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떠나는 날[2013 분회 참실 원고]

 

1. 응답하라, 2010!

2010. 내리 2년 동안 맡았던 학생부장에서 벗어나기 위해 맡은 업무가 교육정보부장에 3-4반 담임이었다. 그해 친목회 간사를 새로 맡았고, 2009년에 이어 분회장을 연임했으며, 광주국어교사모임 회장과 전국국어교사모임 이사도 계속 맡게 되었다. 전교조 국공립동부지회 총무도 피할 수 없어 맡았는데 결국 제대로 감당하지 못해 주변 동지들에게 피해를 준 일은 지금도 미안하다.

 

그런 상황에서 여름 방학 때 김혜주(과학) 선생님의 권유로 우리 지부 배움의 공동체연수, 9월 우리 학교에서 진행된 혁신학교연수를 들으며, 교과 차원의 교실 수업 개선이 아닌 교육활동 중심의 학교 운영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런 꿈을 꿀 수 있었던 건, 당시 분회원들의 기대와 의지가 큰 몫을 했다. 조직의 결정과 의지에 따라 어느새 나는 우리학교 혁신학교 준비위원회 간사가 되었고, 혁신학교 관련 강의, 경기도 장곡중 탐방, 관련 책을 읽고 동료들과 공유하며, 빛고을혁신학교 응모에 필요한 자료들을 준비하고 설득하는 입장혁신학교 실무자가 되었다.

 

그로부터 2013년까지 4년이 내 교육 인생의 가장 뜨거웠던 시기였다. 가장 많은 책을 읽었고 정리했으며, 가장 많은 글을 썼고,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만들고 발표회를 다니고, 가장 많은 학교 돈을 썼다. 2010년 이전까지 한 번도 공개하지 않았던 수업을 전체 나눔수업이라는 이름으로 매년 열었으며, 12일 교직원 워크숍을 매년 진행하기도 했다. 한 발은 학교(혁신학교 실무자), 한 발은 학교 밖(빛고을혁신학교 추진위원회 위원)에 두며 혁신학교가 삶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술 먹으면서도 새지 못한 밤을 여러 번 지새웠고, 가슴 뜨거운 일로 잠을 이루지 못했던 날도 많았다. 내 깜냥을 넘어선 일들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주춤하며 소통을 힘겨워하기도 했으나 동료 선생님들의 이해와 배려 덕분에 감당할 수 있었다. 처음으로 시작하는 혁신학교이기에 어쩔 수 없었다고 둘러대지만 능력 부족으로 좌충우돌했던 시기를 참아주신 동료 선생님들께 늦었지만 고마운 마음 전한다.

 

6년이나 일했던 학교를 옮기며 두려움도 적잖게 있다. 이미 학교와 아이들과 수업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졌는데, 다시 눈높이부터 맞출 일이 걱정된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이게 적응해서 될 일인지,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하는지 고민된다. 그래서 다시 혁신학교 4년을 떠올리는 것은, 1차적으로 나의 한계를 성찰하기 위한 것이었고, 2차적으로 가장 행복했던 시간을 떠올리며, 어떤 의미에서 이보다 더 어려운 상황이 와도 잘 해쳐나갈 수 있다는 희망을 간직하기 위한 것이다.

이성으로 비관하되, 의지로 낙관하라.” -안토니오 그람시.

 

2. 혁신학교? 행복학교!

우리 학교는 혁신학교 보다 더 혁신적인 학교다. 학생과의 관계도 좋고, 선생님들 사이의 관계도 좋아 근무하는데 불편이 없다. 바꿀 것이 없는데 혁신학교를 추진하려는 것은 연구학교 등으로 끊긴 지원을 이어가려는 것이다.”

-혁신학교를 추진하려는 학교의 선생님과 통화 중에서.

 

혼자서도 학급 운영 잘 할 수 있고, 수업하는 데에도 어려움이 없는데 왜 혁신학교를 해야 하느냐. 오히려 혁신학교 때문에 우리는 변화하지 않는 학교, 변화를 거부하는 교사가 돼 화가 난다. 혁신학교에 지원하는 인력이나 돈을 나눠 주면 좋겠다.”

