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공장(이진)
- 상황별 청소년 소설 추천/내면의 문제로 고민할 때
- 2024. 5. 5.
물꼬방 책 목록을 살펴보다 '진로' 관련 목록에서 "원더랜드 대모험", "아르주만드 뷰티살롱" 이진 작가님의 작품을 발견했다. 책 소개 내용이 흥미로워 읽기 시작했다.
경기도와 강원도의 경계, 군인들이 많고, 불량스러운 고등학생이 군인을 폭행했던 일도 있었다는 구절을 보면 강원도 양구쯤 될 것 같은 시골. 변하지 않는 산천처럼 자신들의 삶도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하던 아이들이 우연찮게 비어 있는 공간을 발견하고 아지트를 만들었다가 친구들, 그리고 외지 사람들이 찾는 카페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 흥미롭다. 그래서 읽다 보면, 창업 매뉴얼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러나 세상의 일이 사람의 뜻대로 진행되지 않고 돈에 호되게 당하지만 그 과정에서 자신의 진로를 발견한다. 그리고 노력한다.
자유학기제의 취지가 그런 것인데 거대 학교 규모, 새로운 택지지구 개발로 인한 지역공동체의 소멸, 승자독식의 입시 경쟁에서 실제 다양한 삶을 체험할 기회가 부족해 비현실적인 교육과정으로 폄훼되는 게 안타깝다.
그래도 웰빙과 힐링을 추구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산업화 과정에서 소외되었거나 불필요하게 여겨졌던 것들이 SNS를 통해 재조명되는 것이 인상적이다. 이런 분위기는 계속 유지되지 않을까.
<인상적인 구절>
(33) 서울의 멋진 카페도, 맥도날드의 신상 버거도 마찬가지다. 막상 가 보면 기대하고 상상했던 것에 못 미쳤다. 찾아가는 길이 너무 멀어서일까? 하지만 집에 돌아가면 분명히 다시 가고 싶어 안달이 날 게 빤했다. 실제로는 별것도 아닌데 지나치게 먼 거리 때문에 괜스레 간절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거리감은 환상을 부추긴다. 아무도 가 본 적 없는 우주 저편 어딘가에는 지구인보다 훨씬 우월한 문명을 건설한 외계인이 살고 있을 거라는 믿음처럼. 그런 환상은 가슴을 뛰게 만들지만 한편으로 불공평했다.
✎ 여행을 다니는 단적인 이유다. 낯섦 속에서 느껴지는 익숙한 것들의 긴장과 새로움이 실제보다 큰 감정을 낳는다. 예술작품도 그렇다.
(171) 카페 공장이 문을 연 지 석 달째 되는 날 인스타그램 팔로워 천 명을 넘겼다. 팔로워가 많아진 인스타그램에는 툭하면 스팸 댓글이 달렸다. 스패머들의 종류도 다채로워졌다. 카페 전문 인테리어 시공 업체, 카페 전문 베이커리 납품 업체, 식자재와 일회용품 도매상 플랫폼, 3개월 기장 무료 혜택을 제공하는 세무사 연결 사이트, 이미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사장들에게 카페 영업 지식을 가르치는 학교까지 있었다. 아이들은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카페와 관련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워했다.
(176) 어른들이 정론을 펼치면 받아칠 재간이 없어서 더욱 분하다. 거짓말을 해도 야단을 맞고 사실을 말해도 야단을 맞는다면 사실을 있는 그대로 털어놓는 편이 가장 낫다는 걸 영진도 알고 있지만 마음으로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아이들은 어른들 앞에서 자꾸 거짓말을 한다. 으르대고 다그치기만 하면 아이들이 진실을 말하기는 더욱 어려워진다는 걸 어른들만 모른다.
(196) 카페 공장 덕분에 새로운 일, 예측할 수 없는 내일이 다가오는 짜릿함을 느낄 수 있었다고.
일상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싫었다. 지금까지는 찍어 낸 듯 변함없는 하루하루를 당연히 여기며 살아왔지만 이제는 달라졌다. 카페 공장 덕분에 어제와는 전혀 다른 오늘, 예측할 수 없는 내일이 다가온다는 게 얼마나 짜릿한 일인지 알아 버렸으니까. 매일 카페 문을 열고 새 손님을 맞고 인스타그램에 접속할 때마다 오늘은 또 무슨 일이 일어날까 가슴이 뛰었다. 불안할 때도 있었지만 그만큼 재미있었다. 이제 와서 평범한 날들로 되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숨이 막혔다.
(212) 카페 공장에서의 경험은 모두의 진로에 알게 모르게 영향을 미쳤다. 커피 회사에서 일하는 정이, 경영대학에 들어간 영진,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 재수를 결심한 민서, 제빵사로 일하며 프랑스 유학비를 모으는 나혜. 네 아이들의 삶은 제각각이지만 마음 속에는 늘 카페 공장이 있었다.
✎ 4명이 카페를 운영하면서, 나혜는 디저트 음식을 만들기 시작하며 셰프를 경험하고, 정이는 바리스타가 되었으며, 민서는 간판이나 메뉴판을 디자인하고 예쁜 카드를 만들어 판매했으며, 영진이는 현금 및 계좌이체로 받는 돈을 정리하기 위해 엑셀을 스스로 배웠다. 이런 경험들이 진로에 큰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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