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의 아이들(이선주)
- 상황별 청소년 소설 추천/가족과 갈등할 때
- 2017. 8. 19.
수돗물을 받아 주전자에 끓인 물에 설탕 한 숟가락을 넣은 따뜻한 설탕물이 오랜 여운을 준다.
행복구, 해원동, 낙원동, 난장이.
읽다 보면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의 뒷이야기 같은 느낌이 든다.
재개발로 쫓겨난 난장이네 가족들은 대한민국의 경제발전과는 무관하게 하루하루를 견뎌내고 있거나 무기력하게 살아가고 있을 것 같다.
어른들이나 아이들이나 ‘다’ 살기 어려운 세상이다. 물론 어른들보다 아이들이 더 살기 어렵겠다는 건 상식이고.
주인공 란이는 ‘남자’, ‘여자’ 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무기력한 아빠와 가족을 떠난 엄마가 있다.
(116) 란이는 청주분식을 나오며, 그게 그렇게 힘든 건가 생각했다. 남들처럼 아침에 출근해 저녁까지 일하는 것. 한 달에 한 번씩 월급을 가져오는 것. 그리고 월급날은 삼겹살도 좀 구워 먹는 것. 고등학교 올라가는 딸에게 스마트폰 한 대 사 주는 것.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지. 그렇다면 자식을 낳는 것, 그건 쉬웠는지 말이다.
란이 아빠가 처음부터 무기력한 것은 아니었다. 5년간 다녔던 직장에서 갑자기 해고되면서, 집을 사기 위해 모은 돈을 다 쓰게 되고, 엄마는 가출하면서, 무기력해 졌다. 그래서 해고는 살인이다.
그러나 200만원짜리 패딩을 입고 다니는 클레어에게도 미래만 바라보며 현재의 삶을 저당 잡히고, 불법적인 수술로 돈을 모으며 자신처럼 자수성가하지 못한 사람을 깔보며 자식을 몰아붙이는 이기적인인 아빠와, 딸이 가출한지도 모르고 자신만 꾸미는 공주 엄마가 있다.
무기력하거나 지나치게 의욕적이거나 부모로서 자격도 없고 성찰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란이와 클레어는 서로 기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사람은 잘 바뀌지 않는다.
어른들도 그렇지만 아이들조차 이미 부모가 만들어 놓은 삶에 길들여져 자기만 바라보기 십상이다.
우리 아이들에게 다양한 경험과 성찰의 계기가 필요한 것은 혼자만의 고립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수 조건인 듯 싶다.
(154) 클레어는 자책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말이야, 내가 여태까지 양심을 지키고 살았다면 그건 내가 양심적이어서가 아니라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1학년 때 반에 체육복을 훔친 애가 있었어. 나는 그 애가 너무 싫었어. 고작 만 얼마 하는 체육복 때문에 도둑질을 했으니까. 100만 원도 아니고 10만 원도 아니고 고작 1, 2만 원 때문에 그런 짓을 한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았어. 그런데 말이야, 나는 한 번도 그런 상황에 처해 보지 않았다는 생각이 아까 그 집을 나오면서 들었어.”
클레어는 할머니의 눈빛에서 무엇을 본 것일까? 란이는 클레어의 눈을 들여다봤다. 그리고 생각했다. 한 사람을 알게 된다는 건 그 사람이 어떤 음식을 좋아하고, 어떤 음식을 좋아하고, 어떤 연예인을 좋아하는지를 알게 되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이 자신과 똑같이 상처받는 사람이라는 걸 깨닫게 되는 거라고.
란이는 클레어의 팔짱을 꼈다. 서로의 몸이 닿으니 조금 덜 추웠다.
그래서 이 책 “창밖의 아이들”은 꿈속에서 작은 연대를 시작한다.
(172) 창밖으로 아이들이 보인다. 아이들이 손을 흔든다. 자세히 보기 위해 창문을 연다. 찬 바람이 휙 들어온다. 바람결에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실려 온다.(중략)
“아이들이 한데 모여 모닥불을 피우기 시작한다. 장작이 활활 타오른다.
“왜 여기에 있어?”
누군가 묻는다.
“그러는 너는?”
“나는 고아야.”
그가 대답하자 주위에서 웅성대기 시작한다. 나도, 나도.
“우린 다 고아야.”
누군가 말한다.
“그럼 나도 고아야?”
“아마 그럴걸. 이제 어른은 존재하지 않거든.”
부자인 ‘클레어’도 빈곤층인 ‘란’이도, 불법체류자 조선족 ‘민성’이도.
처음엔 삶을 견뎌내고 있었지만, 서로의 상황을 알게되고 경험하면서 ‘살아갈 힘’을 얻게 됨.
‘창밖의 아이들’은 바람을 맞으며 현재를 겪는 아이들의 연대의 목소리이다.
또 콩이와 할머니의 연대이기도.
(190) 콩이는 최선을 다해 자라고 있었다. 조금 느릴지라도, 그게 콩이에게는 알맞은 속도일 것이다.
란이는 콩이 뒤에 누워 있는 할머니를 바라봤다. 이제 막 걷기 시작한 콩이와 다리가 아파 걷는 게 힘든 할머니가 한 공간 안에 있었다. 그러다 깨달았다. 탄생과 죽음이 대척점에 놓인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연결된 것이라는 걸. 그러니 할머니의 늙어 가는 모습을 마냥 슬퍼할 필요는 없다고.
이야기 속 상황은 심란하다.
그러나 누구도 다른 사람의 삶에 심란하다고 이야기할 자격은 없다.
난이의 눈을 통해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는 모든 이들, 어쩌면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난장이의 삶의 진정성을 이야기해 주고 있다.
(182) 란이의 눈에 할머니나, 옆집 아줌마나 청주댁은 불쌍한 사람이었다. 먹고살기 위해 찬 바람을 맞으며 하루 종일 갈비 찌꺼기를 닦아 내고, 빌딩 청소를 하고, 김밥을 싸는 모습이. 그러나 이제 알았다. 먹고살기 위해 하루하루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해내는 것만큼 대단한 일은 없다는 걸. 그들은 불쌍한 사람들이 아니라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누구에게도 열심히 사는 사람을 불쌍하게 여길 자격 같은 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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