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인권길 걷기(2022년 5월)

우리 학교의 든든한 마을공동체 '문산온마을학교'에서는 매년 이맘 때 즈음, '마을길따라 오월인권길 걷기' 행사로 오월정신을 잇고 있다.

주위 사람들에게 문산마을에서 국립5.18민주묘지(이하 5.18묘역)까지 오월인권길을 걷는다고 했더니 다들 놀란다. 걸어서 갈 수 있는 길이 있냐고. 나 역시 궁금했다. 차를 주로 이용하고, 길찾기도 내비게이션을 주로 이용하다 보니 도통 어떻게 연결될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어떤 길인지 궁금하기도 하고, 마침 3학년부에서 현장체험학습으로 오월인권길 걷기를 문산온마을학교와 함께 진행할 예정이라 답사도 할 겸, 3학년 담임샘 3명, 참가 희망 학생 2명, 학부모 1분과 함께 참여했다.

 

오월인권길 코스는 다음과 같다.

직접 걸어보니 오월길을 잘 표현한 약도다. 문산온마을학교 김희련 대표님의 솜씨 같다.

 

8시 40분까지 출발지인 '문산마을 당산나무'에서 모이기로 했다.

그런데 '문산마을 당산나무'는 지도에서 검색이 되지 않는다. '명지아파트'를 검색해 공원을 찾거나 '느티나무 어린이공원'을 검색해야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느티나무'라는 이름에서 당산나무의 존재가 살짝 드러나기는 하지만, 전통을 잇다는 점에서 공원의 이름을 '문산마을 당산나무'로 부르는 게 더 좋을 것 같다.

가서 보니 매일 출근하면서 지나치는 도롯가 공원이었다. 지나치며 볼 때는 그리 넓어보이지 않았는데 와서 보니 마을 행사를 할 수 있을 정도로 터가 제법 넓었다. 이곳 당산나무는 느티나무로 수령이 400여 년 된다고 한다. 문산초 근처 공원에도 그루터기만 남은 400여 년 된 느티나무가 있다고 한다. 마을 분들은 여기 당산나무를 할머니 당산나무, 문산초 근처의 당산나무를 할아버지 당산나무라고 부른다. 그러니까 문흥지구로 개발되기 전까지 400여년 문산마을이 그 사이에 있었다는 것이다. 문산마을의 흔적을 거의 찾을 수 없는 지금 당산나무는 마을의 역사를 현재진행형으로 만들어 주고 있다. 현재 당산나무 앞에는 돌로된 제단이 있고, 우산각을 둘러싼 여러 그루의 느티나무가 있어 자연스럽게 마을 사람들의 일부가 되고 있다. 

 

오늘 오월길걷기에는 (청각) 장애인, 북구청소년수련관 학생, 초등학생과 중학생 등 약 120여 명이  참여했다. 출발 전, 오늘 행사의 의의-5월 21일, 5.18당시 도청 앞에서 집단발포가 있어 많은 희생자가 발생했던 날-와, 당산나무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오월 영령들에게 묵념을 하고 9시 10분 무렵 출발했다.

우리는 문흥초 5학년 학생과 담임 샘, 학부모와 함께 모둠을 이뤄 마을 활동가 두 분의 안내로 길을 걷기 시작했다.

 

문흥지구 명지아파트 앞에 문산마을 당산나무가 있다. 지도에는 '느티나무 어린이공원'으로 표시돼 있는데, 원래 지명을 그대로 살리는 게 마을의 의미를 살릴 수 있을 것 같다.
우리 학교는 문흥초 5학년 학생과 담임샘, 학부모님과 모둠을 이뤄 오월길을 함께 걸었다.
오전 일정. 출발지인 문산마을 당산나무에서 점심식사 장소인 용호마을까지(출발지~4.8km 지점까지).

호남고속도로 문흥나들목 부근에는 고속도로 완충지대에 마을길이 잘 조성돼 있다. 문흥고가를 기준으로, 문흥고가에서 오치동까지의 산책로는 '천지인 문화소통길'이라 부르고, 문흥고가에서 5.18묘역까지의 산책로는 '시민의(詩民義) 솟음길'이라 부른다. '천지인 문화소통길'은 맥문동길로도 유명한 길인데, 담양버스를 타고 집에 들어갈 때 이 길을 걸어 광주병원에서 버스를 탄다. 데크 길로 정비가 돼 걷기 좋은 길이다.