-수능감독 때 만난 대학 동기의 말 중에서.

 

혁신학교는 교사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한다. 혁신학교가 행복하지 않다.”

-혁신학교 컨설팅, 교사 면담 중에서.

 

혁신학교가 무엇일까.

실무자를 맡아 사례 발표를 하며 혁신학교는 학생이 행복한 학교임을 상대적으로 강조했지만, 나는 교사가 행복한 학교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물론 교사가 행복할 때는 교육 본연의 업무에 전념할 수 있을 때이며, 이렇게 내면이 여유 있고 풍요로울 때 아이들에 대한 응대도 달라지기 때문에 행복학교는 혁신학교의 동의어이다.

 

우리 학교의 혁신학교 시작도, 불필요한 업무를 줄여 업무를 경감하고, 업무를 분담하여 교사가 수업이나 생활교육 등 교육활동에 집중하면서 출발했다. 그리고 그 힘들을 모아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집단지성으로 풀어내고 실천해, 결국은 학교가 민주주의를 배우고 실천하는 곳임을 지속적으로 구현하고 있다. 그래서 혁신학교 2년차 때까지 업무 경감과 분담을 고민했고, 학생들이 학교생활을 즐겁게 하도록 환경을 만들려고 했으며, 수업 나눔과 수업연구회를 통해 학생의 배움을 대해 고민하며 함께 수업을 이야기하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또 교육복지학교, 진로교실 등과 연계해 다양한 체험학습과 동아리를 운영해 자존감과 자기 효능감을 높이려고 했으며, 각 학년 담임선생님들이 공동으로 생활교육을 하며 이를 실현하는 구조를 만들었다. 그리고 평가회와 공동연수를 통해 성찰하고 소통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었다.

 

특히 작년에는 김정섭(과학) 선생님의 제안에 따라, 혁신학교 소모임을 통해 우리학교 상황에 맞는 학년별 교육과정을 구성했다. 혁신학교 운영의 장기적인 계획을 세웠다는 데에서 큰 의의가 있었으며, 혁신학교이기에 가능한 집단지성과 실천을 보여주었다.

그렇게 소모임 연구 결과를 혁신학교 2년차 평가 기간에 제안하고 그에 따라 학교 조직을 혁신하고자 했으나 지면으로 정리하기 어려운 문제가 있었다. 열망을 모아 만들어낸 제안이 여러 가지 이유로 수용되지 못하고 사실상 폐기되면서, 결국은 각자가 느낀 문제의식을 중심으로 공유하는 선생님들이 모여 풀어가는 형태가 되었다. 하지만 작년 소모임 연구 결과가 의미 있는 내용이었으므로 간단하게 스케치한다.

 

작년 혁신학교 소모임에서는 우리 학교 학생들이 자기효능감이 떨어진다는 진단 아래, 1학년은 학급·학년 단위의 체험활동을 통해 자존감 형성, 자기 효능감 신장을, 2학년은 모둠별 통합교육, 프로젝트 학습을 통해 협동심 및 사회관계력 신장을, 3학년은 개인 프로젝트 학습을 통한 자기주도적 학습력 신장을 창의적 체험활동의 학년별 특화된 교육과정으로 운영하고자 했다. 그리고 1학년부터 집중해 보기로 했지만 여러 가지 여건의 한계로 실현하지 못했다.

 

 

나 역시 2학년부장을 맡아 소모임에서 제안한 학년별 교육과정의 틀을 적용해 보고 싶었으나 여러 가지 상황의 변화를 거치면서 2학년부만 신경 쓸 수밖에 없었다. 당시 2학년 담임을 지원한 선생님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그런 어려움에 공감해 준 류향미(수학), 최혜원(과학) 선생님의 이해와 배려, 그 뒤로 이유미(영어) 선생님과 김병준(역사) 선생님이 합류해 2학년 담임을 구성하게 되었다

 

3. 즐거웠던 2013!

