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옵티콘


1. 짧은 감상, 긴 여운

'도서출판 대안'이라는 곳으로부터 '판옵티콘 1'을 선물받은 것은 지난 해 12월이었다. 난데없이 받은 책 선물에 놀라기도 했지만, 책의 내용과 구성, 집필의도는 더 놀라웠다. 현재 상황을 치밀하게 분석하여 설정한 미래사회의 정확성, 한 쪽을 넘기는 다양한 주석(하이퍼텍스트), 글의 내용을 심화시켜줄 수 있는 영화와 책 추천, 그것에 대한 교육적 효과에 이르기까지 새롭게 시도된 글쓰기 형식이었기 때문이다.

이 책의 활용방법에는 이와 같은 형식을 에듀팬터지라고 소개했다. 하지만 이 책의 1권을 읽었을 때에는 '주제별 모임'의 독서목록에 신경을 쓰고 있어 크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올해 10월 '도서출판 대안'으로부터 '판옵티콘 2'권을 선물 받았다. 마침 중간고사 기간이어서 '판옵티콘 1'권도 다시 읽을 수 있었다. 책 2권에 흠뻑 빠지고 나서 마음이 가벼웠다. 재미있는 판타지 소설을 읽은 것 같은데, 미래 사회의 모습이 어느 정도 그려지기도 하고, 또 잘 몰랐던 청소년, 인문, 성, 자연과학 분야의 텍스트들도 자연스럽게 읽게 된 것(밑줄 그어가며 공부도 했다) 같다.

그래서 시험기간이 끝나자마자 전형적인 판타지(이야기 세계가 우리 삶과의 연결점을 쉽게 파악할 수 없고 죽음 등에 대해 뭔가 철학적인 것처럼 의미를 부여하는 여러 책들) 세계에 빠져, 현실을 암울하게 접하고 있는 우리반 녀석에 권해 보았다. 또 이 책은 현대사회의 문제점을 다양하게 짚어 주므로 세상을 단순하게, 단편적으로 바라보는 아이들에게 권하여 함께 이야기해 볼 책이라고 생각한다.


2. 책 속으로
판타지소설인 "판옵티콘"에서 설정한 세계는 우리의 삶과 동떨어진 판타스틱 세상이 아니고 우리 삶과 연속적이지만 아직 다가오지 않아 판타지식 세상이다. 아마 내 삶이 끝나기 전에 만나게 될('가까운') 미래를 '미리보기' 해 준 세상이다.
"판옵티콘"의 세계는 하나의 지구에 차원을 달리하는 두 세계이다. 처음에는 하나(인간계)였는데 인간족의 필요에 의해 하나의 세계(얀족)가 만들어졌고, 둘 간의 갈등으로 차원이 다른 두 세계로 재편되었다. 그리고 이 두 세계는 '게이트/천국의 문'으로 연결되어 있다.
1권에는 '얀계'의 통제를 견디지 못한 아이들이 '판옵티콘'을 멈추게 할 프로그램개발자의 눈물을 구하기 위해 인간계에서 갖은 고생 끝에 눈물을 얻어 '판옵티콘'을 멈추게 한다는 내용이다. 2권에는 '얀족'으로 인한 혼란을 '얀계'와 전쟁으로 극복하려는 권력자들에 의해 얀족 아이들의 분신들을 얀계에 보내 그들의 전투력을 확인하게 하는 내용이다. '판옵티콘'의 정지로 얀계는 혼란을 겪지만 그 갈등을 외부로 돌려 더욱더 강한 결속력을 다지기 위해 '인간계'와의 전투를 계획한다.

사실 줄거리는 아주 간단하다. 그러나 줄거리를 풀어나가는 과정이 아이들의 흥미를 자극하며 '얀계'와 '인간계'의 모습, 등장인물들의 캐릭터가 갖는 묘사와 비유가 바로 아이들과 함께 이야기하고 고민할 내용이다.

'얀계'는 '감시자의 눈'과 '판옵티콘'이라는 프로그램에 의해 개인의 모든 정보가 중앙으로 집중되고 통제된 사회이다. 즉 개인보다는 집단을 위한 효율성을 중요시하는 사회이다. 따라서 책에서 볼 수 있는 '얀족'은 이름 대신 '능력-번호'로, 또 인물의 성격보다는 전체 속의 '역할(기능)'로 제시된다.
이들이 다니는 학교 역시 개인성의 발현보다는 전체(집단)를 위해 순응하는 얀족으로 만들기 위해 획일적인 교육과 감시만을 편다. 그것에 반발하는 '얀족 아이들'은 그로 인해 특별교육을 받게 되고 자신들의 정보(데이터)를 삭제하는 과정에서 '판옵티콘'을 멈추는 '눈물tears 작전'을 수행하게 된다.
'얀족' 아이들이 접한 인간계, 즉 '2030년 지구'는 단일한 세계체제로 통합(WU, World Union. 2013년 EU, NAFTA, APEC이 모여 이룬 단체)특히 중국인과 유대인의 자본으로)되어 있고, 거대독점자본(뉴월드사)이 지배하며, 이성이 마비된 과학기술은 유전자 조작을 통해 새로운 계급(유전자 귀족)을 형성한다. 그리고 이들에 맞서 생존권을 되찾으려는 여러 낮은 계급의 사람들의 다양한 투쟁(사회운동, 테러)이 벌어진다.
공교롭게도 얀족 아이들의 분신이 인간계에도 있는데 그들은 또 '인간계'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 이들은 단일체제WU(world union)의 제안에 따라 과학의 힘(천국의 문, gate)을 빌려 얀계에 간다.

