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모(미카엘 엔데)
- 상황별 청소년 소설 추천/관계와 갈등(가족, 친구, 학교, 사회)
- 2026. 6. 25.

학창 시절 읽었던 청소년 소설을 모임에서 다시 읽고 있다. 지난달 “데미안”에 이어 이번에는 “모모”를 읽었다. 익숙한 표지와 두께, 재미 있게 읽었던 책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다시 읽으니 처음 읽는 듯한 새로움을 주었다. 텍스트는 변하지 않았지만 텍스트를 둘러싼 환경이나 무엇보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가 달라졌기 때문에 더 새로운 것이었을까.
이야기는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에서는 경청의 힘, 이야기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제대로 된 경청은 이야기를 꺼낸 사람이 이야기를 하며 자기를 성찰할 수 있게 한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에 대한 몰입의 경험은 직접 경험에 가까운 경험을 제공하며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공동체를 더 단단하게 한다. 매년 우리 모임에서 ‘청소년 이야기 한마당’을 힘들게 열고 있는 데 나름대로 의미 있는 활동을 해 오고 있다는 격려를 느꼈다.
그러나 인간을 효율적인 측면으로 접근하며 기계의 한 부속품처럼 생각하는 현대 사회는 1부의 이야기 공동체를 비효율적인 사회로서 접근한다. 무엇보다 인간이 가장 두려워하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이용해 성공을 위해 시간을 절약할 것을 강조한다. 그 결과 인간은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현재의 삶을 지우려 하며 삶의 기준을 타인에 둔다. 회색 신사의 다그침과 모모와 호라 박사의 대화에서 내 삶의 꽃, 즉 내 시간의 꽃을 어떻게 키워 갈 것인지 고민하게 한다. 2부는 작가의 주제 의식을 문학적으로 잘 형상화한 부분이다.
3부에서는 모모가 회색 신사들이 만들고 유지한 세상에 균열을 내는 이야기이다.
2부에서 모모가 호라 박사를 찾아가 시간의 근원을 경험하는 부분부터 영화 "매트릭스"가 생각났다. 네오에게서 모모의 이미지가 겹쳐졌기 때문이다. 결국 깨달은 사람들이 노력하여 사회 곳곳에서 균열을 낼 수밖에 없다. 특히 숫자와 결과가 무엇보다 강조되는 회색 신사의 세상에서, 자신의 경험과 이야기에 적절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분위기, 또는 경험을 ‘경험하게’ 하는 게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학교에 성급하게 도입되고 있는 생성형 AI가 인간의 경험을 더 풍부하게 할 것인지, 아니면 인간의 경험을 데이터로 대체하고 결과물만 산출하는 데 더 급급하게 만들어 삶을 더욱 빈약하게 할 것인지 사회적 협의가 필요하다.
(22) 꼬마 모모는 그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재주를 갖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 주는 재주였다. 그게 무슨 특별한 재주람. 남의 말을 듣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지. 이렇게 생각하는 독자도 많으리라. 하지만 그 생각은 틀린 것이다. 진정으로 귀를 기울여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 줄 줄 아는 사람은 드물다. 더욱이 모모만큼 남의 말을 잘 들어 줄 줄 아는 사람도 없었다.
모모는 어리석은 사람이 갑자기 아주 사려 깊은 생각을 하게끔 무슨 말이나 질문을 해서가 아니었다. 모모는 가만히 앉아서 따뜻한 관심을 갖고 온 마음으로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사람을 커다랗고 까만 눈으로 말끄러미 바라보았을 뿐이다. 그러면 그 사람은 자신도 깜짝 놀랄 만큼 지혜로운 생각을 떠올리는 것이었다.
✍ 원형 경기장 공터에 살기 시작한 모모를 소개하는 부분이다. 진정한 경청은 화려한 말재주나 해결책을 제시하는 기술이 아니라 상대방을 온전히 환대하고 관심 어린 눈으로 바라봐 주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가려져 있던 타인의 내면의 지혜를 깨어나게 만들 수 있다!
(77) 시간을 재기 위해서 달력과 시계가 있지만, 그것은 그다지 의미가 없다. 사실 누구나 잘 알고 있듯이 한 시간은 한없이 계속되는 영겁과 같을 수도 있고, 한순간의 찰나와 같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 한 시간 동안 우리가 무슨 일을 겪는가에 달려 있다. 시간은 삶이며, 삶은 우리 마음속에 있는 것이니까.
✍ ‘시간의 본질’에 대한 작가의 생각이 잘 드러난 부분이다. 시간은 크로노스가 아닌 카이로스!
(94) 그러니 그 시간들이 지금 어디로 갔는지 심각하게 생각해 볼 만도 했다. 하지만 그는 시간을 아끼는 사람들이 으레 그렇듯, 그런 질문은 하지 않았다. 푸지 씨는 편집증에 걸린 사람처럼 시간을 아끼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리고 하루하루가 정말 빠르고 점점 더 빨리 흘러간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기라도 하면, 기겁해서 이를 악물고 더욱더 시간을 아껴 쓰는 것이었다.
대도시에는 어느새 푸지 씨와 같은 일을 겪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아졌다. “시간 절약”을 시작한 사람들은 날마다 늘어났다. 그들의 수가 늘수록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앞사람의 행동을 따랐다. 그러고 싶지 않은 사람도 같이 행동할 수밖에 없었다.