혁신학교 소모임의 제안도 있었지만, 우리학교 조직이 업무팀과 담임으로 나뉜 지 3년이 되면서, 학년별 운영, 즉 미니스쿨 형태로 학교가 운영되는 것은 예견된 일이었다. 결국 혁신학교는 교육행정 중심 시스템에서 교육활동 중심 시스템으로, 궁극적으로 학년별 교육과정과 수업, 평가에 집중하는 전문적 학습 공동체로 나아가게 될 것으로 생각한다.

 

미니스쿨이니 학교 운영 전반 속에서 학년 운영의 목표를 세우는 것으로 방향을 설정했다. 2학년 운영과 관련된 사항은 12일 워크숍에서 공유되었다.

 

[생활] 아이들이 공동체적 나눔(존중·배려·실천)을 배울 수 있도록 학년과 학급을 일관성 있게 운영하여 공동체적 삶을 배우는 교실 문화를 형성한다.
[배움] 삶과 앎이 통합된 교육내용과 협력적 배움을 통해, 배움의 의지와 미래 역량(협력·자율·상호작용)을 길러, 모든 아이들이 질 높은 교육을 받아 성장·발달하는 배움의 공동체를 운영한다.
[학부모] 학년 운영에 대한 충분한 안내와 학교 참여의 기회를 늘려 교사·학생·학부모 3자의 신뢰 관계를 구축하여 아이들이 잘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동반자 관계를 형성한다.
[교사] 나눔·소통·배려를 통해 2학년 지도교사 모두가 행복한 생활교육공동체를 만든다.

 

그리고 이를 위한 추진 계획은 다음과 같이 세웠다. 보는 바와 같이 학년별 연계된 특색 있는 학년교육과정을 세우지는 못했다. 한계였고, 어떻게 보면 여러 학년에서도 진행했을 심플한 학년 운영 계획을 세우고 실천한 셈이다

 

 . 생활 교육(경계 세우기+학급자치=존중과 배려의 공동체)
생활 규약 제정 및 실천
민주적인 절차를 통해 학급별로 생활 규약을 정하고 실천하여 학생 자치력을 신장함.
학년 공동의 생활 규약 제정 및 실천
[1학기] 교복 착용, 급식 질서, 악플과 따돌림 방지 교육
[2학기] 고운말 사용, 악플 방지, 실내·외화 구분 교육 *별첨1


문제 행동 수정 및 대체 프로그램 운영
문제 행동 발생시, 학년협의회를 통해 공동으로 대처.
-소녀들의 대체공격[각주:1]에 대한 공동 가정통신문 발송 *별첨2
필요시 학년생활교육협의회를 통해 문제를 공론화하여 학부모와 함께 행동을 수정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
-무단결석 학생에 대해 협의하여 학부모 동행 교육활동 이끎.
이후에도 문제 행동이 재차 발생 시 학생인권부의 생활교육 매뉴얼과 연계하여 행동 수정의 계기를 마련.
 
학급 자치 체험
자치 모둠 조직과 ‘11을 통합 운영하여 소속감 키우기
학급별 특색 있는 자치 활동 계획
-체육과 주최 학기별 학급 대항 미니체육대회, 창체부의 체험마당, 학년 공동 학급야영을 통해 자기효능감 높임.
 
