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범(김별아)


국제교류학습 인솔 교사로 상해에 있는 자매학교와 상해, 항주를 둘러보게 되었다.
여느 해보다 국어교사모임 일정이 촘촘하게 잡혀 있어 인솔 교사로 참가하기 어렵다고 교장선생님께 말씀드렸지만, 학생지도의 연장이고 마음을 써 주시는 걸 아는 까닭에 준비 없이 떠나기로 결정했다.
마음의 부담이 덜했던 건, 아이들 수도 많지 않고, 두 차례 비슷한 일정을 다녀온 적이 있고,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여행이라 일정이 여유 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여행 전날 짐을 챙기며, 상해임시정부 방문이 마지막 일정임을 떠올리고  아내가 얼마 전에 구입한 김별아의 "백범"을 챙겼다.

사실 지금까지도 "백범 일지"를 읽지 못했다. 부담없이 읽으려고 문고판을 사 두었는데, 게으름으로 지금까지 손대지 못하다 결국엔 서재에서 찾지도 못하고 있다. 게다가 중국 현지에서 일정이 바뀌어 책 한 장 넘기기도 전에 다시 임시정부를 방문하였고, 아는 것이 없어 보아 넘기고 말았다. 여행 중, 책을 자주 펼쳤지만 머리에 잘 들어오지 않아, 결국 집에서 완독 했다.

책 "백범"은 일제치하 독립운동을 주도하면서 광복의 기쁨을 맞았지만. 임시정부 수반이 아닌, 개인 자격으로 미수송기를 타고 귀국하는 김구 선생과 일행의 슬픈 이야기가 담겨 있다. 현재에서 과거로, 과거 이야기 안에서 또 다른 과거로, 거슬림의 연속이었지만 그만큼 독립운동가들의 고민을 다양하게 느낄 수 있었다.

식민지 35년은 너무 길었다. 식민지 상황의 임시 정부는 저항과 부역으로 인한 좌절의 역사이기도 하지만, 다양한 이데올로기로 독립의 힘이 분산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김구 선생이 생각한  '대한민국'은 모든 사람이 자유와 평화와 사랑의 문화국이며, 당대를 넘어선 뛰어난 깨달음이기에 고달플 수밖에 없었다. 
세상은 급격하게 변하지 않는다. 10년 동안 쌓아온 민주화는 단 2년 만에 죽었다. 모든 사람이 자유와 평화와 사랑의 문화국은 지금도 목표로 삼아야 할 대한민국의 모습이다.

작가는 분노보다 슬픔이 부드러우면서 질긴 감정이라고 했다. 그래서 제목을 모두 슬픔의 다양한 감정과 연결했다. 우리에게도 분노보다는 슬픔을 곱씹으며 자기반성과 함께 지치지 않는 열정으로 세상을 만나야 한다. 김구 선생은 지금까지 읽었던 소설과 평전 속의 어떤 인물보다 현실을 냉정하게 판단하며 신념을 지켜간 사람이었다.

상민도 아닌 상놈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불합리하고 불평등한 세상의 시작이다. 평등하게 살고자 응시했던 과거시험은 온갖 조작과 비리의 장이었다. 세상을 바꿔야 한다. 그래서 동학의 소접주로 참여했다. 자신만 생각하는 통치자는 주권을 포기했다. 그래서 신민회로, 타국에서 임시정부 요인으로 참여했다. 그사이 스스로 자진할 만큼 고문을 당했다. 나를 알고 적을 알게 되었다. 열강으로부터 조선을 인정받고 민족적 자존을 회복하기 위해 테러의 배후가 되었다. 광복군을 조직해 진격 작전을 펼쳐 망명 정부와 식민지 현실을 알리고자 했다. 윤봉길, 이봉창 의사와 같은 대의를 위해 의인들을 떠나보내야 했던 그는 더 철저하게 살며 배울 수밖에 없었다.
자유와 사랑과 평화의 문화로 넘치는 자유로운 나라,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중국 대륙을 쫓기며 돌아다녔지만 해방 후 임시정부의 존재도 인정받지 못한 채 개인적인 자격으로 1945년 11월 대한민국에 도착했다.
그리고 지금도 우리는 김구 선생이 그리는 자유와 사랑과 평화의 문화로 넘치는 대한민국을 함께 꿈꾸고 있다.

 

(29) 자신을 믿지 못하는 마음으로부터 미신이 싹튼다. 제웅보다 더한 우상은 제 운명을 타인의 손에 던져 넣는 체념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만 돕는다.

(68) 왕과 그 일가가 지배하는 시대는 저물고 인민이 나라와 자기 운명의 주인인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하지만 새로운 시대, 새로운 세상은 저절로 오지 않는다. 아름다울수록 더 많은 피를 원했다. 자유와 평등, 민권의 이름은 그토록 붉었다. 나는 가진 것이 없기에 나 자신을 던지기로 하였다.

(83) 조선 사람 열에 아홉이 낫 놓고 기역 자 모르는 까막눈이던 시절이었다. 그러니 사서삼경에도 없는 '독립'이라는 말은 위험하고 불온하게만 취급되었다. 태어나면서부터 자식은 부모의 것이고, 백성은 나라의 것이고, 사람은 모두 삼강오륜의 노예였다. 누구도 홀로 선 인간으로 당당할 수 없었다. 나라가 독립하기 전에 한 사람 한 사람이 독립해야 한다. 그리고 독립하기 위해서는 배워야 한다. 암흑을 떨치고 빛 속에 우뚝 서야 한다.

(212) 정부에 몸담은 지도 십여 년이 지났으니 말하자면 나는 정치인이다. 하지만 언제나 정치의 현장 한가운데 있었나의 나의 행동은 정치적이지 않았다. 내게 정치이념이 있다면 그것은 자유, 사랑과 평화의 문화로 넘치는 자유의 나라를 세우는 것뿐이다.
그리고 세상을 살아가는 힘과 함께, 지금 내 상황에도 맞는 조언도 있다. 내 자식을 그대로 받아들이자. 부모 욕심 속에 나와 자식을 홀로 서게 해야 한다.

(53) 아버지는 못나도 탈이고 잘나도 탓이다. 못나면 아들의 경멸과 질시의 대상이 되고, 잘나면 부담과 열등감으로 분노의 표적이 된다. 아들은 아버지와 닮아도 탈이고 닮지 않아도 탈이다. 태종임금은 자기와 꼭 닮은 양녕대군을 참지 못했고, 영조임금은 자신과 정반대의 성격인 사도세자를 사사건건 들볶았다. 너무 많이 기대하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자신, 분신인 양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니 자기가 했던 것은 다 해야 하고, 자기가 못했던 것까지 모두 이루어야 한다. 잔소리와 지청구가 끊이지 않는다. 너무 사랑하다 보니 끔찍하게 미워하게 된다. 분신은커녕 완벽하게 다른 사람이 되어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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