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시간을 빼앗은 사람에게 미래는 없다.”(265) 묵직한 말이다. 작게는 시간 약속에서, 크게는 일제의 식민 통치가 우리 국민들에게 빼앗은 것이 단 한 번뿐인 시간이라고 생각하니 훨씬 실감난다. 단 한 번뿐이기에 우리에게 더없이 소중한 게 시간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계획하고, 선택하고, 노력하고, 아쉬워한다. 이 책에는 타인의 시간을 빼앗는 두 시대의 폭력이 ‘타임 슬립’을 통해 이어진다. 먼저 현재의 ‘햇귀’는 겉으로는 모범생처럼 행동하지만, 햇귀에게만 온갖 폭력을 휘두르는 태후의 학교폭력에 시달린다. 또 일제시대의 ‘수인’은 넉넉한 가정에서 가수를 꿈꾸며 행복하고 살고 있었으나 일본 경찰과 앞잡이의 계략에 가세가 기울고 아버지가 옥고를 치르며 일본 경찰의 가정부로 산다. 그러고도 정신대에 ..
진짜 감정, 책의 힘, 이해하려는 노력의 중요성을 생각해 보게 한다. 주인공 ‘윤재’는 ‘감정’을 느낄 수 없어 오히려 진짜 자기의 감정을 드러낼 수 있고, 격한 감정 속에 자신을 내맡기는 ‘곤이’를 이해할 수 있다. 이야기를 듣다 보면 생존을 위해 필수적인 ‘감정’이 사회화를 통해 인위적으로 만들어 진다는 느낌도 든다. 결국 ‘이해’와 ‘사랑’이 중요하다. 감정을 느끼지 못한 ‘윤재’도 할머니와 엄마의 사랑을 통해, 자기만의 속도로 성장하고 있으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아버지에 대한 반발심이 더 커진 ‘곤이’도 성장하기 때문이다. 갈수록 특별한 개인이 많아져 이해하기 어려운 사회를 유지해 가는 힘도 결국 이해와 사랑이다. 하지만 어떤 사람에 대해 편견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가..
“기필코 서바이벌” 제목처럼 절박하다. 누명을 쓰고 ‘전따’를 당하고 있는 상황이니. 그러나 제목처럼 기필코 살아남는다. 긍정적이고 해결방안도 있다. 주인공 서란이는 왕따 상황에서 정면 충돌, 무시, 못들은 척, 선생님께 말하기, 비행기로 항의하기 등 다양한 방법을 사용해 본다. 그러나 누명을 쓰고 당하는 왕따 문제는 쉽게 풀리지 않는다. 문제를 찾아가며 만난 '기억의 창고'라는 사이트의 도움을 받으며 강한 내면의 힘으로 결국 문제를 해결해 나간다. 책을 읽으며, 여러 가지 이유로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홀로 있는 아이들도 친구를 원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또 히키코모리 수림이가 코스프레 등 자신이 관심 있고 좋아하는 일이 나오자 사람들과 소통하려는 모습도 이해된다. 교사로서 주인공 서란이처럼 도..
“지난 일을 모르면 앞일도 잘 해낼 수 없다. 자기 종족이 어디서 왔는지를 모르면 어디로 가야 될지도 모르는 법.” 바로 에서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작은 나무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이다. 체로키족이 겪었던 아픈 역사를 기억하고 그런 불행한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하려는 한 인디언의 작은 노력인 셈이다. 또한 우리들에게 “과거를 알아둬라”라고 똑똑히 말해준다. 아무 걱정 없이 자본주의의 풍요 속에서 살아갈 것 같은 요즈음 아이들이 아버지 세대의 아픈 과거를 알아가며 겪게되는 갈등과 화해의 이야기가 바로 인 것이다. 이 책은 몇 가지 점에서 눈길을 끌고 있다. 먼저 5․18광주민중항쟁과 같은 묵직한 주제를 담고 있다는 점, 무엇보다 이렇게 무거운 주제를 동화라는 형식에 담고 있다는 점이 가장 독특하다. 기성 작..
