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사적지 주남 마을과 원제 저수지 답사

우리 학교는 5.18을 즈음해 '5.18민주화운동기념 체험활동'을 한다. 작년에는 '오월인권길' 걷기, 올해는 "저수지의 아이들" 정명섭 작가님을 초청해 강의를 듣기로 했다. 도덕과에서는 이 책을 활용해 역할극을 하고 국어과에서는 비경쟁토론 및 서평 쓰기, 학년부에서는 5.18다큐 시청, 퀴즈대회 등을 열기로 했다. 내가 운영하는 독서토론동아리에서도 3월에 활동 계획을 세울 때  "저수지의 아이들"의 배경인 주남 마을과 원제 저수지를 찾아 가기로 했다. 학생들과 함께 가기 전 먼저 대중교통을 이용해 답사를 다녀 왔다.

 

1. 주남 마을

우리 학교에서 주남 마을을 가기 위해서는 27번이나 28번 버스를 타고 남광주역까지 간 뒤 화순 가는 버스로 갈아타면 된다.(창체 시간에 독서토론반 학생들과 함께 이동할 때는 동선을 최소화하기 위해 27번이나 28번을 타고 '두암지구 입구'에서 내려 15번 버스를 타고 종점 월남동에서 내렸다.) 버스 타는 시간, 환승하기 위해 이동하는 시간, 기다리는 시간을 다 더해 50여 분 정도 걸린다. '주남마을' 승강장에서 내려서 보니 화순 가는 길에 매번 보았던 곳이다. 역시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인가. 

"저수지의 아이들" 소설에서 그리는 배경과도 일치했다. 소설에서 '선욱'이 학교폭력으로 징계를 받고 외삼촌 집이 있는 주남 마을을 찾아갈 때, 광주송정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녹동역에서 내린 뒤 화순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시내버스 차고지에서 내리라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실제로도 그렇다. 마을 입구 큰 돌로 만들어진 주남 마을 표지석, 마을 회관과 정자, 식품회사로 보이는 큰 건물, 그 옆 자녀들이 다니는 유치원 등 주남 마을의 풍경이 후남 마을로 재구성 되었다.

 

왕복 10차로가 넘는 긴 횡단보도를 건너니 '5.18 위령비 가는 길', '미니버스 총격사건 이야기', '5.18 민중항행 사적 14 -주남마을 인근 양민 학살지'라는 표지판이 보인다. 표지판 왼쪽의 마을 입구에는 '제11회 기역이 니은이 인권문화제'를 알리는 횡단막이 걸려 있어 이곳 역시 5.18의 정신을 꾸준히 이어 가고 있었다.

 

앞뒷면 총 12장의 이미지로 '미니버스 총격사건'을 설명해 주고 있다. 5.18 위령비 가는길 표지판.
5.18 민중항쟁 사적 14. 주암마을 인근 양민 학살지
주남 경로당 앞마당. '기역이 니은이 문화제'는 주남마을의 옛 지명인 녹두밭 웃머리'를 기억하자는 뜻에서 '기억하라 녹두밭 웃머리'의 초성을 따왔으며 5.18의 정신인 공동체 의미를 되살리는 자리라고 한다.
주남 마을 버스 승강장에 설치된 '마을 안내도'

 

주남마을에서는 마을 입구부터 위령비까지 직선으로 518m 구간을 '민주로, 인권로, 평화로'로 조성하고 세 군데에 시비를 건립했다. 

