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처럼 단단하게(옌롄커)



물처럼 단단하게

저자
옌롄커 지음
출판사
자음과모음(이룸) | 2013-02-15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루쉰 문학상, 라오서 문학상 수상작가 옌롄커 대표 장편소설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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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651쪽에 달하는 제법 긴 이야기이다.
"자음과 모음"에서 출간한 책들 중 청소년소설만 주로 봐 온 까닭에 이 책 "물처럼 단단하게"도 그런 느낌으로 펼쳤다. 한국 독자에 대한 작가의 서문을 읽으면서, 이 책이 청소년문학이 아니며, 중국에서 오롯이 발간할 수 없는 상당히 문제작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책을 펼치고 여러 쪽 지나지 않아 느꼈다. 이 책 상당히 문제작이란 걸.

이 책은 중국의 1960년대 문화혁명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문화혁명기가 중국의 역사상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는 잘 모른다. 다만 몇 가지 자료를 통해 이때 많은 지식인들이 곤란을 겪었으며 전통문화와 큰 단절이 일어난 역사의 흐름을 거슬린 사건 정도로만 기억된다. 그러면서도 차오원쉬웬의 "빨간기와"나 "사춘기" 같은 작품에서 접한 문화혁명이 당사자들, 특히 도시 지식인청년(지청)들은 삶의 터전에서 떠나 농촌에서 강제로 생활해야하는 불편함은 있겠지만 농촌 청소년들에게는 문화적 자극을 주고 새로운 세상에 눈뜨게 해준 성장의 시작이 되기도 했다는 사건 정도로만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은 시골 청소년의 성장 이런 것보다는 문화혁명을 통해 무산계급의 사회주의 사회를 실현하려는 젊은 제대 군인 '가오아이쥔'과 그와 뜻을 같이한 '샤홍메이'의 혁명과 사랑을 통해 문화혁명이 정치적 혁명이라기보다는 정치 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수단이었음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이야기는 총 651쪽에 달하는 긴 이야기이지만 줄거리는 가오아이쥔이 어떻게 혁명을 시작해서 반혁명 분자로 공개처형 당했는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이야기가 길어진 이유는 예전 중국 소설들이 그렇듯 위인, 여기서는 마오쩌둥의 어록을 끌어다 생각을 표현하고, 한시에, 경극까지 변용해서 활용하고, 묘사까지 꼼꼼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당시 상황이 더 실감난다.

이 책이 문제작인 이유는 아직 사회주의의 바람이 꽤 남아 있는 중국에서 이처럼 성행위를 강하게 묘사해도 괜찮은지, 또 성 묘사가 단순한 남녀상열지사가 아닌 문화대혁명이라는 사회주의 혁명 과정에서 혁명의 중요한 에너지로 제시되며 어떤 때에는 혁명보다 더 중요한 목적으로 제시돼도 괜찮은지, 무엇보다 문화대혁명기의 혁명이 무산계급의 사회주의 실현보다는 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과정이며, 그것이 합리적으로 진행되었다기보다는 비열한 방법으로 진행되었음을, 문화혁명의 승자가 권력을 잡고 있는 상황에서 비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법 긴 이야기를 읽고 나면 주인공의 죽음으로 인한 여운보다 문화혁명의 충격이 어리둥절한 정도로 남는다. 

1. 상벌주의와 환경 조성
혁명가에게 혁명의 시작은 자발적이었을 것이다. 그러면 자발적으로 혁명에 참여하지 못한 대다수의 민중의 혁명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청강대대에 나타난 상벌점 제도 및 청강대대 혁명의 시작 역시 상벌점이 중요 동기가 된다는 점에서 이것으로 혁명을 이야기하기에는 개운치 않다. 어쩜 혁명은 상벌주의가 통용되게 하는 환경 조성을 위해 시급히 마련된 강제적인 환경 조성이라는 생각도 든다. 혁명은 사회 변화의 대안이 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상벌점제도 행동변화의 대안이 되기 어렵겠다.

2. 혁명의 불완전함
‘가오아이쥔’과 ‘샤홍메이’는 탁월한 혁명성에도 불구하고 결국 공개처형 당한다. 그런데 이들이 처형당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들의 혁명성과가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만난 성 최고자의 비밀스러운 사진을 본의 아니게 분실한 데에서 시작된다. 책에서도 여러 번 문화대혁명의 추구가 무산계급의 독재정권이라고 이야기하던데, 정작 주인공들이 독재정권의 피해자가 된다. 비단 이들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사람을 위한 사회주의 사회건설이라는 혁명과정에서 죽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혁명의 모순적 특성을 잘 나타낸다. 완벽한 혁명이 있을까? 현실에서 찾는다면, 사회민주주의에 눈이 갈 수밖에 없다. 물론 그 바탕은 똘레랑스다. 

3. 혁명과 사랑
이 책에서 혁명만큼 많이 등장하는 게 사랑이다. 혁명애가 사랑의 바탕이고, 사랑을 통해 혁명이 더 굳건해 진다. 그러고 보니 갑자기 뜨거워지는 것도, 맹목적인 것도 혁명과 사랑의 공통점인 것 같다. ‘남성’의 힘을 잃을 때 가오아이쥔과 혁명가를 들으며 남성의 힘을 되찾는 장면은 혁명과 사랑이 동일시되는 장면이다. 유교적 질서 즉 구질서의 상징인 청사와 진장 앞에서 주인공의 성관계 장면 역시 혁명과 사랑이 동일시되는 장면이다. 
이들의 혁명애는 기존의 성역할, 관계 등을 모두 부정한다. 그러면서 그들의 사랑만을 진정한 혁명적 사랑이라고 말한다. 사랑에서 있어서만큼은 너무 자유롭다. 그들의 자유로움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큰 피해를 주고 있는데도 그들의 사랑을 혁명애를 칭송하고 있으니 독대적, 독단적이다. 

작가는 “물처럼 단단하게”를 통해 문화혁명, 또는 혁명의 특성을 비판하고 있는 것 같다. 언뜻 ‘물’과 ‘단단하다’는 말은 거리가 있어 보인다. 그런데 물과 단단함이 등가가 쓰인 게 아니라 ‘단단함’이 ‘물’과 같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즉 ‘단단함’이란 ‘물처럼’ 고정되고 않고 끊임없이 변모해야 하는 것, 우리가 추구하는 사회가 단칼이 아닌 물처럼 유연하게 사람들 속에 스며들어야 함을 이야기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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