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에서 온 암소 9마리(박종하)
- 행복한 책읽기/문학
- 2011. 6. 29.
선사 시대 사람들이 바위에 그렸을 법한 그림이 그려진 표지를 들고 1학년 학생이 책 검사를 받으러 왔다.
학생은 아프리카 어떤 부족에서는 결혼식 때 신부네 집에 예물로 바친 암소 수에 따라 신부의 값어치가 결정된다며, 이 책에서는 지금껏 부족에서 받지 못했던 9마리 암소를 바침으로써 아내가 될 사람과 주위 사람들에게 큰 믿음을 주었다는, 다른 사람에게 믿음을 주는 책이라고 소개했다.
학생의 책 소개와 '300번'이라는 도서십진분류번호가 이 책이 처세술과 관련된 책이라는 느낌을 주었다.
사람들과 어울려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이라는 '처세술'. 이 의미를 대체로 거부해 왔던 것 같다. 사회화를 담당하는 학교라면 제대로된 '처세술'을 가르치는 것이 맞을 것 같은데, 왠지 '처세술'이란 말은 진정성이 떨어지는 낱말 같다. 그래서 이런 종류의 책을 잘 읽지 않았고, 같은 문제를 다루더라도 문학을 통해 문제를 드러내는 것이 삶의 진정성을 드러낸다는 생각도 해왔던 것 같다.
표지와 '암소 9마리'라는 소재의 특이함, 그리고 지금 사람들 속에서 살아가는데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다면 이 책도 내용만 듣고 넘겼을 것 같다. 그래서 다 들어 봤음직한 구절에, 구절구절 너무나 맞는 소리에서 반응하고 싶지 않는 이야기들이 새삼스럽게 내면으로 들어온 것 같기도 하다.
올해 이것 저것 신경 써야할 일도 많아지고, 사람들과 어울려 함께 풀어가야할 일도 많아지면서 서운해 하고, 손해보는 것 같고, 내 마음을 몰라 주는 것 같아 부정적으로 풀어가는 일이 알게 모르게 많았다. 그래서 환경을 바꿔 보고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나 바꾼다고 달라지기 어렵다는 걸 나 역시 잘 알고 있다.
생각을 바꾸고, 마음을 바꾸고, 몸을 바꾸는 데, 이 책의 자극이 큰 계기가 될 것 같다.
(59) "그렇지! 준태야. 너도 한 번 생각해봐. 그렇게 달리고 싶은 건 자동차만이 아니야."
"어쩌면 우리도 안전이라는 명목으로 인생을 옭아매고 있는지도 모르지. 보호를 위한 보호, 변명을 위한 변명, 제재를 위한 제재가 필요도 한 법이댜. 하지만 우리 역시 자신에게나 또 주변 사람들에게 '붉은 깃발법'을 강요하고 있을지도 모르지."
준태는 가만 생각했다. 그는 어쨌뜬 돌출해동을 하는 걸 싫어하는 사람은 분명했다. 뭐든지 안정적인 기준에 들기를 원했다. 하지만 언제나 한 손에 쥔 이상은 높고, 또 다른 한 손에 쥔 현실은 턱없이 모자랐다.
(63) 어쩌면 문제는 '얼마나 악착같이 열심히 살아왔나'가 아니라, 그동안 '얼마나 인정하며 살았는가'의 문제인지도 몰랐다.
(101) "젊은 나이에 한 마을을 책임진다는 것이 부담스럽지는 않은가?"
"코끼리는 원래 자기 코를 무겁게 여기지 않는다는 속담이 있어요. 그게 자신의 운명이고 책임이라면, 무거울 리 없죠. 다만 중요할 따름이죠. 하늘이 돕고 있으니 다 잘 될 거예요."
(121) 인생은 제로섬 게임이 아니야. 내 운을 너한테 떼어 준다고 해서, 내 운이 줄어드는 건 아니지. 촛불 하나가 다른 촛불에 불을 옮겨준다고 그 불빛이 사그라지든? 빛은 나누어줄수록 오히려 더 밝아지는 법이지. 자신의 것을 하나도 잃지 않으려고 하면, 누구에게도 무언가를 나누어줄 수 없는 법이야.
(147) 암소 9마리는 상대방의 가치를 인정하고 믿어주는 것. 누구나 완벽하지 않다는 것. 지금의 상황을 문제 삼지 않고 무한한 가능성을 믿어 주는 것. 그런 마음에서 나온 에너지였다. 그 에너지 덕분에 쿠타사와 은타비쌩은 서로에게 힘이 되었고, 그들의 삶을 전혀 다른 궤도로 올려놓을 수 있었다. 라담 추장의 말이 다시 떠올랐다.
"믿는 사람들 사이에는 신비한 힘이 생겨서 서로를 일으켜준다네."
(166) 준태는 먼저 자신이 자주 내뱉는 말과 행동을 뒤돌아보았다. 그는 늘 부정적인 파장으로 삶을 마이너스로 만들었다. 바로 거기에 준태의 문제가 있었다. 긍정의 습관이 긍정의 파장을 만드는 것처럼 부정적인 생각이나 습관은 부정의 파장을 만드는 것이다.
준태는 다이어리를 펼쳐서 자신의 생각을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무엇인가를 준 적이 있었던가?'
(180) 세상사의 모든 일은 주고받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주고받는' 게 아니라 '주고 놓아버리는' 것이라면 어떨까. 들판에 뿌린 꽃씨가 꽃향기가 되어 돌어오는 것처럼,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사이 긍정의 에너지는 증폭되어 부메랑처럼 돌아오는 것이다.
라담 추장의 말대로 우주는 그 자체로 완벽해서 내가 뿜어내는 것들이 결국을 자성을 띠고 내게로 다시 돌아오는 것이다.
인생은 선택한 만큼 행동하고 행동한 만큼 확인하고 있었다.
![]() |
|
'행복한 책읽기 > 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바보 빅터(호아킴 데 포사다) (0) | 2011.09.13 |
---|---|
방자 왈왈(박상률) (1) | 2011.09.02 |
대장경(조정래) (0) | 2011.06.29 |
회색 노트(로제 마르탱 뒤 가르) (0) | 2011.04.23 |
허수아비춤(조정래) (0) | 2010.10.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