마을 입구에는 문병란 님의 시비(민주로에서)와 '평화의 솟대'가 조성돼 있고, 마을 역사관을 겸한 경로당과 '마을 샘터'가 복원돼 있다. 또한 주남마을 안내도와 마을의 당산나무이자 5.18 당시 학살의 현장을 목도한 '말채나무'에 대한 소개글이 있다. 글을 읽으며 거대한 나무를 찾아 고개를 돌렸는데 보이지 않는다. 말채나무는 안타깝게도 2020년 태풍으로 쓰러져 고사했고 지금은 후계목을 심어 공동체의 안녕을 기원하고 있다고 한다. 아시아문화전당에도 5.18 현장을 목도하며 오랜 시간을 보낸 나무가 있었다. 당시 시민군의 항쟁 본부였던 전남도청 앞 '회화나무'. 그런데 이 나무 역시 2008년 태풍으로 쓰러져 돌보았지만 결국 고사했고 인근에 자식 회화나무 숲을 조성했다는 이야기가 생각났다. 마을 공동체의 안정을 기원했던 수호신으로서의 나무 이미지가 느껴진다.

 

마을 입구에서 경노당 가기 전 오른편에 조성된 '평화의 솟대' 돌로 만들어진 솟대가 인상적이다
평화의 솟대 옆 문병란 님의 시비
민주로에서(문병란)
주남 경로당(1층) 마을 역사관(2층)과 마을 풍경. 주남마을 안내도, 말채나무 후계목 설명판이 보인다.
주남 경노당 앞 복원한 '마을 샘터' 물이 흐르지는 않는다.

 

위령비로 가는 첫 번째 갈림길 오른쪽 벽에는 아래와 같은 마을 벽화가 조성돼 있다. 주남 마을 승강장에 소개된 자료에 따르면 "이 벽화는 총격사건으로 돌아가신 희생자분들을 기리기 위한 역사기록의 회화적 보고서이다. 벽화 속 사슴은 십장생에 속하며 신성함과 평안을 상징하는 동물이다. 흰 사슴은 삶과 희생을 의미하는 상징적 은유로 등장하며, 한 마리 사슴은 당시 희생자분들과 부상자분들의 수를 의미한다. 벽화로서의 부활은 희생자분들의 넋과 오월 광주의 기억이고, 이들에게 보내는 헌사이며 아픔이 빚어낸 찬란한 빛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2012년 창조마을만들기사업 일환으로 제작되었다고 한다(답사 때에는 탑차가 주차돼 있어 안내문이 보이지 않았는데 학생들과 갔을 때에는 스텐레스로 된 안내문이 벽화 왼쪽에 있었다.) 상징적 의미가 있는 벽화라고만 생각하고 지나쳤다 나중에 버스 타려고 들른 승강장에서야 그 의미를 알게 되었다.  

벽화를 지나면 '자연숲노인복지센터'와' 나드리어린이집', 공용주차장을 지난다. 여기서부터 마을 중심으로 벗어나 주남 저수지(지도에는 '어데미제'로 표기)에서 흘려 내려오는 개울을 따라 조성된 농로를 걷는다.

 

마을 벽화. 흰사슴은 돌아가신 분, 황토색사슴은 당시 생존자 분들을 의미하는 것 같다.
산너머에 주남저수지가 있다. 거기에서 내려오는 개울물. 광주천으로 흐른다.

 

위령비를 200여 미터 앞두고 '인권 개비온길'과 인권로의 전원범 님의 시비가 만난다. 비슷한 형태의 쉼터가 많은데 왜 이곳만 특별하게 '개비온길'이라고 하는지 궁금해 자료를 찾아보니 '개비온(gabion)'은 침식을 막기 위해 설치하는 철골 모양의 구조물을 말하는 것으로, 결국 주남마을의 쉼터는 민주, 인권, 평화를 지키는 개비온이 되자는 상징으로 읽혔다.

이곳 '인권 개비온길'은 5.18 당시 계엄군이 주둔했던 곳이라고이라고 하니 그 상징적 의미가 더욱 빛난다.(나중에 자료를 찾아보니 위령비 가는 길 근처 허물어질 듯한 축사 건물에 계엄군이 주둔했다고 한다) 이곳에 주둔한 11공수여단은 주남마을버스 양민과 송암동(효덕동) 양민을 학살했다.