우리는 문흥고가 아래에서 '시민의 솟음길'을 따라 걸었다. 5.18묘역까지 9.2km 남았다는 이정표가 보인다.

 

'시민의 솟음길'. 여기서 5.18묘역까지 9.2km 거리.
나주교통 160번 종점까지 걸어가는 길에는 '마로니에 숲'(좌). '광주교도소'로 가는 굴다리도 보인다.(우)
160번 종점, 광신여객 차고지(왼쪽) 중간에서 오른쪽 마을길을 따라 걸어간다,(우)

 

잘 다듬어진 산책로, 마로니에 숲을 따라 1km 정도 걸으니 산책로가 끝나며 이면도로와 만난다. 길은 고가도로 아래를 지나 160번 종점, 광신여객 차고지 중간지점에서 오른쪽 마을길로 연결된다. 시멘트로 포장된 농로가 끝나는 곳에서부터  삼각산 기슭을 따라 오르막, 산길이 나타난다.

 

포장된 농로가 끝난 곳에서부터 가파른 계단길이 시작된다. 고속도로 관리를 위해 만들어 놓은 길인듯 싶다.
계단이 끝나는 곳에서 바라본 풍경. 고속도로에서 2순환도로로 연결되는 램프가 보이고 멀리 무등산이 보인다.
그래도 이 길을 찾는 사람들이 제법 많은 것 같다. 선명하게 오솔길이 남아 있다. 오솔길 좌우로 산딸기가 제법 많이 열렸다. 아이들이 쉽사리 떠나지 못한다.
첫 번째 쉼터. 오른쪽 소나무 쪽으로 '빛고을산들길'이 이어져 있다(좌), 빛고을산들길임을 알리는 이정표(우)

 

이 길에서는 동광주의 풍경이 멀리까지 보인다.

매일 동광주 나들목을 통해 문흥지구 입구에서 각화중을 들러 문흥지구로 출근하는 익숙한 도로다. 법면부에 봄이면 벚꽃이, 여름이면 목백일홍이 줄지어 아름답게 피어 있는 곳인데, 그 위에서 보는 풍경 역시 시원스럽다.

 

이렇게 낯선 풍경을 바라보며 오솔길을 지나 제법 넓은 길이 나오고 그 끝에 정자가 보인다. 이곳에는 '빛고을산들길'이라는 새로운 이정표가 눈에 보이고, 정자 오른쪽으로 숲길이 나타난다.

'빛고을산들길'은 무등산 둘레길인 '무돌길'처럼 광주 외곽을 도는 둘레길로 총 길이 81.5km, 2015년에 정비를 마쳤다고 한다. 하지만 걷는 사람이 그리 많은 것 같지 않다. 검색해 보면 구간별 정보를 다룬 기사들은 꽤 있는데, 상대적으로 평지를 걷는 남구와 서구 쪽 길이 활성화돼 있다.

 

정자를 지나면서부터는 골짜기 사이 내리막길이 쭉 이어져 있다. 곧 메타세쿼이아 숲길을 걷다 보면 '삼각제' 또는 '삼어지'라 불리는 저수지가 나타난다. 제방을 따라  두 번째 '쉼터'를 만났다.

 

사진으로 담을 수 없는, 이국적인 풍경이다. 메타세쿼이아 숲길.
메타세쿼이아 숲길에는 3년 전 수해의 흔적이 아직까지 남아 있다.
'삼어지'. 멀리 보이는 메타세쿼이아 숲길에서 제방을 따라 걷는다. 

 

이 곳 쉼터에서 다양한 나눔이 진행되고 있었다.

먼저 이 쉼터는 '청각장애 김경철 나눔터'로 운영되고 있었다. 김경철 열사는 5.18 때 계엄군의 최초 희생자였다. 김경철 열사에게 구두 제화를 배웠던 후배 분이 김경철 열사가 어떤 분이었으며 당시 어떻게 희생되었는지 차분하게 설명해 주셨다.(수어로 설명해 주셨고 이를 통역해 주신 분이 있으셨다). 김경철 열사는 여성제화 기술로 자립하며 항상 성실하게 생활했고, 젊은 나이에 잘 흔들렸던 자신을 좋은 길로 인도하셨던 선배였는데, 친척을 만나 점심 식사를 하고 돌아오던 중 계엄군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무차별적인 폭행을 당했다고 한다. 장애인임을 증서로 보여주기도 했지만 막무가내 구타로 고통스럽게 운명하신 사연을 들었다. 우리가 쉬던 정자 옆에 김경철 열사의 사모님도 자리하고 계셔서인지 그 고통이 더 선명하게 느껴졌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 책임자가 밝혀지지 않는 한 5.18은 현재진행형이다.

