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프랑스 파리 여행 1[9.5~9.6]

내년(2020) 러시아 가족 여행이 예정돼 있어 해외여행을 떠날 상황은 아니었다. 하지만 시교육청으로 파견 나와 방학도 없이 일하면서, 학기 중 좋은 계절에 여행을 다녀올 수 있는 기회를 버리기도 아쉬웠다. 몸만 괜찮았다면 남한강 종주를 끝으로 4대강 자전거 종주를 함께 마무리했을 중3 아들과 아쉬움을 달래는 여행을 떠난다는 명분으로 '여행은 시작됐다.' 

 

여행지로는 '파리'를 제일 먼저 떠올렸다. 30년 전 일이지만 고등학교에서 프랑스어를 배우고 영화나 노래로 프랑스를 만나면서(소피 마르소!) 호감도 생겼다. 게다가 나는 파리의 택시 운전사 레 미제라블을 보면서 제국주의로서의 프랑스보다는 민중의 혁명을 완성한 나라라는 이미지도 더해져, 유럽을 여행지로 프랑스를 꼽게 되었다.

한편 영국을 다녀온 후 러시아 문학에 꽂혀 있는 아내에게 프랑스는 관심사가 아닌 것도 마음의 부담을 덜어주었다. 둘이 싸우지나 않으면 다행이라는 아내의 응원 아닌 응원을 들으며 프랑스로, 그리고 한 도시만 집중해 여유 있게 여행하자는 생각에 '파리'로 여행지를 정했다.

 

일단 6월 비행기표부터 예약하고, 1시간 출퇴근길을 채워 주었던 팟캐스트 '과학하고 앉아 있네'도 끊고 ‘시원스쿨의 프랑스어 강좌를 들었다. 여정은 담양도서관에서 파리 여행 관련 책도 빌려 읽고, 틈나는 대로 블로그를 돌아 다니며 대략 정리했다. 아들에게도 가보고 싶은 곳을 정리해 보라고 기본적인 자료를 보냈는데 우리 둘 다 바빴다.

그러다 마침 독서 모임에서 김영하의 여행의 이유를 읽으며 마음을 비우면 더 많은 것을 채울 수도 있겠다, 굳이 파리의 진면목을(공감한다면) 다른 사람들의 눈과 입을 통해서도 천천히 채워 갈 수 있겠다 싶은 요령도 생겼다. 마음이 편해졌다.

 

어느덧 여행의 기대감이나 설렘이, 해치워야 할 과제로 다가왔다. 그러다 우리 여행과 상황이 비슷해 보이는 "(아빠와 함께, 조금 더 지적인 파리 여행) 파리는 언제나 옳다"를 읽으며 큰 일정을 그렸다. 또 여유 있게 파리만 집중하려 했는데, 여행 경험이 많은 짝꿍 샘이 현지 프로그램을 활용하면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다는 조언을 해 주어, '착한 인상파들 투어 몽생미셸 투어’, ‘루브르 박물관 투어’, ‘오르세 미술관 투어 등을 예약하고 일정을 정리하니 제법 묵직하게 일정이 채워졌다.

 

숙소는 에어비앤비에서 중심지에 가까운 곳으로 살펴보다 에펠탑 근처에 가격이 적당한 숙소를 예약했다. 번역기를 사용해 영어로 예약했는데, 자기 집은 호스텔이 아니란 분노가 섞인 메시지와 함께 거부를 당했다. 마침 4층에 공간이 다소 좁지만 루브르 박물관 근처에 있는 숙소를 발견하고 예약을 했다. 자전거 대여점도 가깝고 세탁기도 있어 짐도 줄이고 이동도 쉬울 것 같았다. 그 사이 프랑스어 강좌 1달이 끝나 재신청을 했다.

하지만 여행날이 가까워 오자 발목을 잡는 일들이 쌓였다. 일정이 당겨진 해냄출판사 교과서 연계 도서 집필 사업, 미루다가 데드라인이 결정된 혁신학교 3기 정책 이해 자료집 제작, 또 ‘상캐 모임의 과제까지 겹쳤다. 하지만 비극적인 삶이라, 여행은 더 환상적일 거라는 밑도 끝도 없는 낭만주의에 사로잡혀 여행은 시작되었다. 

