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문경민)

 

나는 복어를 읽고 작가님의 최근 책인 “브릿지”까지 마저 읽었다. 역시 첫 만남은 윌라 오디오북이다. 20251월 최신작인데 호응이 많다. 이어 책으로 다시 읽었다.

 

제목과 표지에서 첼로 관련 이야기임을 짐작할 수 있다. ‘브릿지’는 줄과 앞판 사이에 있으면서 줄에서 나는 소리를 몸통으로 연결해 주는 도구라고 한다. 고정돼 있는 게 아니라 줄의 장력에 끼워져 있어 넘어지거나 부러질 수 있는 도구다. 주인공과 음악과의 관계를 나타내는 상징으로 보인다.

 

주인공 인혜는 예술고 첼로 전공 학생이다. 특목고라는 좁은 문을 힘들게 열었지만 프로 연주자로 가는 길은 더욱 거칠고도 좁다. 음악 2반의 첼로 전공 학생은 6, 벌써 1명은 부담으로 자퇴했다. 음악이 좋아 시작했지만 음악에 집중할수록 음악이라는 깊은 터널 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다는 인혜의 말은, 진로가 명확한 예술고와 예능 계열 학생들의 고민을 공감이 가도록 잘 그려낸다.

 

그래도 인혜가 이 생활을 버틸 수 있는 건 자신을 지지해 주는 할머니와 가족 그리고 음악이었다. 음악에 집중하기 위해 친구들에게서는 스스로 멀어졌다. 그럼에도 첼로에 대한 확신은 점점 옅어진다. 그런 상황에서 할머니가 갑작스럽게 돌아가시고, 음악에 눈을 뜨게 해 주었지만 부정적인 피드백으로 연주자로서의 한계를 매번 느끼게 해 주었던 선생님의 지도를 다시 받아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

 

같은 첼로 전공이면서 반도네온이란 악기를 배우는 대호, 자신보다 뛰어나면서도 자기만큼 노력하는 수연, 진로를 좌우하는 실기 평가에 부정이 있었다는 소문, 그러나 진실을 알아 갈수록 할머니의 새로운 모습을 알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아픔은, 충분히 슬픔의 시간을 보내야 서운하고 미안했던 감정들을 풀어내고 마음속 깊이 더욱 든든한 존재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이 소설에서 할머니는 홀로 국수집을 운영하며 아들을 키워냈고, 가게를 아들에게 물려준 이후에는 좋아했던 음악을 적극적으로 배우고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눈다. 특히 어른으로서 절망감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의 손을 잡아 끌어주는 역할이 인상적이다. 할머니, 할아버지의 지혜와 연륜이 청장년과 청소년들의 삶과 잘 연결되었으면 좋겠다.

 

좋아하는 음악을 계속하기 위해 다양한 도전을 하는 예술고 아이들의 고민, 인혜 동생 동우처럼 미래에 눌려 머리로만 인생의 어려움을 생각하는 모습, 사무관이라는 안정된 직위를 그만두고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새로운 도전을 하는 아빠, 평생을 한 가지 일에 몰두한 사람의 모습 등 인생의 순간 순간이 성장의 시간이라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된다.

 

소설도 재미 있었지만 작가의 말도 인상적이었다. 음악을 사랑했던 어머니에 대한 경험, 첼로 전공 제자와의 만남, 작가로서 글쓰기의 어려움을 너머 이제 좀 더 소설을 여유 있게 쓸 수 있게 되었다는 작가의 마음이 이 소설에서 느껴졌다. 전업 작가로서 글쓰기의 어려움, 그러나 한 고비를 넘었다는 평온한 마음이 이 소설에서도 느껴졌다.

 

 

음악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기에 언급된 곡들을 들으며 소설을 읽는 재미도 있다.

-재클린의 눈물 https://youtu.be/Yv9Fbzx6kVE?si=30LF3UwzXFt6tdBJ

-리베르탱고, 반도네온 연주 https://youtu.be/0MQm4xGsZVU?si=qJDLfOfTvBPB9Yit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1번 프렐류드 https://youtu.be/vReNlObcnxI?si=gSuXD4jXUf-h9VzQ

 

이 책을 읽다보니, 진로를 미술로 선택한 고2 학생의 이야기 "챌린지 블루(이희영)"가 떠올랐다.

 

(191) “할머니는 자기 자신을 사랑해요?”
피폐한 마음에서 느닷없이 튀어나온 말이었다.
어렵지.”
룸 미러에 비친 할머니의 눈빛은 고요했다.
딱하고, 한심하고...... 장하긴 해. 그렇다고 사랑스러운지는 모르겠네.”
인혜와 할머니 사이에 정적이 흘렀다. 신호등 앞에서 차를 멈춘 할머니는 말을 이어 갔다. 사랑하는 게 어렵지만 그래도 해 보려고 한다고. 사랑스러워야만 사랑하는 건 아니라고. 사랑은 의지이고 결심이기도 하다고.

(194) 쩍쩍 갈라졌던 스산한 영혼에 온기와 물기가 돌았다. 이제는 새로운 싹을 틔울 수 있을 것 같았다. 할머니의 삶을 닮아 가고 싶었다. 자기 일을 사랑하고 주변을 돌아보고 누군가에게 중요한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었다. 편한 삶보다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싶었다. 원치 않는 결과가 나와도 다시 일어서는 강인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살고 싶었다. (중략) 한 번뿐인 생을 하나의 일에 쏟아부은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경외감이 가슴으로부터 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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