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언'은 베트남 말로 '고맙다'는 뜻이라고 한다. 이야기의 서술자, 유정이는 언청이(구순구개열)로 태어나자마자 부모에게 버림받지만, 할머니와 작은아빠 가족, 살문리 마을 사람들과 친구들과 살면서, 타인에 대해 들고 있던 자신의 방패를 거두게 된다. 열일곱의 시작이다.유정이의 성장에는 강화도라는 배경의 힘이 크다. 몰락하는 농촌 공동체 속에서 그래도 희망은 사람이다. 이야기는 먼저 우리나라 농업 현실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미국, 중국 등 계속되는 자유무역(FTA)을 통해 전체적으로 형편은 나아질 수 있겠으나 농촌은 계속 피폐되고 있다. 대형마트에 홈쇼핑에서 이름도 잘 기억나지 않는 아프리카근처에서 잡은 갈치, 폴란드산 삼겹살, 칠레의 과일을 먹는 것이 익숙한 현실이 되었으나 개방의 이익과 분배, 그 과정..
가끔 계절이 바뀔 때에야 큰 숙제를 하듯 묵은 옷을 정리하고 나서야 찾게 되는 의류수거함을 이야기수거함으로 풀어난 작가의 상상력과 입담이 놀랍다. 읽다보면 “오즈의 의류수거함”은 “오즈의 마법사”를 오마주했다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낯설지 않는 소재이나 다양한 사연을 담은 구조에 금방 귀를 기울이게 되는 것 같다. 모험담 같은. 사실 얼마 전에야, 의류수거함의 물건을 손대는 게 불법이라는 것을 알았다. 동네에 있는 의류수거함이 공적단체가 아닌, 개인이 설치한 것이기에 물건에 손을 대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매번, 밤늦게 의류수거함의 옷을 빼내 마녀의 하우스에 넘기는 도로시의 행동이 긴장되었다. 깊은 밤에 도로시가 만나는 풍경과 사람들도 평범치 않아 긴장이 되었다. 195번 의류수거함에서 삶을 정리하..
오랜만에 만난 가슴 따뜻한 이야기이다. 처음 만나는 이집트 문학이기도 하다. "인생은 그런 거야"에서는 레베카, 네이라, 마리나 세 소녀의 이야기가 푸른 지중해처럼 맑고 푸르게 펼쳐진다. 이야기는 네이라의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부터 시작된다. 네이라와 레베카의 부모님은 모두 한가족처럼 지내는 사이. 자신의 일처럼 슬퍼해 주고, 엄마를 잃은 네이라를 위로해 준다. 하지만 네이라는 그 무엇으로도 어머니를 대신할 수 없다. 사랑하는 아버지도, 친척들도 내 몸과 같던 친구들의 위로도 오히려 가슴의 상처만을 키울 뿐이다. 결국 네이라의 상처를 치유해 주는 것은 친구들의 변함없는 우정과 무심히 흘러가는 세월이다. 어리숙하지만 짝사랑의 순정을 간직한 마리나와 친구의 아픔을 처음부터 끝까지 마음으로 함께 하는 레베카가 ..
지금까지 김선영 작가의 소설 4편을 읽었다. 4권 모두 특별한 경험을 이야깃거리로 삼아 금방 몰입하는 이야기들이었다. “시간을 파는 상점”은 주관적인 시간의 흐름을, “특별한 배달”은 웜홀을 통해 현재 자신의 문제를 대면하는 내용을, “미치도록 가렵다”는 청소년 소설이라기보다는 성인까지 대상을 넓혀 성장과정에 대한 이해를 잘 나타냈다. “열흘 간의 낯선 바람”도 몰입감 있게 잘 읽힌다. 먼저 이 작품은 SNS의 문제점을 잘 포착해 공감할 수 있게 만들었다.시간이 갈수록, 나이가 어릴수록 SNS에 대한 의존이 높아진 지금, SNS의 문제점과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우리는 더욱더 만나야하고 공감하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아야한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보여지는 것으로 드러내는데 치우쳐 공허함만이 가득한 관계가 아..