 

인권개비온 벤치와 인권길 전원범 님의 시비
우리가 갈망했던 것은(전원범)

 

여기서 200미터 정도 농로 오른쪽의 버려진 건물을 지나 위령비가 있을까 싶을 때 '위령비'를 만난다. 이곳은 미니버스 총격 사건 때 18명 중 15명이 사망하고 부상당한 민간인 2명을 끌고 와 사살하고 암매장한 곳으로 마을분들이 중심이 돼 십시일반 하여 2010년에 설치했다고 한다. 소설 "저수지의 아이들"에서 선욱이가 훼손한 "위령비"의 현실의 모습이다.

 

5.18 위령비의 모습. 왼쪽에 위령비, 뒤편에 조성된 평화의 솟대, 평화 개비온과 손광은 님의 시비
5.18 위령비
손광은 님의 주남마을 평화 솟대

 

위령비 주변은 한적했다. 가끔 새소리만 들렸다. 다시 주남 마을로 돌아오는 길에도 마주치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도 이곳을 들르며 5.18을 기억하고 5.18의 정신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꾸준할 거라 생각했다. 시비에 비록 이끼가 끼어 있었지만 대부분의 장소가 잘 관리되고 있었으니.

 

다시 학교로 돌아가기 위해 '주남 마을' 알림석을 지나 승강장으로 이동했다. 그런데 '승강장'이 특별했다. 이 길을 여러 번 지나다녔는데 왜 이 승강장을 보지 못했을까. 아마 화순으로 갈 때는 승강장이 반대편이라 보지 못했고, 화순에서 광주로 들어올 때는 마을 알림석에 가려 보지 못했던 것 같다. 버스 승강장에는 주남 마을과 5.18 당시 상황을 잘 설명돼 있었다. 

 

 

왕복 11차선 건너편에서 바라본 주남 마을 승강장. 도로를 확장하며 버스 승강장을 새로 만들 때 마을분들이 낸 아이디어라고 한다.
주남 마을 알림석을 바로 지나. 소태 나들목 방향
승강장 내부

 

주남 마을은 우리 학교에서 찾아오기 불편한 곳은 아니었다. 2시 30분에 학교에서 출발해 다시 학교로 돌아오니 5시가 되었다. 다만 방과후 학원에 가야 하는 아이들의 무거운 가방이 마음에 걸렸다. 다음 동아리 활동 시간이 5월 29일이다. 오늘 기록을 바탕으로 아이들과 의견을 나누어 봐야겠다.

 

 

 

2. 원제 저수지

원제 저수지는 "저수지의 아이들"의 서사적 배경이다. 소설에서는 12살 초등학생들이 저수지에서 놀다 계엄군에 학살된 비극적인 곳이며 살아남은 선욱이 외삼촌(민기)'에게는 살아남은 자의 아픔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곳이다. 소설 "저수지의 아이들"에서 계엄군을 환영하며 손을 흔들었다 계엄군의 표적이 되었던 민기가 5.18 당시에는 11살 '전재수'였으며, 저수지에서 사망한 '아이'는 당시 전남중 1학년 13살 '방광범'이다.

 

학생들과 주남마을을 들렀다 원제 저수지도 들를 수 있을까 싶어 자료를 찾아보았으나 '원제 저수지'나 '원제 마을'을 찾을 수 없었다. 원제 저수지에 대해 언급한 기사는, 

 

'고무신 줍다 총탄에 쓰러진 11살 소년... 처벌받은 이는 없었다'(한겨레신문 2019.10.19) 기사의 사진 자료 캡션에 '원제 저수지'라고 적힌 게 거의 유일했다. 그런데 사진으로 보아서는 이곳이 어디인지 알 수 없었다.  