 

 여행 첫째 날(9 5일 목요일)

9월 해외여행은 우리 직업에서는 어색한 일이다. 그래서 새벽 2시 인천공항으로 떠나는 버스를 기다릴 때까지도 여행의 설렘보다는 긴장감이 더 했다. 게다가 새벽 6시 잠결에 도착한 인천공항은 왜 그렇게 번개가 수시로 치는지, ‘전설의 고향 절정 상황 같았다. 그래도 첫걸음이 얽히지 않은 이유는 일찍 도착해 환전, 뮤지엄 패스 수령, 로밍 서비스 신청에 여유가 있었다. 지하층에서 아침 식사까지 여유 있게 하고 서점에 둘러보기도 하며 비행기를 탔다.

 

여행의 부담을 덜어주었던 "여행의 이유"가 보인다


한 배를 탔다는 말이 비행기에서는 딱히 들어맞지 않는 것 같았다. 자리 하나하나에 여러 가지 형편과 요령이 담겨 있었다. 스마트폰 앱으로 체크인하면서 보니 추가 요금에 따라 자리가 다르고 편의 사항도 달라지고 있었다. 아~ 공연장도 위치마다 가격이 다르구나. 가장 인간적일 것 같은 예술이 가장 자본적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럽으로 떠나는 비행기의 특별한 경험은 5년 전 ‘프랑크푸르트 행’에서 오롯이 느꼈다. 그때는 오후 3시 비행이었는데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하는 12시간 내내 거의 오후 3시의 태양을 보았다. 시간이 정지된, 자연의 흐름을 거스르는 것 같은 특별한 경험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통로 자리이고, 승객들도 블라인드를 일찍 내려 비행기는 금방 한밤중이었다. 그래도 하루 24시간을 36시간으로 쓸 수 있는 기회 역시 특별해 아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여러 번 추천했던 박웅현 작가의 여덟 단어를 읽었다. 왜 지금까지 이 책을 읽어볼 생각을 못했을까, 8단어 중 4단어까지 공감하며 재미있게 읽었다.

 

다음 첫 사진은 나에게 큰 의미가 있다. 2월 초 발병으로 마시지 못했던 술을 여행이라는 핑계로 다시 접하는 순간이니! 시원스쿨 프랑스어 선생님이 꼭 마셔보라고 추천하기도 했다. 와인병이 참 앙증맞다. 책 읽다, 영화보다, 밥먹다, 와인 마시다 하다 보니 11시간도 그리 길지 않았다. 곧 파리까지 날아왔다.

 

프랑스어 강의를 들을 때 추천했던 포도주다. 살짝 기분을 띄워주기에 충분했다.

 

비행기는 예정 시각보다 30분 일찍 샤를 드골 공항에 도착했다. 사람들에 떠밀려 입국 수속장까지 왔다. 입국 수속 전, 아들과 함께 들었던 여행 영어를 떠올리고 있었는데, 여권 스캔 후 얼굴을 한 번 보더니 통과시켜 주었다. 그럴 의도는 아니었겠지만 환대 받는 기분이 들었다.

 

여행 기간 내내 느꼈지만 나와 아들의 여행은 나름 잘 맞았다.

나는 낯선 환경에 잘 긴장하며 곧잘 머리에 버퍼링이 걸릴 때가 많다. 시야도 좁다. 그래서 실수해도 부담되지 않는 패키지여행이나 홀로 여행, 아니면 미리 답사라도 다녀와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라는 걸 이번 여행에서도 다시 확인했다. 반대로 평소에 진지하지 않다고 여러 번 주의를 주었던 아들은 자칭 융통성을 강점으로 꼽더니,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후아씨 버스 표도 잘 구입하고 탈 곳도 쉽게 찾았다. 덕분에 오페라 역에서 내려 숙소까지 오고, Velib라는 자전거 대여 시스템까지 잘 이용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라면 아빠로서 내가 뭘 이끌어야 한다는 부담감이나 책임감 때문에 아이가 나에게 미루고 있어도 서운했을 거고, 알은체를 하면 자존심이 상했을 수도 있었겠지만 낯선 환경이라 아들의 장점을 받아들이고 인정하게 된 것 같다. 물론 '여행'이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의 양보심도 있고.

