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실이 뚫렸다. 다분히 전투적인 서술이다. 과학실 화재 후, 과학 교구를 가사실로 옮겨 놓았는데, 여닫이문이라 평소에도 흔들림이 많았던 가사실 문을 누군가 파손하였다. 그리고 성냥갑이 발견되었다. 지난 번 화재로는 양이 차지 않았거나, 채우지 못한 욕구를 풀 장소로 가사실을 선택하지 않았나 싶다. 3학년 방과후 공부방을 후관 2층 교원연수실에서 한다. 수업하고 나오면 탄 냄새가 몸에 배어 있다. 시간 날 때마다 창문을 열어 놓지만 탄 냄새가 좀처럼 빠지지 않는다. 환절기마다 비염으로 신경이 쓰이는데, 연수실에서 수업을 계속 하고 있어서인지, 요샌 기침이 심해진다. 탄 냄새를 거부하는 내 몸이 재치기로 마뜩잖은 심기를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또 화재가 거론되고 있다. 수업 시간 중인데도 떠돌아 다니는 아..
1. 혼불 교감 선생님의 권유로 수완중 수업 참관 소감을 정리하려고 연습장을 펼쳤다가 예전에 메모해 둔 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는 우리의 자아를 가르친다.” 훌륭한 가르침은 교사의 마음, 즉 자아정체성과 성실성에서 나온다는 말로, 교사 자신의 자아와 전공, 학생들을 엮어 하나의 세계, 즉 배움의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한다. 이번 주에는 우리의 ‘혼’을 빼놓은 ‘불’이 있었다. 교사로서의 정체성과 성실성에 심각한 회의를 품게 한 사건이었지만, 역설적으로 마음을 다잡아 아이들을 가르쳐야하는 우리의 ‘혼불’을 확인한 시간이기도 했다. 2. 혁신학교 ‘수완중’ 수완중학교는 우리 학교와 함께 혁신학교로 지정되었지만, 학교 차원으로는 1년, 교사 개개인으로 는 그 이상 새로운 학교를 준비해 왔기에 보..
"배움의 공동체" 연수를 듣고, 혁신학교를 고민하면서 가장 먼저 훑어본 책이다. 통독하겠다고 손댔다가, 밑줄 그으며 다시 읽고, 연습장에 정리해 가며 또 다시 읽어보았다. 일본과 우리나라의 교육은 이른바 '동아시아형 교육의 문제'를 그대로 가지고 있어, 책 내용은 거의 그대로 우리 나라에도 적용되는 이야기이다. 교육 개혁을 하고자 할 때, 문제의 원인을 어떻게, 어디서부터 찾아내야하는지, 교육 개혁의 방향과 원칙을 무엇에 둘 것인지 클 틀에서 제시하였고, 자가의 생각이 구현된 초등학교 모습을 사례로 담고 있다. 결국은 우리 학교가 처한 여러 가지 상황들을 고려하여 우리 학교만의 혁신학교 모습을 그려 가야겠지만, 그런 논의의 필요성과 과정에서 방향을 제시하는데 큰 도움이 될 자료다. 많은 예산과 보조 인력..
와~ 벌써 12월. 2010년을 뜨겁게 살아볼 시간이 30여 일 남았습니다. 시작과 끝은 맞물려 있다는데, 우리 학교와 우리 삶에 큰 계기가 될 혁신학교 현장 실사(2차 심사)가 3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혁신학교 공모에 신청한 학교는 중학교 3학교(신가중, 수완중, 우리학교)입니다. 계획대로 2학교를 지정할 예정이고, 혁신학교에 대한 관심이 높아, 심사위원들이 개별적으로 심사한 뒤 합산하여 두 학교를 선정하는 방식으로 진행될 것 같습니다. 따라서 동·서부 한 곳씩 지정하리라는 예상을 빗나간 결과가 나올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12월 2일부터 현장 실시가 시작되고요, 우리학교는 금요일이므로 마지막 순서입니다. 서류 검사에서 수완중과 신가중은 교사, 학부모, 학교운영위원 동의율이 100%였으나, 우리 그..
