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틀 브라더(코리 닥터로우)

 

테러방지법 통과를 반대하는 야당 의원들의 필리버스터에서 서기호 의원(정의당)이 추천했던 책이다.
제목 '리틀 브라더'는 조지 오엘의 1984에서 정보 통제를 상징했던 빅 브라더를 패러디한 것으로 보인다. 관리와 통제를 위한 빅브라더의 억압을, 주인공 마커스를 비롯한 다수의 리틀 브라더들이 풀어가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책은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한다고 했지만, 이미 많은 영화에서 인공위성과 CCTV 등으로 정보를 도청하거나 위치를 파악하는 것에 익숙해서인지 책 속의 일들이 지금도 벌어지고 있지 않을까 염려되었다.


이야기는 샌프란시스코에 테러가 벌어지고, 땡땡이치고 온오프라인 게임을 하고 있던 마커스 팀이 적으로 간주된다. 이때 적은 국토안보부의 개인정보 공개나 통제를 따르지 않는 사람들이다. 물론 적법한 절차 없이 감금한다. 여러 가지 이유로 국토안보부에 감금돼다 풀려날 시점을 놓친 사람들은 없는 죄를 만들어 영원히 격리되고 테러의 희생자로 간주된다. 그리고 테러를 이유로 일반 시민들에게 더 많은 개인정보를 요구하고, 이를 통계로 일상에서 벗어나는 행동에 대해 사전 검열을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런 일련의 과정을 테러범을 잡기 위한 불가피한 과정임을 언론과 교육기관을 통해 재생산하여, 테러를 막기 위한 개인의 불편함도 감수하게 만든다. 이제 국토안보부와 같은 정보감시기구는 시민이 아닌 정부를 위해 존재한다. 그리고 이 정부는 독재정권이 돼 간다.


그러나 시민의 자유를 위한 적절한 '통제'라는 말이 역설적인 것처럼, 민주주의의 역사는 시민의 시민을 위한 시민에 의한 정부를 만들어 오는 과정에 있다.시민을 위한다고 하지만 시민을 적으로 돌리는 정부는 그래서 부당한 권력이며 통제 수단이다. 어떤 시민에게 어떤 문제가 있다면 그 문제를 밝히는 것은 정부 기관의 역할이다. 시민 스스로 자신이 무죄임을 밝히는 것은, 정보의 양과 접근 면에서 온당하지 못하다. 정부가 온당하다면, 시민의 사생활을 보호하는 방법에서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할 것이다.


테러방지법의 내용 원문을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테러방지법의 문제를 제기하는 글을 통해, 테러방지법 이전에 테러를 방지할 효과적인 수단이 없었던 것도 아니며, 테러방지법을 통해 개인의 인권이 침해당할 우려가 많음을 확인할 수 있다. 정부는 믿으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사생활 정보를 독점했던 정부들, 그러니까 이전의 독재정권들이 그런 방식을 통해 시민의, 시민을 위한, 시민에 의한 정권이기보다는 정권 자신의 유지를 위해 노력했음을 역사적으로 확인해 왔다. 특히 남북한 대치라는 상황에서 우리는 테러나 그에 준하는 상황에, 책 속의 미국보다 더 위험한 상태로 노출되어 있기 때문에, 리틀 브라더의 승리에 대한 쾌감보다는 불안하고 우울한 현실이 겹친다.

 

책을 읽으며, 이야기에 등장하는 해킹 및 암호, 공유 시스템, 보안에 관한 내용들 중에는 이해가 잘 되지 않는 것도 있었다. 그러나 안전한 암호일수록 많은 사람에게 노출돼야 하고, 신뢰가 최선의 암호라는 것만은 알 것 같다.