 

RoissyBus는 버스 두 대가 연결된 긴 버스였다. 그런데도 거침없는 속도를 자랑했다

후아씨 버스는 객차 두 칸을 연결한 거대한 버스였다. 샤를 드골 공항에 중간 터미널도 있었는데 그 좁은 곳을 잘 빠져나와 시내 오페라 역까지 '금방' 도착했다. 운전이 예술인 순간이었다. 오페라 역에 도착했다. 구글 지도를 따라 20여 분 숙소를 찾아 걸어갔다. 루브르 박물관과 튈르리 공원을 지나며 에펠탑이 눈에 들어왔다. 루브르 박물관의 랜드마크인 피라미드도 보였다. 파리라는 게 실감 났다.

 

카루젤 개선문 안으로 루브르 박물관의 랜드마크 유리피라미드가 보인다
파리에 있는 내내 바라보고 돌아다녔던 풍경

 

에어비앤비로 예약한 숙소는 쉽게 찾았지만 들어가기가 쉽지 않았다. 결국 옆집(거의 같은 건물) 골동품 가게 주인아저씨의 도움으로 두 번의 비번을 뚫고 들어갈 수 있었다. 회오리처럼 생긴 좁은 계단을 캐리어를 어깨에 지고 무려 5층까지 오르자 숙소의 문이 보였다. 프랑스나 독일의 4층은 우리의 5층인데 '0'에 대한 개념 차이일까. 문을 열고 방을 보니, 우리집 서재만 했다. 참~. 

 

이 좁은 회오리 계단을 하루에도 대여섯 번은 오르내렸다. 그래도 집이라고 내려가는 길은 가볍게, 올라오는 길은 편하게.

 

파리의 첫 식사는 구글로 검색한 모노프리 상점(수퍼 체인)에서 쇠고기와 샐러드, 과일, 햇반, 콜라, 포도주로 기분을 냈다. 저녁을 먹고도 날이 훤해, 산책 겸 숙소 주변 velib 스테이션에서 자전거를 빌려 에펠탑 방향으로 달렸다. 둔치 술집에는 이른 저녁부터 사람들이 많았다. 그 사이를 우리처럼 자전거를 타는 사람, 조깅을 하는 사람, 개인 운동을 하는 사람들로 시끌벅적했다. 시골에 살아서인지 그것도 새로웠다. 우리도 달렸다. 그런데 얼마 되지 않아 에펠탑이 나타났다. 실은 숙소에서 에펠탑까지 2km 남짓이었다. 에펠탑이 보이는 곳 앞에서 사진을 찍는 순간에 철탑은 주황색 탑으로 물들었다. 에펠탑 주변과 건너편 사이요 궁으로 가는 다리까지 기념품을 사는 상인들이 많았다. 

반짝~반짝~ 싸요.”라고 말하는데 신기했다. 그만큼 우리나라 사람들이 꽤 방문하나 보다.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하루 절반을 보낸 긴 하루였다. 씻고 일기를 쓰고 소파를 밀어 침대를 만들었다. 좁은 침대에 오랜만에 아들과 단 둘이 누웠다. 한없이 사랑스러운 내 자식인데 우린 너무 독립적이었다. 시내 중심가라 오히려 조용한 첫날밤이었다. 

 

여행 둘째 날(9월 6일 금요일)

나이를 먹으니 내 수면 시간은 언제 자더라도 일단 5시간이 지나면 깬다. 그래서 새벽 530분에 눈을 떴다. 어제 산하가 노트북으로 일기를 쓰고 있어 못 쓴 일기를 노트북에 기록했다. 7시쯤라면과 햇반, 김치로 아침을 먹고 루브르 투어 예약 시간에 맞춰 카루젤 개선문 앞으로 갔다. 우리처럼 '유로 자전거 나라' 투어를 신청한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약 25명).

 

루브르 박물관의 상징은 피라미드다. 외부뿐만 아니라 그 아래 내부에도 피라미드가 위아래로 맞닿아 있다.

 

루브르 박물관의 규모는 엄청났다. 현재 소장한 유물의 10%만 전시하고 있는 데에도1분씩만 보아도 일주일이 걸린다고 한다. 루브르 박물관은 1800년대 후반까지의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루브르 박물관에서 꼭 보고 싶은 것은 모나리자. 나처럼 루브르를 찾는 사람들의 70%가 모나리자를 보기 위해서 온다고 했다. 그러나 실제로 모나리자를 볼 수 있는 것은 20초 남짓, 인증숏 찍을 시간도 부족하다고 했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모나리자에 가려 지나치는 작품을 소개해 주었다. 그래도 관심은 모나리자에 있을 수밖에 없다. 안내도 그렇게 돼 있다.