(130) “인생에서 중요한 건 딱 한 가지야. 뭔가를 이루고, 뭔가 중요한 인물이 되고, 뭔가를 손에 쥐는 거지. 남보다 더 많은 걸 이룬 사람, 더 중요한 인물이 된 사람, 더 많은 걸 가진 사람한테 다른 모든 것은 저절로 주어지는 거야. 이를테면 우정, 사랑, 명예 따위가 다 그렇지. 자, 넌 친구들을 사랑한다고 했지? 우리 한번 냉정하게 검토해 보자.
✍ 회색 신사들이 현대인을 노예로 만드는 메커니즘이 잘 나타나 있다. 회색 신사들은 인생에서 중요한 게 성과와 소유라며 시간 절약을 위해 시간을 계산한다. 그러나 이는 우리가 보내는 시간의 질적인 면을 크게 간과했다. 예를 들어 푸지 씨가 손님과의 잡담, 어머니와의 대화, 좋아하는 여성과의 만남, 반려동물 돌보기, 자기 전 명상 같은 시간은 푸지 씨의 삶을 행복하고 풍요롭게 해 주는 것들이다. 즉 삶의 알맹이들이다.
(218) “죽음이 뭐라는 걸 알게 되면, 사람들은 더 이상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게다. 그리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아무도 사람들의 인생을 훔칠 수 없지.” (중략) “나는 사람들에게 시간을 나누어 주며 매 시간마다 진실을 말해 주지. 허나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 것 같아 걱정이란다. 사람들은 오히려 두려움을 불어 넣는 자들을 더 믿고 싶은 모양이야.”
✍ 작가의 실존주의적 철학이 잘 드러난 부분이다. 인간의 유한성에 대한 공포와 불안으로 결과만 좇기보다 인간의 유한성을 깨닫고 매 순간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말이다. 실존주의를 대표하는 세 단어가 떠올랐다.
(1)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 삶의 유한성을 깨닫고 미래에 대한 불안과 공포에서 벗어나자.
(2) 카르페 디엠(Carpe Diem): 오늘을 즐겨라. 인간은 유한하니 ‘지금 이 순간, 현재의 삶’에 최선을 다하자.
(3) 아모르 파티(Amor Fati): 네 운명을 사랑하라. 오늘의 삶에 최선을 다해도 인간에게는 슬픔, 고통, 죽음이 올 수 있다. 그것들을 온전히 긍정하며 하나뿐인 내 삶의 운명을 사랑하자.
(223) 모모는 이 소리나는 빛이 제가끔 다른 꽃들, 똑같은 모습이 다시는 없는, 단 하나뿐인 모양의 꽃들을 어두운 물 속 깊은 곳에서 불러 내어 꽃봉오리를 피어나게 한다는 것을 어렴풋이 짐작했다. 오래오래 귀를 기울일수록 모모는 낱낱의 소리를 또렷하게 구분할 수 있었다. (중략) 일찍이 들어 본 적은 없었지만, 모두 이해할 수 있는 언어의 낱말들이었다. 해와 달, 유성과 별들이 제 진짜 이름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 이름들에는 해와 달과 유성과 별들이 무엇을 하며, 어떻게 함께 영향을 미쳐 시간의 꽃 한 송이 한 송이를 탄생시키고 다시 소멸시키는지, 그 비밀이 담겨 있었다.
모모는 문득 이 모든 말이 자기를 향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가장 먼 곳에 있는 별을 비롯해 온 세상이, 엄청나게 커다란 단 하나뿐인 얼굴을 모모에게 돌리고 모모를 바라보며 말을 걸고 있었다!
✍ 시간의 본질은 살아 있는 유기체(=꽃)와 같다. 즉 회색 신사들이 퉁쳐서 계산할 수 있는 무기질의 시간이 아닌, 각각이 고유한 특성과 이름을 갖는 ‘삶’이다.
(328) “처음에는 거의 눈치를 채지 못해. 허나 어느 날 갑자기 아무것도 하고 싶은 의욕이 없어지지. 어떤 것에도 흥미를 느낄 수 없지. 한 마디로 몹시 지루한 게야. 허나 이런 증상은 사라지기는커녕 점점 더 커지게 마련이란다. 하루하루, 한 주일 한 주일이 지나면서 점점 악화되는 게지. 그러면 그 사람은 차츰 기분이 언짢아지고, 가슴 속이 텅 빈 것 같고, 스스로와 이 세상에 대해 불만을 느끼게 된단다. 그 다음에는 그런 감정마저 서서히 사라져 결국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하게 되지. 무관심해지고, 잿빛이 되는 게야. 온 세상이 낯설게 느껴지고, 자기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것 같아지는 게지. (중략) 그 사람은 공허한 잿빛 얼굴을 하고 바삐 돌아다니게 되지. 회색 신사와 똑같아진단다. 그래, 그들 중의 하나가 되지. 그 병의 이름은 ‘견딜 수 없는 지루함’ 이란다.
✍ 효율성에 쫓겨 과정 또는 경험하지 못하고 결과물만 탐닉하는 인간의 모습을 설명하는 부분이다. 지금도 학교에서 배우는 상당수의 내용이 삶과 거리가 있는 정제된 지식이다. 그나마 수행평가나 협력 활동을 통해 그 간격을 메우기 위해 노력해 왔지만, 이제 생성형 AI가 본격적으로 활용되며 과정 자체를 제거해 버리고 있다. 배우는 과정을 경험해야 할 우리 학생들이 이미 배움에서 ‘견딜 수 없는 지루함’을 더 많이 내재해 가고 있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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