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선생이다(황현산)

 

10년 전에 나온 수필(글모음들은 작가님이 신문에 기고한 칼럼이 대부분이고, 80년대, 90년대 쓰신 글도 다수임)이고, 작가는 이미 돌아가신지 오래(2018년 작고하심)인데, 아직도 울림이 큰 책이다.
아, 황현산 작가님께서 더 살아계셨다면, 혼란한 이 시대에 큰어른으로 호통을 치셨을텐데. 이제서야 작가님의 책을 읽게 된 것이 안타깝다. 무엇보다 나와 동향이라는 점, 1945년에 태어나셨고(친아버지도 해방둥이시다), 돌아가신 날이 8월8일(둘째 생일)이라는 것 등 뭔가 묘하게 작가님과 통하는 것이 많았는데... 좋은 책 읽으면서 마음에 새기고 싶은 구절들을 여기에 옮겨본다. 타이핑을 하다 보니 어쩌면 오늘날에 필요한 말씀들인지!! 슬프고 안타깝다.

*소금과 죽음
(19) 내 고향은 전라남도 신안군에 속하는 작은 섬 비금도이다. 인구가 3천이 넘는 영락없는 낙도이지만 자랑할 것이 없지 않다. 천재 소년 기사 이세돌의 고향이며, 맛이 특별한 시금치 '섬초'와 국내에서 가장 질이 좋다는 천일염 '비금소금'의 생산지이다.

*영어강의도 사회문제다
(35) 한 집단이 오래 사용해온 언어, 이를테면 모국어는 그 언어사용자들의 생활과 문화 전반에 걸쳐 측량할 수 없이 많은 경험을 축적하고 있다. 외국어에 의존하는 강의는 이 깊은 경험을 이용할 수 없다는 데도 문제가 있다. 학술활동은 연구행위와 교수행위로 나뉜다지만 강의도 연구행위의 중요한 한 부분이다. 강의하는 사람은 수업을 준비하면서 그 실마리만 붙잡았던 생각을 강의중에 학생들과 공동주체가 되어 생각하는 가운데 정리하고 발전시켜 새로운 의견을 만들어낼 때가 많다. 이것은 누구나 지니고 있는 모국어적 직관의 덕택이다.

*나는 전쟁이 무섭다
(48) 전쟁은 단순한 추상명사가 아니다. 그것은 사람들의 머리 위로 떨어지는 포탄이며, 구덩이에 파묻히는 시체 더미이며, 파괴되는 보금자리이며, 생사를 모른 채 흩어지는 가족이다. 이 5월에 강변에서 자전거를 타는 소년들은 어느 골목을 헤맬까. 지금 축제를 벌이는 젊은이들의 소식을 어느 골짜기에서 듣게 될까. 공부하고 일하고 춤추는 아이들은 어디로 갈까. 그들이 훈장을 뽐내며 돌아온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마음이 무거워져야 할 의무
(54) 영화 '시'는 흥행에 실패했다. 가슴속에 있는 시를 우리가 두려워하기 때문일까. 내 아내만 하더라도 이 영화를 보지 않았다. 상영관을 찾기 어렵고 시간대가 맞지 않아서라고 하지만, 실은 영화를 보고 나서 마음이 무거워질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이 유례없는 경쟁사회에서 우리는 조금씩 지쳐 있다. 그렇더라도 마음이 무거워져야 할 때 그 무거운 마음을 나누어 짊어지는 것도 우리의 의무다. 엄마가 아이를 키우듯이, 나라 잃은 백성이 독립운동하듯이.

*삼학도의 비극
(57) 인문학의 위기는 오래전에 찾아왔고, 그 뒤를 이어 이공계의 위기가 걱정거리다. 따지고 보면 학문의 위기고, 대화의 위기다. 생각을 생산하는 일이 아니라 생각을 소비하는 일에만 매달릴 때 그 위기는 피할 수 없다. 삼학도의 비극은 그렇게 계속된다.

*민주주의 앞에 붙었던 말
(109) 지금 어떤 사람들이 학생들의 교과서에서 민주주의 대신 자유민주주의라는 말을 써서 민주주의에 선을 그으려 한다. 자유는 좋은 것이다. 그러나 민주주의라는 말이 이 땅에서 자유를 억압한 적은 없지만, 민주주의 앞에 붙었던 말은 민주주의도 자유도 억압했다. 이를테면 '한국적 민주주의'가 그렇다.

*폭력에 대한 관심
(115 )모든 아이들을 성적으로 줄 세우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면서도 너는 앞자리에 서야 한다고 말하는 것도 폭력이다. 의심스러운 것을 믿으라고 하는 것도 폭력이며, 세상에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살아가는 것도 폭력이다. 어떤 값을 치르더라도 폭력이 폭력인 것을 깨닫고, 깨닫게 하는 것이 학교 폭력에 대한 지속적인 처방이다.

*시대의 비천함
(124) 표절이 명백하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에도 불구하고 학위를 준 대학이 학위를 취소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대학이 아닐 것이며, 그 사람이 계속 교수로 남아 있는 대학도 대학이라고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 사람이 국회의원이 되는 나라를 상상하는 일은 더욱 고통스럽다. 우리의 삶이 아무리 비천해도 그 고통까지는 마비시키지는 못한다.