 

1층 입구부터 '모나리자'의 위치를 알려준다.

빙빙 돌아가게 만든 동선을 따라가면서 모나리자와 눈을 맞추려 했지만 거리가 멀었다. 그러다 갑작스럽게 감상 라인이 풀렸다. 그러다 보니 3030여 명의 사람들이 포토라인에 함께 있어 사진 찍느라, 정작 모나리자와 눈을 제대로 마주치지 못했다. 정말 인증숏만 찍은 꼴이 됐다. 가이드 샘은 아쉬움을 모나리자가 어떻게 그려지게 됐는지, 모나리자에 대한 세간 사람들의 궁금함, 모나리자가 유명해지게 된 스토리로 채워주려 했다.

 

모나리자와 우리의 좁힐 수 없는 거리다. 때로는 직관보다 도록이 더 명확할 수 있다

 

헛헛한 마음으로 모나리자를 두고 나오는데 산하가 배가 아프다고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했다. 직원에게 프랑스어로 간단하게 물었는데 문제는 답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는 것. 마침 가이드 샘이 보더니 화장실 위치와 다음 만날 장소를 알려주었다. 화장실 앞에서 산하를 기다리며 이어폰에 주의를 기울였다. 가이드 샘 목소리가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산하를 만나 다음 장소로 이동하면서 가이드 샘의 목소리가 점점 크게 들리는 게 느껴졌다. 그런데 더 가까이 다가가기 어려웠다. 헤매다 가이드 샘을 만났다. 반갑기도 했지만 이어폰을 통해 우리 가족을 찾기 위해 분주하게 돌아다녔던 가이드 샘 목소리 때문에 미안한 마음이 컸다. 마침 산하가 손자같이 보이셨는지 한국인 노부부께서 약을 챙겨 산하에게 주셨다. 상비약을 사놓고도 숙소에 두고 오다니. 두 분 덕분에 산하도 금방 회복한 것 같다.

경황없이 함무라비 법전, 수메르 신화의 주인공 길가메시, 승리의 여신 니케, 밀로의 비너스상을 만났다. 책에서만 봤던 작품들을 실제 마주했는데 실감이 나지 않았다.

 

비너스상도 뒷모습을 보니 힘들어 보인다.

 

가이드 샘은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된 작품들에 일정한 상징이 있다는 설명을 해주었다. 특히 성화의 경우 예수님과 마리아, 3대 천사, 요한 등을 상징하는 코드들을 배운 게 인상적이었다. 산하는 다빈치의 유작이었던 세례자 요한을 설명을 듣다가 고개를 돌리며 갑자기 마주친 목 잘린 예언자 요한이 색채의 대비가 선명해 오래 기억이 남는다고 했다나는 들라 크루와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이 역시 인상적이었다. 구도 등 예술적인 형식도 뛰어났지만 그 작품만이 프랑스적이고 나머지는 있어야 할 곳이 다른, 약탈의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5년 전 베를린 박물관 섬, 페르가몬 박물관에서 바빌로니아 신전을 만났을 때의 충격이..

 

작품을 보며 영화 '레 미제라블'을 떠올렸다.

 

오후에는 시테섬을 들러 '퐁피두 센터'로 방향을 정했다.

루브르 박물관에서 노트르담 성당까지는 자전거도로가 따로 있었다. 센강을 따라 자전거 타는 기분은 매번 상쾌했다. 날씨도 좋고. 2km 정도 이동하니 노트르담 성당이 눈에 띄었다. 성당의 정면 부분에는 그을림이 약간 있었지만 뒷면은 구조물을 세워 공사를 해야 할 만큼 피해가 컸다. 그래도 남대문 무너지듯 한 것은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당연히 출입도 할 수 없어, 건너편에서 사진에 담았다. 여행이 마칠 즈음 바토 무슈를 타고 센강 야경을 유람했는데 노트르담 성장 주변이 어두컴컴했을 때는 마음이 아팠다. 3월 파리를 다녀온 우리 팀 장학사님이 노트르담 성당을 보고 나서 설명해 주었던 웅장함이 한순간에 사그라든 아쉬움이 컸기 때문이다.

 

일부러 측면을 찍었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서 있는 노트르담 성당이 서글퍼 보인다.