정자에서는 장애인 단체에서 싱싱한 오이를 간식으로 나눠 주셨고, 저수지를 배경으로 단체 사진 촬영도 해 주셨다. 많은 분들의 나눔으로 오월인권길이 채워지고 있었다. 

여기서 다음 프로그램이 있는 장등마을입구 터널까지 300m의 길은 말하지 않고 걸으며 장애체험을 했다. 분위기가 한결 차분해졌다.

 

그런데 마을교육공동체의 놀이 샘을 알아본 문흥초 학생들이 선생님을 부르며 뛰어가는 통에 분위기는 살짝 들떴다.

장등마을입구터널 앞에는 몇 가지 퀴즈가 준비돼 있었다. 먼저 종이를 뽑아 그 안에 적힌 말이 무엇인지 맞추는 퀴즈였는데, '임을 위한 행진곡' 가사임을 우리 학생들과 초등학생들도 쉽게 알아챘다. 그리고 터널 안 대형 태극기를 배경으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며 오월길의 의미를 되새겼다.

 

터널을 나오자 폭이 좁은 도로를 차와 사람이 함께 걷는 길이 용호마을까지 이어졌다. 길가 전봇대에 5.18 road'라는 이정표가 여기서부터 보인다. 함께 걸었던 문산중 샘이 80년대 대학 다닐 때 5.18묘역으로 가는 큰 도로를 막아, 이 길로 걸었다는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래서 우리에겐 현재진행형인데 우리 아이들은 어떻게 느낄까. 

 

북부순환로(도동재와 일곡지구를 잇는 외곽도로) 아래 장등마을 입구터널.
터널에서 나와 용호마을로 가는 길. '오월길' 이정표가 보인다.

 

5월에는 흰꽃이 많이 핀다. 지금의 거의 졌지만 '아카시 꽃, 이팝 꽃'이 흰색이고 지금 한창인 '찔레 꽃, 층층나무 꽃, 산딸나무 꽃'도 흰색이다. 산딸나무 꽃이 많이 피어 있는 길목에서 장등천을 따라 걷다보면 용호마을 유일한 가게인 '현대슈퍼'가 나타난다. 오월인권길에는 출발지에서 도착지까지 화장실을 이용할 공간이 없는데 이곳에서 화장실과 손을 씻을 수 있도록 배려해 주셨다. 게다가 천변 옆 원두막도 사용할 수 있게 해 주셨고.

 

다리 건너편 천막에서는 주막밥을 싸서 나눠 주셨다. 흰색 주먹밥은 오월 나눔의 공동체를 상징하고, 노란색 주먹밥은 4.16을 상징하며, 보라색은 양성평등을 상징하는 의미에서 만들었다고 한다. 인상적인 것은 그릇으로 사용하는 '뻥튀기'이다. 쓰레기를 만들지 않기 위한 의미인데 주먹밥과 그릇의 빛깔도, 맛도, 용도도 나눔의 의미를 생각해 보게 했다. 

 

오월인권길을 걸어본 사람들은 여기서부터 진정 오월길이 시작된다고 말했다. 식후 피로감에, 그늘도 없고, 비슷한 인도길을 걸어야 하기 때문에 지친다고들 한다. 그래서인지 얼린 사과쥬스를 하나씩 챙겨 주셨다.

