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머릿속 우주(두암중 학생 작가) 발간

두암중 학생 작가들이 쓴 SF 단편소설집 표지

 

작년(2023) 자유학기제 'SF 소설쓰기반'에서 쓴 학생들의 작품 중에 재미있는 작품이 많았다. 학생들과 같이 읽고 이야기 나누고 싶은데 마땅한 방법이 없었다. 그러다 올해 3월 '학생 독서 책쓰기 동아리' 공문을 보고 급하게 자율 동아리를 구성(동아리이름: 시간여행자들)하여 공모했다. 운 좋게 지원금 200만 원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주기적으로 동아리 활동을 할 형편이 되지 않았다. 이 사업에 공모하기 전 이미 '독서토론 동아리'를 구성한 상태였고 아이들도 방과후에는 학원 등으로 바빴다. 그래서 작년에 눈여겨본 작품들 중심으로 패들렛 게시판을 하나 만들어 일단 '저자'임을 공유하는 선에서 2학기 때 본격적으로 활동하기로 했다. 대신 국어 시간에 창체동아리 독서토론반 활동과 연계해 읽기와 쓰기 역량을 강화하도록 했다.

 

1. 정명섭 작가와의 만남

5.18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소설 "저수지의 아이들"을 읽고 '비경쟁 독서토론' 방식으로 책 대화를 나누었다. 토론하면서 만든 질문을 중심으로 서평을 작성했다. 이후 정명섭 작가를 초청해 작가의 생각을 소설화하는 과정을 들을 수 있었다. 학생들에게는 작가의 책을 구입해 사인을 받는 기회를 만들었다. 학생들은 '5분 독서' 시간에 이 책을 다 읽었다.

창체 시간에 "저수지의 아이들"의 공간적 배경인 '주남마을'을 답사하며 실제 공간이 소설적 공간으로 형상화하는 과정에 대해 이야기도 나누었다.

 

2. 달빛 독서캠프

학교의 시계는 유독 빨리 지나가는 것 같다. 점심 먹으면 하루가 끝나고 수요일 오후면 일주일이 다 지나간 것 같다. 방학을 앞두고 '달빛 독서캠프'를 아이들과 함께 계획했다. "고요한 우연", "뉴 휴먼스 랜드"를 필독서로 정해 같이 읽고 독서 퀴즈대회, 인상적인 구절은 담은 책갈피 제작, 서평 쓰기 활동, "내 인생의 책 소개", 영화를 보며 다양한 생각을 나누었다. 달과 행성 관측도 계획했으나 장마가 끝나지 않아 어렵게 연결한 천체관측을 진행하지 못했다. 그게 계기가 돼 천문 연수를 신청하게 되었다^^

 

3. 역사신문 만들기 참여, 응모

지역신문 활용교육 지원사업으로 광주일보를 매일 받아보고 있었다. 아이들에게 신문사 탐방 기회를 주고 싶어 1학기에 탐방 요청을 했더니 2학기에 프로그램을 가지고 직접 학교로 오겠다고 해 4시간 동안 신문의 구성 및 기사 작성, 기획회의를 했다. 이후 작년과 올해 우리 학교에서 진행된 5.18 기념 활동을 기사문, 인터뷰, 사진 기사, 서평 등으로 작성하고 서로 피드백을 하며 다양한 글쓰기 활동을 했다. 또한 5.18과 경제, 패션, 음식, 공연, 다른 나라의 민주화 운동과 관련지어 글쓰기 활동을 했다. 우리 동아리(독서토론 동아리)와 두암뉴스반이 함께 만든 역사신문 '두암제트일보'는 광주일보사가 주관하고 지역신문발전위원회에서 후원하는 제5회 역사신문만들기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뜻하지 않게 신문에 내 이름이 두 번 올랐다. 그러나 아쉬운 것은 우리 학교 샘들은 아무도 몰랐다는 것. 결국 내가 스스로 신문을 출력해 게시하면서 자랑을 했다^^ 나름 뿌듯했는데 그다지 반향은 크지 않았다.  학교에서 학부모 사업 지원을 맡고 있어 밴드에 올렸더니 크게 격려해 주었다.

 

4. 소설 쓰기 작업 진행

1학기 말 소설집 제목과 표지디자인을 전교 학생을 대상으로 공모하며 서서히 책을 만들기 위한 분위기를 띄웠다. 그리고 여름방학 기간 SF 단편소설을 공모했다. 그러나 학생들의 관심을 끌지는 못했다.

개학 후 다시 제목을 공모했으나 곧 중간고사 기간이 시작돼 10월 중순이 돼서야 본격적으로 글쓰기 작업에 들어갔다. 공모된 제목 중에서 책 제목을 선정한 뒤, 표지 디자인은 '달빛 독서캠프'에서 역량을 발휘한 학생에게 제작을 부탁했다.

그러는 동안 11월 중순까지 소설을 완성하기로 했다. 절반은 작년 작품을 손 보았고, 절반은 새로 소설을 썼다. 심지어 세 번 쓴 학생도 두 명 있었다. '출간'이라는 게 학생들에게도 부담이 되기는 했나 보다. 200자 원고지로 60~100매 사이로 원고를 맞추도록 했다. 60매보다 적으면 설명이나 대화 위주인 경우가 많았고, 100매를 넘어서면 단편답지 않게 갓길로 새는 작품이 많았다. 작품이 어느정도 완성도를 갖춘 뒤에는 출력해 서로 돌려 읽으며 합평을 했다.

