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버보이(팀 보울러)

홀로 남겨지는 것이 두렵다? 그래서 남겨졌다고 말할까.
끊임없이 엄지손을 움직여 문자를 보내고, 귀에는 이어폰을 꽂고, 컴퓨터와 티비를 보고, 그런 것들이 없더라도 밖은 충분히 소란스러워 홀로, 남겨진다는 느낌을 받긴 쉽지 않다.

도시를 벗어나면 먼저 폐부 깊숙히 공기를 느끼게 되고, 도시의 소음에 묻혔던 수많은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밤이 되면 내 눈이 허락하는 한 많은 별들을 마주하게 된다. 곧 내면의 나를 만나게 된다.  우린 홀로 남겨진 나와 대면하는 순간이 참으로 어색하다. 그래서 다른 방식으로 몇 마디의 문자나 무언가를 소비하면서 나를 확인하고 있다.

노쇠한 할아버지와 떠나는 마지막 휴가이자 이별 여행.
할아버지 고향으로 떠난 여행에서 할아버지는 마지막으로 리버보이라는 그림을 완성하고 싶다. 하지만 할아버지의 그림에 리버보이는 등장하지 않고 제스는 창밖에서 달빛 아래에서 리버보이를 문득문득 만나는 것 같다. 할아버지의 임종 순간 제스는 할아버지의 리버보이 처럼 강의 발원지에서 바다까지 헤엄치는 도전을 한다. 리버보이는 다름 아닌 제스에게 내재된(할아버지를 닮은) 할아버지의 또다른 모습이었던 것이다.

발원지에서 떠난 냇물이 강물이 되고 바다가 되는 과정에서 겪게되는 무수한 변화, 바다는 완성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는 우리 인생의 비유는 다소 익숙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유유히 흐르는 강물을 배경으로 호젓한 분위기가 물씬 풍겨 잔잔한 느낌도 많이 든다. 그래서 믿고 따르던 할아버지의 죽음이 제스에겐 흘러가는 강물처럼 자연스럽게 받아질 수도 있겠다.

번역을 좀더 매끄럽게 했다면, 그리고 해리포터와 대조하는 등 선전을 과하게 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독자들과 만남을 가졌다면 훨씬 많은 여운을 주리라 생각한다.


<인상 깊은 구절>


(227) "낮에 경찰이 너를 찾고 있을 때, 할아버지는 끊임없이 네 얘기를 하셨단다. 그런데 이상한 건 마지막 순간까지 걱정을 끼쳐 드리고 싶지 않아서 네가 사라졌다는 건 말하지 않았거든. 그런데 뭔가 잘못됐다는 걸 아시는 것처럼 계속 ‘제스는 걱정 마라. 그 애는 괜찮을 거다. 그 애는 괜찮을 거야.’하고 말하시는 거야. 굉장히 확신에 찬 어조로 말이야. 그 말씀이 우리에게 정말로 많은 위안이 되었단다."

제스는 창문을 향해 눈을 돌렸다. 누군가 거기에 꽃을 두고 갔다. 그 꽃이 마지막 햇살을 받아 반짝거리고 있었다. 그녀는 할아버지와 할아버지가 했다는 말을 생각했다.

그렇다, 그녀는 괜찮을 것이다. 지금은 괜찮지 않지만, 그리고 한동안은 괜찮지 않겠지만, 언젠가는 괜찮아질 것이다. 그녀는 엄마와 아빠처럼, 특히 아빠가 그렇듯이 깊은 슬픔에 잠길 것이다. 그 슬픔은 깊고, 그것이 일으키는 아픔은 클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그 슬픔을 원했다. 그것은 자연스럽고 당연했다. 이 괴팍하고 위대한 노인의 죽음이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처럼. 그리고 제스에게는 더 많은 내일이 놓여 있는 것처럼. 그녀는 할아버지가 그랬듯이 더 많은 내일을 살 것이고 더 성장할 것이다.

그리고 더 많이 헤엄쳐야 했다.

리버보이의 흔적을 좇아서.

✎ 원래 조숙한 제스였지만, 할아버지의 죽음으로 순식간에 한층 업그레이드 된 모습이다. 하지만 어떤 사람이든 죽음 앞에서는 이렇게 성장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228) "할어버지는 마지막 순간에 네 아빠를 조용히 옆으로 부르셨어." 그녀는 잠시 아빠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아빠는 여전히 생각에 잠긴 채 할아버지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직전에, 아빠에게 할 말이 있다며 귀를 가까이 대라고 하셨거든. 뭐라고 말씀하셨는지는 모르겠어. 아주 짧은 말이었다. 그런데 별안간 네 아빠가 울음을 터뜨리더구나. 고통스러운 울음은 아니었어. 할아버지께서 뭐라고 말씀하셨는지는 듣지 못했지만 알 수 있었던 건 마지막 순간에 두 사람의 마음이 통했다는 거야.”

✎ 이 소설 전체를 통틀어 가장 울컥했던 장면. 이렇게 극적으로 죽음 직전에 서로를 용서하기보다, 살아가면서 배려하고 존중하며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생각함.


리버 보이
국내도서
저자 : 팀 보울러(Tim Bowler) / 정혜영역
출판 : 다산책방 2007.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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