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신경숙)
- 행복한 책읽기/문학
- 2013. 7. 31.
청소년 문학 읽기 모임에서 추천한 책이라 청소년 소설인줄 알았다. 그러다 소설인줄 알고 읽었는데 수필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손바닥 ‘장’자를 쓰는 장편소설들이 모였는데 짧은 소설답게 여운이 긴 이야기,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았다. 또 26편의 이야기 중에서 맥락이 연결돼 보이는 이야기도 있었다. 모두 독립적인 이야기라 하더라도 그렇게 세상 모든 게 연관돼 있고 이 모든 게 다 삶의 모습이겠다.
(23) 난 다음 날 세 개의 접시를 조용히 집 안으로 들여놨어. 그들에겐 그들의 세계가 있었을 거야. 이 겨울을 나는 방법이 그들 나름대로 있었을 거야. 그들의 세계에 내가 개입하면서 생긴 이 싸움을 그치게 하는 길은 내놓았던 세 개의 접시를 들여놓는 일밖에는 없더군.
그런데 달아, 왜 이렇게 막막한 거지?
*겨울나기 중에서.
✍ 이 소설의 앞 이야기, 나중에 고양이 아빠 이야기도 함께 떠오른다. 인위적인 건 문화고 무위적인 건 자연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31) 그림을 그리며 살면 행복할 것 같다고 했지? 힘이 들면 고흐의 삶에서 우러나온 말들을 의지해보렴. 네가 미래에 어떤 그림을 그리게 될지는 아직 모르지만, 네가 고통을 받아들이며 최선을 다한 것들은 저절로 너의 행복을 넘어서 타인에게도 선하고 쓸모 있는 것이 될 거야. 그걸 믿고 앞으로 나아가기를 바란다. 미래에 네가 그리는 그림이 너의 행복을 넘어서 타인에게도 선하게, 쓸모 있는 것이 되기를 바란다.
*하느님의 구두 중에서.
✍ 나는 어떤 일을 할 때 가장 행복할까. ‘리차드 파인만’의 책을 읽었는데 자신이 공부하는 물리학과 가르치는 일을 즐기면서 행복하게 하고 있었다. 힘들 때 나는 어떤 책을 읽으며 위로를 받고 있지? 또 고통스러워하며 최선을 다한 일들이 나의 행복을 넘어 타인에게도 선하고 쓸모 있게 연결되고 있을까 떠올리며 읽었다.
(62) 파르르하던 할머니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자기 체중보다 더 무거운, 딸이 좋아한다는 나비장을 베보자기에 싸서 지하철에 싣고 당산역의 딸네로 가는 노파가 할머니의 손을 가만 잡았다. 할머니가 노파의 손 위에 또다른 손을 얹어놓았다. 어느덧 두 노파는 서로를 의지해 끄덕끄덕 졸고 있다. 아기를 안고 있는 여자가 옷 속에서 젖을 꺼내 칭얼대는 아이에게 물리며 두 노인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지하철이 당산역을 지나쳐갔다.
*풍경 중에서
✍ “엄마를 부탁해”가 떠오른다. 어떻게든 살아진다는 것은 지나치게 낙관적인 것일까 아니면 긍정적인 사고일까. 두 노인을 바라보는 있는 아기를 안고 있는 여자도 아마 두 노인의 삶을 따라가겠지. 당산역 도착할 때 좀 깨워주지.
(135) 그때였다. 여태 묵묵히 그들의 얘기를 듣고 있던 Y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몸을 의자 뒤로 젖혔다.
-자네들 얘기 듣다가 생각한 건데 말야, 나는 담배를 대체 왜 끊은 거지? 난 의사가 끊으라고 한 적도 없고 폐도 건강하고 내년에 미국에 갈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대체 난 왜 끊은 거야? 자네들은 혹시 내가 담배를 왜 끊었는지 아나?
한바탕 담배 얘기로 소란스럽던 남자들 사이에 돌연 침묵이 흘렀다. K가 맥주컵을 들었고 P가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어내렸고 B가 팔로 턱을 괬다. 셔터를 누를 순간을 기다리던 나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Y가 담배를 왜 끊었는지 아는 사람?
✍ Y가 담배를 끊은 이유가 상당히 썰렁한 이야기였나 보다. 그래서 사진의 주인공이 돼야할 K가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맥주컵을 든 것인가? 정말 Y가 담배를 왜 끊었는지 아는 사람?
(160) 한 외국인 여자가 그들 곁을 지나다가 비명인지 감탄인지 모를 소리를 꽥 지르더래. 시끄러워 그러나? 싶어 미안한 마음에 소리를 멈췄더니 외국이 여자가 뭐에 홀린 듯한 얼굴로 제발 계속해달라고 사정을 하더라는군. 원더풀, 원더풀, 해가면서. 그래서 초원에서의,
-안~ 주면 가나봐라~
와,
-그~ 칸다고 주나봐라~
는 계속해서 멀리멀리 퍼지고 퍼졌대. 멈출 수가 없었대. (중략) 다시 시작하고 다시 시작하기를 끝없이 반복했다는군. 그사이에 초원의 풀꽃들이 입을 다물고, 먼 길을 떠났던 말들이 돌아오고, 해가 저물고, 초원에 살던 몽골 소년은 밥 먹으러 집으로 불려들어가고, 달이 떠오르고 있었대.
*안~ 주면 가나봐라~ 그~ 칸다고 주나봐라~ 중에서
✍ 상황맥락이 중첩돼 있다. 말수 없으며 믿음직한 K의 농담에, 젊고 예쁜 과부와 스님의 시주를 둘러싼 대화라는 것도 중의적이고, 그렇기 때문에 몽골 대초원에서 술에 취해 주문의 외듯 노래를 부르며, 그런 상황이기에 외국인 역시 크게 감동받은 것 같고. 여기에 쓰기는 그렇지만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끝은 창대한 일이 돼 버린 것 같다.
(204) 할머니1: 야야! 근데 예수가 죽었다 카대.
할머니2: 와?
할머니1: 못에 찔리 죽었다 카네.
Y의 귀가 번적 뜨였다. 예수? 서기 33년에 죽은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아니 그가 죽은 줄을 이제 알았나?
할머니3: 낸 그리될 줄 알았고마. 머리를 그리 산발하고 허구헌 날 맨발 벗고 길거리를 그리 싸돌아댕기싸니 못에 안 찔리고 배기겠나.
엉? Y는 자신도 모르게 지금 자신이 치과의 진료의자 위에 누워 드릴 소리를 들으며 어금니를 빼고 있는 중이라는 걸 까마득히 잊어버렸다.
할머니4: 근데 예수가 누구꼬?
잠시 잠잠했다.
할머니5: 글쎄…… 모르긴 해도 우리 며늘애가 자꼬 아부지, 아부지, 해쌌는 거 보이 우리 사돈영감 아닌가 싶네.
Y는 더는 참지 못하고 진료의자 위에서 벌떡 일어나 배를 싸잡고 웃음을 터뜨렸다. Y가 몸을 일으키며 휘저은 손가락에 치과의사가 쓰고 있던 마스크가 훌렁 벗겨졌다. 마스크에 가려져 있던 의사도 웃느라 입이 귀밑까지 올라가 있었다.
*사랑스러운 할머니들 중에서
✍ 마지막 이야기 읽으면서 크게 웃었다. 큰 맘 먹고 온갖 부담을 가지며 어금니를 빼고 있는 상황, 마치 자신을 불결한 사람인양 마스크로 얼굴이 가리워진 치과의사의 모습도 부담스러웠는데 할머니들의 삶에 크게 웃게 되었다. 반전의 연속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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