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이름값

지난 9월 ‘동부교육청’이 ‘동부교육지원청’으로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기존의 관리·감독 기능에서 교육주체들의 교육 지원을 강화하겠다는 것인데요, 교육현장에서 교육정보부장을 맡고 있는 저에겐 ‘관리과’에서 ‘학교운영지원과’로 이름만 바뀐 공문들이 여전히 전달되고 있어, 이름만 바뀐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지켜보고 있습니다.


‘이름, 이름값’ 참 중요합니다. ‘막개발’을 ‘난개발’로, ‘사(私)영화’를 ‘민(民)영화’로, ‘조류독감’을 ‘AI’로 부르는 것은 어려운 한자어나 영어로 이름값을 알아보기 어렵게 하려는 것이고, ‘NEIS’를 ‘나이스’로 ‘대운하 사업’을 ‘4대강 살리기’라 이름하는 것도 어감이 좋은 말로 민중들의 눈을 가리려는 술책이라 오해할만 합니다.


학교에도 이름값 못하는 ‘이름’이 많습니다. ‘학생자치부’라는 이름은 학생 자치보다 학생 통제의 ‘생활지도부’ 이름값을 하며, ‘교육정보부’ 역시 정보화시대의 교육보다는 정보화기기 관리가 주된 일이고 맙니다. 그런 면에서 ‘교사’가 가르치는 것보다 ‘업무’에 더 많은 힘을 쏟고 있는 상황도 이름값 못하고 있고요.


현 교육감의 추석 연휴 중, 날치기 통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외국어고’도 이름값 못하기는 마찬가지 입니다. ‘외국어고’가 외국어에 특별한 능력이 있는 학생들을 모아 양성하는 곳이라기보다는 성적이 우수한 학생을 모아 특별 지원하며 심지어 교육의 평등화(평준화) 정책을 무력화하기 위한 순수하지 못한 의도를 다들 짐작할 것입니다.
학교운영의 자립으로 자율성을 얻는 ‘자율형 사립고’가 기숙사 건설비로 지급받으려 한 점, 교육의 공공성에 특혜를 부여받은 ‘자율형 공립고’도 무엇을 위한 ‘자율’인지 그 이름을 명확히 해야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름’값 제대로 해냈으면 하는 ‘이름’이 있습니다. 바로 ‘혁신학교’입니다. 이미 혁신학교를 추진하고 있는 다른 지역과 비슷한 조건으로 지원이 이루어진다고 할 때, 학급당 학생수 감축, 예산과 인력 지원, 학교평가나 일반 업무 감축 등 ‘혁신’이란 이름에 맞는 파격적인 조건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내용인데요, 혁신학교가 이번 교육감 선거에 큰 호응을 얻은 이유는 학교에 대한 끊임없는 믿음과 함께, 그러면서도 변하지 않는 학교에 대한 변화 요구가, 기존의 것을 다 뒤집어야할 만큼 거세다는 방증이라 봅니다.


그래서 지금 ‘교사’라는 이름으로 살기가 참 어렵습니다.

‘가르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 그것이 우리 교사들의 ‘이름값’인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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