*영어 강의와 언어 통제
(125)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 부록으로 딸린 '신어의 원리'는 허구의 빅브라더가 통치하는 저 끔찍한 나라의 언어 정책에 관해 말한다. 신어는 그 나라의 공용어이며, 그 창안 목적은 그 체계에 걸맞은 세계관과 사고 습성을 표현하고, 그 국가 이념 이외의 다른 사상을 갖지 못하도록 하는 데 있다. 이 언어에서는 낱말 하나하나가 단 하나의 뜻만 갖는다. 역사적으로 형성된 모든 개념이 그것을 표현하던 낱말들과 함께 사라진다. 여러 낱말들이 하나의 낱말로 축약되어 본래의 낱말이 지니고 있던 정서적인 힘도 사라진다. (중략) 이렇게 언어가 통제되고 사상이 통제된다. 남의 일 같지 않다. 인터넷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수많은 축약어들과 갈수록 단순화하는 문장들을 보면, 저 허구의 빅 브라더가 멀리 있다고만 할 수는 없다.

*겨울의 개
(152) 개는 내내 주인을 따라가지만 언제나 주인과 같은 방향으로 걷는 것은 아니다. 사람의 꿈은 사람 속에서 피어나 사람과 동행하지만 반드시 사람과 같은 방향에 시선을 두는 것은 아니다. 이 겨울의 개는 우리가 흔히 예술이라고 부르는 것의 정신이다.

*당신의 사소한 사정
(175) 사소하다는 것은 세상의 큰 목소리들과 엄밀한 이론체계들이 미처 알지 못했거나 감안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래서 사소한 것들은 바로 그 때문에 독창적인 힘을 가질 수 있다.

*시가 무슨 소용인가
(184) 온갖 종류의 대중물과 상업물에는 '시'가 충분하게 들어 있다. 그러나 그것들은 시를 소비할 뿐 생산하지는 않는다. 시인이 제 몸을 상해가며 시를 쓴다는 것은 인간의 감정을 새로운 깊이에서 통찰한다는 것이며, 사물에 대한 새로운 감수성을 개척한다는 것이며, 그것들을 표현할 수 있는 새로운 형식과 이미지를 만든다는 것이다. 저 대중 소비적 '시'의 소구력과 성공에 비한다면, 새로운 감수성과 이미지의 생산이 목표인 본격적인 시의 수요는 거의 없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미미하다. 그러나 시가 생산한 것은 어떤 방법과 경로를 거쳐서든 대중물들 속에 흡수되고 전파된다.
   
*유행과 사물의 감수성
(191) 한국이 특별히 유행에 민감한 나라라는 것은 모든 것이 가장 빨리 낡아버리는 나라가 바로 이 나라라는 뜻도 된다. 어제 빛났던 물건이 오늘은 낡은 버전이 되어버리며, 내일 내리게 될 구매 결정이 모레는 벌써 성급한 판단이었던 것으로 증명된다.
(192) 유행에 기민한 감각은 사물에 대한 진정한 감수성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거기에는 자신의 삶을 구성하는 온갖 것들에 대한 싫증이 있을 뿐이며, 새로운 것의 번쩍거리는 빛으로 시선의 깊이를 대신하는 나태함이 있을 뿐이다. 우리가 사물을 바라보며 마음의 깊은 곳에 그 기억을 간직할 때에만 사물도 그 깊은 내면을 열어 보인다. 그래서 사물에 대한 감수성이란 자아의 내면에서 그 깊이를 끌어내는 능력이며, 그것으로 세상과 관계를 맺어 나와 세상을 함께 길들이려는 관대한 마음이다.

*윤리는 기억이다
(204) 기억이 없으면 윤리도 없다고 예술은 말한다. 예술의 윤리는 규범을 만들고 권장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순결한 날의 희망과 좌절, 그리고 새롭게 얻어낸 희망을 세세연년 잊어버리지 않게 하는 데에 있기 때문이다. 

*돌덩이의 폭력
(233) 돌에 새긴 글은 특정한 시기의 특정한 사안을 넘어 서서 모든 시대에, 다시 말해서 영원히, 그 진리성을 과시한다. 한 시대에 어떤 권력을 좌지우지하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자기 의견을 공공장소에 영원히, 그것도 토론이 가능하지 않은 형식으로, 내세울 권리는 없다. 겸손하지 않은 도덕은 그 자체가 폭력이다.

*총기 사건의 공적 시나리오와 사적 시나리오
(260) 소설가야말로 시나리오 전문가이기 때문이며, 사실과 시나리오의 접점을 그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이 해야 할 일은 사건과 직접적으로 관계가 있는 사항들은 말할 것도 없고 아무 관계가 없을 것 같은 사항들까지 들추어내고 기록하는 일이다. 우리가 시나리오에서 벗어나는 길은 시나리오를 매끄럽게 하기 위해 제외된 요소들을 제자리에 복원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어려운 글 쉬운 글
(275) 사실, 사람을 억압하는 것은 자각되지 않는 말들이고 진실과 부합되지 않는 말들이고 인습적인 말들이지, 반드시 어려운 말이 아니다. 어려운 말은 쉬워질 수 있지만, 인습적인 말은 더 인습적이 될 분이다. 진실은 어렵게 표현될 수도 있고 쉽게 표현될 수도 있다. 진실하지 않은 것도 역시 마찬가지다. 게다가 억압받는 사람들의 진실이야말로 가장 표현하기 어려운 것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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