 

우리에게 화장실과 손 씻을 물을 허용해준 고마운 수퍼(좌), 주먹밥 나눔터(우)
삼색 주먹밥과 그릇. 빛깔도 맛도 활용도도 모두 뛰어났다.
오후 일정. 용호마을에서 도착지인 5.18묘역까지(4.8km 지점~8.5km 지점까지)

용호마을에서 5.18묘역까지 이어지는 큰길까지는 사람과 차가 함께 이용하는 좁은 길이 계속되었다. 우리 모둠도 느슨해진 만큼 대열이 길어졌다. 가끔 차들이 나타나고 그럴 때마다 소리쳐 조심하도로 안내했는데 갑자기 '빵~' 소리가 들려 습관적으로 주변 사람들을 팔로 감싸기 위해 벌렸는데, 검은색 그랜저 차량이 내 팔쭉을 치고 지나갔다. 도로의 왼쪽 공간에 상대적으로 여유를 두고 사람 가까이에 붙어 주행하고, 사람을 쳤는데도 모르고, 사람들에게 경적을 울리는 것을 보니 운전이 서툰 사람 같았다. 

동행한 3학년 학생이 차 번호를 알려주었다. 일단 스마트폰에 메모했다. 아프지는 않았지만 신경이 좀 쓰였다. 나도 당황했다. 하지만 5.18묘역에 도착해서는 딱히 신경쓰이지 않았다. 3학년 체험학습을 할 때에 주의가 필요하겠다.

 

멀리 터널 뒤로 보이는 도로가 광주-담양간 국도로 퇴근길에 지나치는 곳이다(좌) 용호마을에서 주룡마을로 가는 길(우)

 

용호마을이 끝나는 곳에서 5.18묘역으로 가는 '민주로'와 만났다.

주룡마을 입구 승강장에서 생협활동하시는 분들이 아이스크림을 나눠주셨다. 주먹밥 먹을 때 받았던 얼린 사과쥬스를 방금 녹여서 다 마셨지만 아이스크림이 계속 당겼다. 여기서 횡단보를 건너 5.18묘역까지 인도를 따라 계속 걸었다.

 

5.18묘역 입구에는 광주민예총에서 준비한 '예술만장전-스스로 오월이 된 사람들'의 만장이 걸려 있었다.

오늘 행사를 주관한 문산온마을 학교의 대표님 두 분의 작품도 걸려 있었다. 처음 만나는 열사가 많았다. 이래서 기억이 중요하다. 

5.18묘역 입구
광주민예총에서 주관한 예술만장전-스스로 오월이 된 사람들
민주의문 앞(좌), 전재수 열사의 묘 앞에서(우)

 

1시 무렵 '민주의 문'에 도착했다. 예정보다 1시간 일찍 도착해 참배 시간을 변경해 1시 30분에 공동으로 참배했다.

우리 모둠 대표로 분향했다. 그런데 청소년 대표로 함께 분향한 학생이 우리 학교 3학년 학생이었다. 우리 학교에는 체험과 생태적 배움을 베풀어 주는 문산온마을학교(문산마을공동체)가 있어 마을이 배움터가 된다. 북구청소년수련관에서도 다양한 배움이 이루어진다. 여러 지역아동센터에서 방과후 돌봄과 배움이 촘촘하게 이루어진다. 교육이 학교에서만 이루어지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삶을 위한 교육', '삶을 가꾸는 교육'의 시대다. 학교는 기존의 역할과 함께 마을과 연계하여 앎과 삶을 일치해야하는 역할이 부여된 셈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 학교는 든든한 마을이 있어 큰 복이다.

 

참배 후, 1학년 학생들과 함께 읽고 있는 "저수지의 아이들"와 연결하여 원제 저수지 관련 방광범, 전재수 열사, 주남마을 관련 박현숙 열사의 묘에 참배했다. 그리고 5월 27일 도청을 지키다 희생되신 "소년이 온다"의 문재학 열사, 안종필, 박성용 열사의 묘에도 참배했다. 나오는 길에 5월 21일 기독병원에서 헌혈하고 나오다 계엄군의 총탄에 희생되신 박금희 열사의 묘에도 참배했다. 참배객들이 많았다. 해설해 주시는 분들을 따라 열사의 삶을 다시 들었다. 다행이다.

*5.18 학생 열사 관련 자료

 

2시에 '역사의 문'에서 단체별 소감을 나누며 오월인권길 행사를 마쳤다. 

마을의 역사와 오월을 체험하는 오월인권길은 여러 활동가와 단체들의 나눔과 연대로 만들어진 소중한 체험길이었다.

아이들과 함께 생활한다는 이유로 쉽게 얻은 소중한 경험이다. 그래서 기록으로 남겨 공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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