. 배움의 공동체(수업+교육과정+평가혁신=배움의 공동체)
수업 나눔 및 수업 연구회
담임교사 중심으로 배움의 관계와 수업 태도 관찰하기
-수업 나눔: 3.18()~3.20()
-담임교사의 수업 시간을 열어 학생 배움 관찰하기
학교혁신부 연계, 2학년 수업나눔 및 연구회 개최, 학부모 참여 권장. 󰏉별첨3
 
학년 프로젝트 수업 운영
(1학기) 5·18 프로젝트(전체 학년, 전 교과 민주, 평화”)
(2학기) 한글날 프로젝트(전체 학년, 전 교과 소통, 민주화”)
 
아침 독서 운영
배경지식 확보를 통한 교과부진 해소, 긍정적 독서 경험 형성
아침 독서시간 확보 8:20~8:40
과목별 권장도서 제시 및 수행평가 반영
 
수학여행 운영
교과와 연계하여 프로젝트 학습으로 진행. 체험의 주제와 내용에 따라 코스를 개발하고, 학생들의 의견을 반영하여 수학여행을 진행하며, 피드백을 통해 삶과 연계된 교육활동이 가능하도록 조직.
무학급제, 4코스를 준비, 코스는 문화예술체험+실제 참여 가능 프로그램.
수학여행 진행: 63()~5()
수학여행 프로젝트 평가: 모둠별 보고서 제출 및 전체 모니터링 󰏉별첨4
 
. 공동 학급 운영을 위한 여건 만들기
공동 학급 운영을 위한 담임교사 역할 분담
1반 담임: 생활선도협의회 준비
2반 담임: 창체 프로그램 준비 및 학년 총무(학급단합대회 제안, 영화관 섭외 등)
학년부장: 수학여행 추진, 학년 가정통신문 작성
4반 담임: 업무지원팀 요청 신청서 수합 및 제출, 학급 공지사항 복사·배부
5반 담임: 학년수업연구회 준비 및 기록
 
정기적 학년협의회 시간 운영, 지원
매주 1회 이상(담임교사에게 화요일 6교시, 수요일 5교시) 협의 시간 운영
매월 1회 이상 2학년 전체 지도교사 협의 시간 운영

 

 

학년은 교육의 3주체인 교사와 학생·학부모가 명시적·잠재적 교육과정에 따라 생활과 배움이 직접 이루어지는 실천 중심의 하부조직이다. 지금까지 학급과 수업은 교사 한 사람에게 절대적인 책임을 부여해 왔기 때문에 외롭고 힘들며 기피 대상이 돼 왔다.

하지만 같은 학년을 함께 교육하고 있다는 동료성을 바탕으로, 학급과 학년 운영의 철학과 운영 방법을 공유하고 다양한 아이디어를 소통하며 나누고 받아들이며 함께 운영하다보면, 질풍노도의 시기라는 2학년도 이중으로 돌보고 교육할 수 있어 좀 더 행복한 담임 생활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4. 다시 떠나는 날

혁신학교 실무자 2년은 참 외로웠다. 항상 부담스러운 목표를 설정했고, 그것을 따라잡기 위해 아등바등했다. 힘들어서 주변 사람들과 편하게 이야기할 마음의 여유도 부족했고, 가끔은 속으로 고립되기도 했다. 그래서 내가 힘들게 감당했던 혁신학교 실무자를 맡아 똑같이 외롭고 힘들었을 이겨라, 범혜영 샘에게 전임자로서 별 도움이 되지 못했던 지난 시간이 미안하다.

 

여하튼 그러다 맡은 담임 생활은, 비록 학년부장이라는 무거운 일이었지만 함께 고민하고 의지할 수 있는 든든한 동지가 있고, 넓지 않지만 성찰할 수 있는 둥지가 있고, 비록 교원능력개발평가에서 좋은 평가를 하지는 않았지만 아침저녁으로 나를 기다리는 아들 딸 같은 자식들이 있어 좋았다. 이렇게 마음껏 활동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졌기에, 나에게 맞지 않는 놀이로 학급을 시작했고, 테마별 수학여행, 학급 야영 등 아이들과 부대끼는 학급 운영도 할 수 있었다. 공동으로 학년을 운영했기에 학년부장으로서의 부담도 크게 덜었고.

 

그래서 제대로 고마움을 표현하지 못한 동료 선생님들에게 고마움을 새기는 말로 이 글을 마칠까 한다.

