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 헤일메리(앤디 위어)
- 행복한 책읽기/문학
- 2021. 8. 16.
모임에서 8월에 이야기 나누기로 한 책이다. “마션”의 작가 앤디 위어의 우주 3부작이라고 하는데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기대가 되었다. 책을 받아보니 제법 두툼하다. 둘째 아들이 책을 보더니 “코스모스”와 비슷하다며 나란히 꽂아둔다. 느낌이 왔나? 책갈피 용으로 ‘타우세티’까지 가는 편도용 우주선 티켓 2장이 들어 있었다. 편도라. 아예 돌아올 수 없는 멀리까지 가야 하는 일인가 보구나.
책의 마지막 쪽을 확인할 때까지 다른 일을 하기 어려웠다. 재미있고, 무엇보다 결말이 궁금했다. 이틀을 태양계에서, 타우세티로, 40에리다니까지 광속으로 달렸다.
이런 책들은 후유증이 제법 길다. 한동안 유튜브로 태양 근처의 항성들을 살펴보았다. 2014년판 “코스모스” 다큐도 다시 보았다. 칼 세이건의 말처럼 이 광대한 우주에 인간만이 유일한 생명체라면 그 얼마나 비효율적일까. 아니 확률로 보아도 외계 생명체는 반드시 존재할 것이다. 다만 내가 사는 시간이 우주적인 관점에서는 ‘찰나’이기 때문이거나 또는 아직 적절한 소통 수단을 찾아내지 못했거나.
여하튼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지금까지 들어보지 못한 새로운 소재를 다루고 있고, 구성도 재밌다. 특히 첫 부분 주인공이 깨어나서 자신의 존재를 알아가는 과정들에서 사람들의 문화적 습관과 과학적 지식들을 활용하는 게 신기했다. 중고등학교 때 배웠던 지식들이 시험을 위한 것은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 물론 마지막 학력고사 세대에, 5차교육과정에 속했던 나는 문과생으로 생물1만 배웠던 과학 문맹자라 ‘파섹’부터 다시 검색하며 읽어야 했지만.
지구에서 집단지성을 모아 준비했던 비행은 첫 단추부터 변수가 발생한다. ‘나’는 새로운 상황을 겪을 때마다 ‘나’의 과거를 떠올리며 현재의 상황을 이해하고 당면한 문제를 해결한다. 왜 자신이 우주선에 있는지, 왜 타우세티 별로 가는지, 왜 다른 팀원은 죽고 자신만 살아 있는지, 왜 자신이 우주인이 됐는지. 기억을 떠올리기에도 바쁜 시간에 우주선은 목적지까지 오고, 거기서 낯선 비행선을 발견한다. 그리고 ‘나’를 따라 하는 명확한 신호를 발견한다. ‘나’가 놀라듯 글을 읽는 나도 놀란다. 어쩌려고!
외계인과의 소통은 익숙한 장면인 듯싶으면서도 과학적이다.
흉내내기 또는 따라하기를 통해 마음을 열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모습은 다소 익숙하지만, 숫자, 시간, 원자 등의 지식을 바탕으로 소통하는 과정은 매우 과학적이다. 작가의 상상력이 돋보인다. 이제 책의 1/3 정도 왔는데 외계인과 소통까지 된다면, 이후의 이야기는 둘이 힘을 합쳐야 할 만큼 어려운 이야기들이 펼쳐질 것이다.
태양을 잡아먹을 정도로 큰 힘을 가진 아스트로파지, 그의 천적 타우메바. 이 둘이 한 공간에 있어서 생기는 문제, 이들이 생명체이기에 생기는 진화의 문제로, 마지막 챕터까지 와서도 ‘나’는 선택에 대한 갈등을 한다.
소설을 읽으면서 우리는 과학의 발전과 함께 세상을 좀 더 자세히, 그리고 멀리 바라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때 인류는 특정한 조건 안에서만 통용되는 규칙만으로만 세상을 바라보았다가 지금은 세상의 기반을 확률로 바라보고 있다. 그 과정이 세계를 새롭게 재구조화하는 치열한 과학적 결정의 과정이었다. 이후로도 우리는 우주적 진실을 향해 더 빨리, 더 넓은 세계관으로 재조직하지 않을까.
인상적인 캐릭터가 많다.
먼저 주인공, 라일랜드 그레이스. 분석생물학자로 생명체의 기원에 다른 해석을 내놓았지만 학문공동체에서 수용되지 않아 결국 학계를 떠난다. 여리지만 탄탄한 지식적 기반을 갖고 있고 호기심이 많다. 원하지 않았지만 던져진 삶에 최선을 다한다. 성격으로만 보면 익숙하다. 못생긴 나무가 산을 지킨다는 말이 떠오른데 그게 진화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에바 스트라트. 목적을 향해 강단지게 나아간다. 그녀의 결정과 행동에 문제를 제기할 수 없다. 리더에게 필요한 판단력, 권한의 적절한 사용, 책임감이 느껴진다.
외계인은 있을까, 외계인을 만날 수 있을까, 왜 외계인은 나타날까, 소통은 어떻게 할까.