오랜만에 보는 여명이다. 박남수의 ‘아침 이미지’를 떠올릴 만큼 차근차근 그러나 세차게 밀려오는 아침의 기운을 온몸으로 느끼며 마을길을 나선다. 학교 가야할 시간에 다른 학교 가는 기분이 낯설다. 혁신학교 수업 참관이라는 출장 목적도 낯설다. 소속 학교가 다른 선생님들과 한 버스에 모여 혁신학교로 가는 이 길이 낯설다. ‘혁신학교’ 다른 지역의 이야기, 우리 지역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나와 관련된 일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국어 수업의 변화만으로도 벅차고 힘든 일이라 학교 단위의 혁신에 대해서 고민할 여유도 능력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진보 교육감 당선 이후, 각종 토론회와 연수를 거치면서, 내 몸과 마음에서 가장 많이 쓰는 단어가 ‘혁신학교’가 되었다. 그러다 가끔은 내 운명이라는 생각까지 ..
지난 9월 ‘동부교육청’이 ‘동부교육지원청’으로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기존의 관리·감독 기능에서 교육주체들의 교육 지원을 강화하겠다는 것인데요, 교육현장에서 교육정보부장을 맡고 있는 저에겐 ‘관리과’에서 ‘학교운영지원과’로 이름만 바뀐 공문들이 여전히 전달되고 있어, 이름만 바뀐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지켜보고 있습니다. ‘이름, 이름값’ 참 중요합니다. ‘막개발’을 ‘난개발’로, ‘사(私)영화’를 ‘민(民)영화’로, ‘조류독감’을 ‘AI’로 부르는 것은 어려운 한자어나 영어로 이름값을 알아보기 어렵게 하려는 것이고, ‘NEIS’를 ‘나이스’로 ‘대운하 사업’을 ‘4대강 살리기’라 이름하는 것도 어감이 좋은 말로 민중들의 눈을 가리려는 술책이라 오해할만 합니다. 학교에도 이름값 못하는 ‘이름’이..
집이 시골이다 보니 포털 사이트를 통해 뉴스를 접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다 어제 "방학을 교육적 연수보다 실질적 휴가로 인식(연합뉴스 2010.08.31)"이라는 기사를 보고 순간 울컥했습니다.대학 연구 교수의 보고서였는데요, 학기 중 업무 부담을 먼저 줄여야한다고는 했지만 기사의 초점은 방학을 연수기간이 아닌 휴가로 인식하고 있다는 지적이었습니다. 방학이라도 쉬지 않으면 우리 교사들의 마음은 황폐해질 것입니다. 그렇게 소중한 방학, 선생님들께서는 어떻게 보내셨어요? 저는 학생부장하며 특별교육이수기관으로 활용했던 ‘금란교실’에서 학생 인권, 청소년의 심리, 성격 검사, 직업적성 검사를 해 보며, 제 자신과 아이들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또 북경에서 열하와 내몽골로 이어지는 "열하일기" 문..
그토록 바라던 교육감이 당선된 이후에도 교육 현실은 달라진 것이 별로 없다. 여전히 동의할 수 없는 이유로 조합원을 징계하고 있고, 일제고사를 강행하고 있으며, 2009 개정교육과정도 진행중이다.하지만 교육감의 핵심 공약인 ‘혁신 학교’가 여러 학교에서 시작되고 널리 퍼질 것이기에 학교의 변화에 대한 기대는 높아져 가고 있다. 혁신 학교에 대한 연수와 세미나가 꾸준히 마련되고, 분회 총회 자리에서나 점심을 먹는 자리에서 혁신 학교의 모습을 이야기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러나 혁신 학교에 대한 상이 구체적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물리적, 재정적 지원이 대폭 이루어지더라도, 교사의 헌신을 바탕으로 성패가 이루어진다는 사실에 머뭇거려지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목 안에 가시가 걸린 것처럼, 자꾸 신경이 쓰인다. 그..
대체로 범생이 많은 우리 친척들 중에 좀 특이한 사촌 동생이 하나 있다. 물론 내 기준이겠지만. 동생이 영문과를 진학한 것도, 어느날 '카투사'를 지원해 근무한 것도, 그리고 얼마 전, 홀연히 미국으로 떠나 아르바이트하며 생활하여 잘 지내고 있고 생활에 만족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됐다. 나에게 그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외국으로 떠날 수 있을까? 그러고 생각해 보니, 기회는 주어지는게 아니라 만드는 것이라 생각에 이르러 동생의 적극성이 참으로 놀라웠다. 외국으로 훌쩍 떠나는 수준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여행을 좋아한다. 낯선 상황 속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고, 아이가 아직 어려 여행을 할 수 없어, 책이나 다른 사람과의 이야기 속에서 자극 받고 나를 돌아보곤 한다. 그렇지만 결국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