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쪽 읽기 수업 돌아보기

개학하고 한 달을 보냈다.
1학기를 마치며 서운하고 답답했던, 그래서 2학기 땐 방법을 바꿔보리라 마음 먹었던 일들이 얼마나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는지 돌아본다. 

최근 몇 년 '겁없이' 수행평가로 "1000쪽 읽기"를 하고 있다.

'겁없이'라는 말은 가르치는 학생과 학부모가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평가'를, 도서실 장서만 '수 천 권'이 될 책을 검사하겠다는 수행평가이기 때문이다. 처음 이 활동을 시작할 때에는 특별한 어려움을 예상하지 못했다. 동료 국어교사들과 독서모임을 하면서 읽었던 좋은 책들을, 아이들과 함께 읽고 싶고, 그렇게 하기 위해 좀더 강제하고, 아이들과 면담하면서 관계 형성에도 도움이 되리라 장점만을 생각했다.

그렇게 여러 해를 보내면서 아이들과 많은 책을 이야기하고 많은 생각을 나누었다. 학년말 수업 평가에서 의도대로 책과 가까워졌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 가르치거나 가르쳤던 아이들이 읽을 책을 들고 다닐 때의 모습을 볼 때에는 쉬는 시간 불쑥불쑥 찾아오는 아이들과 보냈던 시간들이 보람찬 시간이라 생각되었다.

그런데 올해 1000쪽 읽기는 어려움이 많았다.
모든 문제가 그렇듯 지금 생각해 보면 어려울 수밖에 없는 이유가 복합적으로 깔려 있었다. 먼저 책읽는 습관이 잡혀 있지 않았다. 또 수업에 집중하거나 글을 쓸 때 무기력하거나 어수선한 모습이 많았다. 게다가 잡무가 많고, 특히 학생부장을 맡고 있는 처지에서 1학기 2학년 아이들과 전쟁을 치르고, 학교생활규정이나 그린마일리지제도 등 아이들의 인권과 자발성을 살리는 주무를 맡는 상황에서 이중적인 행동을 하기도 불편했다.

그렇게 활동했던 결과는 참혹했다. 
절반이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았으며, 1000쪽을 다 읽는 학생은 4분의 1정도였다. 비단 독서 영역의 수행평가 뿐만 아니라 쓰기나 말하기, 태도 모든 영역에서 최악의 성취 결과가 나왔다. 1학기 기말고사 성적마저 낮게 나와 방학을 앞두고 들뜬 마음을 가라앉힐 수밖에 없었다.

문제가 무엇일까.
함께 국어를 가르치는 짝꿍 국어선생님의 말씀도 그렇고, 우리 2학년들에겐 적어도 국어에서는 무언가 읽고 쓰고 나누는, 또는 그런 과제가 제시되었을 때 그렇게 해야한다는 문화가 없었다. 익숙하지 않으니 하지 않아도 문제될 게 없는 듯 보였다. 
1학기 수업을 마무리하면서 당시의 솔직한 마음을 풀어냈고, 독서토론반을 만들어 책 읽는 분위기도 만들고, 한 달에 한 번씩 1000쪽 읽기를 세분화하여 점검하겠다고 강조했다.

개학 후, 매만 안 들었을 뿐이지, 위협적인 이야기를 몇 번 했다. 말을 물가로 끌고 갈 수는 있으나 물을 먹게 할 수는 없다는 말을 돌려, 강제로 물을 떠 먹이겠다고까지 했다. 수단이 목적을 정당화할 수는 없겠지만, 그만큼 절박했다.

오늘이 아직까지 단 한 권도 검사 받지 않은 아이들을 도서실에 남겨 지도하는 날이다. 
여전히 4분의 1에 해당하는 60여명이 검사를 맞지 않았다. 여섯 반 중, 다섯 반은 6~7명이 남아 있는 반면, 한 반만 20여명이 읽지 않고 남아 있다. 
교사가 의지를 밝힌 이상 대부분의 학생이 어떤 식으로건 책을 읽을 것이다.
아무리 독서가 필요하다지만 이렇게 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는 것인지, 이 글을 적으면서 정당화하고 싶은 마음이 강했으나 책을 잘 읽지 못하는 아이들에게도 추천할 책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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