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일이자 공휴일로 지정된 한글날을 기념하여 교육청에서 "우리말 바로쓰기 대회"를 연다는 공문이 왔다. 몇 년 전에 동부지원청 주관으로 만든 "손 안에 우리말이 쑥쑥"이란 자료를 필기고사 형식으로 치른다는 것이었다. 어떻게든 한글날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 앴는 교육청의 노력은 인정한다. 그러나 이런 일을 대회를 통해 해결하려는 부분은 안타깝다.
세종대왕께서 한글을 창제하신 까닭은 소통을 통한 말의 민주화로 문화국가를 만들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이걸 학교별로 날짜를 정해 대회를 치르고, 교육청대회로 치르는 것은 민주화란 창제 정신에도 맞지 않으며, 소통의 뜻도 없는 일회성 행사가 돼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학교에서 해볼만한 행사들을 계획하다 오래 전에 사둔 이 책을 펼쳐들었다.
한글날은 우리 글자 탄생을 기념한 날이다.
일단 우리 글자 한글의 창제 배경이나 제자원리, 과학성 등을 여러 가지 방식으로 알아두는 것이 필요하다. 핵심어는 소통, 철학적 원리, 과학적 원리 정도 될 것이다. 이건 지식적으로 접근하며 읽기자료나 관련 영상으로 어느 정도 가능하다.
그리고 한글날의 정신을 잘 살리는 3행시 짓기나 시조짓기, 글쓰기도 가능하다.
다음으로 한글은 우리말을 적는 글자이므로 헷갈리는 단어를 제대로 쓰는 것도 필요하다. 받아쓰기 대회를 해 볼만 하다. 또 일상 생활, 광고나 신문, 자막, 노랫말 등에서 잘못 쓰고 있는 글자를 찾아 바로 써 보는 연습도 필요하다.
한편 한글은 예술적으로도 아름다운 글자다.
자기만의 글꼴을 만들어, 아름다운 시를 써보는 대회도 충분히 의미가 있을듯 싶다. 예전 한자를 문자도 형식으로 펼치는 것처럼.
아이들이 한글을 가장 많이 쓰는 곳은 전자말이라 생각한다.
일정한 전자말을 예시로 주고, 그것이 휴대폰이 되었든 컴퓨터가 되었든 가장 빨리, 그러면서도 정확하게 옮겨 보내는 대회도 의미 있으리라 생각한다.
한글날 기념에서 약간은 벗어나지만, 글자란 말을 담기 위한 글자이므로 우리말 사랑 교육으로 나아가는 것도 고민해 볼만하다.
그런 과정에서 이 책 "우리말은 서럽다"를 읽었다.
저자는 우리말 속에 우리 겨레의 삶과 정신이 깃들어 있기 때문에 우리말 대신 중국말이나 서양말을 쓰는 것은 우리 정신을 잃어버리는 것이라고 보고 있다. 실제로 우리말보다 한자말이나 서양말을 많이 쓰고 있고, 그것이 우리말을 몰아내는 악순환의 반복이 되고 있다.
1장에서는 역사적으로 우리 겨레의 문화가 더 빨라 중국(여기서는 한족)에 전해주었으며, 한족인 만든 글자가 역으로 우리 나라에 들어오면서 우리나라의 많은 말들이 사라졌고, 그것을 서양의 역사에 맞추어 '중세 보편주의'란 이름으로 정당화되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우리에겐 중세란 따로 없었으며, 서양의 역사에서 중세가 끝난 근대에는 자기나라말을 오히려 살리기 시작했는데 우리는 그렇지 못했음도 지적하고 있다.
2장에서 구분 없이 써 그 의미가 엷어진 말들을 살펴보고 있다.
영어사전을 찾으며 단어의 뜻을 제대로 알고 시작한 영어와 우리말이니 으례 알고 있다는 생각으로 넘겼던 우리말 공부가 결국 원인이 돼 많은 말들이 사라지고 있다.
먼저 저자의 말을 이해하려면, 우리말 속에 드러난 의식부터 살펴보아야 한다.
먼저 '몸'과 몸에서 외부 자극을 받아들이는 느낌, 그것이 사라진 생각, 그리고 마음까지, 우리 안에 있는지 없는지 분명하지 않지만 우리를 이루는 '얼', 이 얼이 떠난 넋이 인식의 기본 과정임을 먼저 염두해 두고 살펴보아야한다. 그렇게 했을 때 '기쁘다'와 '즐겁다', '무섭다'와 '두렵다', '춥다'와 '차갑다' 등의 구분이 가능해진다.
다른 글자로 존재한다는 것은 분명 다른 뜻이 있기 때문이다.
'위'와 '아래', 그리고 '밑', '안'과 '밖', '겉'과 '속' 따위가 그렇다.
'엎어지다, 자빠지다, 넘어지다, 무너지다' 같은 말, 음식을 조리할 때 쓰는 '삶다, 끓이다, 찌다, 졸이다, 달이다' 따위도 일상생활에서 많이 사용하고 있으니 탐구 활동의 재료로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꼭 1물 1어설까지는 아니더라도 다른 말이 있다는 건 그 말들 사이의 쓰임이 조금씩 다르다는 문제의식을 환기할 수 있다.
'참다'와 '견디다', '올림'과 '드림'도 일상생활에서 많이 쓰이므로 우리 겨레의 태도와 관련하여 아이들과 생각해 볼 거리를 준다.
3장에서는 우리말 속에 나타난 우리 겨레의 정신을 드러내는 말들을 살펴보고 있다.
예를 들어 '사람'은 '삶'과 '앎'을 합친 말로서, 사람이란 존재가 어떠해야함을 보여주며, '아름답다'에서 말하는 아름다움의 본질이 무엇인가도 생각해볼만하다.
한 번 읽고 덮을 책은 아니다.
시간 날 때마다 자주 읽고 마음 속에 새기며 내 언어 생활부터 살려내야 펼쳐내야할 우리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