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 물무산 행복숲 맨발 황톳길 산책(2023.9.16)

아내와 맨발 걷기를 시작했다. 주위에 맨발로 걸으며 건강이 좋아졌다는 간증(?)에 가까운 이야기를 하는 분들이 많다. 마침 둘째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에 맨발 산책로가 조성돼 있어 거기를 걷다 지금은 운동장을 몇 바퀴 크게 돌 수 있을 정도로 익숙해졌다. 물론 지금도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자갈을 디딜 때면 한 번씩 놀라며 움츠러 들기도 한다.
 
가끔 어린아이가 있는 동료들과 주말 여행 정보를 공유할 때가 있는데 그때 '영광 물무산 행복숲'을 추천한다. 유아숲체험장도 있고 산책로도 좋다고. 그런데 다녀온 샘들마다 '맨발 황톳길' 걷기가 참 좋았다고 한다.
아, 나 역시 사무실 장학사님의 소개를 듣고 내비게이션의 목적지로 '물무산 행복숲'을 설정하고 갔을 때에도 이곳 '맨발 황톳길 주차장'에 도착했었다. 당시 진입로도 좁고 주차장에 잡초가 제법 무성했고, 찾는 사람도 별로 없어 어리둥절해하다, 산길을 넘어 '영광생활체육공원'으로 가서야 물무산 행복숲 둘레길을 걸었던 기억이 난다. 당시 그 과정을 블로그에 적기도 했다. 당시엔 둘레길이 걷기에 좋아 황톳길을 걸을 생각은 하지 못했다. 
 
*영광 물무산 행복숲 둘레길 소개 보러 가기
 
코로나가 진정이 되면서 물무산을 다시 찾지는 못했다. 그동안 얼마나 변했을까.

비가 한두 방울 떨어지기 시작했지만 어차피 '질퍽질퍽 황톳길'을 걷는 것이라 큰 차이가 있겠냐 싶어 영광으로 출발했다. 그런데 영광에 가까워질수록 비가 세차게 내렸다. 군청 근처 분식집에서 따뜻한 국물에 떡볶이와 김밥을 먹으며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다. 빗발이 다소 가늘어진 것 같아 '맨발 황톳길 주차장'으로 출발했다. 
 
묘량으로 가는 2차선 도로에서 맨발 황톳길로 들어가는 길목에는 안전요원 두 분이 관광버스를 통제하고 있었다. 마침 불갑사에서 상사화 축제가 있어 이곳을 들르는 관광버스로 교통이 혼잡해지지 않도록 빗속에서도 교통 정리를 하고 있었다. 마을길은 차 두대가 교행하기도 버거웠다. 곧 넓은 저수지(흥곡저수지)가 보이고 제법 넓은 주차장이 나타났다. 비가 오는 데도 제법 많은 차가 주차돼 있었다. 
 
차를 세우고 표지판을 따라 맨발 황톳길 입구에 들어섰다.
 

주차장 출구쪽에서 바라본 주차장 모습.
맨발 황톳길 출발점. 세족장이 두 곳 설치돼 있다.
세족장 근처에는 곳곳에 벗어둔 신발이 많았다. 우리 가족도 여기에 벗어두고 출발했다(왼쪽) 주차장에서 맨발황톳길 사이에 마련된 공원(오른쪽). 

 
조용했다. 우산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마음을 차분하게 했다. '세족장' 근처에 가족의 신발을 벗어 두고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비가 내리기 전에도 '질퍽질퍽 황톳길'은 발목 깊이까지 빠질 것 같았다. 그런데 빗물이 섞여 더 질퍽해졌다.
황토를 밟을 때 발가락 사이로 삐져나오는 흙이 부드러웠다. 어렸을 때 모내기하러 무논에 들어갈 때의 느낌이 떠올랐다. 발을 들면 발등 위로 젖은 황토가 따라 올라 제법 묵직했다. 완만한 오르막길에 좌우의 경사가 있어 미끌리기도 했다. 즐거웠다. 오가는 사람도 적잖게 있어 청승맞게 느껴지지 않았다^^ 


황톳길의 3/4 정도가 질퍽질퍽 황톳길, 1/4 정도는 마른 황톳길로 구성돼 있다. 그런데 비가 와서 모두 질퍽질퍽 황톳길이 되었다.
마른 맨발 황톳길의 시작~!

 
600m를 걷자 단단한 황톳길이 나타났다. 이곳 황톳길은 '질퍽질퍽 황톳길' 0.6km, '마른 황톳길' 1.4km, 총 2km 조성돼 있었다. 질퍽거리지는 않았지만 빗물로 미끄러운 곳이 여러 곳 있었다. 모랫길을 걸을 때와 다르게 부드러웠다.
산책하는 사람도 거의 없고 가져간 블루투스 스피커로 '지브리 스튜디오'의 음악을 틀었다. 우산에 빗물 떨어지는 소리도 좋았다. 가끔 잠을 이루지 못할 때 유튜브에서 빗소리를 듣곤 했는데 그때처럼 마음이 편안해진다.
 

연못에서 흘러나오는 물이 제법 계곡물을 이루어 흐른다.
왼쪽 산길은 2km 종점까지 바로 이어져 있는 길이다. 연못 근처.
연못에서 발을 한 번 씻었다.
산기슭으로 상사화가 제법 피었다.

 
1.2km 정도 걸었을 때 익숙한 곳이 나왔다. 물무산 둘레길을 돌 때 여러 번 점심을 먹었던 '맨발황톳길 중간지점(7번)' 근처가 나왔다. 물무산 둘레길 2/3 지점 정도 되는 곳으로 여기서 점심을 먹고 곧올재(6번)까지 거리가 제법 길었다. 
 

 
여기서부터 걷는 길은, 물무산 둘레길을 걷는 느낌이 났다. 둘레길처럼 산기슭을 따라 이리저리 돌아가는 길이 재미 있다. 쉬고 싶다는 느낌이 들 때쯤 넓은 공간이 열리며 종점에 도착했다. 세족장 뒤로 '소나무숲예술원'이 보였다. 
 

종점 풍경. 나무정자와 표지판이 있다. 맨발 황톳길은 4월~10월까지 운영된다.

 
비가 많이 내려서인지 우산 꼭지 쪽에서 빗물 한두 방울이 머리에 떨어진다. 내려 가는 길, 작은 골짜기 사이로 흐르는 물이 제법 많다. 배수로가 잘돼 있다.
 

내리는 비에 나무 밑에 핀 꽃무릇은 많이 쓰러져 있지만 햇볕을 바로 받은 꽃무룻은 버티고 있었다
질퍽질퍽황톳길의 황토 두께 

 
항상 올라 가는 길보다 내려오는 길이 짧다. 금방 연못 근처에 도착했고, 다시 질퍽질퍽 황톳길이 시작됐다. 
 

출발점의 세족장, 두 곳이 있다.

 
출발점 세족장에서 발을 씻었다. 솔이 왜 있나 싶었는데 발톱을 보니 황톳물이 봉숭아물이 든 것처럼 보였다. 솔로 발톱과 종아리에 묻은 황토를 씻어 냈다. 시원했다. 비가 오지 않는 날 풍경은 어떨까? 11월이 되기 전 한 번 더 와야겠다.
 
그사이 빗줄기가 많이 가늘어졌다. 무료로 좋은 길을 걸었으니 영광에서 소비를 하고 가는 게 맞을 것 같아 영광하나로마트에 들렀다. 2023년 햅쌀이 벌써 나와 있었다. 10kg 한 가마니와 저녁거리를 사서 집에 왔다.
종아리가 묵직하다. 
 

 

Designed by JB FACTORY