좀 더 자료를 찾아보다 '광주 송암동 오월길 걸으며 아픔의 역사 배운다'(한겨레신문 2022.11.15) 기사에 남구청에서 2023년 5월까지 1980년 5월 24일 송암동 양민학살 당시 희생자가 사망한 장소에 표지석을 세울 계획이라며 자원봉사자들과 송암동 오월길을 걸어다니며 청소했다는 내용이 실려 있었다. 남구청에서 표지석을 설치했다는 기사는 찾을 수 없었으나, 근처로 가보면 알 수 있겠다 싶어 체육대회가 끝난 오후 바로 이동했다.

 

2022년 한겨레 신문 기사 사진에 등장하는 '뜨락' 근처 '남구다목적체육관'에 차를 세웠다. 그냥 봐서는 저수지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용산나들목 쪽 화산제 쪽으로 걸었다. 그런데 딱히 마을도 보이지 않고 화산 저수지는 한참을 가야 나올 것 같아 다시 돌아왔다. 신문 기사에 '화산로57번길'에 '전재수 위령비'가 있다고 해, 그 길을 걸었다. 그런데 위령비를 발견하지 못했다.

진월 저수지조차 여러 해 슬러지를 처리하기 위해 물을 빼 두어 저수지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다만 버스 승강장 이름이 '진월 저수지'라 이곳에 저수지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2019년 한겨레신문의 사진과 부합하는 풍경이 보이지 않았다. 다음 지도에서 촬영 연도를 2022년 이전으로 돌려보자 골프연습장 건물이 보였다. 신문에서 이야기한 원제 저수지는 진월 저수지였다. 

 

광주광역시 남구 화산로57번길 골목. 왼쪽 은색 대문의 집이 '진제 경노당'이다.
지도에는 진월저수지(동) 승강장 오른편을  '진월동 수변공원'으로 표기하고 있다. 저수지 근처라는 얘기다.
멀리 남구다목적체육관, 그 앞 진월복합운동장. 가운데 풀밭이 진월 저수지다
슬러지 제거 공사로 말라 있는 진월 저수지. 가까이서 보면 군데 군데 웅덩이가 있다.

 

자료를 찾아보니 원제 마을 저수지 근처에는 고인돌 유적지도 있었는데, 2순환도로 공사를 하면서 훼손되었다고 한다. 안타까웠다. 남구에서 설치한다는 송암동 오월길이 빨리 조성되길 바란다.

 

결국 효덕교차로 인근 '5.18 민중항행 사적 15. 광목 간 양민 학살지' 표지석을 찾아갔다. 표지석은 나주 쪽 '송하삼익아파트 승강장' 옆에 조성돼 있었다. 기록에 따르면, 주남마을에서 송정비행장으로 이동하던 11공수여단은 원제 마을과 진제 마을을 지나면서 아이들을 사살했고, 이곳 효덕 교차로 근처에서는 전교사와 오인 사격으로 다수의 군인 사상자가 발생하였으며 이후 화풀이로 민간인들을 학살했다고 한다.

*이 부분은 작년에 개봉된 영화 "송암동"에서 잘 다루고 있다. 이에 대한 기사는 "43년 전 오늘 광주 송암동, 참혹했던 그날의 재구성"(오마이뉴스 2023.5.24) 참고

 

이곳 역시 5.18 민주항쟁 표지석만이 당시의 아픔을 드러내 주고 있다. 주남 마을 앞 도로만큼이나 넓게 조성된 나주로 향하는 도로에서 시간의 무상함이 느껴진다. 뻥 뚫린 도로만큼 진실은 시원스럽게 보이지 않는다.

아직도 5.18에 대한 왜곡이 계속되고 있고 소설에서처럼 지역에 대한 혐오 표현도 여전하다. 정리하지 못한 역사, 제대로 진실이 규명되지 못한 현대사의 아픔들이 계속되고 있다. 그래서 살아 있는 우리는 다시는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진실을 알고 5.18의 정신인 민주, 인권, 평화의 소중함을 잇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송하삼익아파트 승강장 바로 뒤에 설치된 사적지 표지석
효덕지하차도에서 나주로 향하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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