'컬러풀'하면 화려함이 떠오른다. 이 책에서 '컬러풀'은 화려함 보다는 인생과 세상이 긍정과 부정 등 다양한 것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사람도 서로 긍정과 부정의 관계를 맺고, 다른 사람에게 좋은 영향도 나쁜 영향도 끼칠 수 있다는 걸 상징하고 있다. 이야기는 지상에서 죄를 짓고 죽은 '내'가 추첨에 당첨되어 다시 인간세상으로 내려가 누군가의 몸을 빌려 수행을 쌓을 기회를 얻는 것으로 시작된다. 수행하는 동안 내 전생의 기억을 되찾으면 승천해서 다시 윤회가 시작되고. 내가 몸을 빌려 살아가게 될 사람은 사흘 전에 자살을 기도한 ‘마코토’라는 아이. 마코토는 친구들에게도 소외당하고, 바람을 피우는 어머니와 이기적인 삶을 사는 아버지, 마코토를 무시하는 형 때문에 힘들어했다. 게다가 마코토의 짝사랑인 히로카가..
업둥이로 자란 주인공 진아가 자신의 근원을 찾아가는 이야기는 끝이 좋지 않음을 추측할 수 있다. 그렇기에 갈등을 ‘좋게좋게 덮자’는 감진마을 이장의 태도와 확연히 비교가 된다. 전두환에 대한 평가도, 지역감정도, 친구 인애에 대한 성폭력도, 사람사이의 갈등도 좋게좋게 덮자는 사고의 끝이 어쩌면 친일 청산을 제대로 하지 못해 현재의 역사적 비극까지 낳은 것이고, 세월호 참사로 꽃다운 사람들은 허무하게 보낸 것이라고 하면 ‘삼천포’로 지나치게 빠진 것일까. “꽃 달고 살아남기”란 제목을 보고 설마설마했다. 몇 가지 복선을 이상하게 생각하다 갑자기 알게 된 ‘신우’의 존재가 책을 읽는 곳곳에서 소름을 돋게 했다. 그리고 곧 주인공 진아에 대한 연민의 정을 느꼈다. 이야기 속에는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는 진아의 ..
사막을 배경으로 닌텐도 Wii Fit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여학생 3명의 모습이 사뭇 진지하게 보인다. 이 학생들은 각각 체중과 여성미, 피부 때문에 ‘아르주만드 뷰티살롱’의 관리를 받는다. 그런데 죽을 각오로 다이어트를 하는 게 아니라, 자기 성찰을 통해 내면의 아름다움을 찾으며 삶을 개선하는 다이어트를 진행한다. 표지 배경이 사막인 것도, 힘들 때마다 보라며 아르주만드 민이 준 사막의 모래도 그런 의미에서 자기의 본질을 대면하고자 노력했던 고등학생들에게 익숙한 ‘생명의 書’와 같은 공간이다. ‘아르주만드(arjumand)’는 우즈베크어로 ‘소중한, 사랑하는, 귀여운’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 책은 표지도, 제목도, 내용도 ‘내면의 아름다움’을 찾는 이야기이다. 아름다워지기 위해서는 겉치장..
빅 보이국내도서저자 : 고정욱출판 : 책담 2014.11.25상세보기 고정욱 선생님이 쓴 청소년 소설에는 일정한 형식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소설이기보다는 인문학 강좌에 가까운 느낌이 든다.문제 상황에 있는 주인공(남자)과 모범이 될만한 조연(여자), 그리고 남주인공을 잘 이끌어 주는 멘토. 그리고 좋은 책 이야기.이런 형식들이 소재를 달리하여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고 있다. 식상할 수도 있지만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 적절한 조언과 성장하는 또래 이야기가 있어, 책과 거리를 두는 남학생들도 잘 읽어내는 것 같다. 빅 보이가 되기 위해서, 스스로, 인생을 성찰하는 인문학적 소양과 목표, 이를 달성하고자 하는 노력과 실력, 인연과 네트워크.삶에서 허투루 보낼 순간은 없다. 뫼비우스 띠가 생각난다. 어디에서 변..
귀신과 소통이란 다소 특별한 소재를 활용해, 제목처럼 조단조단 삶을 성찰하도록 이끄는 여운이 깊으면서도 흥미로운 이야기 책이다. 이 책에서 인상 깊은 점은, 귀신이 되었든 사람이 되었든 집착에서 벗어나야 진정으로 자유로워진다는 것이다. 서준이 이승을 떠나지 못하는 것도, 갑작스러운 사고로 서준을 잃은 가족이 폭발 직전의 상황에 놓인 것도 내용에 다소 차이가 있지만 결국 집착 때문이다. 그리고 이 집착은 남녀 차별의식과 같은 선입견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또 소통을 담당하고 있는 ‘아리’ 역시 의사가 되라는 부모님의 강한 기대와 유전학자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는 것도 결국은 집착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은 소통하는 과정에서 관련된 모든 인물들이 집착에서 벗어나 진정한 의미에서 ‘홀로서기’를 시작하게 된다는 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