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바람(박상률)
- 상황별 청소년 소설 추천/내면의 문제로 고민할 때
- 2003. 3. 14.
이 책과 <나는 아름답다>를 연결해서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성장소설들이 작가의 삶과 크게 무관하지 않다는 것도 그렇고, 소설의 내용도 연결되는 점(선우나 훈필이가 나이 또래에 비해 웃자라 있다거나 그래서 똑같이 외로움을 느낀다거나, 주변 사람들의 문제 따위)이 많다.
<봄바람>에서 눈에 띄는 상황은 ‘염소를 통한’ 사랑과 희망, 좌절과 성공을 위한 가출, 가출이 실패하며 훌쩍 큰 정신적인 성장에 있다. 이때 염소는 훈필이의 꿈 자체(푸른 목장, 가축을 키우는 연습)일 수도 있고 꿈을 이루기 위한 과정(농고를 진학하기 위한 수단)일 수도 있다. 희망은 봄바람처럼 갑자기 일렁이는 기운일 수도 있어 항상 좌절을 안고 있다. 하지만 희망은 봄바람처럼 매번 돌아오고 우리는 좀더 구체적인 희망과 이상을 꿈꾸며 행동하는 것은 아닐까.
이와 관련하여 <봄바람>에 나오는 ‘꽃치’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점이 많다. 바람처럼 왔다 바람처럼 사라지는 그 자체가 자연의 일부인 ‘꽃치’에게 훈필이가 눈높이를 맞춰 나가는 과정 역시 생각해 볼만한 부분이다.
<인상 깊은 구절>
(12) 바람이 불어 왔다. 봄바람이다.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바다 건너 봄바람이 불어온다.
봄바람은 처음엔 부드럽고 따스한 느낌을 준다. 그러나 봄이 좀 깊어진다 싶을 때쯤 해선 제법 강해져서 마당 우물가에 있는 양철 세숫대야를 굴러다니게 할 정도로 기운이 세진다.
그런데 봄이 되면 정말로 몸이 근질근질해서 못 견디는 사람들이 따로 있다. 학교 졸업하고 집에서 조용히 농사일을 배우던 머시마와 가시나들.
머시마와 가시나들이 몇 명씩 사라져 버리는 날. 그 날은 틀림없이 봄바람이 심하게 분 뒷날이다.
(155) 당산나무 거리에 나와 괜스레 어정거려 보았다. 그러나 날씨가 쌀쌀해서인지 놀러 나오는 아이도 없었다. 추수가 다 끝난 들녘엔 머물 곳 없는 늦가을 찬바람만 이따금 외로움을 견디는 소리를 내며 지나가고 있었다. 길 위에고 논 위에고 산 위에고 사람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다 어디로 숨어들었을까?
사람이 그립다. 나는 비로소 외로움이라는 말을 나에게도 쓸 수 있게 되었다. 다른 열세 살짜리들보다 웃자란 죄로 나는 외로움이라는 말의 의미를 몸으로 느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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