건너편에 벨리브 자전거를 반납하고 '퐁뇌프 다리'까지 걸었다. 고등학교 프랑스어 시간에 선생님이 퐁뇌프의 연인들영화를 소개하며 ‘9번째 다리라고 말씀하셨는데 이번에 가면서 보니 당시 대부분 나무다리였는데 돌로 만들었기에 새로 만든 다리(neuf는 숫자 '9'와 '새로운' 이라는 동음이의어’)라는 뜻으로 그렇게 지었다고 한다.  

 

스토리는 채워졌지만 막상 이곳에서 아들과 추억할 거리가 없었다.

그래서 바로 생트 샤펠 성당으로 이동했다. 이곳은 스테인드글라스가 유명한 성당이다. 뮤지엄패스 줄을 따라 계단을 오르니 2층 예배당 4면의 스테인드글라스로 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볼 것이 충분하지 않았던 중세 시절, 채광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연출되었을 신비로운 분위기가 '빛'과 동일시된 신성스러움을 더 했으리라.

 

스테인드글라스의 신비로움은 충남 보령의 '갈매못 성당'에서 더 진하게 느꼈다.

 

생트 샤펠 성당 바로 옆에는 법원 건물이 모여 있고, 총기로 무장한 군인들이 지키고 있었다. 산하는. 그걸 더 신기해했다.. 사실 나도 그렇다. 흔한 장면은 아니니까.

 

파리시청사 앞. 일관성 있다.

 

근처 벨리브 대여소에서 자전거를 시청사를 지나 퐁피두 센터로 이동했다. 오전에 가이드 샘은 프랑스의 미술은 르네상스 시대까지는 루브르박물관에, 20세기 전까지는 오르세미술관에, 20세기 이후 작품은 퐁피두센터에 전시되었다고 안내해 주었다. ‘박물관, 미술관, 센터사이의 차이도 느낌이 온다. 퐁피두 센터는 큰 파이프라인이 외관에 그대로 노출돼 있어 찾기 쉬웠다. 그러나 외관에 비해 내부 동선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1층 찻집에서 '아메리카노'까지 주문해 가며 관람 동선을 다시 파악했다.

 

우리 지역 미술관보다 타지역으로 여행갈 때 미술관을 더 많이 본다. 고쳐야지ㅠ.ㅠ

 

뮤지엄패스로 상설 갤러리까지 관람할 수 있었으나 특별전과 전망대도 보고 싶어 표를 구입했다.

구조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5층까지 올라가서 갤러리1을 보고 4층으로 내려와 갤러리2를 감상한 뒤, 다시 6층으로 올라가 특별전과 전망대를 감상하는 구조였다. 갤러리 1에는 피카스, 칸딘스키 등 근대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돼 있었다. 방별로 비슷한 경향이나 한 작가의 작품이 전시돼 있었다. 음성 가이드도 없고, 설명도 거의 적혀 있지 않아, 한 작품씩 눈에 띄는 작품들 중심으로 감상했다. 막연한 경향성만 느껴졌는데, 여행 다녀와서 자료들을 살펴보니 지나쳤던 작품 중에 설명을 들으며 새롭게 떠오르는 작품도 적지 않았다. 아는 만큼 보인다. 

 

앤디 워홀의 '열 명의 리즈', 매체의 속성상 모든 것이 원본이라고 할 수 있는 다양한 이미지가 인상적이다.

 

4층 갤러리 2는 실험적이고 파격적인 미술 작품이 많았다. 사람의 몸이나 성을 소재로 한 사진과 영상, 방 단위의 설치 미술로 채워졌는데 의도를 파악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6층 특별관의 동물을 토템으로 한 다양한 예술 작품들이 눈에 잘 들어왔다. 중학생 서너 명이 모여 작품을 스케치하고 이야기 나누는 장면도 인상적이었고. 전망대에서는 파리 시내가 한눈에 들어왔다. 시원했다. 하늘빛도 좋고, 급할 것도 없고.

 

인증샷으로 여러 사진을 찍었는데, 이 장면이 가장 좋다. 범상치 않은 하늘, 아름다운 파리 전경, 풍경을 감상하는 아들, 아들과 같은 풍경을 보고 있어서 하루를 마감하기 좋은 장면이다.

 

고대와 중세를 거쳐 근대까지 한달음에 달려왔더니 피곤했다. 숙소로 오는 길에 배탈 난 아들이 좋아하는 삼겹살을 '오페라 가르니에' 인근 K마트(한국 식재료 전문 마트)에서 사 와 상추쌈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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