깔깔대고 웃다가, 뒤로 갈수록 페이소스가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제목 때문인지, 아니면 표지 때문인지 가볍게 읽을 만한 성장소설로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오히려 작가는 그런 점을 처음부터 의도했는지, 갈수록 묵직해지는 삶의 무게에 나도 또한 어깨가 무거워지는 듯했다. 초반에는 네 소년의 우정을 그린 "포틴(4teen)"이 떠올랐다. "얼음이 빛나는 순간"처럼 여행식 구조를 통한 과거 회상식 구성과, "날아라 로켓파크"처럼 성공과 실패를 거듭하며 성장하는 긴 호흡을 닮아 있었다. 성장한 후에 청소년 시절을 바라보는 구조로 돼 있어서, 아이들에게 막상 권하는 게 주춤해진다. 그리고 80, 90년대 정서와 코드를 과연 아이들이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기도 한다. 재미있고, 기발하고, 익살스러운 ..
작가의 "구덩이"를 읽으며 이야기를 엮어가는 작가의 입담에 경탄한 적이 있었다.이 이야기도 관계없이 보이는 또래 관계, 집단 따돌림의 문제와 과학기술의 문제를 잘 엮어 긴장감 있게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다. 실은 이 이야기처럼 세상에 '인연'으로 연결되지 않은 것은 없을 것이다. 주변의 좁은 세계에서는 직접적인 관계가 문제가 될 것이고, 세상의 넓은 세계에서는 간접적인 관계가 문제가 될 확률이 더 클 것이다. 여하튼 직접적인 인간관계의 문제는 개인의 의지가 크게 작동한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나를 인정하는 것이 최선이다. 방관자들이 적절히 개입하도록, 또 학교가 접근할 수도 있지만 결국 문제는 당사자가 풀어가야할 것이다. 따돌림을 극복해 간다는 측면에서 "깃털이 전해 준 선물"이 떠올랐다. (157) 앤..
이렇게 여운을 길게 남기는 책인 줄 몰랐다. 광주항쟁에 온 몸을 던진 사람들의 이야기가 현실감 있게 다가왔다. 그 현실감 속에는 작가 한강의 가사(家事)와 연결되는 부분이 있어 더해졌다는 생각도 든다. 여러 가지 이유로 광주항쟁은 이해하기(받아들이기?) 어려운 역사적 사건이 된 것 같다. 관련자들 상당수가 생존해 있고, 과거와 현재, 미래 권력과도 연결이 되고 있어 끊임없이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오히려 논란의 역사 속에서 광주 항쟁의 정신도 계속 현재화 되고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이런 상황에서 이 책은 좀 더 정적으로 광주항쟁을 바라보게 했다. 슬펐다. 퇴근하는 버스 안에서까지 붙잡았던 감정은 마지막 부분, 소년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흔들리고 말았다. 평범한 드라마에도 금방 동화되는 40대의 ..
내용, 문장의 전개가 깔끔하다. ‘늘 같은 상태’의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 적확한 단어를 사용하려는 인물들 덕분에 그렇게 느껴진다. 이런 것들이 이야기를 더 낯설게 한다. 미래 어느 시기에, 인류는 ‘경험’을 통해 일어날 수 있는 모든 변수를 제거한 ‘늘 같은 상태’를 만든다. 신생아 수도, 직업도, 마을도, 자연 상태도 변수가 있어선 안 되며, 몇 번의 실수를 더 하거나 기준에 맞지 않으면 즉각 ‘임무 해제’를 통해 제거한다. 그래도 혹시나 있을 변수를 대비해 ‘기억 보유자’를 둔다. 그가 임무를 해제할 즈음에 새로운 기억 보유자를 뽑아 기억을 전달하도록 한다.새로운 기억 보유자인 ‘조너스’는 기억을 전달받는 과정에서, 형용할 수 없는 감정들-사랑, 행복, 외로움과 같은 것들을 경험하고, 선택할 수 없..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는 듣기가 불편하다. 식민지 상황에 좋은 일이 어찌 있을수 있겠나. 사는 것 자체만으로도 고달픈 기층민, 독립운동가들에게 고통의 무게가 더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그런데 무등도서관 문학실에서 책을 고르다, 명혜를 쓴 작가의 이름에 이끌려 이 책을 든 뒤로 손을 놓기가 어려웠다. 이야기속 인물들의 삶 속에서 지금도 공감되는 당대성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일제강점기의 모순들이 현재까지도 이어져 있다는 것, 아직도 친일부역을 미화하거나 감추려는 시도들이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는 것, 무엇보다 사회적으로 반상의 차별이 돈으로 대체되어 신분제가 유지되고 있으며, 오히려 양극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물질적으로, 정치적으로 더 나아지기는 했지만, 시민의식의 성장이라는 눈에서 볼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