 자신이 그런 부분에 강하다는 것을 과신해 다른 사람을 무시하는 상황이 되지 않길 바라며.
파리가 아름다운 건,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다양하게 생활하기 때문인 것 같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살기에 상대방에 대해 관심 갖고 상대방에 더 주목하는 것 같다. 그렇다고 그게 간섭은 아닌.
두 사람의 가이드에게 우리나라 사람의 특성을 들었다. 누군가를 만났을 때 아는 척하지 않는다는. 즉 눈빛을 맞추지 않는다는. 어느덧 내 습관에도 사람을 보면서도 스마트폰에 먼저 눈길을 오랫동안 주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더 고착화하기 전에 고쳐야할 습관이다.
또 예술가, 특히 고흐. 이 분은 삶은 지금 우리의 모습이다. 버티기 위해 버티는. 하지만 고흐가 10년 동안 절망 속에 산 것이 아니라 남의 인정을 바라지 않고 꾸준히 보인 그 열정과 동생과 나눈 대화 속에서 어려운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전해줄 메시지가 많아 보인다.
파리 여행 코스의 결말은 예술로 귀결된다. 루브르박물관, 오르세미술관, 퐁피두센터, 인상파 여행, 몽마르뜨 투어. 100세 기나긴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 또 일상에서도 삶을 좀 더 풍요롭게 살기 위해 전시회나 공연 등에 좀 더 관심을 가져야겠다. 고흐가 동생 태호에게 말했다는 “태호야. 모든 것에 감탄해라. 사람은 감탄에 인색하다” 그렇게 감정적으로 풍부하게 살아가야겠다.
어차피 내 삶은 내가 만들어 가는 것이니까.
'행복한 글쓰기 > 일상에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수 사도 여행(2018년 7월) (0) | 2020.07.08 |
---|---|
내 고향 병영의 2020년 6월 (0) | 2020.06.28 |
2019 프랑스 파리 여행 3[9.9~9.10] (0) | 2020.03.08 |
2019 프랑스 여행 2[9.7~9.8] (0) | 2020.03.08 |
2019 프랑스 파리 여행 1[9.5~9.6] (0) | 2020.03.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