 

<인상 깊은 구절>

(72) "제가 테러리스트라고 생각하는 건가요? 전 열일곱 살밖에 안 됐다고요!"
"딱 적당한 나이지. 알 카에다 영향받기 쉽고 이상주의적인 아이들을 채용하는 걸 좋아해.(중략)
"지금 일개 범죄 때문에 잡혀왔다고 착각하는 모양인데, 그 생각을 빨리 잊는 게 좋을 거야. 넌 잠재적인 적국 전투원으로 미국 정부에 억류당한 상태야. 내가 너라면 네가 적국의 전투원이 아니라고 우리를 어떻게 납득시킬지 아주 진지하게 생각해볼 거야. 상당히 진지하게. 적국의 전투원들이 들어가면 사라지는 어두운 구덩이들이 있어.(중략)
"저에게는 사생활을 보호받을 권리가 있어요. 그리고 변호사와 이야기하고 싶어요."
"얘야, 너한테는 이게 마지막 기회야. 정당한 사람은 아무것도 감추지 않아."
-온오프라인 게임에 참여하기 위해 땡땡이 친 마커스는 테러현장에 있었다는 이유로 안보국에 쥐도새도 모르게 잡혀간다. 이 논리에 따르면 누구나 적국의 전투원이 될 수 있다. 어차피 아니라는 증명을 본인이 해야하니까.
 
(82) 삶의 귀퉁이에 있는 자기만의 공간, 자기 외에는 아무도 볼 수 없는 공간이 사람을 진정으로 자유롭게 만들어준다. 그건 옷을 벗거나 대변을 누는 것처럼 사소한 일이다. 모든 사람들은 가끔 벌거숭이가 된다. 모든 사람들이 변기 위에 쪼그리고 앉아야한다. 이건 부끄럽거나 비정상적이거나 별난 짓이 아니다. 하지만 지금부터 똥덩어리를 배출할 때마다 뉴욕 타임스 스퀘어 한 가운데에 설치된 유리방에 들어가서 옷을 홀딱 벗어야 한다는 법령을 정하면 어떻게 될까. 이런 생각은 신체에 전혀 문제가 없고 이상이 없는 사람에게도-하지만 우리 중에 얼마나 많은 수가 그렇다고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완전히 터무니없는 소리로 들릴 수밖에 없다. 우리 대부분은 괴성을 질러대며 대변이 터져 나올 때까지 참을 것이다. 이건 부끄러움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사생활에 대한 문제다. 사생활은 나에게 속한 나만의 삶이다.
 
(127) "별 거 아니라고 생각해? 네가 커피 사는 거 정부가 아는 거 문제없어? 카드로 계산하면 정부는 지금 네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어. 네가 지금까지 어디에 있었는지도 알 수 있고. 내가 왜 터키 떠났는지 알아? 터키에서는 정부가 항상 사람들 감시해. 그건 나빠. 나는 자유 찾아 20년 전에 미국 왔어. 난 정부가 자유 가져가는 거 도와주지 싶지 않아."
 
(244) "읽고 싶은 글이 있는데요, 짧게 읽을게요. '이런 권리를 확보하기 위해 인류가 정부를 조직했으므로 정부의 정당한 권력은 피통치자의 동의에서 비롯한다. 또 어떤 형태의 정부든 이러한 목적을 파괴할 때에는 인민은 정부를 바꾸거나 폐지하고, 인민의 안전과 행복을 가장 효과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원리를 바탕으로 그런 형태의 권력을 조직해서 새로운 정부를 수립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338) 아빠가 돌아왔을 때는 그 어느 때보다 화난 얼굴이었다.
"나한테 말해줬어야지!" 아빠가 고함을 쳤다.
엄마가 아빠와 나 사이에 끼어들었다. "여보, 지금 비난할 사람은 얘가 아니야. 마커스는 납치당해서 협박당한 사람이잖아."
아빠는 고개를 젓더니 발을 꽝 굴렀다. "마커스를 꾸짖는 게 아냐. 누구를 비난해야 할지는 나도 정확히 알아. 나야. 나하고 멍청한 국토안보부지."
 
(441) "이 일이 그런 위험을 감수할 만큼의 가치가 있을까? 우리는 아주 오랫동안 지하에 숨어 지낼 수 있어. 언젠가는 우리나라를 되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 우린 그때까지 숨어서 기다릴 수 있어."
내가 고개를 저었다.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되찾을 수 없어. 이건 우리나라야. 놈들이 우리한테서 빼앗아간 거야. 우리를 공격했던 테러리스트들은 아직도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있어. 그런데 우린 아냐. 내 손에 자유를 쥐어줄 때까지 1년, 10년, 평생을 지하에서 보낼 수는 없어. 자유는 우리 스스로 쟁취해야 해."
리틀 브라더
국내도서
저자 : 코리 닥터로우(Cory Doctorrow) / 최세진역
출판 : 아작 2015.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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