평소에 품었던 막연한 생각인데, 이 책을 읽으면서 외계인과의 만남의 충격파는 크지 않았다. 물리학이라는 우주 공통어로 소통해 나가는 과정은 참 인상적이었는데, 그런 지적 기반이 없어서인지, 나는 하나의 문명이 다른 문명을 만났을 때가 떠올랐다. 유럽인을 처음 본 원주민들의 충격이 비슷하지 않았을까. 항성을 갉아먹는 ‘아스트로파지’라는 공동의 목표가 없었다면, 또는 나의 공동체적 기반이 무너져 홀로 된 상태가 아니었다면, 자연스럽게 힘의 우열을 나누고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가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너무 인간다운 분별 있는 해석일까.
메모한 구절들.
(59) "수소와 산소에 마법적인 요소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당연히 지구의 생명체에는 그 물이 필요하겠죠. 하지만 다른 행성은 환경이 완전히 다를 수 있어요. 생명체에 필요한 것이라고는 최초의 촉매를 복제하는 결과로 이어지는 화학 반응뿐입니다. 거기에는 물이 필요 없어요!"
✎ 문학적으로는 구성상 필요한 복선이다. 그런데 과학적 근거는 없다. 외계 생명체인 아스트로파지에서 보면 틀린 가정이고, 40에리다니 항성에서 온 에리디언 ‘럭키’를 보면 맞는 가정이다. 여하튼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아 ‘나(그레이스)’는 이 문제에 가장 먼저 접근할 수 있게 된다.
(90) "박사님도 진짜 과학자가 맞잖아요. 게다가 어느 누구에게도 뒤처지지 않을 만큼 빠르게 진전을 보이고 있고요. 박사님이 혼자 잘하고 있는데 위험을 무릅쓰는 건 의미가 없어요."
"장난해요?" 내가 말했다. "수백 명이 이 문제를 연구하기 시작하면 훨씬 더 많은 진전이…"
"또한, 수많은 치명적 질환에는 2주간의 잠복기가 있습니다."
"거 봐, 결국 그거네."
✎ 코로나도 2주간의 격리 기간이 필요한데... 감염병은 잠복 기간 2주가 기본인가.
(101) "좀 추워진다는 거 아니에요? 1도나 2도쯤요." 에비가 물었다. "그게 뭐 대단한 일이에요?"
"너희들도 기후변화에 대해서 알지? 우리가 배출한 이산화탄소가 환경에 어떤 식으로 엄청난 문제를 일으켰는지 말이야."
"우리 아빠는 지구온난화가 사기래요." 터모라가 말했다.
"음, 사기 아니야." 내가 말했다. "아무튼, 우리가 지금 기후변화로 겪고 있는 모든 환경문제들 있지? 그런 문제가 벌어진 이유는 세계의 평균기온이 1.5도 올랐기 때문에 벌어진 거란다. 그게 전부야."
✎ 사실에 근거해서 문제를 바라보자는 빌 게이츠의 말이 떠오른다. 기후재앙도, 백신도 사실을 파악하기 힘들다. 우리가 보고 듣는 사실은 원초적인 사실에 해석이 더해져 전달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부가 필요하다.
(270) 난 지금 하는 일을 계속해야만 한다. 과학적 의사소통 방법을. 물리학의 동사와 명사들을 전달할 방법을 알아내야 한다. 우리에게 공용할 수 있는 어떤 개념이 있다면 그건 물리학의 개념이었다. 물리학의 법칙은 어디에서나 같으니까. 그리고 과학에 대해 이야기다운 이야기를 나눌 만큼 많은 어휘가 생긴다면, 우리는 아스트로파지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 로키의 존재를 알고 나서… 외계인까지 갈 것도 아니고 외국인을 만난다면?
(506) "너랑 나는 둘 다 사람들을 위해 기꺼이 죽으려 함. 왜, 질문? 진화는 죽음을 싫어함."
"종족 전체로 봐서 좋은 일이잖아." 내가 말한다. "자기희생 본능은 종 전체가 지속될 가능성을 높여줘."
"모든 에리디언이 다른 이들을 위해 기꺼이 죽지는 않음."
나는 키특거린다. "인간들도 그래."
"너랑 나는 좋은 사람." 로키가 말한다.
"그러게." 나는 미소 짓는다. "그런 것 같아."
✎ 좋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겠다.
(612) "나를 그리워할 것임, 질문? 나는 너를 그리워할 것임. 너는 친구임."
"응, 나도 널 그리워할 거야." 나는 보드카를 한 모금 마신다. "너는 내 친구야. 세상에. 넌 내가 가장 친한 친구야. 그런데 좀 있으면 우린 영원히 작별하게 돼."
✎ 그리운 사람이 친구다. 그리운 친구에게 연락해야겠다.
(685) 내가 연주한다. "모두 진정하고 자리에 앉아."
이들은 배정받은 책상으로 서둘러 오더니 조용히 앉아서는 수업이 시작하기를 기다린다.
"여기서 빛의 속도를 말해줄 수 있는 사람?"
아이들 열두 명이 발톱을 들어 올린다.
✎ 교사로서 인상적인 장면이다. 아이들이 있는 곳이 교사가 있어야 할 곳이라는 생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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