 

5. 예정된 어려움, 그러나 출간

표지와 원고가 모두 완성이 되었고 '부크크'를 통해 출간하려고 했으나 '표지'에서 두 번 걸렸다. 저작권 때문에 고민했는데 오히려 그 문제보다 시교육청의 결과 보고서 및 정산서 제출 일정에 쫓겨 제본을 맡겼을 때에는 별 문제가 없던 일이, 부크크에서는 '이른바' 계속 퇴짜를 맞았다. 학생과 함께 어도비 회사의 'indesign' 프로그램을 살펴야 할 정도로. 그런데 진행하면서 보니 우리가 매뉴얼을 잘못 읽은 부분이 있었다^^. 과정이 지난해 제본을 맡길까 하는 순간도 있었지만 책은 계획대로 잘 출간됐다. 출간된 책을 받고 출판에 부담을 느끼던 학생들이 책이 잘 나왔다며 좋아하고 심지어 책을 구입하는 모습에서 보람을 느꼈다.

 

6. 엮은이와 학생 작가들의 소감

책을 출판하는 일은 정말 '지난하다'. 단어의 어감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과정이다. 그러나 그 과정을 거친 뒤 출간된 작품과 마주할 때의 성취감은 과정의 흔들림만큼이나 대단하다. 저자 자신도 책으로서 내면과 만나는 소중한 경험이며 타인에게 또 다른 나로 인정받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교사로서 비록 공동저자로 참여했지만 4권의 책을 출판하며 경험한 효능감은 엄청났다. 그런 경험을 우리 학생들에게 주고 싶어 이 사업에 응모했다.

그런데 책을 출판해 본 사람들은 공감하겠지만 편집자와 집필자의 관계는 이른바 '길항 관계'이다. 좋은 작품의 출판이라는 목적은 같지만 거기에 이르는 과정이 극과 극이다. 그동안 집필자로 편집자를 만나다 내가 편집자가 되어 중학생들과 밀당하는 일은 색달랐다. 작가들과 제법 열띠게 토론했다. 그동안 대체로 수용적인 학생들이 나의 빨간색 펜에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그런 결과가 우리의 작품이다. 여기서 학생들의 반응 일부.

 

- 짧지만 길었던 글쓰기가 끝났습니다. 경계를 주제로 글을 쓰면서 선택으로 인한 결과가 어떻게 될지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어려운 부분도 재밌었던 부분도 많았던 첫 글이었습니다.

- 원래 이야기를 만드는 걸 좋아했는데, 이젠 나의 서툰 이야기가 책으로 나온다니 너무 설렙니다! 많은 우여곡절 끝에 만들어진 이야기가 조금이라도 재미를 주었으면 좋겠어요!

- 통합되지 못하는 행성의 지배종에게 밝은 미래 따위는 없다. 인류가 우주에 나가는 그날이 인류 간 전쟁의 마지막이 되어야만 한다.

- 제 친구와 같이 쓴 소설이 책으로 출판되다니 믿기지가 않고 기뻤습니다. ‘3:30’ 소설을 고치고 수정도 하다보니 많은 시간이 걸렸네요.

- 기나긴 여행이 끝났습니다. 정말 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좋은 추억이 되었습니다.

- 소설을 쓰는데 너무 힘들었다. 수정도 수정이지만 고쳐 쓰는 게 너무 힘들었다(일일이 다 검토하는 거, 더 나은 글로 바꾸는 것). 그렇지만 다 쓰고 보니 나름 재미있었다. 또 언제 이런 기회가 오겠나, 색다른 경험이었다.

- 당신의 세계는 정말 존재할까요? 거짓으로 가득 채워지지는 않았나요? 우리는 진실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내가 사는 세상이 거짓이냐 진실이냐보다도 내가 이 세계에 속한다는 사실이 기반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니 이제 당신의 세상을 지켜내세요.

- 현실이었으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이지만 SF여서 가능했다. 처음엔 어쩔 수 없이 써야 했던 글이지만 쓰다 보니 재미있었다. 학교에서 하는 글쓰기를 열심히 참여하길 바라며.

- 평소에 SF소설이라곤 좀비물밖에 모르고 많이 접해보지 못해 쓰기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메타버스라는 좋은 소재가 눈에 들어왔어요. 영화든 드라마든 액션보다 로맨스를 선호하는 사람으로서 메타버스와 로맨스라는 좋은 재료들로 쓸 수 있을 것 같았어요.

 

2024 제11회 학생 저자 책 출판 전시회. 김대중컨벤션센터 214호

 

12월 10일 개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11회 독서 책쓰기 동아리 발표회에 다녀왔다. 다른 학교들의 사례가 궁금했다.

눈에 띄는 점은 책 디자인이 다양했다. 다양한 출판사와 결합해 글의 내용을 잘 드러낼 수 있는 작품들이 출판되고 있었다. 또 하나 학생 개인 작품집도 많았다. 내년에 이 사업에 참여한다면 시집을 만들어 보고 싶다. 서정이란 장르의 특성답게 세계를 자신의 문제로 끌어들이면서도 300여 명 규모의 학생들의 목소리를 다 담을 수 있을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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