먼저, 인간적인 만남을 잘 이끌어 내지 못하는 부족함을 항상 채워주시고, 아이들의 처지에서 이해하는 모습을 보여주셔서 가끔 아이들에게 폭발하는 나의 부끄러운 모습을 성찰하도록 자극을 주시는 류향미 선생님. 함께 근무한 3년 동안 수업과 교육과정 이야기를 가장 많이 나눈 협력자였으며, 다양한 방법으로 과목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며 실천하는, 수업으로 말하는 교사의 모습을 보여준 최혜원 선생님. 낯선 학교·학년 문화를 수용하기 위해 마음 써 주시고, 학교 밖에 마음을 둔 희와 짓궂은 개구쟁이들을 잘 이끌어 주시며, 수업에서는 한 명의 아이도 포기하지 않고 다양한 방법으로 배움의 끈을 놓지 않아, 작은 긍정적인 경험이라도 아이들에게 만들어 주시려는 이유미 선생님. 항상 든든한 동지로 학년의 잡다하고 궂은일에 항상 먼저 나서며, 아이들의 말을 끝까지 경청해 아이들의 입장에서 문제를 살펴보고 해결해 주는 아이들과 소통의 방법을 잘 보여주신 김병준 선생님. 모두 고맙다[각주:2]

  1. ‘대체공격’이란 용어는 레이첼 시먼의 “소녀들의 심리학”에서 나온 용어이다. 이 책에서는 소녀들의 따돌림을 ‘대체 공격’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대체 공격’은 갈등을 직접 드러낼 수 없도록 ‘사회화’된 소녀들 사이에서 은밀하게 벌어지는 폭력이다. 장기적으로 지속되는 ‘대체 공격’은 가까운 친구 사이에서 일어난다. 가해자는 피해자에 대한 집착, 소유욕이 크고 이를 위해 관계를 의도적으로 통제하고, 우정을 빌미로 조종하며 이용한다. 즉 학대한다. 피해자는 두려움, 관계 지속에 대한 희망을 우정으로 생각하며 학대와 혼동하며 그 책임을 자신에게서 찾고, 이 상황을 벗어나지 못한다. 즉 ‘대체 공격’은 ‘친밀한 적’이라는 역설적 상황에서 발생한다. 그리고 이런 경험은 어른이 되어서도 여자에 대한 불신, 상처로 남는다. 따라서 소녀들의 갈등을 드러내 놓고, 풀 수 있는 사회적 환경, 사회적 공감대가 높은 피해자들이 자책하지 않도록 대체 공격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https://danpung.tistory.com/563 [본문으로]
  2. 고마운 내 마음이 잘 전달될 수 있도록, 이 말만은 어원을 밝히고 싶었다. 옛말에 곰은 ‘고마’였다.(신증유합) 곰이야말로 경건하게 삼가서 흠모해야 할 대상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마 敬 고마 虔 고마 欽) 단군의 어머니가 곰신이었고 이는 창조신화의 뿌리샘이니까. 오늘날 진해의 옛이름이 웅신(熊神)이었음도 암시하는 바가 크다. 일본말로 곰은 ‘구마’이고 가장 큰 축제의 하나인 아이누의 구마마쓰리(熊祭)가 곰의 신성함을 더해 준다. 아이누말에서 신이 ‘가무이’인데, 우리말에서 신은 ‘검’(신자전)이었다. 조물주가 검(geom)이라고 최남선도 적고 있다. 우리말에서 검이 신임을 아는 이가 적다. 그렇게 배우지도 가르치지도 않았으니 모르는 게 이상할 건 없지만, 자기 것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 되돌아볼 필요는 있겠다. ‘고맙다’란 ‘고마에 같다’는 말이 합친 형태로 “당신의 은혜가 곰 어머니 곧 조상신과 하느님과 같다”는 뜻이 된다. ‘고맙다’야말로 겨레의 화두이고 뿌리의식을 드러낸 말이다. 어머니란 말도 고마(곰)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개연성이 높다. 정호완(대구대, 한겨레신문. 2008.4.30.)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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