"판옵티콘 2"권 마지막에는 인간족 아이들 3명과 얀족 아이들, 미리내 선생님이 만나 서로를 돕는 장면이 나온다. 어떻게든 이들을 통해 '인간족'과 '얀족'의 멸절전쟁을 막게 되고, 이원화된 세계가 일원화 될 것 같은데 그 힘들이 어떻게 영웅화하지 않고, 건전한 민중의 힘과 희생으로 이루어질지 궁금하다.


3. 함께 이야기하고 싶은 것
1) "판옵티콘" 중간에는 다양한 읽을거리와 함께 생각할 문제가 제시되어 있다. 그것들을 중심으로 현대사회와 미래사회의 모습을 이야기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2) 특정 기능의 능력자인 얀족의 아이들은 인간족과의 만남으로 '궁극의 능력'을 이룬다. 콜맨 회장의 눈물을 받는 과정에서 핑구와 보라가 그랬고, 얀족에 온 반디의 데미지를 받아들이는데서 '비오'는 궁극의 하트heart가 되었다. 결국 두 세계가 연결돼야 최고의 능력, 최고의 수준에 이를 수 있다는 말인데, 그에 비해 인간족 아이들의 변화는 아직 뚜렷하지 않다. 혹 인간족 아이들의 변화가 '클라라'처럼 진정한 종교의 의미를 찾는다거나 트릭스타처럼 민중의 힘을 찾는 데에서 볼 수 있는 '건전한' 어떤 것이 될 수도 있는데 인간족의 '궁극의 능력', '궁극의 힘'은 무엇이거나 무엇이 되어야할까?

3) '인간계'와 '얀계'는 현대사회의 어떤 면을 상징하고 있는 듯하다. 이들은 무엇을 상징할까?
인간계와 얀계 모두 철저하게 통제된 사회를 의미하고 있다. 다만 얀계는 그 통제와 억압이 너무나 굳건하여 사회구성원들이 억압인 줄을 모르는 상태이고, 인간계는 가닥없는 자유와 일탈의 세계이다.

4)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의 '판옵티콘'을 예로 들어보자.
학교에서 최소 10년간 이루어지는 모든 정신적.육체적인 성장과정을 기록하고, 그와 관계된 학부모.교사의 모든 정보까지도 입력하여 데이터화하겠다는 '교육행정정보시스템'이 바로 판옵티콘이고, 교사의 자율적인 교육활동을 방해하는 모든 제도나 조직이 판옵티콘이며, 아이들의 자유로운 성장을 가로막는 '학생 인권 침해'가 판옵티콘이다.

5) 영화나 책으로 바라보는 미래의 지구는 모두 부정적이다. 육체를 편하게 해 줄 수는 있지만 바로 그 힘(과학)으로 인해 인간의 존엄성은 심각한 위험에 빠지게 된다. 미래 사회는 과연 절망적인가? 미래 사회를 희망으로 바꿀 수 있는 힘은 무엇일까?


4. 아이들이 읽은 "판옵티콘"
시간적인 여유가 많지 않아 두 아이(한 명은 우리반으로 '판타지' 소설을 많이 읽기도 했고, 또 판타지 소설을 창작하는 데에도 관심이 많다. 과유불급이라고 했던가. 판타지 소설의 영향을 너무 많이 받아 '신비적인' 태도를 보일 때가 많아 걱정을 많이 하고 있는 아이이고, 또 한 명은 국어에 관심이 많고 책도 나름대로 많이 읽은 학생이었다)에게 "판옵티콘"을 읽게 했다.
두 아이 모두 '재미있었다'고만 말했다. 그렇지만 주된 이야기가 여러 가지이고 내용도 수준이 높아 어렵다고 했다. 어쩌면 이 책의 강점(다양한 미래 사회의 문제, 다양한 주석)이 아직 중학생인 우리 아이들에게 강점으로 다가오지 않는 것 같다. 중학교 3학년 중 독서량이 많거나 고등학생 이상이면 함께 읽고 이야기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아직 두 학생만 읽혀 전체 의견으로 확대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이 책에 관심을 가지고 빌려 읽고 싶다는 학생들이 많으니 여러 번 시도해 보고, 중학생들 눈에 맞는 "판옵티콘"을 이야기해야 할 것 같다.
아, 그리고 아이들과 이야기하면서 '판타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데 우리 아이들이 판타지를 좋아하는 이유는 '여러 곁가지 없이 특정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좋고, 인간의 이야기보다는 신비스럽고, 조금 다른 생각을 이야기하는 것이 마음에 들'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며 '인간의 이야기'에는 답답하다고 하는데..

*2003년 11월 배추머리 강현


판옵티콘 1
국내도서
저자 : 김민준
출판 : 대안 2001.12.05
상세보기



Designed by JB FAC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